2023-05-28 주일설교
하늘문이 열린다
사도행전 10:1~16
저는 학생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간절한 소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만이 아니라 모든 신자의 로망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저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대신 성경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20살부터 신학을 공부한 저는 60살이 되어서 신학박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비결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는 본문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 두 명이 등장하는데 첫 번째 사람은 고넬료(Κορνήλιος)입니다. 이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입니다. 그는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던 이탈리아 부대를 통솔했던 로마군 백부장이었습니다. 로마군 백부장이라면 무력으로 지배하고 약자를 억압하며 착취하는 것이 어울립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항상 기도했습니다.(행 10:2) 여기서 항상이라는 말은 24시간이 아니라 정해진 기도 시간을 매번 지켰다는 뜻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7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릴 때 이것 때문에 고민하고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가? 여기서 쉬지 말고(ἀδιαλείπτως)는 ‘계속적으로’를 뜻합니다. 즉 매일 기도하고, 정한 기도 시간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고넬료는 제9시, 즉 오후 3시 기도 시간에 기도하다가 환상 가운데 천사를 만났습니다. 제9시에 환상을 본 사건이 기도중이었다는 사실은 30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천사는 두 가지 말을 했는데 첫째는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도만이 아니라 구제도 하나님께 상달된다는 사실에 주목하세요. 구제는 단지 가난한 사람에게 선심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잠언에서도 구제는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잠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이어서 천사는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했습니다. 천사는 왜 베드로는 초청해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고 떠나갔는데 그 이유는 순종해보면 알 수 있겠지요. 이처럼 하나님은 종종 명령만 할 뿐 설명은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설명까지 하실 의무는 없습니다.
다음날 고넬료의 하인이 욥바의 무두장이 집으로 가고 있는데 낮 12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습니다(9절). 여기서 지붕이란 다락방 혹은 옥상을 뜻합니다. 옥상의 다락방은 생활공간이 아니라 기도, 회의, 손님 접대의 공간입니다.
그 시간에 아래에서는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는데 베드로는 기도하다가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황홀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엑스타시스(ἔκστασις)인데 여기서 영어 엑스터시(ecstasy)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엑스터시가 마약 이름이 되어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제6시 기도 시간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환상 중에 하늘에서 큰 그릇이 내려왔는데 그 속에는 각종 짐승이 있었습니다. 또 소리가 들리기를 잡아 막어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율법에서 먹지 말라고 한 부정한 동물들입니다. 베드로는 부정한 동물을 먹을 수 없다고 했더니 하나님이 깨끗하게 한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 일이 세 번이나 있고 환상에서 돌아왔습니다.
이 환상이 무슨 의미인지 고민하는 중에 고넬료가 보낸 하인들이 와서 베드로를 찾았습니다. 그때 성령님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가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설명하는데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가족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 유대인과 이방인 두 사람은 기도로 통하고 성령의 인도로 만남으로 이방인 고넬료 가정이 구원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베드로는 이방인 전도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이제 얼마 후면 사도 바울이 전 세계를 돌며 이방인 전도를 할 텐데 그 정당성이 수제자 베드로에게서 나왔습니다.
여기서 잠깐 유대인들의 기도 시간을 좀 알아봅시다. 유대인의 정기 기도 시간은 오전 9시, 12시, 오후 3시입니다. 이는 로마시간으로 제3시, 제6시, 제9시입니다. 사도행전에는 각각의 기도 시간에 대한 예가 있습니다.
제3시 기도는 2:1에 나옵니다. 2:1에서 한 곳에 모였다는 것은 바로 기도 모임입니다. 그 증거는 1:14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제3시라는 증거는 2:15입니다.
제6시 기도는 10:9에 나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다가 황홀해진 바로 그 시간입니다. 제9시 기도는 3:1에도 나오고 10:3에도 나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앞에서 못 걷는 자를 일으킨 것이 제9시였고 고넬료가 환상을 본 것도 제9시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정해놓고 기도했는데 오전 9시와 오후 3시는 구약의 상번제 시간입니다. 제6시 기도는 어떤 이유로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기도하고 싶다는 경건한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제6시 기도에서 베드로는 황홀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우리 같은 이방인이 복음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시간에 유대인들은 세 가지 방법으로 기도합니다. 우선 혼자서 기도합니다. 베드로도, 고넬료도 혼자 기도했습니다. 구약의 다니엘도 혼자 기도했습니다. 9:10의 아나니아, 9:11의 사울도 혼자 기도했습니다.
또 유대인들은 합심으로 기도했습니다. 2:1, 오순절에 처음으로 성령을 받을 때와 4:24에서 위협받을 때도 합심으로 기도했습니다.
또한, 모이기는 하지만 각자 기도하기도 합니다. 3:1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제9시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 시간은 오후 상번제 시간인데 다른 유대인들도 기도하러 옵니다. 모여서 각자 기도하는 것은 우리나라 새벽기도회 모습과 같습니다. 그런데 오후 3시는 한창 일하는 시간인데 그들은 기도하러 성전에 모였습니다.
또 그들이 기도한 장소는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상번제 시간에 성전에 와서 기도합니다. 성전이 멀면 회당(會堂)에 모여서 기도했고 회당조차 멀면 개인 가정에서도 기도했습니다. 10:9에서 베드로는 옥상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도, 믿은 후에도 매일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무슬림은 하루 5번 기도합니다. 무슬림은 일하다가도, 공부하다가도 기도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기도합니다.
매일 하루 5번 기도하는 무슬림과 하루 3번 기도하는 유대교인, 그리고 하루 새벽기도 1번만 기도하는 기독교인 가운데 누구 영성이 가장 강할까요? 그나마 요즘은 새벽기도에 참석하는 교인이 1/10도 안 됩니다. 우리 기독교가 이슬람과 유대교를 우습게 볼 자격이 없습니다.
오늘 서두에서 하늘문이 열리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에게 하늘 문이 열리기 원하면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조용히 기도할 때 하늘문이 열립니다. 개인적인 기도는 생각나면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항상 기도하는 것이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가 자기 삶의 패턴에 맞지 않으면 각자가 정해도 됩니다. 처음부터 너무 길게 정하면 실행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5분으로 시작해서 영성이 깊어지면 더 길게 하면 됩니다. 각자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반드시 지킬 수 있는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에 알람을 설정하세요. 이런 습관은 정착되기까지는 매우 힘써야 합니다.
기도할 때 무엇을 기도하면 좋을까요? 고넬료는 무엇을 기도했을까요? 기도와 구제에 힘쓴 고넬료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에게 더 많이 구제하려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도를 받으신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그에게 복음을 전할 베드로는 초청하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무엇을 기도했을까요? 그는 더 많이 전도하기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까지 전도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할 때 찾아오시고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찾아오시고 말씀해 주십니다. 다만, 성경 시대와는 달리 천사가 찾아오거나 영음을 들려주시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기도할 때 잔잔한 감동을 주십니다. 혹은 강력한 소원을 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이미 아는 성경 말씀이 생각나게 하십니다. 혹은 양심의 가책을 주십니다.
성경 시대에도 환상이나 천사, 영음 대신 현실적인 도움을 베푸는 일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1500km 떨어진 예루살렘을 위해 울며 기도했는데 그에게는 천사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황제가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이것은 환상을 본 것보다 결코 못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이 할수록 더 잘하는 것처럼 기도 중에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도 경험할수록 더 선명해집니다. 이것은 해 본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주부터 개인기도 시간을 정하고 기도하면서 하늘문이 열리는 경험을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