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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빌 브라이슨
출-동아일보사(2008.2.29.416쪽)
독정-2019. 8. 20
<1만 피트에서의 명상>저자 지질학자 제임스 트레필은 산의 시냇물이 모래나 부유 물질의 형태로 연간 1000입방 피트의 산을 씻어 내려간다고 했다. 이건 보통 크기의 트럭 1대의 적재량보다 많지는 않다. 매년 덤프 트럭 1대가 산 밑에 도착해 흙을 퍼 간 뒤 열두 달 동안 소식이 없다는 것을. 그런 비율로는 산을 실어 낼 수가 없지만 시간만 충분히 주어지면 5000억 입방피트의 땅을 가진 5000 피트 높이의 산-은 시냇물 한 줄기가 그걸 평평하게 만드는 데는 5억 년이 걸린다.
나는 숲에 있고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 있고, 어둠 속에서 곰을 바라보고 있어. 손톱깎이 외에는 자신을 방어할 만한 것을 갖고 있지 않은 친구와 함게 말이야. 저게 곰이고 달려오면 어떻게 할래? 발톱이라도 깎아 줄 거야?“
“난 다리에 다다르면 그때 다리를 건널 거야.”
“무슨 말이야? 너는 지금 다리 위에 있어. 저 밖에는 곰이 있고! 제발 저 놈이 우리르 보고 있잖아. 녀석이 곧 국수와 스키커즈 냄새를 맡을 거야. 저기 두 마리가 있어. 또 다른 한 쌍의 눈이 보여.
그때 플패시 건전지가 다 나갔는지 불빛이 깜박이다가 사라졌다.
“곰이 돌진할 순간에 잘 수 있어?”
“나는 잘 수 있어. 잘래.”
그 짐승들이 꿀꺽꿀꺽 소리를 내면서 한잔을 더 했다. 새가슴으로는 숲에서 잠을 잘 수 없다. 그리고는 다시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이뜰겨 점차 잠에 빠져 들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있을 때는 숲이야말로 무한한, 그리고 온전한 우주였다. 매일매일 경험하는 것이니까. 실제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물론 지평선 너머 어딘가에 활발한 도시와 복잡한 공장들, 붐비는 고속도로가 있지만 눈이 미치는 범위 안의 모든 것이 나무인 곳에 있으면 숲이 지배를 한다. 그것들은 숲의 거대한 우주 속에서 그냥 잠시 도움을 주는 정거장 같은 곳에 불과하다, 함부로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야성 그대로인 그 숲은 대책 없는 유혹을 불러 일으킨다. 나는 거기서 죽고 싶다. 아메리카 사자에 갈갈이 찢기거나 인디언 도끼에 쿵하고 직히거나 정처 없이 떠돌다가 우연한,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하더라고 괘념치 말이어다. 나는 이미 가파른 바위 위로 흘러넘치는 시대가지 가는 길을 찾기 위해 전경을 살피고 있다.. 숲에서는 다른 존재에 대한 육감이 있다.
· 숲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방울뱀, 물뱀, 독사, 살쾡이, 곰, 코요테, 늑대ㅡ, 야생 멧돼지 , 거기다가 거친 술음 많이 마셔 약간 돈 산사람과 스컹크, 너구리, 다람쥐, 무자비한 불개미, 혹파리, 독이끼와 독참나무 옻나무, 불도마뱀. 한밤중에 소변보러 텐트 밖으로 나왔다가 눈 바쁜 올빼미의 습격을 받아 자기 머리 가죽이 올빼미 발톱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보름달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도 있다. 배꼽 근처가 간지러워 잠에서 깨어나 슬리핑 백 안을 살펴보니 따스한 자신의 다리 사이에 독사가 또아리를 틀고 있더란 얘기도 있다. 나무가 쓰러져 텐트를 덮쳤다는 얘기, 세찬 비바람에 벼랑에서 떨어져 계곡에 쳐박혔다는 얘기. 여우들이 원을 그리면서 점점 좁혀 오거나, 불개미의 도발로 옷이 갈갈이 찢겨져 비틀거리거나 분홍빛의 포동포동한 도회풍 육질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 소파만한 멧돼지에 질질 끌려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 캄캄한 숲 한가운데서 바람이 전하는 공습경보와 화난 나뭇가지들이 서로 부벼대면서 바람을 치받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숲은 어느 공간과는 다르다...무엇보다도 입체적이다.. 나무들이 사람을 에워싸고 위에서 짓누르며 모든 방향에서 압박한다. 경치를 가로막고 사람이 어디 있는지 분간하지 못하도록 한다. 사람을 왜소하고 혼란스럽고 취약하게 해 노은 뒤, 마치 낯선 사람들의 무수한 다리 사이에서 길 잃은 아이가 된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사막이나 초원에 서면 광활한 공간에 놓여 있음을 안. 반면, 숲에 서면 당신은 오직 그걸 감지하는 게 고작이다. 숲은 거대하면서도 특징 없는, 게다가 어디가 어진지 모르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 있다. 그래서 숲에서는 곧잘 놀라게 된다. 아슈나 산적들이 숨어 있을 것도 같고 뭔가 선천적으로 불길한 것 같아 한 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최후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듯한 어떤 것, 그래서 물을 떠난 물고기처럼 당신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들고 항상 귀를 쫑긋 세워 놓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바로 스스로 터무니없는 생각이라 말하면서도 누군가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덜쳐 버리기 어렵다. 아드레날린을 책임지는 신체 기관이 무엇이건 간에 그토록 광이 나게 잘 닦이고 기름칠 잘돼 있으며 나사가 제대로 조여 있어 외부에서 신호가 오면 즉각적으로 아드레날린을 뿜어댈 준비를 갖추고 있던 것이 과거에는 없었던 듯싶다. 심지어 잠을 잘 때도 당신은 언제나 똘 똘 감아 놓은 용수철이다. 그 길은 무성한 과수원과 메사추세츠 주 콩코드 시 교외의 숲을 지나가는, 햇볕이 잘 드는 길처럼 길들여진 세계가 아니었다. 험악하고 공격적이며 원시적인 세계여서 오직 우리보다는 바위나 야생 동물이 더 가까운 친척 같은 사람에게만 적합한 곳이라고 고백했다. 산림청은 모든 정부 기관을 통틀어 두 번째로 가장 많은 토목기사들을 보유하고 있다. 과학적 조림이란 단지 자연 경관에 대한 야만적 모욕일 뿐 아니라 거대하고 무모한 산사태를 불러일으켜 하류 지역의 수 킬로미터에 생태학적인 파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는 과학이 아니다. 이것은 강간이다. 봄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숲은 고요하다.. 지금이 봄이라면 우리는 남부 산악지방의 숲이 주는 향기로운 혜택을 즐기면서 야단스럽게 지저귀는 새을돠 웅웅거리는 벌레 소리에 새롭게 깨어난, ⅓ㅈ산적인 세계를 활보할 수 있을 것이다. 신선함 그 자체인 공기를 호흡하면서 낮은 나뭇가지 밑을 지날 때마다 풍요로우며 감촉이 좋고 허파를 그득 채우는 엽록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눈부시게 풍성한 야생화들이 나뭇가지에서도, 숲 바닥에서도 빛나는 비탈길과 시냇가를 마치 융단처럼 뒤덮으며 피어날 것이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에서 한 등산객이 쥐가 득실거리는 대피소에서 잠을 다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었다. 능선은 영원히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고, 라파에트가 우리를 맞으러 나올 때까지 얼마나 더 겅어야 할지 우윳빛 진공 속에서는 알 길이 없었다. 사향 냄새가 나고 바삭빠삭하며 툭 쏘는 가을의 극치였다. 대기는 너무 청명해서 손을 뻗으면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색상도 싱싱했다. 생기 있는 푸른 하늘과 군청색의 대지, 자연이 부여할 수 있는 모든 색의 선명한 농담을 발산하는 나뭇잎들, 숲에 있는 모든 나무 하나하나가 개성 잇는 존재가 되는 광경을 보는 것은 참으로 놀라웠다. 나는 열정적으로 원기왕성해서신선한 공기와 광채에 들떠서 등산을 즐겼다.
서부 캠프장에서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플래시를 터드려 촬영한 사진에는 곰 네 마리가 나온다. 나무에 걸어 놓은 음식물 주머니를 툭툭 치고 있다가 사진을 찍자 놀란 표정이었다. 문제는 곰의 크기라든지 행태-모두 희극적일 만큼 공격적 모습은 아니다. 마치 나무에 걸린 프리스비(놀이용 원반)꺼내려는 친구들처럼 보였다. -가 아니라 숫자였다. 그때까지 곰이 떼거지로 몰려다닐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만약 곰 네 마리가 내 텐트 안으로 들이닥친다면 나는 슬리핑 백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깔려서 자부라진 채 피를 쏟고 죽을 것이다.
혼자 여행한다는 것이 가장 두렵고도 어려웠다. 나는 아직 맹장이 달려 있고, 인적 없는 산중에서 언제든 터지거나 튀어나올지 모르는 내장 기관이 있다.
우리는 따뜻한 커피를 사서 축축한 등산객들이 드문드문 모여 있는 긴 탁자들이 놓인 곳으로 가져가 점심과 함께 먹었다. 산장은 단순하고 소박했지만, 천장이 높고 공간이 툭 터져 있었다.
“지난 해 트레일 입구에 한 친구를 내려 줬는데. 사흘 뒤 우디 갭 골짜기 공중전화에서 내개 전화를 했더라고. 아마 그게 처음 만나는 공중전화일 탠데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거야. 자기가 생각한 트레일이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공항까지 다시 태워다 줬지. 그런데 이틀 뒤에 그가 에틀렌타로 돌아왔어. 그가 예상 못한 언덕과 고개, 바위, 나무들 그리고 트레일이 있을 뿐이니. 실망하고. 하지만 아내가 돌아가라고 했다는 거야. 왜내고? 그 비싼 등산 장미를 구입하고선 등산 안한 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거야. 나는 그의 부인을 태우고 그를 맞으러 갔지. 그녀가 그를 보고 반가워서 달려가자 그는 그녀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어. 말 한마디 못하고. 공항까지 가는데 계속 울어내는 거야. 나는 그렇게 안도하는 사람 처음 봤어.
·찬 공기가 소나무 수액의 향기를 내뿜으며 마디지고 바람에 구부러진 초목들이 누워 있는 그곳. 뽀족히 튀어나온 산꼭대기에 몸을 추스르고 올라서면 이미 의식을 잃을 지경이 된다. 편마암이 갈린 길 위에서 배낭 때문에 그대로 뻗어 버려 얼굴을 땅에 대고 수분 간 상념에 젖ㄴ는다. 4살 때 확대경을 가지고 관찰한 이후 이끼를 이렇게 가까이 바라본 적 있었나?
· 슬리핑 백 안에 누워 있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아늑해서 다시 서둘러 등산하려는 어리석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아다. 그래서 마치 움직이지 말라는 엄중한 명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그냥 누워 있었다.
“왜 하장실 휴지로 커피를 거르지”
“아, 그거? 필터를 다 버렸어”
“그건 50g도 안 가는데.”
“나도 알아, 하지만 던지기엔 안성맞춤이거든 펄럭거리며 천천히 추락하니까.”
그는 물을 더 따랐다.
“화장실용 휴지도 괜찮은데, 뭘.”
우리는 커피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걸 지켜보며 이상하게도 자부심을 느꼈다. 산에서 처음 맛보는 기분 전환이었다.
· 아침에는 일어나 추위에 다시 진저리를 치고 손을 비비면서 말없이 우리의 사소한 일상, 배낭을 싸서 메고 모든 게 뒤엉킨 거대한 숲 속으로 모험을 떠났다..
간밤에 그 여자가 다가와 우리 등산품을 비교해대는 통에 다음날 언제나처럼 우리는 가련하게 떨면서 일어나 하던 ㅈ대로 아침을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우리의 모든 움직임이 관찰되고 비교된다는 추가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우리가 휴지 조각이 둥둥 떠다니느 커피를 마실 ‘때 그녀는 오트밀과 파이와 도시락, 열두 조각의 초콜릿을 쓰러진 나무 옆에 일렬로 죽 진열해 놓고 하나씩 게걸스럽게 먹었다. 우리는 버려진 고아처럼 비참한 그녀 뺨이 맛있는 음식으로 터질 것처럼 팽창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식사와 장비, 우리가 형편없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짐은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내 것보다 몇 배는 좋아보였다. 내가 그 옆에서 몸을 수그리자 짐은 함께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먹는 것에 감음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콜라 한잔에 마치 처음 마셔 보는 음료수인 것처럼 넋이 나갔고 흰 빵으로 거의 오르가즘을 느꼈다.‘감정이 풍부한 구름을 두르고 있는 울퉁불퉁한 바위투성이의 연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위를 손짓해 부르는 것 같고 외경스럽기도 했다. 스모키 산맥이었다.
방문 안ㄴ 센터는 문이 닫혀 있었다. 유리창에 붙여 놓은 쪽지의 긑이 말려 올라가 있었는데 다음 달까지는 열지 않는다고 쓰여 있었고 자판기는 전깃줄이 뽑혀진 채 비어 있었고 애통하게도 화장실마저 잠겨 있었다.. 카즈가 외벽에서 수도 꼭지를 발견하고 반짝이는 눈을 해 가지고 틀어 보았지만 물이 안 나왔다.
돌덩어리가 깔려 있었고 우리가 자주 걸려 넘어지고 발부리가 채인, 꼬부라진 나무 뿌리에 연결돼 있는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눈가루가 얇게 깔린 그 아래로 미끈미끈한 얼음이 뒤덮여 있었다. 분노를 일으킬 정도로 자주 길은 가팔라졌고 자갈이 많았으며 개울에 의해 끊기곤 했다. 개울 역시 얼어 있어 우리는 어처구니없게도 좁고 위험한 길 위에서 새둥주릴 붙잡고 기어 올라가야 했다.
짐승들에게 사람은 야구 모자를 눌러쓴 통통한 피조물일 뿐이다. 야외 식탁에 음식을 여기저기 뿌려 놓고 ‘곰 아저씨’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 애교 어린 눈으로 비명을 지르다가 슬금슬금 물러나 비디오카메라를 들이대고는 곰이 식탁으로 기어 올라가 케이크를 먹어 치우는 것을 찍는 그런 존재일 뿐이다. 카츠는 마치 스스로 쥐가 된 것처럼 손과 무릎으로 기어 다니면서 플래시의 불빛을 이리저리 흔들어대고 잠시 멈추었다가 갑자기 등산화를 집어 던지거나 물병을 휘둘러댔다. 바깥에선 안개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나무 사이 틈을 채웠다. 기분 좋은 아친ㅁ은 아니다. 우리가 출발 할 때 부슬부슬 비가 오더니 얼마 안 있어 주먹만큼 굵은 빗방울이 사정없이 쏟아졌다. 걸을 때마다 나일론이 빳빳하게 바스락거리고 합성섬유 위로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낙담하는 심정이 된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비옷을 입어도 몸은 젖는다는 점. 비옷을 입으면 비는 가릴 수 있지만 땀이 나 곡 끈적끈적해진다. 내 등산화 속에도 개울이 들었는지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철벅거렸다.
· “창문 달린 주머니 아나? 배낭을 어떻게 여는 지조차 모를 만큼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한 거요?” 라고 물었다.. 그는 “지퍼를 열지 않고도 물건을 확인할 수 있거든요.“ 그 말에 카츠는 ”등산하는 데 뭐가 그리 바빠서 지펴를 열고 그 안을 들여다 볼 3초의 시간도 없다는 거야하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글쎄, 매우 좋은 배낭인데.” 하더니 배낭을 휙 채 갔다.
앞에 그가 있었다. 단지 등만 보이고 사라졌다. 유령을 쫓아가는 기분이랄까! 따라잡으려고 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내가 보는 한에서는 한 번도 나를 보지 않았지만, 뒤에서 오는 나를 의식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숲에서는 다른 존재에 대한 육감이 있다.
·몇 대피소는 빗자루도 구비하고 있어 가정의 느낌마저 들었다. 빗자루가 사용된 흔적이 있어 그들이 책임 있게 사용할 줄 안다는 증거다. 우리는 휘파람을 불면서 쓸었다. 대피소에 옥외 화장실과 깨끗한 샘물, 야외 식탁이 딸려 있어 젖은 나무토막 위에 쪼그리지 앟고 거의 정상 자세로 밥을 분비하고 먹었다. 이 모든 것들이 트레일에서는 사치다.
첫날에는 등산이 끝날 무렵 자신이 조금 지저분해졌다는 걸 의식한다.
다음 날에는 지저분해졌다는 게 불쾌해진다.
그 다음날에는 지저분하지 않은 상태가 어떤 것인지 잊어버린다. 배고픔도 역시 규정된 단계를 따른다.
·스컹크소리가 나서 나는 텐트를 질질 끌어서는 카츠의 텐트 옆에 바삭 붙였다. 뭘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친구랑 조금 더 가까이 있는 것이 작지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줬다.
“뭐 하는 거야?”
“텐트를 옮기고 있어.”
“오, 좋은 계획이네, 놈이 헷갈릴 거야. 그치!”
·사람들이 트레일이 너무 붐빈다고 재잘거릴 때는, 실제 그 말이 뜻하는 건 대피소가 너무 붐빈다는 말이고 의심여지 없이 그 말이 맞다. 문제는 대피소에 너무 많은 등산객이 있어서가 아니라 살마에 비해 대피소의 숫자가 너무 작다는 점이다.
·세넌도어를 찾는 200만 명 중에 외진 곳까지 걷는 사람은 3%도 안 된다. 90%가 차로 왔다 간다. 가게는 그들을 위한 것이다. 가게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전자레인지로 데워야 하거나 오븐에서 익혀야 하는 것, 세심하게 냉장 보관해야 하는 것들이며 부피 또한 크고 한 가족이 함께 먹어야 할 분량으로 팔았다.
카츠와 나는 그들에게 떠밀려 가장 어두운 구석으로 밀려났고 그들이 함부로 옷을 터는 바람에 물기를 뒤집어썼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 던진 장비에 머리를 맞기도 했다. 말리기 위해 빨랫줄에 걸어 놓은 우리 옷들이 그들의 옷에 한 쪽으로 밀려나고 포개지는 걸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경찰을 만났다. 그는 방문객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게 놀랍고 기쁜 것처럼 보였다. 트레일의 위험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그가 본부에서 일한 8년 도안 뱀에게 물린 사고는 단 2건 일어났고 그것도 치명적이지 않으며 번개에 맞아 죽은 사람이 1명 있었단다.
“너 때문에 혼났잖아”하고 말 할 사람도 없고 곰이 나타났을 때 같이 흥분할 사람도 없었다. 해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서 헤엄치는 사람처럼 불안에 싸였다.
감정의 흥분도 천 번도 넘게 되풀이해 온 것이다. 그게 에팔래치아 트레일의 문제점-엄청나게 먼 길이어서 내가 여태까지 정복한 것 이상의 길이 또 나오고, 무한정 나오는-이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15m쯤 떨어진 덤불에서 소란스럽게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당히 크고 잘 보이지 않는 뭔가가 움직였다. 나는 모든 걸-움직이는 것과 숨쉬는 것, 그리고 생각하는 것- 멈추고 발꿈치를 들어 나뭇잎으로 그늘진 안쪽을 들썩였다. 그런 뒤 멈추고, 심장도 멈추고 뒤돌아봤다. 사슴 1마리, 큰 수사슴 1마리가 늠름하게 길을 걸으면서 전혀 긴장하는 기색도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산책을 계속했다. 숨을 가다듬고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심하게 낙담했다.
두 집은 판자로 못질이 되어 있었고 ‘위험! 들어오지 마시오’ 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중앙 공원 한 쪽 긑에 몰려 있는 세 채의 집을 포함, 대여섯 채의 집은 분명히 사람이 살고 있엏지만- 한 채는 신기하게도 어린이 장난감이 마당에 있었다. 도대체 아이들을 이런 곳에서 키우는 사람이 누구야? 여러 차례 초인종을 눌러도 응답이 없었다. 모두가 일하러 나갔거나 내가 추측할 수 있는 한에서는 부엌 바닥에 쓰러져 숨져 있을지도 몰랐다. 어떤 집에서는 문을 두드리자 커텐이 움직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획실치는 않았다. 나는 노크에 아무 응답이 없자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생각해 뵈도 말문을 열 첫 질문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빙하기는 기온 저하가 아니라 기온 상승으로 초래됐다. 따뜻한 기온은 강수량을 증가시키고 이것은 다시 구름 막을 두텁게 함으로써 고지대에서는 눈이 녹는 양이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빙하기를 초래하는 데는 그렇게 심각하게 나쁜 날씨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웬 숯츠가 <잃어버린 빙하기> 책에서 ‘빙판을 형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양의 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눈이 적든 말든 간에 얼마나 녹지 않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강수량과 관련해서도 슐츠는 남극이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고 심지어 어떤 큰 사막보다도 비가 오지 않은 곳이라고 말했다. 때로 바지 뒷주머니를 두드려 보아 칼이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베켓 마운튼이라는, 가파르지만 높지는 않은 봉우리를 향해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고 있었다.
“아 이거, 이건 확실치는 않은데, 그러나 이것은.”
그는 몇 개의 단추로 이뤄진 계기판을 가리키면서 광성 방사 측정 장치라고 했다. 소수 셋째 자리의 또다시 의미 없는 숫자의 연속이었다.
“오늘 매우 낮은데” 그러면서 다른 것을 측정하려고 기계의 각을 새롭게 맞췄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소수 셋째 자리가 입증하지 못할지라도 바깥에 나와 있기 때문에 날씨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남자는 배낭도 없었고 비옷도 없이 반바지에다 운동화 차림이었다. 날씨가 갑자기 악화되면 그는 죽을 수도 있지만 최소한 그는 그가 언제 그렇게 되며 그의 마지막 이슬점이 얼마인지를 알 게 해줄 기계는 갖고 있다.
최소한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은 극단 상황에서 죽는 경우는 거의 없다. 눈보라 속에서 비틀거리거나 북극 바람과 맞서 싸우다 죽는 경우는 없다는 말이다. 우선 그런 날씨엔 상대적으로 극소수 사람들만 밖으로 나가고 설령 그렇더라도 준비를 잘 갖추고 나가게 마련이다. 저체온증의 피해자들은 주로 보다 멍한 한경에서 온화한 계절에 얼음이 전혀 얼지 않는 온도에서 당한다. 보통 그들은 예상 못한 조건의 변화나 이런 변화가 중첩될 대-기온의 급강하라든가 세차게 내리는 찬비, 길을 잃었다는 자각에-당한다. 왜냐면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이다. 거의 언제나 그들은 뭔가 멍청한 짓-지름길을 찾기 위해 잘 표시된 길을 버린다든지 가만히 있었으면 나았을 텐데 더 깊은 숲으로 잘못 들어간다든지 시냇물을 건너려다 몸이 더 젖고 차갑게 된다든지-을 해서 상황을 더욱 꼬이게 한다.
저체온증에 걸린 사람들은 몇 단계를 밟는다. 우선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근육을 수축해서 점점 심하게 몸을 떤다. 그러다 심각한 피로감을 느끼고 몸이 무뎌지고 시간과 거리에 대한 감각을 잃기 시작한다. 그래서 판단 착오를 일으켜 신중치 못하고 비논리적인 결정을 내리려는 경향을 보이거나 명명백백한 것을 보지 못한다. 점점 방향 감각을 잃고 위험한 환각에 빠져 드는데, 그중에서도 몸이 얼어붙고 있는데도 타는 것처럼 덥게 느끼는 착각이 대표적이다. 많은 희생자들이 옷을 벗고 장갑을 던져 버리며 슬리핑 백에서 기어 나온다. 트레일에서이 사감 가선에 대한 연대기를 보면 텐트 바로 앞의 눈 더미에서 반쯤 옷을 벗은 채 숨져 있는 등산객이 많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몸을 떠는 것을 멈추고 무감각 상태에 이른다.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뇌파는 대초원을 가로질러 질주하는 차처럼 낮게 직선을 이룬다. 이때가 되면 희생자를 발견해 응급 처치를 한다고 해도 몸이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다.
·청바지는 추위와 슴기에 대해서는 완전 무용지물이다.
· “나머지 물병은 어딨니”
그는 양같이 순한 표정을 지으며 “버렸지”라고 말했다.
“물병을 버렸다고?” 기건 정말 놀랄 일이다. 8월에 트레일에서 필요한 게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많은 양의 물이다.
“무거웠어.”
“물론 무겁지. 물은 항상 무거워. 하지만 그것에 목숨이 달려 있어 어떡할래?”
그는 어찌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난 무엇이든 무게를 줄였어야 했다고. 아주 절망적인 상황이었어.”라고 말했다.
“아니야, 나는 바보야.”
“그래, 맞아,”
그는 동의했다.
그느 ㄴ완전히 물 속에 가라앉았다가 솟아 오르고 다시 가라앉고 다시 도리개질하면서 허우적거렸느데 너무 정신이 없어 보여 정말 짧은 순간 그가 물에 빠져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로 잡아 그는 배낭의 무게 때문에 일어서지도, 물 위로 고개를 내밀지도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내가 배낭을 내려놓고 그를 도와 주기 위해 가려 하는데. 가가 나무토막을 붙잡고 몸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물은 그의 가슴까지 찼다. 그는 나무를 꼭 붙잡고 숨을 고르느 한편 구역질을 했다. 공포에 질린 표정이 역력했다.
“괜찮아?”
내가 물었다.
“어, 정말 훌륭해, 여기 악어들도 몇 마리 풀어놓아서 진자 모험이 되었어야 하는데.”
나도 엉금엉금 기어가다 바로 물 속에 빠졌다. 나무토막을 잡으려 했으나 손아귀에서 달아났다. 그 동안 수면 바로 위나 바로 밑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초현실주의적인 순간이 슬로 모션으로 스쳐 지나갔다. 뽀글거리는 소리 외에는 완전한 침묵의 세계. 카츠가 물을 철벙대며 내개로 와서 셔츠를 붙잡아 다시 소리가 들리는 가벼운 세계로 복귀시켰다. 나는 내 발로 섰다. 그는 놀랄 정도로 힘이 셌다.
“고마워.”
내가 헐떡이며 말했다.
“별말씀을.”
우리는 비틀거리며 넘어지고 서로 부축하면서 도 반즘 썩은 수초들을 질질 글고 가거나 배낭에서 엄청난 양의 물을 빼면서 건너편의 진흙 둑에 도착했다. 2명으 젊은 등산객들이 우리 뒤편 숲에서 나타났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여 아는 체를 하더니 물을 음미하듯 바라봤다. 그들은 배낭을 머리 위로 올리고 우리에게 행운을 빈 뒤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ㅆ다. 30초도 안 돼서 마치 욕탕을 건너듯이 가뿐하게 맞은편으로 상륙, 젖지 않은 배낭을 도로 메고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더니 사라졌다.
“너는 머리 위로 저렇게 배낭을 이고 갈 수 있어?”
“아니.”
우리는 가죽끈을 질끈 동여매고 철벅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넘어졌어요?”
“아니, 그저 물을 가까이 보고 있는 중이야.”
나는 강둑으로 다시 돌아가 젖은 등산화를 신고 걸어봤더니 훨씬 건너가기가 편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게절이든 간에 멍해진 내 눈길이 닿은 곳은 모두 그렇다. 아름답고 찬란할 뿐 아니라 더 이상, 개량의 여지없이 그 자체로 완벽하다 이걸 느끼기 위해 수킬로미처를 걸어 산 정상에 오를 필요도 없고, 눈보라를 뚫고 기신기신 걸을 필요도, 매일 체력의 한계를 느낄 필요도 없지만, 그게 도움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아쉽다. 비록 나는 언제ᅟᅢᆫ가 갈 거라고 다짐해도 곰이나 늑대를 보지 못한 것도. 느릿느릿 소리 없이 뒷걸음 치는 자이언트돌ㅇ뇽을 보지 못한 것도, 살쾡이르 쉬이하고 쫗아내거나 방울뱀을 피해 옆걸음 치지 못한 것도, 놀란 멧돼지를 맞닥뜨리지 못한 것도 아쉽다. 나는 딱 한 번만이라도-살아남을 수 있다는 서면 보장만 있다면-정면으로 죽음과 대면하고 싶다. 어쨌든 많은 경험을 했다. 텐트 칠 줄도 알게 됐고 별빛 아래서 자느 것도 배웠다. 삼림과 자연, 그리고 숲의 온화한 힘에 대해 깊은 존경을 느겼다. 나는 전에는 미처 몰랐지만 셰계의 웅장한 규모를 이해하게 됐다. 전에는 있는 줄 몰랐던 인새심과 용기도 발견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친구를 얻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길고 힘든 거리와 가파른 암석투성이의 산들, 딱딱한 대피소 침상, 목욕도 못하고 보내야 하는 더운 여름, 불만족스런 음식-이 있는지를 나는 안다. 게다가 더운 계절에 동반하는 위험도 있다. 야만스럽고 활력 넘치는 번개 섞인 돌풍과 고약한 방울뱀, 열병을 유발하는 진드기, 식용이 왕성한 곰, 국립고원에서 살해당한 두 여성 뉴스가 있는 터라 예상 할 수 없고 뚜렷한 동기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살인마들. 낙담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잘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시도해야만 했다.
아내가 내가 동행할 여행 친구와 공통점이 없다고 하자 내가 말했다.
“우림 도는 게 같지. 44살. 치질과 척추이상, 물건을 어디에 놔뒀는지 금방 까먹는 것도 그렇고 아마 다음 날 내가 ‘어이 내가 척추 문제에 대해 얘기한 적 있냐’고 물어 보면 그 친구가 ‘아니 기억 안 나는데’하면 다시 또 척추 얘기하는 거야 정말 굉장 할 거야.“
“지옥이겠네요.”
“그래. 나도 알아.”
“이런 애들 좀 .봐. 곰들과 싸우다 온 것 같아! 애들아 올라가서 깨끗이 씻고ㅓ 내려와 냉홏자를 한 주전자 만들어 놓을 테니까. 아니면 레모네이드 마실래? 신경 쓰지 마, 둘다 만들어 놓을게. 자 지금 자로 올라가!”
“고마워요 엄마.”
우리는 멍하기 감사한느 마음으로 합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