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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6 주일설교
당신은 참새보다 소중합니다
마태복음 10:29~39
모든 사람은 죽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합니다. 그 이유는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자가 불신자와 가장 큰 차이는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 것입니다. 모든 불신자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불신자가 모르는 놀라운 비밀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땅의 생이 끝나면 예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복락을 누릴 것을 믿습니다. 아멘이죠?
이 땅을 떠나면 예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을 믿는 우리에게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다가 죽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멘”이죠?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고 보람되고 예수님이 칭찬하실까요? 본문에서 예수님은 신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선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잘 배워서 예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는 신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생명이 하나님께 달렸음을 믿고 살아라. 29-31절
29절에서 예수님은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린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앗사리온은 로마 동전인데 데나리온의 1/16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면 앗사리온은 얼마일까요? 데나리온이 당시 노동자 하루 임금인데 202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건설노동자는 하루 18만 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오늘날 최저임금은 9,860원인데 하루 8시간 일하고 주휴수당까지 받으면 하루에 87,936원입니다. 그렇다면 앗사리온은 5,000~10,000원입니다.
그러면 요즘 참새 값은 얼마일까요? 참새를 사거나 파는 곳이 없어서 값을 알기 어렵죠. 종로구 피맛골에 가면 참새집이 있는데 2020년 가격으로 참새구이 값이 2꼬치에 1만 원이라고 합니다. 참새 두 마리 값은 모르지만, 참새구이는 2마리에 1만 원이니 예수님 시대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참새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이고 섭리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공중의 참새는 농사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하나님이 기르시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비록 값싼 참새라도 하나님이 직접 먹이고 기르시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총이나 돌에 맞아 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 예수님의 제자가 먹고살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덧붙여 예수님은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의 머리털 개수도 다 알고 계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자기 머리털이 몇 개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눈코입귀, 팔다리, 손·발가락 수는 알아도 머리털이 몇 개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의 머리털은 대략 몇 개쯤 될까요? 1만, 5만, 10만, 20만.... 몇 개일까요? 사람의 머리털은 8만~12만개라고 합니다. 머리카락은 매일 평균 50개가 빠지는데 알지도 못하고 알아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빠진 만큼 또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도 모르는 머리카락 숫자를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다 세고 계십니다.
값싼 참새보다 비교되지 않게 고귀한 하나님의 백성은 머리카락 개수까지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문제는 질병도 아니고 가난도 아니고 맹수나 자연재해도 아닙니다. 사업의 실패도 아닙니다. 이 말씀은 제자를 전도자로 보내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전도하다가 맞아 죽지 않습니다. 만일 맞아 죽는 일이 생겼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실 계획에 의해서입니다. 하찮은 참새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땅에 떨어지는데 고귀한 제자가 하나님의 계획 없이 요절하는 일은 없습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만일 전도하다 맞아 죽는다면 원래 그 나이에 죽도록 계획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젊어서 죽는다면 어떻게 죽는 것이 좋을까요? 1) 젊은 나이에 병이 나서 몇 년 앓다가 죽는다(있는 돈 다 까먹고 죽는다). 2)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는다(가족이 보험료는 탈 수 있겠다). 3) 전도하다가 사람들에게 맞아 죽는다.
오늘날에는 전도하다가 맞아 죽는 일이 없습니다. 순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지는 않아도 전도하다가 미움받아서 손해 보거나 직장을 잃거나 거래처가 끊어지거나 그래서 사는 데 지장 생기면 어쩌나 걱정되십니까? 그런 일도 쉽게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전도하다가 직장을 잃어 굶어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무능하거나 무책임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공군에서 비행기 조종사 한 명 양성하는데 평균 100억 원이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소령까지 만들어 놓으면 제대하고 민간 항공사로 취업하러 나가버려서 참 곤란하답니다. 군대에서 100억 원이나 든 Pilot 하나 떠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현실인데 하나님이 전도에 열심 내는 제자를 그렇게 쉽게 죽도록 버려두실까요? 만일 어느 날 전도자 하나가 죽도록 계획하신다면 한 사람의 죽음으로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 믿도록 할 계획이 있을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의 죽음이 그러했습니다.
다시 말해 열정적인 전도자일수록 쉽게 죽도록 하나님이 버려두지 않고 보호하십니다. 그러므로 좀 더 오래 살고 싶다면 더 열심히 전도하면 됩니다. 전도하지 않고 밥만 축내는 사람은 굳이 오래 살 이유가 없겠죠.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래 살고 싶으면 전도 열심히 하라.”
2. 신자는 진리를 위해 싸우다 죽어라. 32-35절
세상 사람들은 흔히 예수님 믿으면 싸우지 말고 사랑하고 사이좋게 살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도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성경을 변경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땅에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을 원수 관계에서 화목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믿으면 서로 양보해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34절에서 예수님은 평화가 아니라 싸움을 주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전도와 함께 진리를 지키고 교회를 지키고 다음 세대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순수한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도 당연히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복음을 전할 기본 터전을 허무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전한 복음을 오염시키고 변질시키는 세력도 너무 많습니다. 그들과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신자의 다른 이름은 “이기는 자”인데 우리가 이기려면 전제 조건이 싸우는 것입니다. 싸워야만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도 영지주의를 향해 적그리스도라고 정죄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와 혹은 무엇과 싸워야 할까요? 교회 안에서는 자유주의, 신비주의, 기복주의, 인본주의와 싸워야 합니다. 몸 밖에 난 염증은 치료가 쉽지만, 몸 안에 생긴 염증은 치료도 어렵고 나중에 암이 됩니다. 그러므로 교리를 허물고 성경을 파괴하는 타락한 사상과는 싸워서 물리쳐야 합니다.
요사이에 기승을 부리는 유신진화론을 꼭 배격해야 합니다. 진화론은 하나님 대신 ‘우연’이라는 신을 믿는 사이비종교입니다. 그런데 유신진화론은 진화론을 두둔하기 위해 성경을 허물고 파괴하는 사상입니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들은 2018년에 성경적 창조론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2024년에 같은 내용을 재천명했습니다. 그런데 2024년 5월 22일에 우리나라 복음주의신학대학교 13개가 유신진화론을 배격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총신과 장신 이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합동 총회장 오정호목사님께 두 번이나 부탁했고 어제는 박성규총장님을 만나서 또 부탁드렸습니다. 총신대학교와 합동 교단이 공동으로 유신진화론을 배격하며 성경적 창조론을 지지한다는 선언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제 총회장에게 그 말씀을 들었다고, 꼭 그렇게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또 통합측에서 영향력이 큰 박한수목사님에게도 같은 부탁을 드렸습니다. 박목사님도 꼭 그렇게 힘쓰겠다고 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제가 그렇게 영향력 있는 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전할 위치와 관계가 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교회 밖으로는 극단 이슬람, 공산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젠더 이데올로기 즉 성혁명 세력입니다.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구별 금지법이고 비판금지법입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신앙의 자유, 양심의 자유, 학문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말살됩니다. 단순히 동성애 반대 자유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전도할 자유가 사라집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이 종교차별행위가 되므로 전도만이 아니라 설교할 자유조차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2024년 6월 1일 거룩한방파제 통합국민대회는 완전히 우리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퀴어행사 개막식 영상을 보았는데 겨우 몇백 명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15만명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퀴어축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경건합니다. 우리가 고발하기 때문에 노출도 못하고 재미가 없어서 점점 축소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경건하게 할 바에는 내년에는 우리 잔치에 와서 동참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처럼 버려두면 안 되고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3. 신자는 죽음을 이기고 십자가를 지라. 36-39절
신자는 세상에 생명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자기 목숨을 줌으로 남의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원래 그 일은 예수님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제자들에게 그 사역을 하라고 명령하시며 그것을 하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죄인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저와 여러분 같은 죄인을 대신하여 죽어 주셨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진리를 위해 싸우며 예수님을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영생의 나라에서 부활할 것입니다.
그런데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습니다. 그러면 뭐예요? 우리는 순교의 제물이 되기보다는 산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12:1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12:1에서 말하는 영적은 프뉴마티가 아니라 로기코스입니다. 즉 ‘신령한’이 아니라 ‘합당한’입니다.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고 합리적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느라 죽고 악과 싸우느라 죽는 것이 아니라 죽을 결심으로 내 몸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우리가 드릴 합리적 예배입니다.
이 모든 것을 못하는 이유는 죽을까봐 겁나서입니다. 그렇게 쉽게 안 죽는가고 하면 죽지는 않아도 손해볼까봐 겁이 납니다. 손해를 보지 않으면 비난받거나 세련되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거나 친한 친구와 관계가 어색할까 봐 꾹꾹 참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감수하는 것이 영적 예배입니다.
우리는 값싼 참새보다 당연히 소중한 존재입니다. 참새로 기르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반드시 지켜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옆 사라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은 참새보다 소중합니다. 참새와 비교되지 않는 여러분은 죽을까 봐 벌벌 떠는 사람이 아니라 참새보다 더 당당하게 하나님만 의지라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첫댓글 https://youtu.be/UjTba9XC1Vo?si=mmRzW_u5UKJm6x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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