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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기 현대사상세미나 10
손호만: 코민테른의 역사적 의의
토론자: 계급의 내용이 코민테른 시대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중국의 경우 농민이 압도적 다수였고, 러시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계급간의 결합 없이는 실제로 혁명이 불가능한 단계였습니다. 오늘날에는 노동자 인구가 압도적이고, 농민의 비중은 많이 축소됐습니다. 물론 노동자들도 단일하지 않고 상당히 복잡해졌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단결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전선 개념을 어떻게 봐야 할지요.
발제자: 두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동구권이 무너진 것이 중요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소련이라는 노동자 정권이 존재하고 있을 때, 중국에서 농민이 주력 부대가 돼서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고, 노동자와 농민이 결합해 세계적으로 발전해 갈 수 있었는데 그게 지금 다 무너진 상황에서는 나머지도 변질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지금 사실상 거의 맑스가 이야기하던 혁명적인 운동이 거의 다 무너져 내렸기 때문에 새로 어떤 원칙을 세워야 되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전교조 같은 경우에도 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의 원칙이 무너져 내려서, 새로 세워야 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통일전선 전술을 강조하기보다 그 기본 정신을 되살려내는 것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또 하나는 지금이 예전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대중과의 결합이 더 중요해졌다고 봅니다. 그나마 조금씩 목소리를 내고 있는 혁명 운동 세력들이 대중 속에서 통일전선을 비롯한 광범위한 대단결을 이루지 않고서는 운동이 발전할 수 있겠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저도 지금 어느 한 가지 입장이 좋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토론자: 통일전선의 경우 민족 부르주아까지 포함하자는 논리가 있는데, 오늘날 그럴 필요까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에는 노동자 비중이 너무 커졌습니다. 노동자들의 단결만으로도 충분한데, 내부적으로 보면 노동자들이 심히 분열되고 서열화된 상태에서 각자도생에 빠져 있는 것이 더 큰 문제 같습니다. 물론 자본주의의 근본문제가 해결되고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극심한 양극화 속의 서열은 단결을 못하게 만들 뿐이지, 능력에 따라 잘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토론자: 그래서 원칙을 재정립하는 문제에서는, 자본주의 자체가 구조적으로 만들어내는 근본 문제들의 객관적 성격이 원칙의 재구성을 촉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민중이 당면하고 있는 난관과 위기는 맑스나 레닌이 고민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게 계급적 관점을 재정립하고 단결을 이루도록 한다고 여겨집니다. 또 한편 계급적 관점에 의거한 혁명적 의식의 대중화가 필요한데,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난 후 사회주의는 안 된다는 생각부터 자신이 노동자라는 의식을 버리기 시작했다는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그렇더라도 대중들이 계급의식을 갖도록 대중화하면서, 동시에 원칙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중화해야 한다는 대명제를 버려선 안 되지만, 대중화 과정에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욕구나 사고 방식에 그대로 따라가도 안 된다고 여겨집니다. 이것이 어찌 보면 꼰대질 하려고 드는 거 아니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노동자들 상당수가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조차 부정하는 단계까지 와 있기 때문에, 논쟁을 통해서든 직접적인 투쟁을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설득력 있는 주장과 도덕적 정당성 등을 통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흔쾌히 같이 가야겠다는 의지를 갖도록 하지 않으면 운동이 성립되지 않겠지요. 당이든, 조합이든, 어떤 조직이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올바른 인식을 나름대로 설득력 있게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 교육기관이든 아니면 개별 스터디를 통해서든, 함께 투쟁하는 과정에서든 계급적 관점을 공유할 수 있는 장기적인 과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런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으면, 최근의 영국의 폭력시위에서 보는 것처럼, 객관적 조건이 아무리 혁명적인 상황까지 가더라도, 다양한 이데올로기들을 통해 사람들을 국수주의적이거나 성차별적인 혐오 등에 빠뜨리고 다시 파시즘이나 인종학살 등의 재앙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직까지 주체적 조건이 미진한데, 이는 그냥 때를 기다려서 해결될 일이 아니고 적극적 노력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발제자: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 체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제국주의 체제의 모순이 첨예할 대로 첨예해져서, 사실 미국이 근근히 버티는 수준입니다. 이제 우리 입장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흔히 경제투쟁, 정치투쟁, 이데올로기 투쟁 이 세 가지 영역을 이야기하는데, 모순이 아무리 심화되더라도, 이데올로기적으로 대중들과 함께 공감하고 결합이 되지 않으면 힘을 전혀 가질 수가 없습니다. 사회주의권이 무너진 현재, 현실 사회주의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교훈으로 배우고, 그것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정리해서 대중들과 공유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서, 지금 너무 취약합니다. 가장 취약한 부분이 이데올로기 투쟁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토론자: 오늘 발제하신 내용 중에도, 코민테른이 여러 가지 문제점도 안고 있지만 그래도 꽤 중요한 원칙들을 짚어놓은 것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민족 해방 운동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결합되어야 한다든지, 각국의 특수성들을 무시해서는 안 되며 러시아 혁명을 유일한 모델처럼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 등은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두에서도 말씀하셨듯이 오늘날 너무 청산주의적인 입장이 지배적이어서, 새로운 것 아니면 공부하지 않으려 드는 이데올로기적 풍토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코민테른 논의를 충실히 따라가는 것만 해도 새로운 이론을 상대로 헤매고 있는 것보다 생산성이 더 있을 듯합니다. 물론 새로운 것들에서 배울 것도 있겠지만요.
발제자: 코민테른이 세부적으로 각 나라의 특수성 맞춰서 만들었던 문건들이나 토론 내용들은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오늘 정리한 것은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도 안 되는 겁니다. 이것은 당시에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됐던 것 위주로 정리했는데, 그런 쟁점이 됐던 내용들에 대해 충분히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지금 논쟁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그 당시에 이미 진지하게 논의됐었던 것들이 많습니다. 이미 나왔던 것조차도 우리가 모르고 있어서는 지금 한 걸음도 나가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토론자: 어떻게 보면 현재 이데올로기 지형은 베르슈타인 언저리에서 잘 안 벗어나거나, 기껏해야 카우츠키류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과연 자본주의체제가 변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경험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는 위기를 겪을 때마다 필연적으로 노동자 민중들을 엄청나게 희생시켜왔습니다. 전쟁을 통해서건, 실업을 통해서건.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희생이 따랐습니다. 그렇게 다시 당할 것이냐, 아니면은 이제라도 바꿀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희생은 과거 단계를 훨씬 능가하는 단계에까지 와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물론이고, 전쟁도 핵전쟁으로까지 갈 수 있는 상황입니다. 또 AI를 비롯해 쏟아져 나오는 기술혁신은 대량실업으로 이어지는 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이미 로자 룩셈부르크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구호’를 내놨지만, 지금이야말로 진짜 인류가 폭망할 것이냐 아니면 이성적으로 무엇이라도 할 것이냐 하는 선택에 직면해 있고, 이런 선택이 과거 어느때보다 더 절실해졌다고 봅니다.
이때 실제로 뭘 바꾸려면은 세계적인 조직도 필요할 텐데, 현단계에서 코민테른의 한계를 넘어서는 세계적인 조직은 어떤 것이어야 할지 고민입니다.
발제자: 결국 활동가들 내지 앞서서 이론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회주의 다 무너졌는데 지나간 걸 새삼스럽게 뭐하려고 꺼내느냐 이런 이 논리 앞에서 무엇을 할 의욕을 잃곤 합니다.
토론자: 그런 지배적 냉소 내지 청산주의에 주눅들 필요 없이, 일하는 사람은 그냥 일해야 될 것 같습니다.
발제자: 현재 사회적 모순은 첨예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산재율과 자살율도 높고, 현장 노동자들은 너무 힘듭니다. 과로사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졌다고 운동 안 할 거냐 하는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이런 목소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 갈 활동가들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토론자: 이론가들의 경우, 핵심 문제들의 본질적 요소들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어떻게 해야 그것들이 풀릴 것인지 답을 찾아 압축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개념적 사유가 필요합니다. 그냥 경험에만 매달려서는 안 되겠지요. 자본주의의 근본문제에까지 파고들어가는 이론적 사유가 필요합니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직접적인 변론이나 간접적인 변론들 대부분은 문제를 현상 차원에서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것들들을 압축하여 이론화할 때는 이미 왜곡이 끼어들고, 답을 내놓을 때는 엉뚱한 답이 나옵니다.
토론자: 그러니까 수많은 이론들이 문제의 핵심을 피하고 언저리를 맴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지배관계는 드러나지 않고 은폐되는 거지요.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과정에서는 기본적으로 맑스 엥겔스 레닌 등의 고전부터 맑스주의 운동사 전체를 공부하면, 현재의 문제들도 꽤 잘 보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6차대회와 7차대회의 차이나, 호치민과 코민테른의 관계, 사민당과 파시즘에 대한 평가 문제 등을 돌이켜보면, 현실 정치로 들어갈 때 문제가 단순하지 않지요.
발제자: 코민테른이 우리에게 엄청나게 어려운 숙제를 내놓고 있습니다.
토론자: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통일전선보다 더 화급한 것이 계급적 단결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단결할 수 있게 하는 이데올로기 내지 문제의식 혹은 공동의 목표의식을 만들고, 그것을 긍정적 경험을 통해 공유할 방법을 만드는 것이 특히 민주노총이나 노동당 등의 주요 과제 같습니다. 물론 노동자 계급 내부 여러 계층들의 특성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 요구들을 조율하거나 의식하면서 함께 싸울 수 있는 이론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과는 적대적 모순 관계에 있다는 점을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단결할 수 있는 논리와 운동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최대 과제 같거든요.
또 한 가지는 전체 인구 가운데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국가권력에서 완전히 배제돼 있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요. 노동자들의 비중에 맞게 국가권력의 주인이 되는 것이 민주주의 정신에 맞다고 봅니다. 노동자 국가라는 목표 의식이 없으면, 노동자 정치운동은 대중적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장 투쟁을 통해 당면 문제들을 풀어가면서 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은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단결을 만들어내고 어디까지 가야 문제가 근본적으로 풀릴지 노동자들이 인식하고 실감할 수 있게 이론화하는 작업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토론자: 기미독립선언문에 표현된 ‘세계 개조’와, ‘노동자 국제주의는 독립운동을 하는 좌파 활동가들에 게 있어 죽음을 불사하고 지켜야 할 대원칙이었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독립운동 했던 사람들이 이런 노동자국제주의를 생각을 하고 했을지 궁금합니다.
발제자: 독립운동하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운동하던 사회주의계열도 있고, 우리가 우파라고 부르는 민족주의 그룹들이 있습니다. 레닌이 제기한 내용, 즉 식민지 종속국에서의 민족 해방과 선진국 노동자계급의 운동이 하나가 돼야 한다 입장에서 시작한 것이 코민테른 운동입니다. 우리는 세계 개조의 대기운이라는 것이 노동자 국제주의다 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민족주의자들은 달리 해석할 겁니다. 그러니까 독립운동하던 사람들도 그것을 두 가지로 달리 해석하겠죠.
민족주의 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노동자국제주의와 우리는 상관없어, 그냥 우리는 독립만 되면 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전 세계에 파급된 대기운이라는 것이 어떤 민족주의적인 약소 국가들의 독립운동만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에서 노동자 정부가 수립된 것으로부터 시작됐지죠.
또 장개석이 북벌 운동할 때 우리 조선의 운동가들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는데, 그 뒤에 장개석이 쿠데타 일으키고 노동자부터 때려잡지요. 광동코뮌을 장개석이 다 탄압하고 노동자를 죽일 때 다른 나라 활동가들은 별로 안 왔지만, 조선의 활동가들은 광동코뮌을 지켜야 한다고 엄청나게 많이 참여해 거기서 수백 명이 죽었습니다. 독립운동 가운데서도 노동자 국제주의를 가장 중요시하며 싸웠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토론자: 박헌영이 3.1운동을 굉장히 중시하거든요. 박헌영도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독립운동을 하는 좌파 활동가와 관련해 러시아 혁명까지는 생각했는데, 코민테른과의 관련에 대해 저는 생각을 안 해봤습니다. 이렇게 관련지어 생각을 하면 다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발제자: 당시 우리 조 활동가들과 코민테른의 관계를 좀 더 얘기하면 사람들 피부에 많이 와닿을 겁니다. 독립선언문이나 독립운동에 실제로 있었던 사실들도 더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토론자: 저는 박헌영에 대한 관심 있어서 책을 읽어봤는데, 3.1운동과 대구 10월 항쟁을 중요시하거든요. 대중 봉기라는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독립운동도 좌파와 우파가 달랐다는 말씀이 좀 더 확장되면 체감하기 좋을 듯합니다. 또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좌파 독립운동가들이 어느 수준의 공부를 했을런지요. 그들은 월북을 해버리고 남아 있는 기록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요.
발제자: 박치우 같은 철학자는 굉장히 높은 수준의 공부를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박치우는 해방 공간 박헌영이 북쪽 김일성을 만나러 갔을 때 세 번이나 수행했던 비서로 남로당 핵심이론이론가이며 윤동주의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1942년 봄 일본으로 유학가기 전까지 친밀한 관계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다음 박헌영이 해방 되던 시점에 8월테제를 써서 당을 재건하는데, 이때 8월테제에 대해 논란이 좀 많아요. 6차 대회 때의 계급 대 계급 전술에 너무 경도된 테제 아니냐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박헌영도 해방 직후에 계급 노선만을 밀어붙이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나름대로는 인민민주주의 전술, 코민테른 7차 대회에서 채택됐던 그 테제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것을 적절히 잘 실천하려 노력했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해방 직후에 그렇게 노력했던 사람들이 북으로부터도 버림을 받고 남에서도 버림을 받으면서 지리산 빨치산으로 남았던 내용이 제대로 이제 우리가 공부할 수 없는 상황이 됐지요. 그들의 이론 수준은 우리가 배울 게 많다고 하겠습니다.
토론자: 민간인 학살을 공부하면 어르신들은 빨갱이 아니었다는 말씀을 계속 하십니다. 사실은 유학 갔다 오신 분들도 많고 적어도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분도 많은데, 생각 없이 보도연맹에 가입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이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 또 남아 있는 책에 나와 있는 것들도 기본적인 지식이 높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발제자: 민간인 학살이 해방기와 일제시대 운동과 연결되는 거잖아요. 해방 직후에 대구 10월 항쟁 때 활동했던 사람들도 그렇고, 제주도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의 활동 내용이 전달이 돼야 되는데, 완전 묻힐 대로 묻혀서 지금 아예 언급 자체를 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당시 빨갱이라는 손가락질만 받아도 바로 죽음을 당했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만, 새로 공부하고 운동하겠다는 우리 운동권 안에서조차 이게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토론도 되지 않고 있는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토론자: 독립운동과 건국절 문제도 다 관련이 돼 있는데, 그런 걸 다 잘라 놓고 연결이 안 된다고 보기 때문에 전혀 설명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발제자: 요즘 인터넷을 보니까 이승만을 영웅화시키면서 영화도 만들어졌잖아요. 거기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이승만 때문에 나온 거라고 광고합니다. 이승만이 윌슨을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조선을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 다스려야 한다고 했고, 이에 대해 신채호가 분개했지요. ‘이승만이라는 저놈은 일본한테 나라를 찾기도 전에 미국한테 또 팔아먹은 숭악한 놈’이라는 이유로 상해 임시정부의 대통령 못하게 반대 운동을 했지요. 이런 부분은 싹 잘라먹어서, 댓글들 보면 이승만은 정말 윌슨까지 움직였던 우리의 대단한 영웅이다 이런 식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토론자: 지금 눈앞에서 진행되는 걸 놓고도 대놓고 사기치는 것이 현실이지요. 역사적 사료들은 2중 3중으로, 입체적으로 검증하지 않으면 상당 정도가 왜곡돼서 나타날 것 같습니다. 공식 문건들은 또 얼마나 미화됐겠습니까.
토론자: 공식 문건이라고 하는 것도, 예컨대 독립운동가가 체포되어 조서를 작성한다면, 당연히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게 있어야 독립운동가로 인정을 받는데 그냥 나는 정말 모른다고 하지요.
발제자: 일본 헌병이나 경찰이 독립군 잡아 고문하면서 만들었던 문서 이걸 공식 문서로 해서 일제시대 운동사를 구성한다는 것도 참 문제예요.
토론자: 코민테른 3차대회 때 좌익 반대파를 비판하는 레닌의 입장에 대해 반대파가 레닌을 비판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논리는 뭐가 있었습니까? 지금도 좌익 반대파들이 있으니까요.
발제자: 지금 평의회그룹이 있지요. 빛나는 전망 쪽이 좌익반대파 입장을 계속 갖고 있고, 트로츠키 쪽과도 공유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레닌도 처음에는 그쪽 그룹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우익 수정주의 쪽을 비판합니다. 그런데 독일에서의 3월 공세기에, 운동이 공세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결국 실패의 빌미를 줬다고 보았습니다. 자칫하면 그나마 얻었던 러시아의 혁명성과들마저도 잘못하면 다 잃을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겁니다.
토론자: 로자 룩셈부르크 등이 민족 문제를 너무 부차적인 것으로 다룬 문제가 있지요. 레닌은 민족 해방 운동이 제국주의 극복하는 데 핵심이라고 보았고, 민족자결주의를 중요시했지요. 또 무리하게 비현실적으로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위로부터의 운동을 갈라놓고 전자를 강조한 면도 있습니다. 이 좌익반대파가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울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발제자: 저도 좌익반대파는 잘 몰라서 뭐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토론자: 레닌 쪽의 주장은 비교적 현실성 있어 보이거든요.
발제자: 레닌은 좌익반대파의 원칙론적인 이야기가 말은 맞지만 저거는 그냥 서클 수준이지 대중을 끌어들여 국가권력을 장악할 수준으로 보지 않았다고 여겨집니다. 이상적 원칙론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본 셈이지요.
토론자: 오늘날 운동에서 그런 입장을 고수할 근거는 무엇일까요?
발제자: 얼마 전 인터넷에서 확인한 문건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지금 다 무너졌으며, 우리가 들고 일어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혁명 정신으로 무장해서 들고 일어나야 된다. 국제적인 조직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입장이 주조입니다. 트로츠키 쪽 입장과 유사합니다.
트로츠키는 코민테른 4차 대회 때까지, 레닌이 살아있었 시점까지는 그래도 인정하는데 스탈린으로 넘어가면서 변질됐다, 이렇게 스탈린주의 쪽에서는 비판하지요. 물론 트로츠키주의 안에도 여러 분파가 있긴 합니다.
토론자: 흔히 알려진 바로는 트로츠키와 스탈린이 일국사회주의론 때문에 갈라서는 것이지요.
발제자: 제국주의자들을 끌어들여 내전으로 혁명을 무너뜨리려 하는 반대 세력들, 백군과 러시아 안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에는 이런 논쟁이 별로 없었는데, 전시 공산주의가 끝나고 네프, 신경제정책을 추진할 때에는 논쟁이 벌어지지요. 이제 러시아 자체 안에서 경제를 살리려면, 농업 집산화와 중공업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농산물을 값싸게 공급받아야 도시 노동자들이 사는데, 5개년 계획이라는 것이 중공업 위주의 정책이지요.
일국 안에서 이렇게 경제 발전을 통해 사회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입장과, 반대로 그렇게 되면 변질된다, 혼자서는 버틸 수 없으니 혁명을 위해 유럽의 노동운동을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 갈라집니다. 트로츠키의 경우 농민들은 불신했습니다. 농민들은 자기 토지를 가지려 하는데, 갖는 순간 소부르조아적 소유 의식에 빠지기 때문에 전략적 동맹 관계가 될 수가 없다는 사고 방식이 있었지요. 이에 비해 레닌은 빈농과 노동자의 동맹을 강조했지요.
토론자: 레닌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트로츠키도 코민테른에서든 적군에서든 중요한 역할을 했고 레닌과 크게 입장 차이가 있었던 것 같지 않아요. 그의 사후 권력을 누가 장악하느냐 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첨예해진 듯합니다. 이때 정책적인 문제들이 주도권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쓰이는 면도 있어 보입니다. 루카치나 베혀처럼 골수 사회주의자들도 숙청될 뻔했지요.
발제자: 스탈린을 옹호하려고 하는 사람들 얘기는, 실제로 독일하고 전쟁을 벌이면서 엄청나게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죽는데, 전쟁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에 반대파들을 미리 제거해야 하는 전시 상황이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된다는 것인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토론자: 아무튼 30년대에 있었던 대숙청은 스탈린 체제를 굳히는 과정에서 불가피했던 면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갈 때, 기존의 지배세력은 끊임없이 반발하고 기득권을 동원해 정보 조작까지 서슴지 않을 텐데, 이때 검열 없이 혁명이 가능하냐, 검열은 어느 수준으로 해야 하느냐, 룩셈부르크가 요구했듯이 자유를 보장해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발제자: 표현의 자유, 좋은 말로 표현의 자유인데, 그것을 어느 수준까지 보장할 것인지. 검열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싫은데.
토론자: 그대로 방임하면 돈 있고 동원력 있고 매체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세력이 끊임없이 반혁명을 선동할 겁니다. 좋은 인식, 이론이라도 그대로 통하지는 않고, 제반 역학관계가 뒷받침되어야 대중적인 공감을 얻어 현실화될 수 있겠지요.
발제자: 어떤 사회에나 권력의 정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어야 하지만, 뭔가 DNA가 다른 것 같아요. 종종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하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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