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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th. Nov(목)
날도 새기 전에 깨운다. 저쪽 배에서 작업을 시작하잔다. Local Time이 GMT보다 두시간이나 빠르다. 08시 시작하다. 예냉한 Hold가 춥고, 바깥도 침실도 모두가 춥다. 두툼한 방한복을 입었으나 마음까지 따스하게 해주진 않는다. 용돈이 아쉬워 하는 일이지만 역시 고역임엔 틀림이 없다. 노력 없이 대가를 바랄 수는 없지만 어딘가 귀중한 것이 빠진 느낌을 금할 수 없다.
밝은 낮에 본 포구는 그야말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이다. 이 주위의산엔 푸른 상록수가 겨울철을 무색하게 하고 있고 그 숲 속과 해안에서 날으는 갈매기 떼가 더욱 정취를 높인다. 언덕과 해변에 지어진 희고 붉고 파란 아담한 주택들, 마치 그림에서 보는듯한 깨끗함이 있다. 소박한 인심, 아마도 늙은 노인네가 많아 뵐 것 같은, 감히 온갖 세상 곳곳의 때가 묻어 더럽혀진 우리들은 범접하기가 부끄러울 것 같기도 한 조용한 포구다. 작은 통통선이 아침나절 바다로 나가고, 조금만 거짓말을 보태면 11문짜리 내 고무신만한 보트를 타고 어딘가 오가는 모습도 아름답다. 해도상에 기재된 암초는 물에 씻겨 그 모를 잃고 둥글게 깎여 있다. 4월달 Mimosa호 그리스 선장이 그렸던 자기 고향이라고 자랑하던 그 포구가 생각난다. 그림이라도 한 폭 그리고 싶은 충동이 솟는다.
건착선을 개조하여 급냉실을 만들어 작업선으로부터 잡어 등을 날것으로 받아 급냉, 포장하여 저장했다가 매수인에게 직접 넘겨주고 있는 Maypesca호. 젊은 선장과 아버지 같은 Saloon 영감님이 인상적이다. 아마 Canpex의 Mr.Tikam이 우리배를 사려고 하는 것은 저와 같은 System을 구축하여 바로 어장으로 보낼 심산인가 보다. 유럽쪽 사람들은 먹지도 않고 버리는 잡어, 정갱이, 고등어, 꽁치 등을 아프리카에 보내 폭리를 보고 있다. 한 상자 얻어 당장에 데쳐 먹어본 갑오징어의 맛. 연하고 쫄깃한 흰살의 맛에 비하면 그거야 고기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검둥이들이 환장을 하는 걸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심심한데 이거나 ...’ 하면서 통신장이 갖다 주는 Porno 잡지, 그리고 음악테프. 마음만 싱숭하게 한다. 그러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는 가슴에 찡하게 울려온다.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 거치러진 손마디가 너무나도 안타까웠오/시린 손 끝에 뜨거운 정성 고이접어 다져온 이 행복/ 여민 옷깃에 스미는 바람 땀방울로 씻어온 나날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
‘미운투정 고운투정 말없이 웃어넘기고/ 거울처럼 마주보며 살아온 꿈같은 세월/가는 세월에 고운 얼굴은 잔주름이 하나들 늘어도/내가 아니면 누가 살피랴 나 하나만 믿어온 당신을/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그렇다. 거울처럼 마주보며 살아오진 못했으나 가는 세월에 고운 얼굴에 잔주름이 늘었고 내가 아니면 누가 살피랴 나 하나만 믿어온 당신이다. 아마 이 밤도 혼자서 푸근한 요이불을 펴고 자진 않으리라. 그냥 입은 체 애들과 함께 이불자락을 당겨 덮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밉기도,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분명히 내게는 무엇보다도 귀중한 또 다른 하나의 내 자신이다. 너무나 오래토록 버려두어 왔었고 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지도 모른다. 늘 마음은 그 속에 두고 있으면서도 지금이 그렇지 못하니 무슨 소용이 있는가? 당신이 아무리 미워해도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내가 아무리 미워하려 해도 할 주제가 못되는 지금인 것을 -.
26th. Nov(토)
육상인부를 동원 2 Gang이 작업. 결국 19시 반에 닻을 올리고 영국의 Milford Haven으로 출항을 했다. 총 486.15ton을 실었다. 어제 잠깐 나가서 Agent에도 가보고 Las와 전화로 다음 기항지를 들었다. 손바닥만한 실내에 책상 하나뿐인 대리점이다. 그러나 키가 훤칠하고 카젤 수업을 기른 초신사풍의 사무원이 점잖아 보이기는 했으나 영어가 전연 불통이다. 오후 늦은 시간인데도 학교에서 돌아오는 어린애들도 많았고 마중 나온 어머니들의 모습은 어디서나 꼭 같다. 티없이 맑고 뽀얀 서양어린이들의 살결이 너무 탐스럽다. 정현이의 상처 때문인가 그냥 뵈질 않는다. 어떻게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인가. 실제의 상처보다 더 깊고 크게 얼룩진 아내의 마음과 애처로움을 버리지 못할 내 자신의 염려는 그 상처 자체가 남아 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 순간의 잘못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큰 대가를 치루어야 하며, 運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얄미운 것이다.
외항의 Swell이 제법 크다만 500여톤을 실었으니 큰 수격작용은 없을 것 같다.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8th. Nov(월)
3통의 Telex를 받다. Canpex로부터는 아마 Mr. 육이 보낸 것인가 한글이 영자화 되어있다. 적재한 486.15톤에 대한 작업비가 Gross Tonnage가 아니고 Net로 계산해서 $1,852이랬다. 누가 생각했는지는 모르나 골빈 녀석이다. 저네들은 net로 계산해서 파는지 몰라도 우리가 들고 내리고 한 것은 포장을 포함한 전체를 실었다. 포장용기를 뺀 알맹이만 실지 않았다. 웃기는 놈들이다. 앞으로가 염려스럽군.
Kelway에서는 정확한 ETA를 바란다고 했으며 입항 즉시 Pilot를 보낸다고 했다. 또 하나는 Milford Haven의 선식 ‘Okell Replenish'에서다. 한국인, 일본인도 좋아하는 신선한 야채랑 무엇이든지 다 있다고 알려왔다. 장사를 해도 이 정도의 SVC는 해야지. 그러나 이번에 여기서 실을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걸. 처음 Plymouth로 계획됐던 것이 M.H로 직행하게 되었으니 적어도 4-5일은 체류하리라. 일이 잘 되면 London까지 한 번 가 볼 수도 있겠다. 차츰 기온이 더 내려간다. 위도가 북위 50도면 북태평양의 캄차카반도 부근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매섭게 차가운 느낌은 없다. 난류의 탓인가보다. 화재의 위험 때문에 각실의 곤로를 모아 보관토록 하다. 흔들리는 배에서 전열기 사용은 위험하다는 것은 이미 동방호시절에 겪었다. 사실상 각 침실이 너무 춥다. 모포를 추가로 배정하고 문단속을 하지만 사방 주위가 싸늘한 철물구조인데다 바깥 기온이 찬 데는 도리가 없다. 참고 견디는 수밖에-.
8th. Dec
12월도 1주일을 넘었다. 새벽 2시 Milford Haven Dry Dock 좁은 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 다시 항해의 길에 오르다. 이곳에 머문지 9일만이다. 추위, 습기, 비, 바람, 짧은 낮 거기다 아늑해 보이는 거리의 풍경, 교외의 목장과 새파란 잔디들! 그저 경황없이 멍하게 보낸 9일간이다. 입항 중이면 차분하지 못하고 왠지 들뜬, 그래서 한 장의 책도, 한 줄의 일기도 쓰지 못하던 그 얄궂은 버릇이 여기서도 예외없이 실행(?)되었다. 아무리 둘러봐야 내 것이 없고 내 갈 곳이 없는데 왜 내 자신 을 잃고 우왕좌왕했을까? 다만 같은 인간이 사는 곳이 뿐인데 -. 그간의 일들을 약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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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일 - 새벽 4시 30분 외항에 닻을 내렸다. VHF에서 모없이 굴러나오는 영어 로 부른다. 06:00시에 Pilot가 온단다. 새벽의 찬 공기가 입술을 트게 했다. Dry Dock의 좁은 gate를 겁도 없이 밀어붙이는 Pilot가 믿음직스럽기 보다 의심스럽 기도 할 만큼 곡예를 연출, 10:00에 접안했다. 좁은 Dock가 우리 배에는 작은 곳이다. 간만의 차를 고려해서 만든 갑문식 Dock이다. 11시반부터 작업시작. 두척의 트롤선으로부터 받아 실었다. 저녁에 국장과 거리구경 및 극장구경으로 떼우다.
11/30일 - 시내 Torch 극장에서 ‘Nelson과 Emma'라는 제목의 연극을 보다 오랜만의 연극구경, 감명 깊었다. 사람보다 조명이 더 큰 역할을 한다. 온 관객전부가 300여명, 그러나 동양인이라고는 나와 손일하 일등항해사 둘 뿐이다. 그것도 모 두가 까만 정장차림인데 둘은 가죽잠바 차림으로 -. 헛기침 소리 하나 없이 모 두가 그 속에 빠진다. 이곳 Milford Haven과 Nelson이 무슨 인연이 있는 듯도 하다. 낮에 본 시민들의 인상과는 너무나 다른 점잖은 옷차림. 비록 최근의 모델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영국신사의 격식을 보았다. 가죽잠바 차림의 우리 두 사람이 민망하기만 했다. 중간 휴게시간의 맥주 2잔도 겨우 찾아 마셨지만 내 돈 주고 들어온 극장에서 내가 미안한 감을 가진 것도 처음이다. 어쩌면 밤을 위해 사는 사람들 같다.
12/1 - 집에 전화하다. 역시 선진국이 다른가 쉽게 연결된다. 심퉁한 아내와의 통 화가 않은 것만 못하다. 옆에 형수가 있어서 그랬을까만 무엇인가 버림받은 느낌 이다. 아래층 휴게실만 석유난로 피우기로 하다. 아침으로 속이 너무 떨린다. 작은 곤로라도 하나 사자. 시외버스를 타고 Nyland까지 갔다 오다. 더 작은 시골이 다. 저녁에는 밤차타고 菅原군을 데리고 기차로 두시간, Swanse에 가서 삼등 여인숙인 St. Helens House에서 자다, 출렁이는 흰둥이의 고고리듬의 물결. 다만 희달뿐 Lagos의 그것과 같다.
12/2 - 아침 한 끼 끼워 4Pound(3,600원)면 싸지도 않다. 새벽차로 귀선. 시골기차길과 역 그리고 주위의 많은 목장들이 너무나 인상에 남을 것 같다. 무엇보다 후끈후끈한 기차 안에 좋았다. Mr. Parso 다녀가다. 돈은 대리점에 두고 간단다. Shifting 하다. 내일 다시 Shifting예정. 작업비 때문에 대리점 Mr. David와 밤늦 게까지 실랑이 하다. 스페인 Bilbao은행 발행의 수표가 현금화 되기까진 며칠이 걸린단다. 내일이 토요일이니 내리 휴무고 -.
12/3 - 오전중 다시 Shifting. 오후 12:15분 기차로 菅原군과 London으로 향하다. Paddomgton에서 하차. 지하철을 타고 Victoria역까지, 다시 Texi로 3 Star짜리 호텔에 투숙. 유명하다는 Picadily Circus에서 어슬렁데다 이태리계 비슷한 놈에게 꼬이어 London 창녀집도 구경했다. 동양적인 예의차리다가 菅原 그 녀석한테 선수를 빼앗겼다. 기분이 씁쓸하다. 그렇다고 그 젊은 놈과 한 구멍동서(?), 그나 마 손아래가 되기는 싫었다. 우리 정서로서는 -.
12/4 – 오전 중 시내를 일주하는 2층 버스로 관광. 붉은색 버스에 늙은 영감님들이 운전하고 안내하는 이색적인 코스. 몇군 데 더 거쳤으나 짧은 낮에는 무리. British Museum에서 3시간을 보내다. 그러나 볼 것은 많고 시간은 없고-.
밤 11시45분 기차로 귀선길에 오르다. London 언젠가 다시 와야지.
12/5 - 새벽 6시반에 귀선. 싸늘하게 식은 침실. 그것뿐이었다. 너무 춥고 쓸쓸함.
12/6 - 작업비 수당 등을 지급 완결. 14:15분차로 Swanse에 다시 가다. 구두, Y싸스 등을 사다. Orden Bar에서 2시간 보내다. 짖궂게도 비가 괴로우리만큼 뿌린다.
12/7 - Agent Mr. David Clack집에 가다. 그의 Italy인 부인이 미인이다. 한국인 형을 갖고 있다. 진선미 그리고 인형의 옷 속에 福자와 壽자의 뜻을 물었다. 남편과 한 직장에서 일하며 첫 애기를 가진지 4개월째란다. 바깥보다 훨씬 질이 높은 실내, 전기난방장치 등이 돋보인다. 일본 화병 한 개를 선사하다.
영국! 고위도 지방이지만 생각보다 그리 찹지는 않으나 짧은 낮에 햇볕을 볼 수 가 없는 겨울이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와 시골과의 격차 없는 생활 수준. 그리고 파랗게 자라는 목초위에 유유히 풀을 뜯는 얼룩소, 면양과 말들! 그 숱한 야산을 온통 메우고 있던 아담한 목장들의 인상은 어느 곳 보다도 강한 것이었다. 한때는 세계를 지배했었지만 지금은 등외국으로 물러났다고는 해도 그 축척된 부와 규형잡힌 생활의 기틀은 결코 쉽사리 허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러 파해쳐 놓은 곳 이외는 맨흙은 볼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인공과 자연의 조화를 가졌다. 정갈하게 포장되고 길마다 깨끗이 서있는 이정표, 그리고 야산 속을 헤집고 꼬불꼬불 흐르는 맑은 시냇물과 그 주위에 우거진 잡목 숲들은 곧 표본이 되고 있다. 언젠가 여름철에 한 번 더 와서 저 깊숙한 숲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어둑한 뒷골목도 뒤져보고 싶은 곳이다.
Oxford. Scotland지방까지도 꼭 가보고 싶었고 또 갈 수도 있었는데 네미럴! Mr. Parso가 돈을 늦데 가져온 탓이다. 지난 9개월간에 쓴 용돈만큼이나 썼다. 호박씨까서 한입에 털어 넣은 격이지만 아깝지는 않다. 그저 먹고 자고 쏘아 다녔고 남은 것이라고는 구두 한 켤레. 와이셔스 2장, 넥타이 2개뿐이다. 아무튼 무엇엔가 홀린 듯한, 아직도 제 Face를 못 찾고 헤멘 느낌이다. 갈수록 눈알과 마음은 높아져 가는데 현실을 그렇지 못하니 그것이 더욱 더 큰 병폐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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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th. Dec.(토)
아무런 생각도 없다. 그저 이 바람이 멎어 줬으면 하는 염원뿐이다 거의 만선인데도 너무 거친 해상이다. 09시 Spain 북단 Biscay만을 무사히 넘긴 지점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강풍은 초속 20-23m를 기록한다. 한낮 종일을 들이닥친다. 배가 가는 것이 아니다. 서 있다. Cabo Villamo등대가 13'에서 본지가 오전중인데 아직도 그 자리다. 든든하게 짐을 실었으니 별반 움직임이 없이 듬직한 바위덩어리 모양 안심스럽기는 하지만 너무나 낡은 선령이 자꾸만 불안케한다. 어떤 약한 한 부분에 결함이 발생한다면 -. 天運에 맡기고 船上에선 인간의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내리 덮치는 파도는 Deck위를 홡고 지나간다. 긴 꼬리를 단 저기압의 전선이 걸렸고 부근에 다시 새로운 저기압이 발생중인 것이다.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했다. 할 수도 없다. 차라리 모든 바깥의 상황을 잊고 싶을 뿐이다. 늘 그랬듯이 육상에서 지쳐빠진 피로가 다시 겹쳐 요동치는 배와 함께 내 몸속에서 심한 갈등이 일어난다. 멀미기운이 슬슬 일어나기까지 한다. 잠! 이대로 저 깊은 심연속으로 빠져들어 벼려도 모를 만큼 깊은 잠이 계속 무겁게 눌러온다. 그러나 그대로 몇 시간이고 잘 수도 없다. 사람과 배와 바람과 파도의 싸움이기 이전에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부터 극복하고 극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보라가 시야를 더욱 좁힌다. 이런 속에서도 유유히 그물을 차고 작업을 하는 트롤선들이 가끔 뵌다. 이 배가 겪고 있는 이 시련이 곧 우리들 인생자체인지도 모른다. 비록 생명은 없지만 기울었다가는 일어나고 튀어 오른 수많은 덩어리의 바닷물덩이를 툭툭 털어 버린다. 거대한 파도에 이마를 쥐어 박히면서도 헤집고 밀어붙인다. 자연의 법칙이다. 그래도 떠있고 힘차게 움직일 수 있도록 과학을 연구해 내고 발전시켜온 선인들의 지혜에 다시 한 번 경의와 감사를 드린다. 비록 생명을 갖고 사유하고 판단하고 생활하는 인간이지만 이 오묘한 자연의 법칙을 저버릴 수는 없으리라. 극복하고 순응하는 자만이 생을 이어갈 수 있는 사회! 모두가 모든 것이 순조롭고 안일하게 진행되어 가지는 않는다. 무수히 달려드는 더 파도처럼, 찢어지는 소리를 내면서 불어대는 저 바람처럼, 달라붙고 물고 늘어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불필요한 것들을 끊임없이 잡아떼고 털어 버릴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힘이기 전에 본능이다. 얼마만큼 해 낼 수 있는가는 자신의 역량이고 능력이다. 목적지가 분명치 않은 항해! 금년들면서 계속 이러한 상황속에 움직여 왔으니 어느 정도 면역이 되기는 했지만 어느 한 구석에 안심할 수 없는 잠재된 불안의 씨앗이 꺼지질 않는다.
출항 직전 Oil Supply 관계상 C/E의 항의가 떠오른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책임한계는 그 보다 내가 한 단계 위다. 이대로 Lagos 계속 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상 실행한다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짓이다. 일단은 Laspalmas로 가자 거기가 목적지다 우선은 -. Radar상에는 주위에 몇 척의 배가 Contact되지만 2마일 앞이 보이질 않는다. 저마다 같은 고역을 치루며 다투고 있을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이야긴 할 수 없지만 개개인의 마음속에 간절한 하나의 바램은 같을 것이다. 무사, 그리고 평온한 바다를-.
11th. Dec.(일) 1978
다소 회복된 기상. 그러나 북서쪽에서 밀려오는 길고 골이 깊은 너울이 계속 15도-20도의 Rolling을 일으킨다. 책상 위, 방안의 모든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을 잡아매거나 통에 넣어 묶는다. 북위42도 부근. 그러나 한결 바람이 부드럽고, 마치 저 먼 산넘어 동네에서 불어오는 봄바람 같은 느낌이다. 내의를 벗었다. 한벌로 빨아 입은 일없이 꼭 20일째 입었다. 절었다. 때자국과 함께 푹석푹석 한다. 모처럼 다시 뜨끈한 물에 그간의 피로를 풀다. 13일의 ETA가 하루나 늦어진다. 3일 남은 항정, 그나마 더 이상 악화되지 말았으면-.
13th. Dec(화)
찬란한 아침 태양이 너무도 선명하다. 아마도 Las출항이후 처음 보는 햇볕인 것 같다. 마치 온 세상이 환해진 느낌이다. 사실 환 해지기도 했다. 누가 지은 지는 몰라도 ‘오 솔레미오’가 실감난다. 그 사람도 햇빛이 무척이나 그리웠던가 보다. 북구인들이 그처럼 일광욕을 즐기고 또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이해하겠다. 그네들이 틈나면 아무데고 벗고 누워서 일광욕을 하고, 도 멀리 남쪽까지 돈 들여 내려가서 피서 피한을 하는 것은 결코 생활이 윤택하고 여유가 있어서만이 아니다. 햇빛 그것은 바로 생활의 일부분이고 양식인 것이다. 햇빛도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다. 겨울철이면 따사로운 양지를 만들어주고 얄팍한 햇살, 가을이면 살갗이 따갑도록 내리쬐는 볕. 여름에는 익히고 삶아내기라도 한 듯이 이글거려오는 우리나라의 기후와 햇살을 팔아먹을 수만 있다면 -. 비가 온 것도 아닌데 온천지가 습기 속에 차있고 바늘 끝 만큼의 틈도 없이 겹겹이 깔린 구름으로 음침하기까지 한 영국의 날씨들에 비하면 너무나 싸고 귀중한 것이 아닌가. 멕시코 난류의 영향으로 겨울철에도 따뜻하다던 지리시간의 기억들이 새삼 피부로 느낀다. 한류가 흐르는 북태평양상의 지금 계절의 기후를 생각하면 오싹해진다. 해수 온도가 영하2도. 결빙이 되고 떠 있는 그 얼음이 녹지 않으며, 한 번 얼어붙기 시작하면 위험하게 가속화하는 선체결빙을 북위 48-50도 부근에서 몸소 겪었고 40도선에서만 해도 직접 볼 수 있었다.
2월에 일본 북해도 동부를 흘러내리던 오츠크해의 얼음대가 눈에 선하다. 그 속에 갇혀 수십시간 헤메이기도 했었고 무지막지하게 그 속을 뚫고 나오기도 했다. 북구의 제국들! 겨울철에도 不凍港으로서 그 기능을 다함으로서 높은 문화수준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것은 곧 자연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날고 기어 봐도 만약 50도 이상의 항구가 겨울철 얼어붙는다고 한다면 -.
어제 종일 다시 심한 풍랑을 겪었다. 다행이 순풍이었지만 갑판위의 해수유입이 너무 심했다. 어쩌면 No.3 Hold에 다수의 침수가 예상된다. 북대서양의 저기압! 어구야! 그 중심示度도 크고 더구나 광역에 걸쳐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마치 일본의 봄철 ‘津波(쯔나미)’ 같은 것이다. ‘Mino Star' 김 선장의 실정이 눈에 선하다. 진짜 고생이 심하겠다. 내일 오전 중 입항되려나. 지금의 이 상태라면 Las 외항 묘박중에도 심한 로링을 겪어야 할 것 같다. 정말 지겨운 며칠이다. 영국과 Las의 사이가 몇 달이나 걸리는 느낌이다.
15th. Dec(수)
새벽 느닷없이 Pilot.가 왔다고 깨운다. 아닌 밤중의 홍두께다. 어제 오후 1시20분 무사히 Las외항에 닻을 내렸다. 아득히 먼 북태평양상에서 밀려오는 너울이 있으니 바람기는 없었다. 종일을 기다려도 아무런 연락이 없기에 어제밤 10시경 VHF를 껐더니 Pilot영감쟁이 1시간이나 불렀고 배를 찾는다고 욕을 봤다면 두털거린다. ‘왜 낮에 연락이 없었오?’ ‘저기 봐라. 저렇게 배가 밀려 있잖냐.’ 한다. 그렇다. 수십만톤 혹은 수만톤짜기의 Tanker로부터 전용선들, 크고 작은 어선들이 묘박지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찼다. 모두가 적양하를 위한 것은 아니다. 급유. 청수보급, 선용품 보충. 주부식 사입 등 중간보급을 위해서 입항한다. 오래 머물지도 않는다. 풀방구리 쥐 드나들 듯이 쉴새없이 드나든다. 붉고 검은 흙덩이 뿐인 이 보잘 것 없는 섬도 그가 앉는 위치하나 때문에 훌륭한 외화벌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재수 좋은 놈은 가만히 앉아서도 저렇군.
03:40분 접안 Mavacasa의 Mr. Juan Garcia Para가 나왔다. 여기서 다시 약 45톤의 빈 hold를 채우고 Bunker Supply(연료보급)가 끝나는 데로 출항이란다. 그래 얼른 얼른 해다오. 그러나 결국 Bunkering은 못했다. Mavacasa, Canpex 들렀다. Mr. Tikam, Oil을 A. B 각각 100톤밖에 안 준댔다. 왜? ‘내년 2월이면 일단 Charter Party가 끝난다. 그 후는 아직 미정이래서 -.’ ‘그럼 좋소.’
전번 Kano Reefer와 동방호 때문에 그가 가진 배의 지분의 주식을 모두 팔아치우고 이제는 배를 갖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방침이라고 Mr.육이 얘기한다. 그러나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해선가 Mr.Parso 그리고 그리스인이 본선을 또 둘러보고 갔다. Mr.Tikam은 어쨌건 내년에 다시 용선할테니 1년을 더 부탁을 한다고 했다. Apapa Reefer의 김 선장과 둘이는 꼭 잡고 싶다는 얘기다. 일단은 우리 Agent인 대아의 Order가 있어야 한다고 슬쩍 돌려놓긴 했으나 선주와의 계약 그리고 향후 본선의 거취가 문제다. 아울러 대우의 개선도 문제가 되고-.
좀 더 그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함께 육상에서 일하는 기틀을 고려했으나 1년이 늦었다. 또 막상 Mr.육의 말처럼 그냥 앉혀두는 정도라 실망이 크다고 한다. 좌우지간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해 협조해 가기로 약속은 했다. No.72 남성호의 상준 군이 왔다. 낮에 Memo를 두고 왔더니 다행이 입항중이었군. 요행이 Las 입항할 때마다 그를 만난다. 무사히 한 항차를 마치고 Docking 중이란다. 저녁을 같이 먹고 얘기 나누다. 무척 실망을 느끼는 모양이다만 이미 화살은 떠났다. 그저 열심히 하는 수뿐이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 가장 현명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형님 얘기 명심하겠심더.’ 내가 지금 그에게 줄 것은 내 경험에 의한 하나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뿐이다. 그 이후로는 그 자신의 문제다 내가 그에게 젊은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라고 일러준 것은 어쩌면 내 자신에 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날의 무성의 했음을 깊이 후회함과 아울러 자책의 소리이리라.
23:00시 귀선. Shifting하란다. Agent에서 Mr.Juan이 몇번 다녀갔단다. 무슨 소리야? 아무턴 누가 찾아와도 없다고 하고 오늘밤은 Shifting 않기로 하다. 좀 자고 싶다. 허황한 꿈과 찬란한 현재 이곳의 모든 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나 순수한 내 자신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세상 모르게 깊이 잠들 수 있었으면. 무엇인가 꼭집어서 말 할 수 없는 이 불확실하고 불안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수뿐이지 않는가?
16th. Dec.(금)
08:00 외항으로 전묘하다. 새벽같이 달려온 Mr.Juan. ‘어제밤 당신 어디있었오?’ 대든다. ‘모처럼 와서 아가씨한테 갔다고 오늘 새벽4시에 왔오. 무슨 일 있었오? 미안하오.’ 등을 툭툭 쳐주며 웃었다. 사실 새벽 3시경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었는데 모르는 척 했다. 밤새 찾았다나. ‘당신 때문에 Habour Master에서 야단났오. 저기 큰배가 어제밤에 들어와야 하는데 -. 어서 Shifting해주시오’ ‘그럼 왜 진작 낮에 연락해주지 그랬오. 아무턴 지금 하지. 언제 다시 연락하겠오?’ ‘오늘 오후’ ‘됐오’ 그러나 해가 넘실넘실 넘어가도 연락을 커녕 Pilot Office의 상냥한 아가씨도 아무런 통보가 없어 모르겠단다. 일단 Life Boat 내려 공장에 보내 어제 맡긴 No.2 발전기 수리관계를 찾아오다. 이제 안심이다. 저들이야 급유해서 출항시키던 말던-. 그저께 이놈의 수리건 때문에 Mr.Tikam과 ‘Off-Hir'에 대한 얘기까지 나왔다. 그놈의 새끼, 내가 C/P(용선계약서)를 몰랐다면 분명히 걸었을 거다. 슬쩍 농담이라고 눙치기는 했으나 그 달라진 표정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개새끼 아닌가. 이제 네놈들이 당해봐라.
밤새 VHF를 Open. Watch세우기로 하고 푸근한 마음으로 쉬다. Lagos Agent가 바뀌었다니 우선은 집에다 연락을 했다. 아울러 내년 3월에 일단 귀국할 뜻을 알리다. 막상 여지끝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을 이쪽 사정이지만 이것 때문에 아내마져 무엇인가 일을 결정치 못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경우에 따라서 翻意하는 한이 있더래도 확실한 단안이 설 때까진 그렇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더 이상 내 스스로 안절부절 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내 자신의 문제를 두고 선주와 용선자의 상황에 맡겨 달라진다는 그 자체가 이상스럽고 서글퍼진다. 그러나 내게도 조건을 두자. 만약의 경우 1년을 더 연장하는 경우는 그 1년을 해상생활의 마지막으로 하던가, 하다못해 수출선을 그만둔다는 -. 그렇지 않으면 매듭 없고 끝없는 이 생활이 너무나 막연해져 갈 것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 그리고 가느다란 달빛이 제법 싸늘하게 보인다.
18th. Dec.(일)
이리 좋은 것을! 잔잔한 바다 위를 그리 빠르지 않은 속력으로 적당히 순항을 한다. 06:00 외항으로 전묘. 12:00정각에 출항하다. 어제 오후 6시경 접안하여 마치 중국집 짜장면 되듯이 ‘곧 된다, 지금 온다.’ 하는 것이 결국 자정이 넘어 급유가 시작됐고 새벽 5시에 끝냈다. 어제 낮엔 Apapa Reefer도, Togo Maru도 출항을 했다. 각기 제 갈길로 -. 초저녁엔 Mr. 육대식과 저녁을 같이 했고 잡담들을 나눴다. 고충이 심해도 계속 그놈들 밑에 있어 보려는 의욕이 가상하나 실상 문제점은 많다고 한다. 서로 협조해나가자고도 했고 마침 지영남 씨가 Las로 왔다는 소릴 듣고 늦게나마 찾아보려 했으나 헛사. Mr. Tikam에게 X-Mas 선물이 없느냐고 했더니 포도주 한 박스를 준다. 재수없게도 St. Martin No.31호 선원들과 우리 선원들의 집단싸움. 결과는 본선의 완패였나 보다. 3놈의 터지고 깨졌다. 꼭 그런놈들이다. 대가리 3바늘 꿔맨 녀석은 3기원 우군이고 얼굴에 서너군데 반창고 찍어 붙인놈은 Cook, 그리고 입술이 터진 자식은 No.3 손이다. 서글픈 일이다. 그 나이에, 여기가 어디냐? 그것도 하필이면 한국선원들끼리 치고 박다니-. 내게 그러한 권한이 부여된다면 정말 뭔가 좀 그쳐야 될 일이다. 밖에서 저들끼리 치고 박고 터져 놓고 왜 배에까지 끌고 와서 야단들인가? 속시원히 한데 묶어 보내 버렸으면 좋으련만-. 에이 더러운 새끼들!
새벽 Pilot와 같은 시각에 그 배의 정두호 선장이 왔다. 마침 FAO 후배란다. 조무제 밑에 있다 인수 받았단다. 그대로 싣고 외항을 나왔다. 마침 Mavacasa에서 Kerosen(석유)을 외항에서 오늘 오전중에 보낸다고 했으니 -. 실상 정 선장도 딱하다. 선배의 입장에서도 미안한 감은 있다. 다 돼가는 계약 중 선박을 좌초시켜 수리중이고 선원들도 동요가 심하단다. 이름 높은 ‘해외산업’이란다. 그러나 저러나 선장의 입장으로서 선원들의 단속, 그리고 부단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얘기했다.
약간의 약품 그리고 치료비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의 성의라고 하는 약간의 Pst.를 보냈다. 터진놈만 억울하지 별수 있나. 왜 다 같이 말리고 했는데 유독 3놈만 터지고 깨지냐? 짐작이 간다. 평소에 한잔 걸치면 허풍 잘 치고 시비 잘 걸던 바로 그 놈들이다. 특히 No.3 손. 나이가 40이 넘은 것이 더럽게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 10시 반 본선 Life Boat로 西村씨로부터 석유 3드럼을 받고 곧 닻을 감아 올렸다. 한결 탁 트이는 가슴이다. 꼭 한 두 놈의 못난 미꾸라지 같은 자들이 골치를 썩힌다. 어느 배에도 그런 수는 많다. 72년도 Eastern Prosperity에서의 유x근군, 작년의 김x 란 놈. 이런 자들이 결국 어시장의 꼴뚜기 꼴들이다. 세상이 완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스스로 완전에 가깝도록 노력은 해야 할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이 사회는 유지되고 발전을 쌓고 있다.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라고 그런 작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더 많은, 더 깊고 심각한 사회의 병폐적 요인이 되고 있는 알콜 중독자, 범죄집단, 마약중독자 등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러한 속에서도 질서가 있고 한계가 있고 또한 자기개인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네가 한 잔술에 치고 박는 것은 너무 치졸하다. 만나면 서로 반갑다고 악수하고 제돈 내서 술 사줘 가며 떠들다가는 갑자기 일어서서 고함치고 주먹질해댄다.
정 장이 책 두권을 보냈다. 괴에테의 ‘파우스트’와 까뮤의 ‘행복한 죽음’이다. 이걸로 이 해가 보내지려나?
19th. Dec(월)
오전까지 계속 잠으로 떼우다. 그제 밤부터 피로가 어제 종일 자고도 모자랐던가 기분이 하늘처럼 맑고 잔잔한 바다처럼 가라앉는다. 수많은 국적 미상의 어선들이 조업중이다. 저것도 분명히 하나의 전쟁터를 형성하고 있으리라. 목욕과 함께 처박아 두었던 내의와 속옷을 빨다. 빨래할 때처럼 자신이 서글플 때도 없다. 빨래와 바느질은 원래 소질이 없었고 그 때문에 군에서도 이름을 날렸(?)었으니까.
영국에서 본 Self-Service 세탁장이. 그러나 거기서 남자들이 세탁물을 넣어놓고 신문을 펴들고 기다리는 광경이 떠오른다. 젊고 늙은 부인들 속에 섞여 있어도 태연하게 뵈지만 그 마음만은 아무렇지도 않을는지? 어딘가 처량한 구석들이 있었을 게다. 암만 문질러도 쉬이 빠지지 않는 때가 미워지기도 한다. 그냥 담궜다만 건져도 싹 빠지는 그런게 뭐 없을까? 겨울이나 여름이나 집에서 매일 쌓이는 빨래를 감당해내는 마누라들과 식모들의 고충이 이해되기도 한다. 다시 한번 새 마음을 갖자. 얼마남지 않은 기간이자만 결코 후회없이 보내도록-. 차츰 더워져 갈테지만 놓았던 책도 다시 들어야지. 입항중의 경황없던 그 버릇은 의식적으로 받아드리고 고쳐나갈 수 있도록 애도 써보자. 떠날 때 Mr. Tikam의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얼마전에 Owner로부터 내년 다시 용선하자는 연락이 있었다고. 그것은 곧 내가 원했던 것이고 그리되면 1년 더 하기로 스스로 작정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어떤 결과를 완벽하게 얻은 것은 아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도록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어떤 경우가 되던 내 자의로 가부를 결정하는냐가 아직은 망서려진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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