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길 고향길
내가 추석에 고향을 찾은 것은 실로 십수년 만의 일이다. 신혼때야 내 고향인 해남에 들러서 추석을 보내자 마자 처가에 들러서 추석 뒤풀이를 하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형제들도 다 고향을 떠서 장모님 살아계신 처가에 제일 먼저 들르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야 성묘하러 고향인 해남에 가야 한다. 세월이 많이도 흐르고 세태도 많이도 변했다고 해야만 한다.
장장 일곱시간을 달려온 고향길 전남 강진군 군동면 석교리 처가 마을로 가는 다리다.
드디어 석교마을을 알리는 돌판이다.
석교 처가의 사립문이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구십육세 장모님께서 반겨주실 것이다.
드디어 처가의 본체다.
처가의 행랑체다. 연휴 내내 나는 잠고대를 많이 한다는죄로 이 곳에 혼자 쉬어야 했다. 아마도 유배생활인가 아니면 교도관용어로 독거수용 시찰이 난 것인가 나도 모르겠다.
처가의 감나무다. 잠모님께서는 감나무가 좋아서 이곳을 선택하셨다는데, 장모님께서는 아직도 정정하신데, 감나무가 벌써 고목이 다 되었다. 실꾸리를 닮았다고 해서 꾸리감나무인데 가을에 빨갛게 익어서 홍시가 되면 그 맛이 일품이다.
처가의 단감나무다. 해마다 추석 무렵이면 이 단감을 따서 서울에 자손들에게 보내오곤 했었다. 올해는 직접 와서 맛보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나는 처가의 단감이 제일 맛이 좋다. 왜냐 하면 천리길을 달려와 먹는 맛이요. 또 장모님께서 보내올 때는 천리길을 달려온 단감이기 때문이다.
전라도 말로 화장실을 칙간이라고 한다. 나는 추석연휴 내내 본체의 좌변기를 외면하고 이 칙간을 애용했다. 조금은 불편하지만, 이 칙간에 앉아 있으면 옆의 두엄냄새하며 고향의 옛 추억들이 스멀스멀 스며 나오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재레식 칙간이다. 합수통이 있는 이 곳 옛날에는 이곳에서 가족들의 건강도 체크하고 그랬었단다. 냄새나는 칙간이 그래도 나는 좋다.
처가의 보물창고다. 농산물을 보관하던 곳이다.
정겹기만 한 처가의 장독대이다. 내 고향집의 장독대는 맨드라미 꽃이 피어나던 곳이 아니던가? 처가의 장독대가 나는 좋다. 그곳에서 풍기는 된장냄새 간장냄새가 바로 내 고향 냄새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구십육세 우리 장모님의 텃밭이다. 전라도 말로 논새밭이다. 말하자면 장모님의 사업체 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 장모님께서는 아직도 현역이시다. 올해는 날씨탓인지 잎만 무성하지 열매가 없다고 푸념이 대단하시다. 부디 우리 장모님 사업체가 번창해서 열매가 많이 많이 맺혀야 할텐데.
처가의 뒤란길은 항상 복잡하다. 작은 농기구를 보관하던 곳이기도 하다.
처가의 뒤안은 항상 풍성하기만 하다.
이곳은 장모님의 사업체 분소이다.
올해는 추석이 빨리 와서 지금 한창 맛들어가는 처가의 단감이다.
장모님 논새밭의 풋고추가 그냥 한 입 깨물어주고 싶도록 좋다.
오늘은 우리 일행이 장모님 방 도배를 새로 했다. 그런데 나는 어깨가 안좋아서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하기만 하다.
장모님의 구월에 구순잔치 사진 전시장이다.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이 거울에 반사되어 찍혔다. 흐미 ! 으째야쓰까잉 !
두 사람이 누우면 딱 좋은 처가의 쪽방이다. 나는 신혼때 처가에 들를 때면 이곳에서 아내와 단 둘이 단꿈을 꾸기도 한 곳이다. 갑자기 신혼때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랴? 우리 일행은 다산초당을 가기 위해 백련사에 들렀다. 앞에 연꽃이 있어서 백련사인가?
다산 초당가는 푯말이다. 그런데 깃대봉 가는 길도 보인다. 깃대봉은 내 고향 뒷산 흑석산 정상이다. 이곳에서 내고향 뒷산인 흑석산으로 가기도 하는가 보다. 땅끝 기맥이라더니 갑자기 깃대봉으로 가고 싶어라.
다산동암이다.
보정산방이다.
백련사의 개, 늘어진 개팔자다. 죽은 줄 알았는데 서서히 털고 일어나더니 사납게 짖어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전직 교도관 출신인 내가 도둑으로 보였나보다.
다시 처가 집앞 공동우물이다. 내가 신혼 때만 해도 이 물을 마셨었다. 처가 뒤풀이로 소주를 마시고나서, 새벽녘쯤 달빛을 안고 이 물을 한 바가지 벌컥벌컥 마시면 그 맛이 얼마나 좋은지 그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호박꽃도 꽃이다. 고향의 호박꽃은 수줍은 여인처럼 그렇게 예쁘기만 하다.
드디어 내 고향 해남에 성묘하러 가는 길이다.
나 어릴때 살던 모동교회가 있던 그곳이 눈에 보인다.
내가 다니던 계곡동초등학교 옆에 위치한 가게이다. 우리는 이곳을 점방이라 부르며 이곳에서 학용품을 사기도 하고 눈깔사탕을 사서 먹기도 한 향수어린 그 곳이다.
내 아버님께서 개척하신 모동교회가 한눈에 보인다. 감회가 새롭다.
사촌리와 다만돔이 눈에 보인다. 다만돔은 우리 제2종교개혁연구소 소장님이신 임태수 박사님의 고향이기도 하다.
사촌리 정자나무가 시원함을 더해주는 것만 같아서 좋다.
성묘하러 온 우리 가족납골묘이다. 나는 이곳에서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 같이 피맺힌 기도를 했다. 임영식 할아버지 독립유공자 표창상신을 위해서 그리고 손주까지 앞세우고 홀로 사시다가 가신 고모할머니를 위해서, 그리고 이십대에 홀로 되셔서 내 아버지만을 바라고 사셨던 내 할머니를 위해서 그리고 모동교회를 개척하신 내 아버지 두 어머니. 사랑하는 내 딸과 천상재회를 위해서 피눈물나는 기도를 했다. 제2종교개혁연구소의 서적 출판과 신학강좌가 성황리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했다. 제2종교개혁연구소 임태수 소장님의 건강과 가족 평안을 위해서 피맺힌 기도를 했다.
제2종교개혁연구소 임태수 소장님의 고향 다만돔이다.
사촌리 정자나무가 한결 더 시원해 보인다. 그런데 고추잠자리가 한마리 잡혔다. 고향의 고추잠자리이니 더 없이 정겹기만 하다.
성묘를 하고도 시간이 남아서 우리 일행은 전남 장흥에 위치한 제암산 가는 길목의 억불산에 오르기로 했다. 역불산 초입의 정남진 천문과학관, 참 이번 추석에 아들내외와 손주 손녀는 부산 처가로 보내고 우리 부부는 내 처가에 왔는데, 부산에서 추석을 보낸 아들 내외와 손주 손녀가 우리가 머물고 있는 강진 셕교에 합세를 해서 이번 추석은 너무너무 아름답게 장식되고 만 것이었다. (신파조) 그래서 아들 내외와 손주 손녀는 이곳 천문과학관을 관람하고 우리 일행은 억불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번 모임은 삼동서 두 처남 가족들의 모임이 되었다.
억불산 가는길의 억송정 누각이다.
정남진 어원을 알리는 표지판이다.
정남진 정상 바로 아래서 필자 임재문.
며느리 바위의 전설을 알리는 표지판이다.
억불산 정상에서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필자 임재문. 아참 이번 추석은 대박이다. 일억불을 거머쥐게 되었으니 말이다.
추석에 고향을 찾는 것은 아마도 이 추석달 추억달 때문이 아닌가 한다. 금년들어 두번째로 크다는 슈펴문을 찍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서 찍었다. 저달보고 소원을 빌어봐? 하나님 지으신 창조물이니 그래도 될 것같기도 한데 그것은 아니다.
장모님 ! 장모님 ! 우리 장모님 ! 나는 우리 장모님이 참으로 좋다. 독실한 불교 신자이신 우리 장모님께서 천주교로 개종을 하셔서 두드러진 변화가 있어서 더욱 더 좋다. 처가의 추석 차례상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우리 처가집의 대대적인 종교개혁이라고 해야한다.
아침밥상을 받으신 장모님 ! 우리는 이 아침밥을 먹고 다시 경기도 의왕 삼동 아파트인 내집으로 가야만 한다. 장모님 ! 설날에도 또 오겠습니다. 나는 장모님을 보기만 해도 힘이 솟는다. 나도 앞으로 남은 인생이 삼십년도 더 남았거니 해서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 계획을 세우고 더더더 열심히 살아가야지. 다짐애 다짐을 해본다.
의왕 삼동 내집인 아파트로 가기위해 자가용에 몸을 실었다. 내 옆의 아내 ! 많이 피곤하기도 할 것이다.
뒷좌석의 손주 손녀의 재롱 덕분에 고속도로 정채도 오케이 오케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차가 흔들리는 통에 사진이 흐리게 되어부렀네 왐마 ! 으째야 쓰까잉 ! 드디어 삼박사일 추석길 고향길을 마치고,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옛추억을 가슴에 고이고이 간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