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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대교 섬 여행
목포- ①압해대교 →②압해도→③송공산분재공원→
④천사대교 → 암태도 → ⑥오도선착장 → ⑦에로스 서각박물관 →서태석묘 → ⑧암태도소작인항쟁기념탑 →승봉산 기슭 → ⑨‘암태 →추포노두길(’신비의바닷길)→ ⑩추포도 →징검다리 →⑪노만사 →
⑫은암대교 →⑬자은도→⑭둔장해수욕장 →⑮둔계해수욕장 →분계해수욕장 → ⑯여인송 → (1박 숙소)
→중앙대교 →⑰팔금도-⑱채일봉전망대(159m) →
신안제1교 → ⑲안좌도 → ⑳김환기고택 →
(21)퍼즐교(소망의 다리) → (22)박지도 →(천사의 다리)→ 반월도 반월당 → 원점회귀 → 천사대교 경유 → 압해도 조촌고인돌 → (23)동서리 선돌→ (24)압해정씨묘(선택) → 김대중대교 → 무안 서해안고속도로
①압해대교: 2008년 6월 목포시 연산동과 신안군 압해면 신장리를 잇는 17.410m의 압해대교가 개통 되고 목포에 있는 신안군청이 압해도로 옮겨 오면서 천사다리를 통한 신안 섬들을 둘러보는 관광의 명소로 그 관문이 되었다.
②압해도(押海島)
이 고장 사람들은 이 섬을 흔히 목포 지방 앞에 있는 섬이라 하여 압해도라 한다지만 ' 押海島'(압해도)는 한자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지형이 신안군청 주변을 중심으로 하여 낙지다리가 세 방향으로 바다[海]와 갯벌을 누르고[押] 있는 형국의 섬(島)이라하여 생긴 말이다.
유인도 8개, 무인도 70개의 크고 작은 78개의 섬으로 구성된 압해도는 면적이 영종도보다 약간 작은 한국 14위 크기의 면적 48.95㎢, 해안선 길이 81.9km의 땅에 2,742가구, 5,95명(2015년)이 사는 곳으로 신안군에서 인구가 가장 많이 사는군청 소재지다. 리아스식 해안선 길이가 81.9km되는
이 섬 주변은 농어 숭어 등이 지나가는 길목이어서 낚시가 잘 되고 그 갯벌에 사는 세발낙지는 색깔이 갯벌을 닮아 '뻘낙지'란 이름으로 유명하다.
(24)이 섬은 유배지로도 이름이 있다. (24)이 섬은 유배지로도 이름이 있다.
다른 섬들보다 뭍과 가장 가까워서인가 자고로 역사 문화유적가 이 섬에 제일 많다.
군청 근처 동서리 도창마을에 대형 선돌과 괄림리에 조촌 고인돌, 높이 4.8m, 둘레 1m, 두께 0.5m 의 송장수 지팡이, 가용리에 금산사(제 50호) 수락마을의 원시 어업 흔적인 독살. 노향림 시비 등 둘러볼 곳이 많다.
송장수 지팡이란
③송공산분재공원(松孔山分載公園): 송공산(230m) 기슭에 2009년 4월에 조성한 분재공원은 드넓은 다도해를 굽어 보는 위치에 있다. 신안군 각 섬에서 수집하거나 기증된 1천 여 점의 명품 분재에다가 아프리카 '쇼나조각'이 어울린 것이 멋있다지만 신안 출신 우암 박용규화백의 작품을 전시해 놓은 '
저녁노을 미술관'도 아깝게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지금은 아침이라서 '저녁 노을을 볼 수 없는데 뭘-' 하면서.
④천사(1004)대교
천사대교는 신안군 비금도, 도초도, 하의도, 신의도, 장산도, 안좌도, 팔금도, 암태도, 자은도
압해도 송공항과 암태도를 잇는 국내 최초의 사장교와 현수교를 동시에 배치한 총연장 10.8㎞의 이 다리는 한국에서 네번째로 긴 연도교다. 현수교와 사장교가 아우른 길이 7.26km, 폭 11.5m 건너는 데 드는 시간은 초속 60km 속도로 약 7분 거리다. 안타까운 것은 자전거 도로를 겸한 인도가 없다는 것이다.
⑤암태도(巖泰島): 천사대교를 지나면 면적 43.24㎢, 해안선 길이 91.76km로 2,269명(2016년)의 주민이 거주하는 암태도가 목포에서 서쪽으로 28km에 있다
암태도(巖泰島)란 지명은 한자로 바위 '巖(암)', 클 '泰(태)'로 바위가 크다 해서 생긴 지명이다.
섬에서 제일 높은 곳은 북쪽의 기암괴석의 승봉산 (355.5m)이다. 남서쪽 수포도 사이에 펼쳐진 갯벌은 '유네스코 신안다도해 생물권보전 지역'과 '신안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유산으로 신석리 의금우실, 송곡리 송곡우실 소작인항쟁기념탑, 송곡리 매향비(매향비), 추포도 로드길. 노만사(노만사) 등을 둘러볼 일이다.
우실이란 서남해 섬 사람들이 주로 쓰는 용어로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서 돌담을 쌓거나 방풍림 등을 조성하는데 대개 마을신을 숭배하거나 기피하는 형태로 보존되어 온 것이다.
⑥오도선착장, 압해도에서 천사대교를 암태도 송공항과 더불어 천사대교 설립 이전에 오도선착장으로 거시기 머시기 하다가 천사대교로 퇴락한 선착장이지만 부두의 먹거리는 살아 있는 모양이다.
⑦에로스 서각박물관: 폐교(閉校) 부지를 이용해 만든 서각박물관(書刻 博物館)으로 서각존, 사랑존, 작가존, 이색성문화관 등 테마별 목공예가 500여 점 전시된 곳이다. 정배균 관장(대한민국 미술대전 '전통 목공예 디자인 부분'에서 우수상)의 작품이다. 1시간 줌 관람에 입장료 3천원 2천원을 받는다. 이색성문화관은 야한 조각품 때문에 청소년 입장 불가인데 그래선가 천사교 개통 이후 하루 입장료가 350 만원이라고 즐거운 비명 중이다.
⑧암태도 소작인항쟁기념탑: 1923년 8월 일본강압기 시절에 농민 소작인들이 7~8할의 부당한 소작료를 4할로 내려 줄 것을 요청하며 악덕 지주에 항거한 항쟁이었다. 지주가 폭력을 동원하여 소작인들의 요구를 묵살하려 할 때 일본 경찰은 지주 편에서 서서 소작인들의 대표를 구금하자 이에 맞서 400명 600여명이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맞서는 항일운동으로 비화하자, 전국의 국민이 이에 호응하여 거국적 항일 농민운동으로 확대 되었다. 드디어 1924년 농민의 요구를 들어주게 되어 농민항쟁이 승리로 끝난 사건이었다. 이때 그 선봉에 섰던 서태석과 박복영이란 지도자였다.
그때 농민 지도자 서태석는 식민지 하여서 우리 독립운동가의 말기처럼 비참한 생활고에 걸인으로 살다가 돌아 가자 그 기념비를 세우고 서태석묘를 조성하여 가꾸게 되었다. 농민 항쟁의 효시가 기념탑이 곧 암태도 소작인 항쟁 기념탑이 되었다.
⑨‘암태-추포노두길’(신비의바닷길)-14일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바다에 쌓은 징검돌 2022년 완동할 예정이다.
⑩추포도 ; 면적 4.5㎢, 인구 14 명(1999)의 섬으로, 암태도 서남쪽 0.9km되는 곳에 있는 섬이다. 포도, 추여도, 오도이었던 섬을 1965 방조제를 쌓아 하나의 섬 추포도(秋浦島)로 만들어 간척답과 염전으로 이용하고 있다.
⑪노만사(露滿寺): 1893 창암화상이 창건한 노만사(露滿寺, 향토유적 전통사찰 제1호)는 대흥사의 부속암자다. 법당 앞 고목 팽나무와 약수는 가뭄에도 그치지 않는 위장병 특효로 유명하다. 노만사란 절 이름도 이슬(露) 같은 약수가 가득하다(滿)는데서 연유했다 한다.
⑫은암대교(恩岩大橋): 자은도와 암태도를 잇는 다리. 자은면의 ‘恩(은)‘과 암태면의 ’岩(암)’을 따 은암교(恩岩橋)라 한 것이다..
⑬자은도(慈恩島):
자은도는 목포와 27km 거리에 있는 면적 52.7㎢, 해안선 길이 56.8km에 있는 섬으로 1,310 가구, 2,407명 (2015)이 사는 섬으로 아홉 개의 백사장이 있어 네 섬 중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섬이다.
임진왜란때 조선에 지원을 왔던 명나라 이여송 휘하의 두사춘(杜士春)이라는 사람이 반역자로 몰려 이곳에 피신해왔을 때 이곳 주민들에게 많은 은혜를 입어 자은도(慈恩島)라 불렀다고 전해지지만 후세 식자 층에 의해 스토리 텔링한 것이라는 설이 전하여 온다.
⑭둔장해수욕장-해수욕장이 9개로 그중 가장 넓은 해수욕장이다. 할미섬이의 독살이 가장 볼거리다. 독살은 남해도의 죽방렴과 같은 원시어업의 한 종류로 석방렴(石防簾)이라고도 부른다. 죽방렴이 센 물살을 이용한다면 독살은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한다. 갯벌에 2미터 높이의 돌담을 쌓아 밀물에 들어온 고기를 썰물에 걷어내는 식이다. 아직도 이곳 주민들은 독살을 이용해 고기를 잡고 있다.
⑮분계 해수욕장 여인송: 분계해수욕장의 송림에서 거기 얽킨 전설을 알아야 그 진미를 느낄 수 이는 전설 어린 여인송(女人松)숲을 둘러본다.
-옛날 분계마을에 어부(漁夫) 내외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아 부부는 사소한 말다툼을 하다 고기 잡이를 나간 어부 남편이 풍낭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였다. 이를 크게 후회한 아내가 이곳 솔등에 올라 우각도 너머 수평선을 바라보며 남편의 무사 귀가하기를 발원하며 기다렸으나 날이 가고 달이 가도 남편은 돌아올 줄을 몰랐다. 어느날 꿈속에 소나무에서 물구나무를 서서 보니 남편이 돌아오는 것이 환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후 날마다 분계숲에서 제일 큰 소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남편이 타고 올 배를 기다리다가 어느 추운 경울날 소나무에서 꺼꾸로 떨어져서 의식을 잃은체 동사하고 말았다. 뒤 늦게 돌아온 남편이 아내의 시신을 수습하고 그 소나무 아내 묻어 주고 자기는 거꾸로 선 아름다운 아내를 닮은 연인송으로 변하여 아내의 무덤을 지켜 주고 있다. 그후 사람들이 이 여인송을 두팔로 끌어 안고 하소연 하면 남편의 바람기가 사라진다 하여, 부부가 백년해로를 하며 화목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끌어안고 부부의 변함없는 사랑을 비는 소원의 여인송이 되었다 한다.
⑰팔금도(八禽島): 목포시에서 서쪽으로 18㎞ 떨어져 있는 섬으로, 면적 18.44㎢, 해안선 길이 49.4km,dp 1,168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북쪽의 암태도와는 중앙대교로, 남서쪽의 안좌도와는 신안1교로 연결된 섬이다.
팔금도의 이름은
안좌도의 부속 섬으로 매도, 거문도, 거사도, 백계도, 원산도, 고산도, 매실도, 일금도 등 8개의 섬이 있었는데 간척사업으로 하나의 섬이 된 곳이 팔금도다. 섬 중앙에 새처럼 생긴 금당산((金堂山 130m)을 둠심으로 섬의 형태가 8마리 새가 내려 앉아 있는 모습이라 하여 여덟 팔'자(八)'와 새 '금(禽)'자를 따서 ‘팔금도(八禽島)’라 했다고 전해진다.
⑱채일봉전망대:
섬 중앙에 금당산 (金堂山 130m)과 서쪽 바닷가 원산리 선학산에 채일봉( 159m) 전망대가 있다.
채일봉전망대는 이순신 장군이 명랑해전(鳴浪海戰) 이후 서해로 진출하려는 적을 차단하기 위해 제1차 해상 진지(陣地)를 1597년 10월 11일 채일봉이 있는 팔금도에 설치하였다. 이 채일봉 전망대는 일출·일몰 전망대로 다도해 중 다이아몬드 섬들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랜드마크 관광지이다.
⑲안좌도(安佐島):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약 23.4㎞ 떨어진 안좌도는 신안군 14개 읍면의 중앙에 위치하여 하여 북으로 중앙대교와 팔금도로 남으로 반월도 박지도와는 목교 등으로 연결된 섬이다.
안좌도란 이름은 이 섬은 안창도와 가좌도 두 개의 섬이 간척 사업으로 하나의 섬이 되면서 섬이름 '안'과 '좌'를 합쳐 안좌도라 부르게 되었다.
면적은 59.97㎢, 해안선 길이가 49.7㎞에 이르는 이 섬에는 3,514명(201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구전에 따르면 마(馬)씨와 차(車)씨가 기좌도 한운리에 처음 들어와 살았다.
본래 안창도와 가좌도 두 섬이 있었으나 간척사업으로 하나로 연륙되어 '안창도'의 "안(安)"과 가좌도(加佐島)의 "좌(佐)"를 합하여 섬 이름을 '안좌도(安佐島)'라 칭하였다 한다.
연근해에서는 숭어·멸치·갈치·낙지·문어·참조기 등이 잡히며, 굴 양식과 제염업이 소규모로 이루어지는 데다가 간석지를 막아 생긴 땅의 염전과 해태 양식 등의 어업소득으로 주민소득이 높은 편이다.
⑳김환기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251호): 서양화가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화백의 생가로 이 집의 기둥들은 백두산의 소나무로 지었다는 이 집은 건축적 가치보다는 이 고장 출신 김환기 화가의 생가였다는데 더 큰 의의가 있는 것 같다.
김환기 화백은 세계적인 서양화 작가로 대표작은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한국일보 제1회 한국미술대상 수상)다. 종로구 부암동에 '환기 미술관'을 그의 아내가 운영하고 있다. 최근 그의 작품이 홍콩의 경매에 65억 최고가로 입찰 되는 것을 보면 그의 진가를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겠다.
김환기 화백은 부농(부농) 김상현의 4녀 1남 외아들로 태어나 일본, 미국, 프랑스서 활약하다가 뇌일혈로 61세에 사망한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요 한국 서양화의 대가로 그의 그림의 대부분은 화면 가득 고향의다도해의 바다 푸른색이었다.
수화 김환기를 감동시겨 그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를 그리게 한 김광섭의 '저녁에'를 읊어 보기로 하자.
저녁에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 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신안 김환기가옥은 현재 안채와 화실 1채로만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1920년에 건축된 것으로 원형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현 소유주는 신안군 교육청이다. 별동으로 건립된 화실(畵室)은 1940년대에 건축된 것으로 이 건물 역시 현 소유자는 김환기 가족이 아닌 정기웅으로 되어 있다. 김환기는 안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화실은 김환기가 주로 방학을 이용하여 잠시 서울에서 내려와 작업을 하던 곳이다. 현재는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있다.
(21)소망의 다리(퍼즐교): 안좌면 두리(斗里)마을에서 박지도(朴只島) 구간 547m은 목교(木橋)로 승용차 금지하는 보행과 자전거도로이다.
안좌도 남쪽에 우리가 꼭 가보야할 섬 두 곳 반월도(半月島) -박지도(朴只島)를 연결하고 있는 다리 소망의 다리(일명 퍼즐교)라는 목교이다.
섬과 섬인 박지도와 반월도를 연결하는 다리는 '천사의 다리'라는 노둣길이다. 그래서 이 두 다리는 굽어보는 신안 갯벌체험형 관광지로 유명하다.
이 소망의 다리를 제대로 보려면 암흑이 드리워진 밤이다. 캄캄한 바다에 소망의 다리만 불을 환하게 킨 것이 바다에 비치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22)'박지도(朴只島): 이 섬은 목포항에서 25km 떨어진 섬으로 안좌도 남쪽 끝인 두리마을에서 약 600m 떨어진 섬으로 34명 주민이 거주하고 있은 섬이다.
박씨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하여 '박지도(朴只島)'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또 다른 이야기로는 섬의 지형이 박 모양이라 하여 바기섬 또는 배기섬이라고도 한다 .
이 섬은 두리(斗里)~박지교(朴只橋)가 '소망의 다리'(일명 퍼즐교)라는 나무다리(木橋)로 연결되어 있는데 거기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온다.
-박지섬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김매실 할머니의 간절한 소망은 박지도에서 목포까지 두 발로 걸어서 가는 것이었어요. 그 소망이 2007년 목교(木橋)가 설치되면서부터이루어지게 되었어요. 그 목교에는 사각광장, 육곽광장, 팔각광장에 낚시터가 각각 2개씩이 설치되어 있지요.
(23)반월도(半月島): 섬 모양이어디서 보아도 반달 모양으로 보여서 반월도(半月島)라 부르게 되었다는 섬으로, 목포항에서 서쪽으로 32㎞, 안좌도에서는 남쪽으로 10km에 있는 면적 2.05㎢, 해안선 길이 6.7km의 섬으로 10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박지도와 연결되는 다리를 중노라고 하는데는 다음과 같은 애틋란 절설이 전하여 온다.
- 옛날 옛적 박지도 암자에는 젊은 비구(比丘)가, 반월도 암자에는 젊은 비구니(比丘尼)가 살고 있었어요.
둘이서는 멀리서 아른거리는 모습만 보고도 서로 사모하게 되었다지요.
어느날부터인가. 박지도의 비구가 망태에 돌을 담아 반월도를 향하여 갯별에 돌을 놓기 시작하였어요. 반월도의 비구니도 바구니에 돌을 담아 박지도 쪽으로 돌을 놓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비구와 비구니가 정성 들여 쌓은 노둣길은 중년이 되어서야 완성했다지요. 둘은 갯벌 한가운데에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답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 무심한 바닷물이 밀려와 둘은 밀물에 휩쓸려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이 노두를 스님이 쌓았다고 하여 '중노둣길'이라 불리게 되었답니다.
-2019. 5.13
첫댓글 일만 성철용 선생님 ! 참으로 오랫만입니다. 드디어 다음카페가 개설되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바라던 다음카페 !
감사합니다. 일만 성철용 선생님 !천사대교 섬여행 구경 잘했습니다. 어렸을 때 신안군 안좌면 자라리 지명을 듣고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건강하세요. 일만 성철용 선생님 !
답글 쓰시는 것보니 안녕하시군요. ilman도 평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