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회복시켜 주소서♡
성경: 요한복음 21장 17절,
시편 80편 3~7절.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요한복음21:17)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주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우리를 우리 이웃에게 다툼 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비웃나이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시편80:3~7)
찬송: 559, 249, 304, 278
설교: 이 경준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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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가 왜 이리 평탄하지도 못하고 어려워져만 가는지 정말 힘이 듭니다. 몇 년 동안이나 우리를 괴롭히던 전염병이 잦아드는 듯해서 이제는 좋은 날도 오려나 하는 기대를 했었는데 들려오는 소식이라고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픈 이야기들 뿐입니다. 수년째 우리나라를 누르고 있는 경제난은 우리 이웃들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살아갈 희망을 잃은 젊은 엄마가 어린 자녀를 품에 안고, 투신하여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래의 나라를 책임질 청년들도 불황의 벽을 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으며, 전세 사기를 당한 사람들은 갈 곳이 없어 죽음을 길을 택하고 있으니 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지도자랍시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 휘두른 어설픈 정책 때문에 나라의 경제는 주저앉았고 그 책임은 힘없는 서민의 몫이 되어, 가슴 아프고 뼈저린 일들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귀중한 목숨을 스스로 끊으려고 하는지 위정자들은 깨달아 각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임을 왜? 서민들이 고스란히 져야 합니까? 이렇게 피눈물 나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용산 모처에 있는 사람들은 대국민 사과 한마디 없이 전 정부 탓을 하며 툭하면 파티를 즐기고 있다니 가슴을 치고 통탄할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1년 전엔 잠깐 희망은 있었습니다. 실정을 거듭하던 구정권이 물러가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자 이제는 살기 좋은 세상이 곧 오겠지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꼴은 처참하기 그지없게 되었습니다. 정치 초년생이라 그렇겠거니 하려고 참았었는데 잘못을 깨닫기는커녕 독불장군 행세를 하고 있으니 우리 국민의 살림살이가 온전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남은 사 년을 어떻게 버텨나가야 합니까?
하나님! 제발 저희를 좀 도와주옵소서! 이 나라를, 이 백성을 말입니다. 저희의 방종으로 말미암아 내리치신 그 징계의 회초리를 거두어 주옵소서 아픔과 슬픔 속에서 사는 우리를 다시 한번만 회복시켜 주옵소서 견딜 수가 없는 고통 속에서 간절히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을 갔던 베드로가 다시 디베랴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베드로는 3년 동안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곁을 지키던 자였습니다. 무식했던 자신을 귀히 여기시고 제자로 불러주신 은혜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던 그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의 모함을 받고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집 뜰로 끌려가서 온갖 곤욕을 당하실 때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던 베드로는 자신을 알아본 하녀에게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저주까지 하며 도망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디베랴 바다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언제는 예수님을 지켜드리겠다고 검까지 차고 다녔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비겁한 모습을 보인 후, 옛 어부의 생활로 돌아가서, 지난 일을 잊어보려고 했었지만, 죽임을 당하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혼이 죽어가는 베드로를 보고, 구운 물고기를 나누어 주시며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물음에 베드로는 깜짝 놀라며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어떤 변명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주께서 아시나이다”라는 부끄러운 말 한마디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야바의 뜰에서 예수님을 극구 부인하고 있을 때 마주쳤던 예수님의 눈빛, 그마저 애써 외면하고 다시는 만날 날이 없겠지 하며 돌아섰었는데 그때의 자기의 행동이 이렇게 무섭도록 후회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정말 한없이 부끄러웠고, 후회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디베랴 호수에서 예전처럼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다 보면 이미 돌아가신 예수님의 기억은 지워질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셔서 예수님은 다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났던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도 육체에 입은 상처처럼 치료받지 않으면 아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살아오던 지난날에 남들이 알지 못하도록 꼭꼭 숨겨 놓았던 마음의 비밀들이 있을 것입니다. 잊으면 그만이겠지 하면서 살아왔지만 아픈 기억이란 그리 쉽게 잊어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찾아오신 예수님은 베드로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후회하며 아파하는 모습을 보시고 지난 기억을 생각나게 하시려고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보혈로 베드로에게 있는 깊은 상처를 치료해 주시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물으심에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마음으로 “주께서 아시나이다”라는 한마디에 지금까지 떨쳐버리지 못하였던 속마음의 고통을 실어서 쏟아 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잘못도 아시고, 우리의 부족함도 아시고, 또 우리가 고통스러워하는 그것도 알고 계십니다. 그분 앞에 우리의 숨겨진 상처를 있는 그대로 내려놓고 고백해야 할 때가 지금입니다. 그래야 회복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으로 베드로의 상처를 치료하셨습니다. 부인하고, 배반하고, 도망갔던 베드로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바다에서 베드로를 처음 부르셨을 때 하셨던 말씀은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와 같이 신뢰해 주시며 “내 양을 먹이라”라고 하시는 그 말씀에 베드로는 눈물로 회개하며 예수님 품으로 다시 돌아갈 수가 있었고 마음 깊숙이 남아있던 아픈 상처도 치료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네의 인생이란 베드로와 같이 많은 잘못과 실수를 저지르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남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 상처를 입으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처는 마음속 깊이 자국이 남아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처럼 살아가지만 절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도 합니다. 이웃을 잃어버리게 하고, 가족을 잃어버리게도 하고, 급기야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베드로를 찾아오신 예수님 앞에 베드로가 눈물의 고백을 드렸듯이 우리도 주님 앞에 지난 잘못을 고백하며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구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방탕하고 곁길로 갔었던 그 잘못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주님께 고백하며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생명을 스스로 끊는다고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귀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 앞에 생명을 경시한 죄까지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고통은 우리가 지은 죄과 때문입니다. 축복해주셨을 때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방종하였던 죄입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결단의 고백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깊은 상처들도 치유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이 회복되기를 원한다면 주님께 고백하십시오. 아무리 깊이 숨겨 놓았던 비밀스러운 잘못이 있을지라도 주님 앞에 내려놓으면, 용서받을 수 있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시편 기자는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주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우리를 우리 이웃에게 다툼 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비웃나이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이와 같은 회복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요한복음21:17)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다시 갈릴리바다로 돌아와 어부 생활을 하던 베드로에게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자 예수님을 부인했던 죄책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베드로는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고 대답하고,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세 번의 물음을 통하여 예수님을 배반했던 베드로의 마음에 회복의 은혜를 주시고 그에게 다시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어떠한 마음의 상처도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임하시면 거기에는 회복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도 우리와 같이 상처와 고통을 당하신 상처 입으신 치유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 시간 세상에서 방황하며 상처 입고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 마음에 오시어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지사 회복의 은혜가 임하게 하소서!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켜 기도할 때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사 빈궁한 삶이 부해지고, 병든 우리 몸이 튼튼해지며, 죄악을 벗어버리고 주께로 나아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만을 믿고 의지하오니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를 구원하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올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