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또 한 번의 만남
2024. 6. 9(주일낮예배) 빌레몬서 1:10-19
2019년 개봉한 대니 보일 감독의 예스터데이 라는 영화를 보았는가? 이 영화의 주인공은 싱어송 라이트 무명 가수 잭 말릭(Jack Malik)이다. 잭 말릭은 한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갔는데, 관객은 어린이 4명이 전부였다. 아무도 잭의 음악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냉혹한 현실을 절감한 잭은 가수의 길을 포기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전세계가 12초 동안 정전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잭은 어둠으로 인하여 교통사고를 당하여 이가 2개 부러지고, 골절상을 당하여 병원에 입원한다. 그래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잭은 퇴원하였을 때 친구들이 준비한 축하 파티에 초대되어서 기타를 선물로 받는다. 그렇게 친구들에게 기타를 선물받은 잭은 그 기타를 치면서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부른다. 그런데 잭이 예스터데이를 부를 때 친구들은 모두 넋이 나간 표정으로 듣는다. 그리고 노래가 끝났을 때 언제 이렇게 좋은 노래를 썼냐?고 이렇게 좋은 노래를 왜 부르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그 말에 잭은 무슨 말이냐고 이건 비틀즈의 노래라고 말하지만, 친구들은 비틀즈라를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집에 와서 구글에서 검색을 했는데, 비틀즈가 나오지 않았다.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가 세상의 모든 기억에서 다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후 잭은 비틀즈 노래를 마치 자기 노래인 것처럼 부르며 공연을 다녔다. 그러던 중에 음반제작자 개빈을 만나서 음반을 만들고, 그 음반을 나누어 주면서 공연을 하고, 또 지방라디오 방송에도 출연을 한다. 그리고 에드 시런이라는 가수의 보조 가수가 되어서 투어를 따라다니면서 30분 가량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그런데 한 콘서트 관계자가 잭과 에드시런이 즉흥으로 노래를 만들어 불러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잭은 비틀즈의 노래를 불렀을 때 에드 시런이 감동을 받는다. 그래서 그 대결에서 승리를 하였는데, 그 대결을 미국 대형기획사 제작자의 눈에 띄면서 잭은 미국에 정식으로 데뷔한다. 그래서 잭은 슈퍼가수가 된다.
어떻게 잭 말릭이 슈퍼스타가 될 수 있었는가? 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서 쓴 편지이다. 빌레몬 집의 노예였던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집을 도망쳐 로마로 간 사람이다. 그 당시 일반적으로 도망하는 노예는 주인의 돈을 훔쳐서 갔고, 더 악한 종은 사람을 해코지 하고 도망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오네시모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마 오네시모는 삶에 대하여 많은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또 도망할 때 빌레몬에게 큰 해를 끼쳤을 것이다. 그래서 오네시모는 무익한 종이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변화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11절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몬 1: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여기서 무익하다는 말은 성경 전체에서 단 한 번 나오는 아크레스토스(ἄχρηστος) 라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아크레스토스의 의미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런데 아크레스토스의 정확한 의미를 알려면 유익하다는 뜻을 가진 유크레스토스(εὔχρηστος)를 살피면 된다. 유크레스토스는 오늘 본문과 디모데후서 2장에서 2번 나오는데, 한번은 주인의 집에는 큰 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있는데 깨끗하면 유용하게 쓰인다(딤후 2:21)고 하였다. 그때 유용하게 쓰인다는 단어가 유크레스토스이다. 그리고 또 한 번은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고 할 때 유익하다는 말이 유크레스토스이다. 이것이 유크레스토스이다. 유크레스토스는 동역하기에 가장 좋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크레스토스는 어떤 의미이겠는가?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큰 피해를 주고 도망한 종이다. 그러한 오네시모가 빌레몬 집에서 종으로 일할 때 성실하고 열심있는 종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매사에 불평과 불만이 많았고, 또 성실하게 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오네시모는 빌레몬과 함께 일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바울과 함께 일하는 유익한 사람이 되었고, 이제 빌레몬에게도 그러한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오네시모가 유익한 자가 되었는가? 중세신학을 대표하는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라는 신학자가 있다. 그 토마스 아퀴나스에게는 이런 일화가 있다. 한 번은 교황이 아퀴나스를 불러서 화려한 건물과 은금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라고 말했지만, 이제 세상은 달라졌네. 우리에게는 이렇게 많은 은금이 있다네 하면서 흐뭇한 웃음을 보였다. 그때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말한다.
교황이시여! 그래서 교회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라는 선포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멋있는 수도사가 아닌가? 아퀴나스가 이렇게 멋진 수도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성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를 만났기 때문이다. 아퀴나스는 마그누스를 만난 후 그의 제자가 되었고, 또 신학대전을 집필해야 한다는 사명자가 된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거의 매일 집필활동을 하여서 10,000쪽에 이르는 분량을 신학대전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을 집필하다 중단한다.
왜 중단하였겠는가? 아퀴나스는 1273년 12월 6일에 예배를 드리다가 강력한 신비를 체험한다. 그리고 아퀴나스는 글쓰는 것을 중단한다. 그렇게 아퀴나스가 글 쓰는 것을 중단하자 아퀴나스를 돕던 레지나라고 하는 신부가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은사가 글쓰는 것인데, 왜 그 일에 소홀하여 글을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때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네. 내가 이제껏 쓴 것은 내가 보았고, 나에게 계시 된 것에 비한다면 한낮 지푸라기에 불과하다네
1273년 12월 예배 중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엄청난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랬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이라는 엄청난 글을 쓰고 있었는데, 그것이 지푸라기처럼 미천해 보여서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아니 토마스 아퀴나스가 무엇을 보았길래 이렇게 변화되었겠는가? 그런데 토마스 아퀴나스가 예배 중에 엄청난 것을 본 것처럼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엄청난 것을 체험하였다. 그래서 살기가 등등하여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옥에 가두는 일에 열심이었던 바울이 이제는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하는 사람을 변화된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 바울이 변화된 것이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옥에 갇힌 그 바울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바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는 무익한 자에서 유익한 자로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고 또 이런 변화를 통하여 또 다른 사람이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 바울이 오네시모를 유익한 자로 만들어 가는 그 과정을 빌레몬서는 잘 보여 주고 있다. 그 중에 먼저 15절을 읽기 바란다.
(몬 1: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큰 피해를 주고 도망하였다. 그런데 바울은 오네시모가 해코지하고 도망했다고 하지 않고, 누군가가 오네시모를 떠나게 하였다는 표현을 한다. 그래서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신적수동태).
오네시모가 잠시 떠난 것이 맞는가? 그런데 창세기 45장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요셉은 곡식을 구하러 온 형님들에게 자신이 요셉임을 알린다. 그리고 요셉은 형님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팔았기 때문에 엄청나게 큰 고생을 했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먼저 보내었다고 고백한다. 요셉은 당신들이 나를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우리는 삶에 갈등이 있을 때 내 입장에서 해석하면 더 분노한다. 그런데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갈등이 있을 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여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바울은 성도는 하나님의 일하심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네시모를 나의 유익한 자로 만드는 방법이다. 그리고 오네시모를 유익한 자로 만드는 또 다른 방법이 18절에 나온다.
(몬 1:18-19)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19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로 인하여 손해 본 것이 있으면 내가 갚아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바울은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라는 기록을 통하여 반드시 갚아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왜 바울이 이렇게까지 하는가? 무익한 오네시모는 주인 빌레몬 앞에 설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무익한 우리는 주인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의 무익함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책임져 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대속하심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 대속하심의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익한 자를 향하여 손가락질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익함을 내가 책임지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유익한 사람으로 세워가는 예수님 닮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무익한 자를 유익한 자로 세우기 위하여 이런 헌신을 하고 있는가? 씨 유 어게인의 저자인 윙크의사 서연주 선생님은 2022년 11월에 말을 타다 낙마하여 왼쪽 눈을 실명한다. 사고 후 1년 6개월 동안 7번의 수술을 한 서연주 선생님은 예측할 수 없는 인생에서 넘어지고, 좌절하면서 지친 의사와 연약한 환자, 그리고 소외된 장애인들고 함께하는 상처입은 치유자로 살기를 꿈꾸고 있다. 그래서 그의 책 씨 유 어게인에서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을 잊지 않고 보답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열심히 살아가려 한다.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고용 편견을 없애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써볼 생각이다. (중략) 나는 살아있고 여전히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나는 의사, 서연주이다."(259쪽)
사고를 만난 서연주 선생님은 고생과 수고를 통하여서 이제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삶을 살고, 또 자신이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장애를 가진 분들을 위하여 노력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한 것이다.
그런데 윙크의사 연주당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서연주 선생님은 2명의 장애를 가진 청년과 3명의 건강한 청년과 함께 6명이 모여서 아주 재미난 구호로 인사한다. 여러분도 따라 해 보시기 바란다.
새로운 또 한 번의 기회를 만나다. ONCE
서연주 선생님은 장애를 가진 청년과 건강한 청년의 만남을 통하여 새로운 또 한번의 기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의 삶에 새로운 또 한 번의 기회가 만나져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은 무익한 자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만나서 그를 유익한 자로 세워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서 이제 하나님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고, 또 그 무익함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지는 그런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