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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혹은 창작?!
임진보(2012년)(+『세적편』)에는 여러 유형의 오류가 혼재(混在)하고 있습니다. 누차에 걸쳐 대종중 당국에 교정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그때마다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는 공허한 말씀만 반복하실 뿐, 실제로는 바로잡을 의사가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합니다. 공연(空然)한 짓(!)을 했다는 민망스러움에 격렬하게(?!) 자책(自責)(!?)하고 치열(?!)하게 반성(!?)하는 중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진보 『세적편』 의 문제점을 지적해 본들 별 의미야 없겠지만 그래도 아주 특이한 오류(?)가 눈에 띄어 소개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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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보(2012년) 『세적편』 335~8쪽에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이 지은 <목사공(牧使公) 휘(諱) 기(基) 묘갈명(墓碣銘)>의 한문 원문과 국어 번역문이 실려 있습니다. 목사공(牧使公) 휘(諱) 기(基: 1464~1534) 할아버지는 반남박씨 7세 세양공(휘 강薑)의 차남이신 집의공(휘 치䎩)의 (사실상) 종자(宗子)로 사마시에 입격하여 통정대부의 계(階)에 올랐고 파주목사(坡州牧使)를 지내신 분입니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아니, 이상하게도), 임진보 『세적편』에 실려 있는 묘갈문의 목사공(=파주공) 가족 관련 부분의 한문 원문과 바로 뒤에 이어서 나오는 국어 번역문의 내용이 서로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래 자료에서 붉은 선 안에 들어 있는 부분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 자료1: 임진보(2012년) 『세적편』(335쪽 하단) 목사공(파주공) 가족 관련 부분 한문 원문
위 원문의 뜻은 대략과 다음과 같습니다(필자는 한문을 잘 몰라 혹시 오역이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원문의 요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公의 첫번째 부인 민(閔)씨는 부사 (휘)영모(永慕)의 따님이고, 두번째 부인 남(南)씨는 수의부위 (휘)귀정(貴正)의 따님으로, 두 분 모두 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민씨는 公의 무덤 왼쪽 언덕에, 남씨는 공의 무덤 오른쪽 자락에 장사 지냈다. 아들 둘(2)과 딸 하나(1)가 있다. 큰아들 양(讓)은 과거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가 되었으나 역시 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딸은 충의위 송승은(宋承殷)에게 시집 갔는데 두 사람은 모두 민씨 소생이다. 차남 간(諫)은 남씨 소생으로 숙부(叔父)인 증우의정 용(墉)에게 입후(立后)되었다. 장남 양(讓)은 대사간 최린(崔潾)의 따님을 아내로 맞아 아들 옥(沃)을 낳았고 사위는 윤사철(尹思哲)이며, 또 항(沆)이라는 서자가 있다. 사위 송승은은 아들 셋(3)을 두었는데 각각 당(瑭)ㆍ필(珌)ㆍ림(琳)이고, 딸 하나(1)는 아직 미혼이다. (용墉에게 입후한) 차남 간(諫)은 생원 성순(成詢)의 따님과 혼인하여 딸 하나(1)를 낳았는데 아직 어리다."
그런데 위의 한문으로 된 원문 바로 뒤에 이어서 나오는 국어 번역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2) 자료2: 임진보(2012년) 『세적편』(337쪽 상단) 관련 부분 국어 번역문
"공의 전처는 민씨(閔氏)로 부사(府使) 영모(永慕)의 따님이고 후처는 남씨(南氏)로 수의부위(修義副尉) 귀정(貴正)의 따님인데 다 공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민씨는 공의 묘 좌측 언덕에 남씨는 공의 묘 오른쪽 산자락에 장사하였다가 그 뒤 무신년에 두 부인의 묘를 다 공의 묘 좌측으로 옮겨 합장하였다. 三남 一녀가 있으니 장남 양(讓)은 급제해서 승정원 정자가 되었으나 공보다 먼저 죽고 딸은 충의위 송승은(宋承殷)에게 출가하였으니 이상 둘은 민씨 소생이다. 차남 간(諫)은 좌의정에 추증된 숙부 용(墉)의 양자가 되었고 셋째 아들은 조(調)인데 이들 형제는 남씨 소생이다."
어??? 임진보 『세적편』의 한문 원문(자료1)과 바로 뒤에 나오는 국어 번역문(자료2)의 해당 부분 내용이 너무 달라 읽는 이로 하여금 어리둥절하게 만듭니다. 이런 이상한 번역은 처음 봅니다. 번역이 아니라 숫제 '창작'이라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한문 실력 부족에 기인한 번역 실수라고 간단히 치부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다르게 바뀌어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희한한 실수(?)를 했을까요? 어떤 분이 번역(또는 창작?)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만, 목사공(파주공) 후손들께서 이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대종종 당국은 이런 경우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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