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수념과 염불
(2)칭명염불
앞의 육수념(六隨念)가 인도적․관상적 측면이라면, 칭명(nāma-grahaṇa)염불은 중국적․음성적이다. 전자가 정적이면서 내재적이라면, 후자는 동적이면서 표출하는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먼저 인도 불교의 염불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인도의 염불은 중관(中觀, madhyamaka)과 유식(唯識, vijñapti-mātratā)의 논사인 용수(龍樹, Nāgārjuna, 150~250년경)와 세친(世親, Vasubandhu, 320~400년경)에게 찾을 수 있다. 용수는 『십주비바사론』에서 "불타의 명호를 부르는 이는 곧 불퇴전위(不退轉位)를 얻는다."고 하면서, 염불을 이행도(易行道)라 칭하며 속히 아유월치(阿惟越致, avaivartika)에 이르는 방법이라 하였다. 또 명호를 부르는 것은 시방의 모든 부처에 대한 칭명이고, 정토왕생의 목적이 아니라 반주삼매․염불삼매 등의 현세 이익이 중심이라 하였다.
그리고 세친은 『무량수경』의 주석인 『왕생론』에서 "선남자 선여인이 오념문(五念門)을 닦아 성취하면, 필경에는 안락국토에 나서 아미타불을 친견한다."고 하였다.
오념문은 예배․찬탄․작원(作願․)관찰․회향 등이다. 첫째는 몸으로 아미타불을 예배하며, 둘째는 입으로 여래를 명호를 부르고 찬탄하며, 셋째는 마음으로 서원하고 한마음으로 필경에 왕생하려는 것이다. 넷째는 지혜로 관찰하여 정념(正念)으로 그것을 관한다. 다섯째는 모든 고뇌의 중생을 버리지 않고, 마음으로 서원하여 회향한다. 칭명염불은 두 번째로 아미타불의 공덕을 찬탄하는 의미도 있다. 셋째와 넷째인 작원문과 관찰문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원문은 사마타(samatha)를 여실하게 수행하기 때문이며, 관찰문은 위빠사나(vipaśyana)를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중요한 관점이다. 즉, 아미타불을 염하고 관하는 것이 지관(止觀)의 선정수행을 포함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인도의 염불 논서에서 지관을 수행방편으로 설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또한 관찰문에서도 불국토․아미타불․일체보살 등의 공덕 장엄을 관찰하고, 범위가 한 부처로 한정하지 않고 불국토와 불보살로 확대하여 관찰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와 같은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은 유가행(yoga) 유가 유식이 배경이 되며, 용수의 현생불퇴(現生不退)보다 발전된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염불이라 하면 칭명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본래 의미로는 사념(思念)․상념(想念)․관념(觀念) 등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즉, 관념과 칭명의 두 가지 의미가 다 포함된다는 뜻이다. 불타에 귀의하고 생각하는 염불은 칭명의 사상을 낳고, 불타에 대한 추모의 염불은 관념으로 수행의 기본적 행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대승 초기의 용수․세친의 정토사상은 중국에서 칭명염불로 발전하며, 이면에는 대승불교 삼신의 불신관, 시방불 사상이 기반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정토종의 성행은 주로 세 부류로 설하기도 한다. 관상염불의 여산혜원류(廬山慧遠流), 칭명염불의 선도류(善導流), 선정융합의 자민혜일류(慈愍慧日流) 등이 그것이다. 즉, 『반주삼매경』에 의해 견불삼매(見佛三昧)를 서원했던 백련사(白蓮社)의 혜원(334~416), 칭명염불로 왕생극락을 발원했던 도작(562~645)과 선도(613~681), 선(禪)․정(淨)․율(律)을 겸수하며 종합수행을 지향한 혜일(680~784) 등이다.
동진시대 혜원은 여산 동림사(東林寺)에서 중요한 염불결사(念佛結社)를 추진한다. 402년 칠월에 무량수불의 불단에서 서원을 세워, 승속 일백이십삼인과 함께 정업(淨業)을 닦고 왕생정토를 발원한 결사이다. 혜원은 『염불삼매시서(念佛三昧詩序)』에서 "생각을 집중하여 상(想)을 고요히 하면, 뜻은 하나 되어 산란하지 않게 된다."고 설한다. 이것은 칭명이 아니라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마음을 적정(寂靜)의 상태로 가지려는 노력이다. 또 위의 책에는 무상(無相) 무념(無念)의 이관적(理觀的) 염불도 있으며, 무량수불 앞의 염불은 사관적(事觀的)인 염불이다.그러므로 혜원의 염불은 반야공관(般若空觀)의 이관염불과 반주삼매의 사관염불을 겸수한 염불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질적인 중국 정토종의 계보는 담란(476~542)―도작―선도를 이어지는 칭명염불의 수행이다. 선도는 칭명염불의 전수로 당대 정토종을 크게 발전시킨 장본인이며, 불법의 쇠퇴와 중생의 하열함을 극복하기 위해 왕생정토사상을 펼친 것이다.
어찌하여 관하지 않고 오로지 명자(名字)만을 부르는 것에 어떤 뜻이 있는가? 답하되, 중생은 무거운 장애로 말미암아 경계에 세심하고 마음이 거칠며, 생각은 날뛰고 정신은 달아나기에 관하여 성취하기 어렵다. 이로써 성인이 자비로써 연민하여, 전심으로 부처의 명호를 부를 것을 권하였다. 바로 칭명이 쉽기 때문에 염념상속하면 곧 극락에 왕생한다.
위의 인용문에는 선도가 오로지 칭명염불을 강조한 이유가 드러나고 있다. 말세 중생은 무거운 업장으로 인하여 바르게 관찰할 수 없으며, 오히려 칭명으로 인한 아미타불의 본원력으로 왕생하기가 쉽다고 한 것이다. 이는 주로 『관무량수경』의 하품생에서 '칭명멸죄왕생설'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무량수경』의 본원 사상으로 해석하여, 칭명에 새로운 의미를 둔 불타본원(佛陀本願)에 입각한 수행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선도는 『관무량수경소』에서 왕생의 행인(行因)으로 오정행(五正行)의 독송·관찰·예배·칭명·찬탄 공양을 주장하였다. 이 가운데 칭명만이 정정업(正定業)이고 나머지는 조업(助業)이며, 그 밖의 모든 선행(善行)은 잡행(雜行)이라 하였다.
세친이 『무량수경』 주석의 오념문에서 지관을 위주로 한 것과는 달리, 오로지 칭명으로 본원에 의한 왕생극락을 설한 것이다.
선도는 『왕생예찬게』에서 오념문을 역설하였다. 첫째, 신업(身業)의 예배문으로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예배한다. 둘째, 구업(口業)의 찬탄문으로 부처, 성중의 광명, 국토의 보배로운 광명을 찬탄한다. 셋째, 의업(意業)의 억념관찰문으로 부처·성중·국토장엄을 염하고 관한다. 넷째, 작원문(作願門)으로 일체시·일체처·사위의(四威儀) 공덕을 진실로 발원하여 왕생하기를 원한다. 다섯째, 회향문으로 자기․성인․범부 등이 지은 선근에 깊이 수희(隨喜)하며, 모든 불보살이 지은 바를 수희하여 그 공덕을 중생과 더불어 왕생극락하도록 회향한다. 이렇게 예배․찬탄․관찰을 삼업의 의미로 행하며, 작원과 회향으로 왕생과 수희찬탄을 설하고 있다.
선도는 이러한 오념문의 전제로 지성심(至誠心)․심심(深心)․회향발원심(廻向發願心)을 설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성심은 신업으로 불타를 예배하고, 구업으로 불타를 찬탄․칭양하며, 의업으로 불타를 전념하고 관찰함이다. … 둘째, 심심으로 곧 진실하게 믿는 마음이다. 자신은 번뇌로 가득한 범부라고 알며 믿는 것이다. … 이제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고 명호를 칭하되, 일성(一聲)에서 십성(十聲)까지 고르고 바르면 기필코 왕생한다. … 셋째, 회향발원심은 지은 바 일체선근을 모두 회향하여, 왕생을 서원하므로 회향발원심이다. 이 세 가지 마음을 반드시 갖추어야 왕생할 수 있다.
이처럼 선도는 왕생에 대해 단호하고 명쾌하게 설하고 있다. 삼업이 청정하고 지성스러운 마음, 본원을 믿고 칭명하는 깊은 마음, 일체선근을 중생에게 회향하고 발원하는 마음 등이 왕생의 절대적 요소라는 것이다.
오념문과 배대하면 지성심은 예배․찬탄․관찰문을 섭수하고, 심심은 칭명염불에 해당하며, 회향발원심은 작원․회향문을 포섭한다. 오정행(五正行)으로는 지성심․회향발원심은 조업(助業)이고, 심심은 정정업(正定業)으로 선도의 핵심사상과 수행인 것이다. 선도가 오념문에 칭명을 직접 설하지 않은 것은 칭명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볼 수 있다. 다섯 가지 가운데 설하면 본원의 칭명을 강조하는데 미약하기 때문이다.
<『금강심론』 수행론 연구/ 박기남(普圓)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