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8월 14일, 일제는 국유재산법을 공포하고 이듬해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외국인의 토지 취득을 엄격히 제한하고, 이미 소유한 토지와 건물도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수용할 수 있도록 한 법이었습니다.
당시 대구대목구의 주요재산은 드망즈 주교 개인 명의로 등기되어 있었습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성당과 학교, 수녀원은 물론 교구의 선교와 교육, 의료, 자선사업의 터전까지 한순간에 위협받을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드망즈 주교는 교회의 미래를 지켜내기 위해 결단을 내렸습니다. 교구의 모든 재산을 개인 명의가 아닌 법인이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관리하기로 한 것입니다.
1937년 12월 10일, 무세 신부는 교구 재산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재단법인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설립 허가 신청서를 조선총독부에 제출했습니다. 재단의 목적은 대구대목구에 속한 모든 교회와 선교, 교육, 구빈, 의료 및 자선사업에 필요한 토지와 건물, 시설을 소유하고 관리하며, 교회의 사목활동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데 있었습니다.
재단의 기본재산은 교구가 보유한 부동산과 기부 재산으로 구성되었으며, 로마 교황청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과 파리외방전교회에서 보내오는 지원금도 재원에 포함시켰습니다. 재단 운영은 교구장 주교를 당연직 이사로 하고, 여섯 명의 사제를 포함해 총 일곱 명의 이사가 맡았습니다.
초대 이사진에는 드망즈 주교를 비롯해 무세, 주재용, 이약슬, 최덕홍, 김현배 신부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는 법인 설립을 넘어, 조선인 성직자들이 교구의 재산과 운영에 주체적으로 책임을 나누어지기 시작한 뜻깊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1938년 6월 18일, 마침내 조선총독부는 재단법인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의 설립을 허가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재산을 관리하기 위한 법인이 아니었습니다.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교회의 선교와 교육, 의료, 자선사업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지혜로운 선택이었으며, 교회의 소중한 자산을 다음 세대까지 지켜내기 위한 제도적 토대였습니다.
오늘날 천주교 대구대교구 유지재단은 당시의 설립 정신을 이어가며 대구대교구의 사목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교구 내 성당을 비롯해 교육·의료·사회복지 등 교구가 펼치는 다양한 활동의 물적 기반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엄혹한 현실 속에서 드망즈 주교와 선배 사제들이 마련한 제도적 기반은 90여 년의 세월을 지나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대구대교구의 안정적인 사목을 가능케 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대구주보 26년 8월 23일 - 교구 문화홍보국 장성녕 안드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