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34] [연재] 삼류무사-70 첨부파일 :
"이제 얘기할 때가 된 거 같군.”
위압감 어린, 그러나 맑고 차가운 음성. 북궁단야가 거검을 어께에 걸치고
천천히 걸어왔다.
“방장로님은 어떻게 했죠?”
당소소가 뾰족하게 물었다. 평소의 나른하면서도 그윽한 음성에서 이만큼
감정을 담아냈다는 건 그녀의 심정이 얼마나 급한것인가를 나타낸다고 하겠
다.
청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을 내렸다. 완패였다. 그로서는 이들
중 하나와 자웅을 결하기도 어려울텐데 상대는 전혀 이상없는 세명이다.
어쩌면, 이자만 없었더라도 마지막 공세를 취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청뢰는 한 인물을 바라보았다.
‘난 절대로 이자의 상대가 안돼.’
다시한번 당소소가 말했다.
“해를 입으신건가요?”
스산한 살기, 어느정도 포기한 당소소였다. 이들의 수는 열셋이라고 했다.
그들이 상대한 인원은 아홉, 네명의 행방은 묻지않아도 뻔하고 이들의 무위
와 그녀가 아는 방교명을 비교해 본다면 몇 합 버텨보기도 어려운 얘기다.
청뢰가 고개를 돌려 당소소를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오, 허나 당신이 찾는 사람이 객잔주인 영감이라면 무사하지 못
할거요. 그를 쫓은 이 가 우리중 가장 강한 인물 이었으니까.”
당소소가 절망감에 지그시 눈을 감는 동안 쓰러져있는 청의인들은 경악했다.
누가있어 십이뢰성인 중 청뢰보다 강한 무위를 가졌다는 건가?
“그럼...”
그녀는 차마 뒷발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 그 단어를 입에 올린단 말인가.
청뢰의 눈도 쓰러져 신음하는 청의인들을 우울한 마음을 담아 바라보았다.
"아마... 그럴거요.“
그녀가 주먹을 꼬옥 쥐었다. 그렇지만 감정에 치우쳐 있을때가 아니다. 그
녀는 실회조원의 자격으로 여기에 왔고, 조장이란 책임까지 떠안고 있다.
“표물은 어디있죠?”
청뢰가 턱짓으로 풀숲을 가리키자 북궁단야가 표물을 가져와서 확인을 했다
.
“이상없소이다.”
알았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인 그녀가 눈을 내리깔아 그녀의 발등을 쳐다
보았다. 언제나 그녀에겐 이말이 어려웠었다. 그리고 실회로에서 거의 그녀
가 이말을 했다.
“표물 탈취 이유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목숨값은... 받아내야 하는데... 순
순히 포승줄을 받겠어요, 아님...”
이 경우 대부분이 발악을 하며 달려든다. 아니 백이면 백 모두가 그랬다.
끌려가 봐야 욕이란 욕은 다먹고 결국 죽을게 뻔한데 어떤 바보가 포승줄을
받겠는가. 그녀의 시선이 청뢰에게 옮겨지고 곧 기묘하게 바뀌었다.
‘이자... 웃고 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청뢰의 입에서 한줄기 핏물이 베어 나오
며 자리에 털썩 나뒹굴었다.
“이봐!”
세명이 동시에 청뢰에게 달려들었다.
“이것으로... 쿨럭... 목숨값이... 되었소?”
흠칫!
재발리 그녀가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청의인들은 모
조리 심맥을 끊은 듯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혈도가 짚인 두 명 까
지도.
‘실수다. 고수급의 인물들이라면 한줌의 진기만으로도 스스로의 심맥을 끊
는다는 걸 잊다니!’
그녀가 스스로를 자책할 때 청뢰가 말을 이었다.
“... 중원의 평화는... 너무... 길었지.”
하운의 눈에서 신광이 어렸다.
“... 가장된 평... 화...”
그말을 끝으로 그는 숨을 놓았다.
‘가장된 평화...’
셋의 마음에 서늘한 무언가가 비수처럼 내리꽂혔다.
가장된 평화...
절정은 아니지만 일류를 훨씬 상회하는 아홉명이 초개와도 같이 목숨을 던질
수 있는건 그들에게 배후가 있다는 거다. 그냥 ‘배후’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집단. 무림사 천년 간 세상을 좀 어떻게 해 보려고 꿍
심을 품었던 집단이 어디 한 둘일까. 별처럼 많은 수의 비밀집단은 그 몰락
또한 유성과도 같이 덧없었다.
그렇게 치부하면 되는데, 그렇게 편하게 마음먹으려 하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걸까?’
하운이 청뢰에게서 몸을 떼어 벌떡 일어섰다. 마냥 이러고 있어봐야 나오느
니 한숨이요, 드느니 근심이다.
“당소저, 상황은 종료된 듯 하오만.”
“아니죠, 쥐새끼 네 마리가 남아있어요.”
방교명을 쫓아갔다는 네명을 말함이리라. 그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
‘이번 회수행은 최악이다.’
이때 모두에게 잊혀졌던 한 마디가 들려왔다.
“네 마리 안와!”
평소의 그라고 생각되지 않는 다소 우울한 음성.
“아, 장공자!”
무심했다.
아무리 신경쓸 일이 많았다고는 하나 동료의 부재조차 잊었다는 건.
브스럭 부스럭.
풀과 나무를 헤치며 누군가를 들처업은 장추삼이 모습을 보였다.
“장공... 어머, 장로님!”
말과 함께 당소소가 번개처럼 장추삼에게 다가가 업힌 이를 받아들었다. 그
리고 의혹과 안전과... 그 외 여러 가지 질문들을 담은 눈빛.
“안심해요. 이 노인, 보기보다 근력이 좋더군. 아님 그가 준 속명단이 탁
월했든지.”
“어떻게 된건가?”
“이분을 어디서 만났소?”
쏟아지는 질문들, 그러나 장추삼은 도리어 물었다.
“또 모두 자결했소?”
' ! '
' ! '
' ! '
방교명의 안위를 살피던 당소소의 손길이 딱 멎었다. 무언가를 말하려던 하
운과 북궁단야의 움직임까지도...
“'또' 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장추삼이 말하기 귀찮다는 듯 털썩 주저앉았다.
“알면서 뭐하러 묻는거요. 나랑 치고받던 네 명처럼 이들도 죽어 나자빠진
것 같은데.”
경황이 없었고, 그의 등장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잘 몰랐는데 이제보니 장추
삼은 거의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 넝마 처럼 헤진 윗옷, 퉁퉁 부어오른 손,
신발은 아예 안신는 게 나을 정도로 찢어지고, 묘하게도 그을려 있었다.
“아니 그럼 방장로님을 위해하려던 네 명의 청의인과 싸웠단 말이오?”
그래서 이겼다는 거요, 라는 말은 생략하고 하운이 다급하게 물었다. 느낌
상 그저 삼류건달은 아닐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본 장추삼이 네 명의 청의
인들을 한꺼번에 감당할 수준의 무공까지 지녔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북궁단야는 무얼 생각하는지 그저 묵묵히 서 있었다. 가끔 기묘한 눈길로
장추삼을 쳐다보는 것 빼고는.
“아까 말했잖소."
퉁명스럽게 장추삼이 내뱉었다. 이번에는 하운과 당소소의 눈길이 마주쳤다
. 아까 북궁단야와 당소소가 눈길을 마주했던 것 처럼.
“끄응...”
신음성과 함께 인상을 찌푸리며 방교명이 정신을 차렸다.
“장로님! 이제 정신이 드세요!”
이게 어디서 들려오는 소릴까, 소소의 목소리랑 닮았는데...
“저예요, 저 알아보시겠어요? 저 소소라구요 장로님!”
‘뭐, 소소!’
힘겹게 눈꺼풀을 치껴뜨고 흐릿한 가운데 자신을 내려 보는 얼굴 하나를 잡
아내었다. 성에 낀 유리창이 차차 맑아지듯 찬찬히 들어오는 얼굴. 아무런
미련없는 인생에 마지막 의미가 되어버린 마음속의 손녀.
“소, 소소냐?”
“예, 저예요 소소! 이제 정신이 드세요?”
그녀는 환하게 웃으면서 눈물을 죽 떨구었다. 하운도 북궁단야도 이순간 만
큼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빙그레 미소지었다.
“울면서 웃으면 어디에 털난다는데...”
누차 얘기하지만 어디든 꼭 이런 놈이 있다. 잔뜩 골이 난 어린아이 마냥 툴툴
거리는 장추삼인데 당소소에겐 그 어떤 존재보다 귀엽고 고마웠다.
“장공자, 고마워요! 고마워요!”
포권으로 부족했는지 그녀가 연방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심드렁하던 장추
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인생의 선배였고 직장의 최고참인데
다 장추삼에겐 한 번 도 가져본적 없는 누이와도 같은 존재였으니까.
“이러지 마요, 진짜 이러지 말라니까!”
엉거주춤 일어서서 연신 손짓으로 만류하던 장추삼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큰
절이라도 했을지 몰랐다. 그녀에게도 방교명은 마음속의 친할아버지 같은
존재였으니까.
어느정도 정신이 드는 듯 방교명이 상체를 세워 그를 둘러싼 두명의 사내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참 잘들도 생겼구나.’
그의 첫 인상이었고,
‘참 선한 삶을 살아왔구나.’
하운을 보며 미소지었고,
‘오오! 이만한 미남이 또 어디있을꼬, 훤칠한 키에 가만있어도 저절로 남
을 누르는듯한 기세까지!’
북궁단야에겐 감탄을 했다.
그리고...
‘저 거지녀석은 뭐야?’
두 눈 쫙 찢어지고 의복이 걸레가 된 상거지꼴의 - 머리마저 흐트러져 있었고,
얼굴상태도 좋을 리가 없다 - 사내에게 당소소가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
아닌가?
“얘, 소소야.”
방교명이 힘겹게 당소소를 불렀다.
“예, 장로님.”
어느정도 만족할만큼 감사의 표시를 하고 그가 좋아하는 돼지고기에 술을
실컷 사줘야겠다고 마음먹은, 한달치 급료는 다 써도 좋다고 마음먹은 당소
소가 방교명에게 갔다.
“저 거... 아니, 청년은 누구냐? 동료냐?”
물론 ‘아니지’ 는 뺐다.
“예, 장추삼공자라고 저희 실회조원이예요. 장로님을 구해드린...”
“뭐, 날 구해?”
“ ? ”
이 무슨 뚱딴지 같은 반응인가? 분명 장추삼은 척 보기에도 부상당한 방교
명을 업고왔고 네명과 싸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근데 방교명이 하는 말은
또 뭔가?
당소소도 그제서야 의아한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장공자의 무위(?)로는 네명의 청의인을, 그것도 가장 강하다는 한명이 포
함된 인물들을 제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
하지만 곁에서 생활하며 느낀 건 절대로 없는 얘기를 만들어서 할 인물은
아니었다.
“아! 혹시...”
그거구나, 하는 얼굴로 방교명이 싸움의 전모 - 그가 기억할 수 있는 - 를
얘기해 주었다.
“저를 위해 그렇게까지... 흑!”
또 울먹이는 당소소에게 하운이 물었다.
“저... 제왕분이 뭡니까? 처음 들어보는 거랴...”
대답은 방교명이 해주었다.
“제왕분은 이 필부의 육십 평생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아들 같은 놈이지..."
제왕분.
방교명이 마지막으로 날렸던 초록색의 분말.
이것은 독에 관한 한 당문을 대표한다는 방교명이 마지막으로 만들어낸 역작
이었다. 단 한호흡만 흡입해도 일체의 공력을 운기할 수 없고, 또한 독성분
마저 지독해서 즉시로 피독주 따위의 해독작용을 하는 무언가의 도움을 받
지 못하면 천고의 고수라도 독기를 체외로 몰아내지 못하고 일 다경만에 죽
음에 이르른다.
[11161] [연재] 삼류무사-71 첨부파일 :
"아!”
둘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동귀어진을 강행한 방교명의 제왕분에 비록 그를 격퇴시켰으나 네명의 청의
인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들은 피독이나 해독작용을 하는 물
건을 찾는 일방 독기를 몰아내기 위해 허둥거렸겠고 걔중 공력이 높은이가
바삐 움직이며 내공을 소모하여 동료들을 돌보았을 것이다. 이때, 룰루랄라
산보하듯 산에 오르던 장추삼이 아주 우연찮게 이들과 대면하게 된다. 눈치
빠른 장추삼은 쓰러져있는 노인과 수상한 네 명의 복색에서 직감적으로 이들
이 표물탈취범이란 걸 알았고 ‘깡’하나로 인생을 살아온 그였기에 상대와
자신의 능력따윈 상관없다는 듯 달려 들었을 것이다. 평소라면 날파리 쫓듯
장추삼을 털어냈을 청의인들 이지만 불행히도 지금의 처지는 일반인 보다도
못한 상태, 그나마 강하다는 인물이 장추삼과 어울렸겠고 장추삼 으로서는
피튀기는 그야말로 장엄한 박투 였겠으나 청의인 들에게는 졸전의 극치끝에
이들을 제압했으리라.
그러나... 방교명은 모른다. 그 들 넷은 당문의 여걸을 대비해 이미 피독환을
복용한 상태였고 동귀어진의 공격시에 호흡 자체를 차단했었다는 사실을. 그의
아들 이라는 제왕분은 그들의 손짓 한 번에 처음부터 없었던것 처럼 산산히
흩어졌다는 것도 말이다.
‘그러면 그렇지.’
나름대로 결론을 지은 하운이 홀가분한 심정으로 장추삼을 바라보았다. 그
리고... 그의 얼굴은 얼어붙었다.
“장형!”
뚱한 얼굴의 장추삼이 짜증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 그는 만사가 다 귀
찮았다.
“아, 또 왜요!”
“잠깐 이리로... 아니, 내가 가리다.”
순간이동 하듯 삼장을 가로질러 하운이 장추삼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격렬한 싸움이었나 봅니다. 어디 다친곳은 없으시오?”
이 양반이 왜 갑자기 친절이야, 장추삼이 찝찝한 표정으로 하운에게서 약간
몸을 땠다.
“괜찮소, 괜찮아요!”
“아니, 아니, 괜찮지가 않구만. 어께하며 배하며.”
사실 아프긴 아프다. 그러나 사나이 장추삼이 이런걸로 겔겔거릴수는 없잖
은가?
하운은 연방 장추삼을 걱정하며 그의 몸을 살피고 쓰다듬고 있었는데 이건
딱 어디가서 맞고 돌아온 자식을 살피는 어미의 그것이었다.
“아, 괜찮대두, 신경 쓰지마요!”
무언가 머쓱해져서 장추삼이 벌떡 일어나 딴데로 슬슬 갔다. 이런건 그에게
익숙치 않을뿐더러 더더욱 남자가 이러는 건 절대사절이다.
"아니오, 아냐! 다쳤을 땐 조기치료가 약이라오. 지금 괜찮은 것 같다고 해서
방치하다 나중에 큰 병된다니까!"
따라 일어서며 하운이 장추삼을 잡는답시고 잡았는데 일어서던 와중이라
그런지 그의 배부분 옷을 움켜쥐었다.
"괜찮대두!"
몸을 홱 돌려서일까? 너덜거리던 그의 배부분 옷감이 쭉하니 찢어져 하운의
손아귀에 잡혔다.
"아, 이런 실례를!"
"괜찮소."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장추삼이 몸을 돌리자 마구마구 미안해하던 하운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장추삼에게서 찢어낸 천조각을 슬그머니 품속으로 집어
넣었는데 연방 불안해하며 떨리는 손끝을 보아 이런일에 익숙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하긴, 그의 군자다운 성격상 이정도의 임기응변도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실회조가 순진하던 사람하나 버려놨다고 할까.
'이, 이건 뭔가? 어떻게 이 권법의 흔적이 장형에게서 발견된다는 건가?'
하운은 슬그머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검을 땅에 푹 꽂고 여명을 응시하는
북궁단야나 - 하여간 저 친구는 행동 하나하나가 멋있다고 슬쩍 딴 생각도
들었다 - 제 이 차 신파극에 돌입해서 연방 울고짜는 당소소를 - 그녀의 우는
모습, 역시 미인은 눈물 까지도 아름답다는 게 하운의 결론이다 - 달래는
방교명, 그리고 엄한 돌멩이들을 뻥뻥 차대고 있는 장추삼... 모두 눈치 첸
기색은 없다.
'어서 장로님게 보고해야 한다!'
하운은 가까스로 자신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이 천조각이 갖는 의미는 너무도
엄청난 것이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리 공력의 손실이 있었다 손 치더라도 분명 이 권법을 사용한 박투가
벌어졌었다는 건 장형의 천조각이 가감없이 말해준다. 그럼 비록 완전한
형태가 아니더라도 이정도의 흔적을 남긴 '이 권법'을 받아내고 어떤식으로든
시전자를 제압한 것 또한 장형임에 틀림 없다. 그런데 제아무리 감각좋고
싸움을 잘하는 삼류무인이 이 권법을 받아내는게 가능한가?'
대답은 '절대불가'다.
이 권법에 괜히 신의 주먹(神券)이란 이름이 붙은게 아니란걸 하운은 잘 알고
있었다. 장추삼의 옷조각에 난 흔적은 타격에 의한 자국같은게 아니라 권력에
의해 생겼다는 거다.
권력... 허공을 격해서 상대를 상하게 하는 기의 무공!
그걸, 그런 상승무공을 삼류무인이 받아내고 거기다 이기기까지 했다?
하운은 긴 탄식이 터져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하운아, 하운아. 너는 어찌 그리도 사람보는 눈이 없더냐!'
여전히 장추삼은 돌멩이들에게 뭐가 그리 꼬였는지 화풀이를 해대고 있었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특출한 기색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데...
'난 너무 장형에 대해 모르고 있었는지도...'
북궁단야는 무얼 생각하는지 간간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 *
"다시한번 생각해 보래두..."
"아, 정말 왜 이러세요. 자구 그러시면 저혼자 가버릴거예욧!"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다."
"장로님!"
일행이 하나 더 불어서 다섯명이 된 장추삼들은 귀로길에 올랐다. 노인들만
만나면 거지꼴인 장추삼은 이번에도 방교명이 옷을 사주었다. 때빼고 광내고
옷까지 입혀놓으니까 그나마 사람같긴 한데 역시 이들 둘과는 격이 달라도
한 참 다르다고 생각했으나 산전수전 다 겪은 방교명이 그딴 쓸데없는 소리를
입에 담을리 없었다.
그는 쓸데있는 일만 한다!
장추삼을 사람꼴로 만들고 제일 처음 그가 한 일은 북궁단야에게 몰래 혼인
여부를 묻고 현재 마음에 둔 여인이 있느냐고 또 물은 것이다.
대답은 전부 '아니다' 였다!
고무된 방교명이 가족관계를 포함한 이것저것을 꼬치꼬치 캐어묻자 북궁단야는
짜증이 났지만 당소소의 얼굴을 보아 성실히 답변해 주었으나 이내 마음이
이상해졌다. 그의 말에 연방 벌어지다가 결국 입이 귀밑까지 쭉 찢어지는
방교명의 반응은 뭘 의미하는가?
그 뒤부터 귀로길 내내 당소소로는 귀찮음의 시작이었고 북궁단야로는
민망함의 시작이었다.
"두살이 걸리는 게냐? 하! 웃기는 일이지. 중원천지에 네 나이를 네 나이로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 장담컨데 너와 북궁공자는 용과 봉황의 결합이라고
세인들이 우러를 것이다!"
"에휴!"
"북궁공자 봐라. 사람 번듯하지, 가문 좋지, 양친 생존해 계시고 척 보니까
배운 것도 많지. 그리고 니 말마따나 무공또한 고강하니 이보다 괜찮은 남자를
어디가서 찾겠다는 거냐?"
방교명은 앞서 말을 모는 북궁단야가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좋으시겠소?"
오랜만에 하운이 농짓거리를 하지 북궁단야가 쓰게 웃었다.
"방장로께서 객잔을 운영하시느라 눈을 많이 버리신 것 같소. 하형같은 인걸을
몰라 보시고 나같은 범부를 입에 올리시니 말이오."
"무슨말씀을! 북궁형과 나를 비교한다는 건 명월과 반딧불 같은 얘기요.
하하!"
평소같으면 '놀고있네'하고 툴툴 거렸을텐데 장추삼은 그 말을 눈으로
대신해서 한번 힐끗 돌아보고 아무 말없이 채찍질을 가했다.
("근데 북궁형, 장형말이오.")
느닷없는 전음. 의아스런 얼굴로 북궁단야가 돌아보자 하운이 전음을 이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들으시오. 북궁형은 장형이 그말 그대로 삼류건달이라고
생각하시오?")
("새삼스레 그 문제는 왜...")
북궁단야를 빤히 보던 하운이 고개를 저었다.
("하, 나만 바보였군. 북궁형도 장형에 대해 무언가 눈치 챈 것이 있었구려.")
눈치만 챈 정도인가? 그의 무공을 직접 보았거늘.
("갑자기 장형 얘기는 왜 꺼내는 거요. 혹시 장형이 뭐라고 했었소?")
("아니. 아니요. 그냥 싸움군이라 말하기엔 장형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기품이 있어서 그러오.")
어색한 기품... 또다시 하운의 임기응변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내색하지 마시오!")
북궁단야의 다소 경직된 전음이 하운의 귓가를 파고 들었다. 내색하지 말라니.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 라고 자신이 삼류건달이 아니란걸 모르겠소? 바보는 아닌 것 같은데...
나서기 싫어하는 건 천성같기는 하지만 그보다 장형은 무림에 큰 뜻이 없는 것
같으니 그냥 놔두자는 말이오,")
맞는 말이긴 한데 북궁단야의 정색은 지나친 감이 있었다. 그의 심정을 하운이
어찌알랴!
내 동생이 저 놈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난 동생이 이런 음모중중의
무림에서 한 발짝 떨어진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이말, 죽어도 못한다. 나중이라면 모를까?
하운은 막연히 북궁단야가 장추삼을 무척 챙기는구나 싶었다. 그의 말은 백번
지당했다. 폭풍전야와도 같은 현 무림은 '난세는 영웅을 부른다'는 말처럼 수
많은 기인괴걸이 출몰할 것이고 벌써 그 징후를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눈앞의 북궁단야도 그 중 한명이 아닌가!
영웅이 필요한 세상, 삼백년 가량 혼돈다운 혼돈 한번 없어서 이름을 떨치고
싶었던 수많은 준걸들이 조용히 사라졌던 걸 비추어보면 현 시대를 살아가는
무인들은 어쩌면 최대의 호기를 맞았는지도 모른다.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목숨이 요구되든간에 말이다.
'무공을 익혔다고 해서 모두 무림인이 아닌것처럼 북궁형의 말대로 장형은
장형 그대로가 자연스러운 건지도 모르지.'
("이건 하형과 나, 둘만의 비밀로 합시다. 피치 못해 알려지는 거야 어쩔도리
없다고 해도 굳이 동네방네 떠들 필요는 없지않소. 다행히 다른 실회조원은
모르는 듯 하니 말이오.")
다짐받듯 북궁단야의 전음이 하운의 상념을 일깨웠다.
("이제보니 북궁형은 장형을 무척이나 위하고 있었구료. 그래요, 그렇게
합시다. 어차피 장형은 무림과 크게 상관없는 인물이었으니.")
저놈을 위하는게 아니라 내 동생을 위하는 거야!
하운은 장추삼에 관해서 잊기로 했다. 사실 그는 눈앞에 펼쳐지는 수 많은
사건들을 정리하기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청의인들과 그들의 자결,
'그 권법'의 낙인이 찍힌 옷조각...
장추삼이란 인물이 보기보다 뛰어난, 어쩌면 능히 일류를 상회하는 고수라고
하더라도 그가 이 거대한 무림에서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성 싶었다.
'어쩌면 장형은 평범한 것 이야말로 행복의 근원 이라는 걸 몸소 보여주는
사례 일지도.'
문득 하운은 뚱한 얼굴로 말을 재촉하는 장추삼이 부러웠다. 그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고 어떤 음모와도 자유로운 사람이니까.
뒤에선 여전히 시끄러운 말다툼이 계속 되었다.
"이런 답답한 경우를 봤나! 굴러 들어온 복을 걷어차도 유분수지. 니 일생에
저런 남자 한 번 만날 성 싶으냐? 나 같으면 울며불며 매달려도 시원치
않겠구만."
"오, 아 - 주 잘 됐네요! 그럼 장로님이 시집가세욧!"
삼류무사-72
일행이 돌아왔을 때 제일먼저 튀어나온 건 예외없이 단사민이었다. 녀석은
뭐가 좋은지 눈내리는 겨울밤에 폴짝거리는 강아지마냥 방방거리다가 장추
삼을 발견하고는 실실거리며 농지꺼리로 인사를 대신했다.
"어때요, 뒷골목 걸달패들과 붙었을 때 랑은 많이 다르지요. 그래도 몸하나
다치지않고 돌아온걸 보면 용하네."
장추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를 밥버러지나 월급도둑 쯤
으로 생각하던 단사민이기에 그가 말대꾸를 하든 안하든 녀석은 쉴세없이
주절거렸다.
"척 보니까 당누님들 싸우고 있을때 구석탱이에서 숨소리 안낼려고 노력한
것같은데...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실회조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니까?"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
장추삼이 중얼거렸다. 하운등이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무려 삼일만에 처음으로 말문을 연 것이다.
"그런거같군."
나지막히 뇌까리고 장추삼이 나가자 괜히 무안해진 단사민이 볼멘 소리로
하운들에게 물었다.
"왜 저런데요? 누구한테 엄청 당하고 돌아온 거 같은데... 설마 도움안된다
고 구박을 너무 심하게 하신거 아니예요?"
"당하긴 당했지."
북궁단야가 육호 침상을 바라보았다. 대기전에 머물러 있기 싫어해서 늘 비
어있던 장추삼의 침상.
"남이 아닌 자신에게..."
* * *
"아닌밤에 홍두께도 유분수지, 그게 무슨말이냐!"
"죄송합니다."
"당표사에게 대감의 얘기는 들었다. 물론 눈앞에서 사람의 죽음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당혹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림인걸 어쩌겠느냐."
"......"
표국주 이효의 집무전은 언제 보아도 검박하다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
다. 그 흔한 닌초하나 가꾸지 않는다고 주위에서 얘기했을때 '언제 무슨일
이 있을지 모르는 표행길에 오늘도 십수명의 표사들이 길을 나서는데 표국
주란 자가 풀쪼가리나 보고 있는 건 직무유기'라며 껄껄 웃었다고 하지만
꼭 필요한것 외에는 단 하나의 장식품도 들이지 않았기에 별로 크지도 않은
그의 집무전은 웬만한 대기전처럼 넓게 보였다.
'허어!"
의자에서 일어선 이효가 무언가 안풀릴때면 늘 그러하듯 책상 주위를 뒷짐
을 지고 맴돌았다.
심각한 얼굴로 장추삼이 들어섰을때 직감적으로 일에대한 문제이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지만 단도직입적으로 '그만두겠습니다' 했을땐 어떤말을
해야할지 대책이 서질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조카와도 같던 장추삼의
눈에서 인생 다 산 노인네의 '회의'라는 빛깔을 강하게 느꼈으니까. 그
빛깔은 너무도 선명했기에 감히 함부로 다룰 성질의 감정이 아니었다.
'이 아이는 볼때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구나.'
"피와 살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느냐. 실회조를 보더라도 하표사나
북궁표사, 그리고 단표사 역시 첫 살인의 충격을 이곳 복룡표국에서 체험하
고 극복해 내었다. 너역시 첫 출장의 충격이 컸지만..."
"이숙!"
장추삼이 말허리를 잘랐다.
'아니 표국주님. 그래요, 살인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면서
무림인이기에 어쩔도리 없이 살인을 하겠지요. 나이어린 단사민이도 얼마전
에 처음으로 검에 피를 묻혔다고 하더군요. 저 보다 여덟살이나 어린
나이인데도 저렇게 잘 이겨냈는데 뭐하는거냐고 비난한다면 할말은 없어요.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잠깐 말을 끊은 장추삼이 쓰게 웃었다. 그 미소는 마치 썩어 있는 것 같았
다.
"그들은 스스로를 무림인이라고 규정짓고 출발했잖아요? 무림이 뭔지, 또
무림인이면 일반 사람들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전 아직 몰라요. 이숙이
보시기에 제가 무림인인가요?"
그는 이효에 대한 호칭마저도 왔다갔다 했다. 그러나 조카같은 장추삼의 고
민을 이제야 조금 알게된 그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어 주었다.
"아닌가요? 이숙도 아니라고 하신다면 저는 어떻겠어요. 무림인도 아닌 사
람이 골수부터 무림인인 사람들과 같이 생각하는 건 무리예요. 사람이 죽었
어요! 그것도 네명이 제 눈앞에서 말입니다. 그걸보고 그냥 넘기라구요? 이
번엔 그렇다치면 그 다음은, 또 그다음은? 그러다보면 죽음과 살인에 익숙
해진 저를 발견하게 되겠지요. 그게 무림인 인가요? 제가 생각한 무림인은
그런건 아니였다고요!"
정체성의 문제였다. 누구도 답해줄이 없는, 누구도 대신 해결해 줄수 없는,
자기 자신만이 풀어야하고 안되면 끊어야하는 매듭이었다.
물론 이런 과정을 거치지않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삶에 쫒기고
찌들대로 찌들면 인생의 목적은 그저 '생존'이 전부가 되는 경우도 있다.
또 성취욕구가 남달리 높은 이들은 모든 과정을 결과에 수반되는 부산물
쯤으로 생각하기에 정체성 같은 건 돌아보지도 않는다.
'이 아이는 감수성이 참으로 풍부하구나.'
한 인물을 볼때 그의 특출한 면이 너무도 부각되어 부차적인 다른건 무시되
는 경우가 많다. 정혜란도 북궁단야도 그렇고 장추삼도 그랬다.
"그래, 무얼하고 싶은거냐."
더이상 잡는건 무리다. 그건 장추삼을 망치는 걸지도 모른다. 자리에서 일
어나 문가로 걸어가던 그가 우뚝서서 이효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성취욕구와 타인에의 배려를 가장 이상적으로 배려할 남자, 그는 문
득 이효정도의 신념을 가지고 싶었다.
"보겠습니다."
' ? '
"무림, 그리고 무림인을요."
"무림과 무림인을 본다라... 그럼 또 떠나겠다는 거냐?"
어느새 자리에 앉은 이효가 건성의 결제서류를 뒤적이며 묻자 장추삼이 미
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지요. 우물안에서 보는 하늘은 그저 동그란거잖아요."
"그래..."
파슛.
'래'자가 끝나기도 전에 이효가 장추삼에게 다가서며 연달아 삼장을 내질렀
다.
'!'
두발을 한번 엇갈린것 만으로 그의 공세를 피해내며 장추삼이 다급하게 외
쳤다.
"이숙, 미쳤어요!"
"말은 나중에해라!"
피하는걸 예측이라도 한듯 옆으로 비껴선 장추삼에게 세번의 발차기가 날아
왔다.
'이숙은 칼을 잘쓰는걸로 알았는데?'
그의 절기는 누구나 파풍십이도로 대변되는 양양이가의 독문도법이었다. 이
효의 부친 이진웅도 파풍십이도법 하나로 표국을 세웠다고 알려졌으니까.
'장난 이라면 심하고 아니라면 칼을 들 분인데?'
그의 생각을 뒷받침하듯 발차기에 실린 위력은 나름대로 웅장한 것이었고
빠르기 또한 눈으로 쫒는게 어려울 정도로 쾌속했다. 그리고 방위,
인간이라면 가장 대처하기 어렵다는 상.중.하의 높이를 나누어 점유하면서도
거의 동일한 속도로 다가오는 '이 각법'은 분명 예삿 것은 아니리라.
'좋아!'
그의 몸이 허공에서 한바퀴 반을 회전하자 장내는 정리되었다.
'이, 이녀석!'
사실 이효의 발차기는 굉장한 빠르기와 위력으로 다가왔기에 피하거나 손으
로 막아내는 도리밖에 없었지만 장추삼은 반바퀴에 한번씩 발을 내질러 그
원심력까지 실은 발 뒤꿈치로 그의 공격을 무력화 시킨것이다.
퍽이나 작은 규모의 선풍각, 단 한바퀴의 반의 선풍각이었지만 그 회전의
빠르기는 통상의 선풍각 - 보통 다섯번이상의 회전력이 있어야, 그 만큼의
원심력이 뒷받침되야 선풍각 고유의 위력이 발위된다 - 을 넘어서는
위력이었고 특히나 마지막의 타격은 실로 막강한 위력을 가진것이어서
이효는 복숭아뼈에 쇠 몽둥이가 부딛친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갈까요?"
장추삼이 짖굿게 웃자 이효는 두손을 저으며 웃었다.
"아이고, 아니다. 아니야! 네녀석이 왜 양양 일대의 뒷골목을 주름잡았는지
이제야 알겠다. 그렇다고 힘없이 늙어가는 숙부에게 무지막지한 발차기를
하다니!"
"힘없이 늙어가는 숙부요?"
장추삼의 째진눈이 오랜만에 위, 아래로 영역을 넓혀 제법 동그란 형태가
되었다. 언제나 자애롭고 근엄한 줄만 알았더니 이 사람도 농담을 하고 사
나보다 생각했다. 역시 사람은 단면만 보아서는 안된다.
"아, 맞습니다! 힘없이 늙어가는 숙부님! 오오, 너무도 힘이없어서 시중
철장포에서 굴러다니는 칼 하나만 오른손에 쥐어도 그저 별볼일없는 일·류
·고·수 따위는 몇합씩이나 써야 굴복시키고, 너무도 늙어서 큰 기침한번
하면 아무것도 아닌 각 표국들과 무도장에서 그저 버·선·발 로 뛰어나오
는 힘·없·이·늙·어·가·는·숙·부·님, 오오!"
두팔을 벌리며 과장된 농지꺼리를 하자 이효의 표정도 밝게 풀렸다.
"예끼, 이놈아!"
알밤을 먹이자 그제서야 장추삼이 팔을 내렸지만 여전히 이죽거렸다.
"역시... 힘없이 늙어가시기에 알밤의 위력은 가일층 상승하시네요."
다시한번 손을 쳐들자 '아니예요'를 연발하며 뒤로 죽 물러서는 장추삼에게
이효가 인자한 삼촌이 되어 말했다.
"아버님껜 상의 드렸느냐, 이번에 또 집을 나서는걸 아시게되면 무척이나
섭섭하게 생각하실텐데."
"이해 하시더군요."
장난을 그만두고 장추삼도 쓸쓸한 표정으로 이효를 바라보았다. 아버님을
부탁합니다, 란걸 얼굴에 써 놓은듯 그의 얼굴근육은 애잔한 움직임을 보였
다.
"그래, 양양은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말고 다녀오너라. 저번엔 너의 육체를
위한 여정이라면 이번도 저번만큼의 정신적 성숙과 안정을 가져다 즐 값진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이효가 가만히 장추삼의 손을 잡았다.
"청해복룡표국의 두번째 자랑인 실주회수조의 여덟번째 자리는 비워놓을 것
이야. 네놈이 돌아왔을때 또 백수일순 없잔느냐."
"그러지 않으셔도..."
손을 빼려는데 더 강한 힘이 가해지자 놀란 그가 이효를 바라보았다.
'이숙!"
이효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뺨을 적시고 있었다.
"난... 네녀석이... 무척이나 자랑스럽구나! 넌 나의 조카이자...
아들이란걸 명심해라."
이효와 민경추 사이에 자식이 없어서만은 아닐것이다. 장추삼이 엇나갔던
이유에 관해 어렴풋이 짐작했엇고 그것이 자기책임 같아서 관심에 관심을
기울이다 든 정.
적어도 이효의 관점에서 장추삼은 튼실하고 괜찮은 조카였고, 아들같은
존재였다.
"예!"
더 있다가는 눈물이 나올것 같아서 장추삼이 황급히 자리를 피하자 가뜩
이나 을씨년스러운 집무전은 노년을 바라보는 사내 혼자서 지키게 되었다.
이백여 식솔을 책임지며 늘 자신만만한 목소리와 넉넉한 미소로서 표사들을
독려하던 그도 혼자 있을 땐 평범한 중년인이자 감정이 살아 숨쉬는 개인
일 뿐이다.
"삼음추를 막아내다니..."
이효가 장추삼을 몰아칠때 보였던 세번의 발길질은 사실 삼음추란 각법이었
다.
삼음추... 이 각법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니,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옳을것이다. 그러나 이 각법을 사용하는 이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없다.
바꿔말해 그 사람이 이 각법을 사용하는걸 모른다는 것이다.
"허허... 노야, 노야의 삼음추가 이렇게 깨졌습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허탈한 미소속에 어린 득의의 빛, 이효는 시간가는줄 모르고 그렇게 웃고만
있었다.
[11266] [연재] 삼류무사-73 첨부파일 :
퇴근길에 술 한잔 하자며 따라붙는 당소소들을 따돌리고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는 장추삼의 마음은 편할리 없었다.
어제 저녁, 실회로를 다녀온 아들이라고 대견해하던 부친에게 한다는 말이
또 집을 비워야 할것 같다는 것 이었으니 장유열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는
안봐도 뻔했었다. 화를 낼 기력도 없었던지 멍하니 장추삼을 바라는 그에게
자신의 솔직한 처지와 생각을 납득시키는데 무려 한시진을 소비했지만
부친이 과연 정신적인 납득으로 허락한건지 심정적인 납득으로 허락한건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부친은 가타부타 말한마디 없이 그저 무겁게 '그래' 라고만 했을 뿐이니까.
이럴때 장추삼은 먼저가신 모친의 존재가 못내 그리웠다. 만약 그분만
계셨어도 늙은 부친을 홀로 남겨둔다는 죄책감이 좀 덜했을텐데...
'장가를 일찍 갈걸.'
점점 더 엉뚱한 생각으로 상념의 방향이 전개될 무렵부터 날파리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건 뚜렷한 기세를 담고있는 인간 날파리였다.
'이건 또 뭐야?'
'니들은 디들데로해라, 난 내 갈길이나 갈란다'하고 무시하는데 느닷없이
날아온 무엇이 있었다.
' ! '
한발짝 비켜서는것만으로 날아온 물체를 피했지만 깊숙히 땅에 박혀있는
그것을 보는 순간 장추삼은 폭갈을 터뜨려야 했다. 그건 팔면에 삐죽한
침이 박힌 암기였다.
"이씨, 가만히 길가는 사람한테 왜 시비를 거는거야! 당신들이 쫒아오건
말건 냅뒀던게 무서워서 그런줄 알아!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한번
해보자는 거야, 뭐야?"
모른는 사람이 보면 혼자서 뭔 짓거리하나, 내지는 '쯧쯧 젊은 나이가 살짝
맛이 갔구만'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육안으론 분명 혼자이지만
장추삼이 들어선 풀숲의 소로에는 열 아홉 사람이 분명 숨쉬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은신술이라고 해도 인간인 이상 본능적으로 발산하는 기의
통제는 그야말로 절대를 바라보는 초고수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황당한건 세우삼십육도의 열여덟명이었다.
'그게 무슨소리야?'
'저 암기, 누가 날린거야?'
그들은 모추의 흔적을 쫒다보니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일 뿐 결코 장추삼의
뒤를 밟거나 하지 않았다. 당연히 위해를 가할 마음도 없었다!
"좋게 말할때 내앞에서 사라져. 나 당신들과 오래 노닥거릴 기분이
아니거든. 알아?"
'이런!'
그제서야 세우삼십육도들은 알았다. 암기를 날린건... 모추였다.
'교활한 놈!'
허나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눈앞에 모추가 버젓히 있는데 어찌
그냥가겠는가? 명령을 떠나 절반의 동료를 죽인자를 용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추는 삼년동안 공으로 청빈로에 머문것이 아니란 걸 몸으로
보여주듯 세우삼십육도의 추적을 교묘하게 따돌리는 일방, 거짓 흔적
따위를 지형과 건물들 사이에 적당히 남겨 그들을 몇개조로 분산시켜
각개격파의 형식으로 그들 중 열 여덟을 살해했다.
'이제 다 잡았는데...'
물론 대가가 없었던 건 아니다. 모추는 크고 작은 검상을 제외하고도 팔
하나를 잃어야 했다. 장법을 쓰는 이에게, 그것도 변환의 기법을 사용하는
모추에게 있어서의 팔 하나가 가지는 의미를 말해 무엇하겠는가.
스륵-!
세우 삼십육도의 맏형이랄수 있는 세우일도가 장추삼 앞에 몸을 드러냈다.
"우린 귀하를 따라다닌 적도 없고 또한 암기를 날린 사실도 없소. 우리가
쫒던 인물이 귀하와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기에 따라왔을 뿐이니 귀하는
그냥 가던길을 가시오."
"그럼 당신들이 쫒는다는 인물이 계속 나를 쫒아온다면 당신들도 계속 나를
따라오겠군?"
말하는게 무척 귀찮았지만 세우일도는 침착하게 대꾸해 주었다.
"그전에 끝낼거요."
직감적으로 장추삼은 이들이 무얼 원하는지 알았다.
'어쩌다 청빈로가 이렇게 됐지?'
낮은 탄식과 함께 몸을 돌리고 털레털레 걸음을 옮기는데 꽂히는 전음성.
무척 급박한 상태라는 걸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곧바로 알수 있을 정도로
초췌하고 심각한 목소리.
("미안하네, 자네와 난 그저 한번 싸운것 뿐이지만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니 부탁하나 함세.")
물론 싫어요, 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그에게 지금 만사가 귀찮은
상태였으니까. 부탁도 뻔했다. 마환장이라 불리는 모추라는 걸 안순간 왈칵
짜증부터 났고 부탁이라면 척 보기에도 무림인이란걸 보여주는 이들 -
모추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라면 적어도 깡패 수준은 아닐테니까 - 을
제압해 달라는 걸꺼다.
("그들을 제압해주게!")
'이런 젠장!'
싫었다, 정말이지 싫었지만 이들은 그저 희미하게 모추의 종적을 가늠하는
정도로 보이지 않는가. 만약 장추삼이 '싫어요' 하고 큰소리로 외친다면
'찾는사람 여기있대요' 하고 고자질 하는 격이다. 고자질... 사내치고 이
단어와 친한사람 별로 없다. 하물며 사나이중 사나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장추삼에게 고자질이 가당키나 한가?
'전음인지 뭐시긴지는 익혀두는 건데!'
후회해서 뭐하겠는가, 당장이 급한데. 발걸음을 우뚝 멈춰선 장추삼에게 뭘
느꼈는지 세우일도가 차갑게 뇌까렸다.
"우리가 찾는 사람은 귀하도 잘 알고있는 마환장 모추라는 자요."
울컥한 기분에 불을 질러도 유분수지, 온통 흑의로 전신을 감싸고 있는
녀석의 말 뽐새는 '그러니 넌 빠져' 아닌가?
"왜, 얼굴을 알고 있으니까 보면 고해바치기라도 하라는 거요?"
세우일도는 말없이 장추삼을 바라보았다, 속은 아니지만.
'듣던데로 성격이 아주 지랄맞구나. 이 순간만 아니였다면 단단히 버릇을
고쳐주는건데.'
당연히 고운말이 나갈리 없다.
"그게 귀하의 신상에 이로울거요."
"오호, 신상에 이로울거라?"
장추삼이 발밑에 있는 돌멩이를 발로 툭 찼다. 이건 그가 기분이 더러울때
즐겨 사용하는 몸동작이다.
"만약 보고도 못 본척 한다면?"
"......"
"아니, 숨겨준다면?"
"......"
"아니, 내가 보호하겠다고 하면?"
"......"
"어쩔거요?"
사람이 열받는 경우는 허다하다. 하루에도 몇번을 열받았다가 풀리곤 하는
게 사람사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너무하지 않은가.
'임무만 아니라면!'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결정타와도 같은 한마디가 장추삼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당신들이야말로 청빈로에서 꺼지는게 신상에 이로울거요."
번쩍!
세우일도의 눈에서 광채가 일었다.
"말로 들을 자가 아니로군."
기다렸다는 듯 열 일곱의 신형이 장내를 메웠다.
"대형, 어차피 모추는 부상이 심하여 이동거리에 한계가 있습니다."
"저자에게 교훈을 줄 시간정도는 있습니다."
여러명이 말을 하면 보통 '왁자지껄'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들은 제각기
한마디씩을 하는데도 소란스러운 느낌을 주고있지 않다. 그건 이들이
그만큼 정신적으로 연계가 되어 있다는 의미다.
"귀하는 실수를 했소. 쓸데없는 참견은 늘 화를 부르지."
장추삼의 발에 맞는 돌멩이가 좀더 멀리 비행하기 시작했다.
"꼭 싸움 못하는 것들이 싸우기전에 주절거리더군. 흑월회의 노 뭐시긴가
하던 애꾸처럼 말이야."
촤르륵.
세우 삼십육도중 열 여덟명, 아니 이게 세우십팔도가 되어버린 그들이
장추삼을 가운데 두고 넓게 퍼졌다. 딱 반 원형으로 그를 에워싼 형국,
퇴로에 대한 배려는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두둑.
힘없이 내려졌던 양 주먹이 불끈 쥐어지자 그의 몸은 전능지체로의 빠른
전환을 보였다. 이제 그가 전능지체로 변화를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엄청나게 단축되어서 마음먹는 순간 바로 실행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어느새 빼어들었는지 싸늘한 예기를 발하며 피를 요구하듯 번들거리는 열
여덟자루의 얇디얇은 도. 이걸로 보아 그들은 환검의 일종을 사용하리라.
팟!
서전은 장추삼의 돌격으로 시작되었다.
[11288] [연재] 삼류무사-74 첨부파일 :
첫댓글 즐독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넘 즐독 합니다.
즐감
우리의 추삼이가 드디어 돌격하는구나!!! ㅎㅎ
즐감요
감사합니다.
감사 ㅎ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
ㄳ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