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동성당 12월3일 주일미사, 두봉신부님이 집전하시다
오늘 강론에서 436장 “주 날개 밑”을 펼쳐시고 하느님의 무한한
은혜와 축복을 전해 주시었다.
-주 날개 밑 내가 편히쉬리라. 어두운 이밤에 바람부나 아버지께서
날 지켜주시니 겁내지 않고 잘 쉬리로다-
벽안의 프랑스인 두봉주교님을 “이렇게 기쁠때나 슬플대나 한국교회 신자들과 살아온지 60년이다.” 신부님과 인터뷰한 어느기자의 표현이다.
“안동교구가 지난 7월 5일 초대교구장 두봉주교 사제서품 6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영육간의 건강을 기원했다. ‘살아있는 역사이자 살아 있는 성인’으로 존경받는 주봉 주교를 위해 마련한 잔치다” 라고 평화신문기자는 서술하였다.
전쟁이 끝난 53년 페허의 한국땅, 첫 부임지 소감을 “한국전쟁당시 프랑스에서 군대생활을 했는데, 같이 근무하다 이 전쟁에 참전하여 목숨을 잃은 친구가 있었다. 친구가 목숨을 바친 나라, 그래서 더 뜻 깊었다.라고 술회하여 대한민국의 인연과 사랑을 주시었다.
“두봉신부님 이야기”
두봉 주교는 프랑스 오를레앙 출신으로 본명은 르네 뒤퐁(René Dupont)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오로지 예수처럼 사랑을 실천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제가 되었다. 1953년, 그의 나이 24살 때였다.
사제가 된 다음해 파리외방전교회의 전도사로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 첫 임지는 대전 대흥동성당, 그곳에서 보좌신부로 일하면서 프랑스 성(姓) 뒤퐁의 음을 딴 ‘두봉’이라는 한국 이름을 얻었다. 이후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 안동교구의 주교 등을 거치면서 농민 사목과 지역사회 발전에 힘써 왔다.
그러기를 60년, 그는 한국 가톨릭의 큰 기둥이자 정신이 되어 있다. 지위가 높아서만도 아니고 힘이 있어서도 아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향한 끝없는 사랑과 헌신, 사회문제에 대해 겸손하고도 실천적인 관심, 그리고 무엇보다 늘 행복한 모습에 천사 같은 웃음이 그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
대립과 갈등이 날로 험해지는 세상,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경북 의성군 봉양면 문화마을에 있는 그의 집에서 한 잔의 차를 앞에 두고 물었다. 서로를 아끼며 더불어 잘 살아갈 방법은 없을까?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1982년 프랑스정부에서는 두봉신부님에게 일명 나폴레옹훈장 -레지옹 도뇌르(프랑스어:ordre national de la Légion d’honneur)를 수여하였다. 프랑스의 정치∙경제∙문화 등의 발전에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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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