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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렙의 특별기업(신약성도론)
여호수아 14:6~15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 내용강해
이 시간에는 "갈렙의 특별기업"입니다. 오늘은 참으로 가슴이 설레는 귀한 말씀입니다. 본문은 아홉 지파 반이 가나안 땅을 분배하기 전에 갈렙의 요청으로 갈렙에게만 유일하게 특별 분배가 이루어지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특별 분배 특별기업! 뭔가 특별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말씀은 갈렙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특별한 기업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축복은 가데스바네아에서 보낸 열두 정탐꾼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믿음의 보고를 하여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땅을 악평했던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모두 즉시 죽었습니다.
민수기 14:36~38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그리고 그 악평에 미혹되어 불신에 함께 동참한 이스라엘의 장정들 역시 한 사람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민수기 14:24절에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13절을 보면 갈렙을 위해 헤브론이 기업으로 주어집니다. 이 갈렙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은혜롭지만 영성적인 의미에서도 역시 귀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즉 갈렙은 우리에게 신약성도의 믿음의 축복을 보여주는 좋은 예표입니다.
그럼, 신약성도들이 받을 복이란 과연 무슨 복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1. 인종과 국가를 초월하게 하는 복입니다.
사도행전 11:18절에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39절에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갈렙의 인종적인 배경을 살펴봅시다. 갈렙은 이스라엘의 최고가는 영적 장자지파인 유다지파의 수장이었지만 놀랍게도 그는 순수한 야곱의 자손이 아니었습니다.
민수기 32:12절과 여호수아 14:6절과 14절을 보면 그는 그니스 사람이었습니다. 그니스 사람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니스 사람이란 야곱에게 축복을 빼앗긴 에서의 후손 에돔 족속을 말합니다. 에돔 족속이라면 이방인입니다.
에서는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을 팔아 버린 망령된 일을 하고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부모의 곁을 멀리 떠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에서는 완전히 언약의 축복을 상실한 사람입니다. 이 에돔의 후손이 갈렙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맨 먼저 가나안 중심부의 특별 기업을 받았다는 사실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는 인종과 국가를 초월하여 주시는 우리 신약성도들의 복을 보여준 것입니다.
2. 죄악 된 신분도 구원을 받는 복을 말합니다.
에베소서 2:11~13절에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外人)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의 뜻을 보면 원문에 '갈렙'으로 '개'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은 충성과 애정을 나타내는 이름이기도 합니다만 구속사적인 의미로는 이방인의 죄악 된 신분에게 붙여진 별명이기도 합니다.
빌립보서 3:2절을 보면 주 예수님 없는 이방인을 개라고 했습니다. 개와 행악 자는 동의어입니다. 이것이 갈렙의 인간적인 배경입니다. 그러니까 갈렙은 한 마디로 완전한 이방인이요 죄인의 예표요, 행악자의 예표인 것입니다.
이처럼 신약의 성도들은 구성 멤버가 유대인은 물론이거니와 이방인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주 예수님을 배척함이 강하기 때문에 우선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효가 차기까지 구원의 섭리가 이방인 구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약시대를 이방인의 시대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에서처럼 언약을 떠났던 자들입니다. 에서처럼 하나님을 떠났던 자들입니다. 에서처럼 팥죽 한 그릇에 영원한 축복을 팔아먹었던 자들입니다. 에서처럼 이스라엘을 떠났던 자들입니다. 에서처럼 장자권이 없는 자들입니다. 에서처럼 행악 자들입니다. 에서처럼 무할례당입니다. 갈렙처럼 개 같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갈렙에게 특별한 기업을 주신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영원한 천국을 기업으로 받는 복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3. 세례를 베풀어 주심으로 영적선민의 반열에 들어가게 하신 복입
니다.
고린도전서 12:13절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럼 갈렙은 언제 이스라엘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는 성경의 문맥과 사상으로 보아 이미 출애굽 전에 이스라엘인이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2:38절을 보면 이스라엘과 함께 중다한 잡 족이 함께 애굽을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방인이 이스라엘인이 되려면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잡 족들은 할례 받아 선민으로 합류한 자들입니다. 갈렙은 그 중의 한 사람 이었거나 그보다 더 전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모세와 함께 홍해를 건넜고 1년 후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꾼으로 선정된 것을 볼 때 그는 이미 인정받는 인물이었습니다. 더구나 그의 부친의 이름이 '여분네'로 '그가 돌이키기를 원하노라'는 뜻입니다.
성경의 이름은 뜻 없이 기록된 적이 없습니다. 이것으로 볼 때 가족적으로 개종을 한 흔적이 보입니다. 여호수아 15:17절에 그의 동생 그니스 와 조카 옷니엘도 그의 활약을 보아 이미 그들도 갈렙과 함께 개종한 것입니다.
이방인이 언약의 백성이 되는 방법으로 할례 외에는 없었다는 점에서 그가 할례를 받아 선민이 되었음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할례란 신앙고백이 전제되는 예식으로 신약시대의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신앙고백만 있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짐을 보여줍니다.
4. 믿음으로 나와 나의 가정이 구원을 받는 복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16: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했습니다.
갈렙은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친척들이 언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된 점을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방인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다 구원을 받는 다는 진리입니다. 물론 기독교는 개인구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믿을 때 가족까지도 구원하시길 약속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만 있으면 차별 없이 갈렙과 같이 모두 귀하게 쓰임 받는다는 진리입니다. 갈렙은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으로 생을 마친 신자의 모범입니다.
그가 선민이 된 것도 믿음이었고, 그가 정탐꾼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도 믿음이었고, 유다지파의 수장이 된 것도 믿음이었고, 가나안 전쟁에서 승리한 것도 기업을 분배받은 것도 모두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크게 사랑받았습니다.
히브리서 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한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약성도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5. 하나님의 은혜로 축복권을 회복하는 복입니다.
에베소서 1:3절에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시되” 라고 했습니다.
또 갈라디아서 3:9절에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갈렙을 살펴보면서 놀란 것은 그가 조상 에서가 영원히 잃어버렸던 장자 권을 다시 회복했고 더구나 영적장자지파인 유다지파의 수장이 된 점입니다. 에서는 장자 권을 잃어버리고 그것을 찾지 못해 얼마나 눈물로 통곡하며 울었습니까?
히브리서 12:17절에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갈렙이 다시 조상이 잃어버린 장자 권을 다시 회복합니다. 무엇으로 회복합니까? 믿음으로 회복합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인생이 아담으로 잃어버린 영생의 축복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면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으며 또한 아담으로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할 수 있음을 예표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갈렙에게서 그의 용기만 교훈 삼을 것이 아니라 그 갈렙이 바로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 갈렙 같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불굴의 믿음을 소유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도 갈렙처럼 귀하게 쓰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4:12절에서는 믿음만 있으면 “예수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것도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산도 옮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6. 성도의 특별 기업은 단지 믿음으로 가능한 복입니다.
에베소서 1:13절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라고 했습니다.
갈렙이 특별 기업을 받은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성공적인 정탐 사역 때문이었습니다. 함께 간 열 명 모두 그 땅을 악평하고 들어가지 못한다고 불신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온 회중 앞에서 옷을 찢으며 울부짖습니다. 민수기 14:7~9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우리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고 했습니다.
갈렙이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옷을 찢으며 역설했겠습니까? 이러한 갈렙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그 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고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멸시하고 믿지 않는 이스라엘을 모두 멸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 때 모세의 중재기도가 없었다면 그렇게 됐을 것입니다. 그 때 갈렙에게 주신 약속이 특별 기업이었습니다. 민수기 14:24절에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믿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특별 기업을 받길 원하십니까? 믿음으로 천국의 복락은 물론 그리스도 안에서 예비하신 아름다운 신분들이 주어지고, 믿음에는 언제나 특별한 일이 따릅니다. 상상을 초월한 일이 따릅니다. 이것이 특별 기업입니다.
그러므로 불굴의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십시오. 믿음은 불가능도 가능케 합니다. 안 되는 것도 되게 합니다. 없는 것도 있게 합니다. 갈렙처럼 특별함을 기업으로 받기를 원하시면 길렙같은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모두가 안 된다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죽게 되었다고 망하게 되었다고 슬피 울어도 믿음에 굳게 선자에게는 하나님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7.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받는 복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3:7절에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9절에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도 이방인인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이를 갊이 있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11~12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갈렙이 헤브론을 기업으로 받았는데 헤브론은 이스라엘의 유서 깊은 성지입니다. 헤브론에는 아브라함이 값을 주고 헷 족속에게 구입한 막벨라굴이 있습니다(창세기 23:19).
이곳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리브가와 야곱과 레아 그리고 요셉의 뼈가 묻힌 이스라엘의 선영입니다(창25:8-9, 49:31, 50:13). 야곱도 요셉도 애굽에서 죽으면서도 반드시 이곳에 장사하게 해달라고 당부했던 이스라엘의 뿌리요 정신적인 본향입니다. 보통 장소가 아닙니다. 이곳을 갈렙이 특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수14:13).
이 대목에서 신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격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본래 조상의 선영이 있던 곳은 그 조상의 직계 종손이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야곱의 자손도 아닌 갈렙이 받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깊은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을 가진 자는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공유하며 또 아브라함의 품안에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당히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자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도들도 구약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7절에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9절에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갈렙의 기업만 부러워하지 말고 우리가 바로 갈렙의 복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8. 그런데 끝까지 믿는 불굴의 믿음의 복입니다.
여호수아 14:12절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고 했습니다.
갈렙이 구한 헤브론은 그토록 유서 깊은 곳이지만 그러나 정복하기에는 너무나도 험한 곳이었습니다. 그가 받은 헤브론은 지리적으로는 가나안의 최대의 산악지대입니다. 산들은 높고 산의 하부는 대개가 침식으로 낭떠러지를 이룬 바위로 된 암석지대이며 뜨거운 사막지대입니다. 헤브론은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험악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14:12절에 갈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산악지대였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그곳에는 거인족인 아낙자손들이 아직까지 거하는 가나안의 최대의 취약지구였습니다.
여호수아 14:15절에 이곳을 정복한 후에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라는 기록대로 가나안의 최고의 화근지역이었습니다. 마치 6,25전쟁이 끝난 후에 도 공비가 남아 있던 지리산이나 한라산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거인들은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기럇 아르바의 자손들이었습니다. 그곳의 성읍은 크고 견고했습니다(수 14:12).
그러니까 갈렙은 결코 자신의 공로를 내세워 결코 요행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깊은 복음이 담겨있습니다. 믿음의 길은 좁고 험하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아름다운 곳입니다. 아브라함의 복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고난도 받게 됩니다. 이 길은 넓고 대접받는 길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장 큰 아낙 기럇 아르바는 우리 죄 성의 상징입니다. 즉 성화적인 차원에서는 가야 할 길이 험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온전케 하시기 위한 많은 연단의 과정도 거쳐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헤브론의 환경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달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편하게 주 예수님을 믿을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천국을 침노하는 영적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85세 된 갈렙이 자신의 힘과 용기를 과시함 같이 이렇게 담대하고 용기 있는 신앙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9. 남녀노소 누구에게든지 기업이 주어지는 복입니다.
골로새서 1:12절에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갈렙은 딸에게도 기업을 주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딸에게는 기업을 주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15:18~19절에서 그의 딸이 밭을 구하고 당시의 보물인 위샘과 아래 샘을 구할 때 그는 그것을 허락했습니다.
당시 샘이 얼마나 귀한 보물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복음시대에는 남녀의 구별이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3:7절에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부언하자면 여기 위샘과 아래 샘은 영적으로 영혼과 육체라는 양 방향에서 역사하사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성령님의 이중적인 사역을 암시합니다.
10. 가장 사랑하고 아름다운 것을 드리는 복입니다.
여호수아 15:16절에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했습니다.
갈렙에게는 악사란 딸이 있었습니다. 그 딸의 이름은 '복사뼈 장식'이라는 뜻입니다. 복사뼈는 다리 밑 발의 뼈입니다. 이 복사뼈 장식이란 이름에는 그가 그 만큼 사랑하는 딸임을 나타냄과 동시에 그 이름의 아름다움이란 곧 그 딸의 아름다움을 나타냅니다.
마치 욥의 딸들이 아름다웠는데 그래서 그들의 이름을 아릅답게 지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딸이었건만 갈렙은 유다지파의 드빌 정복을 위하여 딸을 걸었습니다. 드빌은 보통 성이 아니었습니다. 드빌에는 아낙자손이 점령하고 있었고 그 성은 여호수아 10장을 보면 여호수아가 정복 전쟁 때 이미 정복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너무도 강하여 재점령 당했습니다. 이런 문제지역입니다. 이 전투를 앞에 두고 용사들에게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갈렙은 그곳을 위하여 그의 딸을 건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조카 옷니엘이 드빌을 쳐서 악사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교훈합니까? 성도는 성령님을 받아 주님을 가장 사랑하게 됨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봉사하고 투자하고 일해야 함을 교훈합니다. 자신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주 앞에 드려 봉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갈렙이 딸을 바치고 나니 결국은 남의 아내가 아니라 자기 조카 옷니엘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옷니엘은 사사시대의 유명한 사사입니다. 결국은 자기를 위한 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딸도 밭도 샘도 남의 것이 되지 않았고 사사의 부인이니까 왕비가 된 셈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충성하는 것은 결코 허비가 아니요 나를 위한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위해서 충성하면 내 영혼이 살고 내 가족이 살고 내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복을 받고 후손이 천대에 이르러 복을 받는 것입니다.
11.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천성에 입성하는 복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일세 국민 중에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뿐입니다. 여기서 갈렙을 우리 신자로 비유해 본다면 여호수아는 주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그런데 갈렙은 혼자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고 여호수아와 함께 들어갔는데 이 사실을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마지막 임종 시까지도 주님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너무나 행복한 존재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본향에도 우리 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 손을 잡고 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갈렙을 통해 주시는 마지막의 교훈입니다.
◈ 결론
여러분! 갈렙은 소망 없는 이방인이었지만 믿음으로 성공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예비 된 하나님의 특별 기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개척이 필요하듯 더욱 믿음에 서서 이루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믿음을 구하여 갈렙같은 믿음의 용사가 되십시다. 갈렙 같은 갈렙의 신앙을 가지십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갈렙에게 주신 모든 복을 우리에게도 넘치게 안겨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