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신보
1915년 12월 창간
기독교 주간신문
사 장 : 크램
편집인 : 김필수
발행처 : 기독신보사
의 의 : 1915년 12월부터 1937년 8월까지
기독교 주간신문, 사장 크램, 편집인 김필수, 발행처 기독신보사, 이 신문은 장로교측의 (예수교신보)와 감리교측의 (그리스도회보)를 통합하여 발간한 것으로 한국교회 및 신학에 관한 내용은 물론 민중운동, 독립운동, 사회운동, 등에 관한 기사도 다수 게재되어 있어 한국교회사 및 민족운동사 연구에 있어서도 크나큰 가치가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기독교사 연구에 필수불가결한 자료이다.
* 우리교회 사료관에는 <영인본>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기독신보의 기사검색이 가능합니다.
1915년 12월부터 1937년 8월까지 장로회와 감리회의 연합으로 발행된『기독신보(基督申報, The Christian Messenger)』에 실린 마산교회 기사 두 개를 찾았네요. 본포교회 임종훈 목사께서 발굴한 이 자료는 밀양이라는 시골 산간마을에 위치했던 우리 교회가 당시에도 관심거리가 되었던 영향력 있는 교회였다는 점이죠. 1928년과 1929년에 기사회되었는데 당시 우리 교회는 아직 당회도 구성되기 이전이었습니다. 1928년부터 1929년까지 당시 교역자는 최종수 전도사였는데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또 기록에 의하면 1929년 12월에 예원배 선교사가 우리 교회를 순회하였고 그때에 초대 박수민 장로가 장립되었던 점을 미루어 짐작해 보건데 어떻게 이와 같은 기사가 전국적인 교계 신문이었던 <기독신보>에 기사화될 수 있었을까? 한가지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독로회 창립멤버였던 김응진 목사가 마산교회 초대 교역자(1917년)였기 때문에 그분의 영향력이 전국적이어서 아마도 이와 같은 기사를 제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긴 합니다. 어쨌거나 너무도 귀한 사료가 아닐 수 없습니다.
The Christian Messenger, published by the union of the presbytery and the methodist churchfrom December, 1915 to August, 1937, advocates in the very title its aim for Christianity’strans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