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마을(중)
이번호에서는 남산의 가장 동편에 위치한 평동과 가장 남쪽의 내남면 노곡리, 서남쪽의 이조리와 배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배동은 35번 국도를 따라 형성된 마을로 방문객들이 늘어나면서 식당과 상가가 조성되고 있다. 또 배동에서 울상방향으로 35번 국도를 따라 내남면 용장리와 이조리, 노곡리가 줄지어 가옥들이 늘어서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내남면 용장리는 보물과 문화유적, 김시습의 금오신화 탄생지 등으로 널리 알려진 마을이다. 또 노곡리도 최근 엎드린 채 발견된 여래입불상 등으로 유명해진 마을이다. 용장리를 제외한 마을들의 이야기를 이번호에 기록한다.
◆신라 망국의 터 배동
통일신라가 화려한 막을 내리게 된 망국의 터 포석정이 배동에 있다. 배동은 남산의 서쪽 가운데에서 살짝 북쪽에 위치해 삼릉으로 이어지는 35번 국도를 따라 마을이 길게 형성돼 있다. 배동은 자연부락 배리마을과 포석마을로 구성됐다.
배리마을은 옛날 외곽에 있는 큰 벼슬아치 집에서 제를 올리는데 그 집의 풍속에 따라 스님이 술잔을 먼저 올려야 하므로 마땅한 사람을 고르다가 시간을 넘겨 제를 올릴 시간이 늦어졌다. 마침 길을 가는 스님이 있어 하인들이 사정을 해 모시고 왔다. 주인이 스님의 행색을 보니 너무 남루해 불쾌하게 여겨 도로 돌려보냈다. 그 순간 스님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자 예사 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주인이 사람을 풀어 뒤쫒아 보니 지금의 배리마을 뒤편 큰 절로 들어갔다. 따라온 주인과 마을사람들이 문 밖에 엎드려 절을 하며 사죄했다하여 사람들이 마을 이름을 ‘배리’라고 불렀다. 배리는 남산을 찾는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삼릉계로 이어지는 길목이라 마을 안길을 통해 등산로가 이어져 있다. 이로 인해 마을에는 공장 보다 칼국수집을 비롯해 오리백숙집 등의 식당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있다.
또 포석마을은 조선말기에 교리 최부자의 후손이 이곳에 옮겨와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이 포석정 옆에 있어 ‘포석마을’이라 일컫게 됐다. 포석마을에서 탑동의 남간마을과 식혜곡마을로 이어지는 안길이 있다. 또 포석정에서 동남산으로 이어지는 순환도로가 1960년대에 건설돼 지금까지 차량으로 남산을 횡단할 수도 있다. 포석정 바로 앞에 지마왕릉이 있고, 순환도로를 따라가면 윤을곡마애불좌상, 부흥사, 늠비봉오층석탑을 볼 수 있다.
신라의 역사를 처음 연 곳이라는 뜻, 문이 열린 곳이라는 ‘문뜸고개’, 신의 산이라는 뜻을 가진 신삼마루, 말안장 골이라는 뜻 또는 말안장 같이 생긴 골짜기라는 안장골, 공동묘지가 있는 작은 산이라는 소공동산, 황새모양으로 새겨진 돌이 있는 봇도랑 황새선창, 상여처럼 생긴 바위 생이바우 등등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진 지명들이 많은 역사적인 마을이다.
◆남산의 가장 동쪽마을 평동
평동은 남산의 가장 동쪽에 위치해 있으면서 수북마을, 수남마을, 사리마을 등의 3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된 마을이다. 수북마을과 수남마을은 남산동의 매끝마을을 지나 문천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마을이다. 또 수남마을에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남산끝자락으로 연결된 마을이 사리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좁은 도로가 실개천처럼 길게 이어져 있고 집들은 대부분 남산의 발뿌리에 연결돼 있다. 자연부락들이 모두 50여호에서 80여호에 이르는 고만고만한 크기의 마을로 남산의 정기를 갈무리하고 있다.
수북마을은 문천의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가매실 또는 부곡이라고도 한다. 마을 앞으로 가맷들이 펼쳐져 있는 평동의 서북쪽 마을이다.
수남마을은 평동의 남쪽에 있는 마을로 문천의 남쪽에 위치해 있어 물길의 남쪽마을이란 뜻으로 수남마을이라 부른다. 평탄한 평야를 점유한 이 마을은 본래 굼들에 있다가 지금의 이곳으로 이주해 형성됐다. 마을의 형상이 거북 모양이라하여 구음들 또는 굼들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마을이 파여 굼을 이루므로 구음각단, 구음마을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사리마을은 200여년 전에 월성 정씨와 경주 최씨가 처음 마을을 개척했다고 전하고 있다. 뒤에 오씨와 도씨를 포함한 4대 씨족의 후손으로부터 많은 선비가 배출된 마을이라 사리라고 불렀다. 사리는 평동의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대규모 축사가 있다.
남산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지만 다른 마을과 다르게 사찰이나 불교적 문화재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다.
야수처럼 생긴 야수바우, 새알 모양으로 생긴 사리 동쪽의 작은 산 얄미 또는 응미로 불리는 작은 산, 조선말엽에 세웠다고 어봉사로 불리는 절, 초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다고 하는 진탯등의 남쪽에 있는 골짜기 초가집골 등의 지명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남산 내남면의 마을들
남산의 서남단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 내남면 용장리와 이조리, 노곡리다. 남남산의 대부분과 서남산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내남면으로 분류되는 마을들이 남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용장사지의 삼층석탑과 석조여래좌상, 마애여래좌상, 천룡사의 삼층석탑 등 남산이 보유하고 있는 12점의 보물 중 4점이 용장리에 있다. 특히 용장리는 1리부터 3리까지 남산계곡 깊숙한 곳까지 이어지면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큰 마을이다.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탄생한 곳도 용장리다.
노곡리와 이조리에도 유명 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다. 최진립 장군의 용산서원을 비롯한 역사적 연구가 필요한 많은 사료들이 남아 있는 마을들이다.
◆천년와불 엎드려 있는 노곡리
노곡리는 옛날 이 마을에 무성하게 자란 갈대가 마을의 울타리 역할을 한다고해서 노실 또는 노곡이라 불렀다. 그리고 노곡역이 있어 노곡역, 역말, 역촌이라고도 했다. 1914년 행정구역 정리에 의해 백운리를 병합해 노곡리로 칭했다. 노곡리의 북동쪽으로 남산이 험한 기세로 능선과 계곡을 이어 줄달음하고 있다. 노곡리는 백운암아래 열암곡으로 들어서면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열암곡 석불좌상과 최근 엎드린 채 발견돼 화재를 모았던 마애석불입상이 있어 유명하게 된 마을이기도 하다.
노곡리는 상별내마을, 하별내마을, 제공마을, 백운암마을 등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돼 있다. 마을이름의 별내라는 뜻은 마을 앞으로 흐르는 내가 맑고 투명해 하늘의 별이 비친다고 해서 별내 또는 성천이라고 불렀다. 제공마을은 경주 정씨 시조의 묘와 재실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재궁마을이라고도 불린다. 백운암마을은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거대한 마애불입상이 있는 마을로 남산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름 난 문화재와 아직 알려지지 않은 비지정문화재들이 바위틈과 논과 밭, 산야에 묻혀있는 노곡리.
이 마을은 남남산으로 분류돼고 있다. 남남산을 찾는 방문객들의 발길은 뜸한 편이다. 문화재탐방객들이 삼릉계로 50여명이 신청하면 남남산 탐방은 겨우 5~6명이 신청할 정도다. 남산연구소의 전담 문화재해설사는 “남남산을 찾는 사람들이 적어 일하는 신바람은 스스로 일깨워야 한다”며 “알려진 문화재는 물론 아직 학계에도 잘 알려지지 않고 발굴되지 않은 비지정문화재들이 많은 편”이라고 소개했다. 노곡리는 아직 노출되지 않은 노다지를 안고 있는 마을인 것이다.
◆최진립 장군 신도비 있는 이조리
내남면 이조리는 배동에서 울산방향으로 35번 국도를 따라 노곡리로 이어지는 남산의 서남쪽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다.
이조리는 병자호란 때 명장으로 이름 높은 최진립 장군이 개척한 마을이다. 또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개의 무덤이 있다고 해서 개무듬, 개무덤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잘못 전해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조리는 미역내와 별내, 이조내의 세갈래 물줄기가 이곳에서 합수해 포회 혹은 가암이라고도 불린다.
이조리에 위치한 용산마을은 예전에 면사무소가 위치하고 있어 남산 주변에서 가장 넓은 마을로 서남산에서 남남산으로 진입하는 길목이다. 지금은 내남교도소가 마을 입구에 위치해 많은 사람들이 관광 이외의 목적으로도 찾고 있다. 교도소 입구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작은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최진립 장군의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는 비신과 비각은 조선시대에 세워졌으나 비석의 기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귀부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학계에 보고되고 있어 아이러니 하다.
마을 앞에는 35번 국도와 언양, 울산, 외동으로 연결되는 교차로가 있고 최근 도로확포장공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어 마을이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다.
첫댓글 이조리..............고려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그때에도 남산의 정기는 굳건하게 흘렀던듯....
남루한 옷을 입은 스님을 소홀히 접대했다가
낭패를 당해
찾아가 절을 하며 사죄했다 하여 배리..... 재미있는 전설들이 주저리주저리.... 남산은 양파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