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이 ‘아지오’를 신는 그날까지를 꿈꾸는
감각이 뛰어난 청각장애인들이 일하는 명품구두회사 ‘구두만드는풍경’
글 박효심 사진 구두만드는풍경
장애로 인한 어려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것이 생활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장애인들은 가정을 이루었지만 일반인에 비해 가난이 숙명처럼 내림되어야 하는 아픔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일자리를 통한 자립일 것이다. 노동은 개인의 생계수단이자 노동의 기쁨을 누리는 권리이다. 노동 가능한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그들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 삶을 개척하여 성취하도록 조성해 주는 것이야말로 장애인 복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두만드는풍경’은 안정된 직장생활로 안정된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자 만들어진 노동부가 인정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최소 30 가정 정도 가정 경제적 자립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구두만드는풍경을 찾아가 보았다.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영태리에 위치한 수제화 전문회사 구두만드는풍경 198㎡(60평) 정도의 공장에 들어서자 기계소리와 함께 신발을 만드는 직원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구두만드는풍경’은 1급 시각장애인 유석영 파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장을 비롯 사회복지사 3명, 청각장애인 직원 4명이 한땀 한땀 공들여 직접 손으로 구두를 만드는 회사이다.
유석영 관장이 처음 임명된 당시인 2006년 11월에는 복지회관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운전면허. 꽃꽂이교실 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자립이라는 것을 절감했고, 과거 구두제조업체를 견학 갔다가 본 청각장애인들의 행복한 미소를 떠올려 구두공장을 차리기로 했다.
유석영 관장은 말한다. “특히 장애인 직업재활은 잘 되는 사업이 있으면 모두가 거기에 달려들기 때문에 결국 모두가 경쟁력을 잃어버리죠. 즉 장애인직업재활의 문제점은 ‘똑같은’, ‘틀에 박힌 직종’에 있어요. 그래서 새로운 직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고민하던 중 직접 명품 구두를 생산하기로 마음먹었었습니다. 당시 제조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중국 등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국내 굴지의 구두 회사에서 수년간 열심히 구두를 만들던 청각장애인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아픔이 있던 때였습니다.”
창업 당시 가장 편한 구두, 품질로 승부하자는 당찬 꿈을 가지고 청각장애인들을 모아 사업설명회까지 하면서 준비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1억여 원의 자금을 지원받고, 그간 모은 돈을 보태 공장과 중고기계 12대를 사들였다. 국내 유명 제화업체에 천연가죽을 납품하는 한 피혁회사와 MOU를 맺고 가죽원단을 지원받았다. 수소문 끝에 40년 경력의 구두장인 안모 씨를 삼고초려로 모셔왔다. 그리고 2009년 12월 소비자들이 소리를 못 듣는 청각장애인들이 열심히 구두를 만드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도록 회사명을 ‘구두만드는풍경’으로 짓고 창업했다. 브랜드명은 직원 공모를 통해 이탈리아어로 ‘편안하다’, ‘안락하다’는 의미의 '아지오(AGIO)'로 정했다.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창업한다는 것과 이미 대기업의 유명 브랜드부터 해외명품, 일반화 등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신발시장에 새로운 브랜드가 진출한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다행히 청각장애인은 눈썰미가 일반인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기술습득이 빨랐다. 디자인과 제품의 종류에 대한 시장 조사와 기획 회의를 거듭하며 명실상부한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불철주야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광명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의 소개로 하루 종일 신고 있어도 피로 하지 않고 편안한 좋은 신발을 만들어줄 수 있겠느냐는 수녀님들의 제안을 받게 되었다. 문을 열자마자 들어온 첫 번째 단체주문이었다. 수녀원 본원은 파주에서 멀리 떨어진 공주에 자리하고 있었다. 수녀님들은 "이 신발은 굽이 너무 높고, 이 신발은 볼이 너무 좁고, 이 신발은 너무 푹신 거리며, 이 신발은 너무 무겁고 잘 미끄러져요" 등등 신고 있는 신발의 문제점에 대해 토로했다. 이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해 신발을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과 이미 많은 신발 제조업체가 다녀간 흔적이 엿보였고, 그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신발을 만드는 그 자체를 포기했었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좀 더 기술력을 갖추었을 때 도전해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런 신발을 만들어야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뜻을 같이해 직원들은 도전장을 내걸었고, 주문에 부합하는 제품 생산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제품 검수를 위해 다섯 차례 이상 공주 수녀원을 방문하면서, 소비자의 의미와 명품으로 가는 길이 그리 쉽지 않다는 소중한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3개월 이상의 피나는 노력 끝에 제품이 완성되었고, 300켤레를 납품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 뒤 이 신발은 8종의 신사화와 함께 언제나 전시되고 있으며, 일반 여성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허리와 무릎을 보호해 주는 ‘효도화’로 진화되어 가장 잘 팔리는 신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처음에는 어떻게 만들까가 고민이었는데 다음은 인정받은 품질의 구두를 어떻게 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차례였다. 사회복지사 3명은 공공기관의 장소를 할애 받거나 아는 사람들을 직접 방문해서 파는 영업방식을 택했다. 이처럼 구두만드는풍경은 따로 매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직원들의 발품이 곧 매출”이라는 유석영 관장의 말처럼 직원들이 직접 대규모 이벤트 행사나 공공기관의 행사 등에 참여해 구두를 판매하고 있다. 전화주문이나 맞춤제작, 서울역사, 국회매장행사나 파주시 지원행사 등에 부스를 마련해 구두를 판매하고 있다. 유시민. 서유석. 배한성 씨 등 유명인사들이 모델이 되어 돕고 있다. 지난해부터 9월초 행사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구두데이'를 열어 국회의원 및 임직원들로부터도 호응을 얻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고객이다. 구두만드는풍경의 ‘아지오’는 그렇게 입소문을 타고 잘 만든 명품 구두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청각장애로 오히려 손의 감각이 뛰어난 구두장인이 만든 아지오는 다른 브랜드와 비교해 손색이 없는 품질이다. 얼마 전부터 신세계 백화점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업계에서 품질을 인정받은 셈이다.
이렇듯 업계에서 품질을 인정받으며 성장하고 있지만 홍보를 맡고 있는 문은경 대리는 아직도 풀어야할 어려움들이 많이 있다고 말한다. “공장에는 ‘말이 안 통하면 눈치로 통하자’는 팻말이 걸려있습니다. 그만큼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죠. 기술을 가르치는 장인과의 소통은 물론 직원들 간에도 소통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오해로 인해 마찰이 빚어질 때가 많이 있어요. 또 문화차이로 인한 어려움도 많이 있습니다. 조직에 대한 룰을 지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문제가 야기될 때도 있어 안타까울 때가 많이 있죠. 하지만 청각장애인들이 진정한 장인정인으로 구두를 만들어 일반시장에서 아지오가 자리매김하고 청각장애인들이 생활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구두만드는풍경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 파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은 현재 장애인들의 재활을 위해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 ‘구두야 놀자’를 운영하고 있다. 리폼과 A/S, 창업에 관한 교육을 매주 2회 구두를만드는풍경 공장에서 실시한다.
비록 듣지 못하는 장애를 가졌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손끝에서 나오는 촉감으로 신발을 짓는 정성어린 기술을 갖는 진정한 장인으로 우뚝 서 사회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직업재활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취업, 교육 및 제품 문의 031)957-9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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