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 2020년 9월 23일(수)
. 장소 : 산본중심가, 까페 마실
. 참석 : 곽미경, 김경아, 김성애, 김미숙, 심박
. 내용 : 권여선의 단편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중 첫번째 단편 '봄밤' 읽고 나눔하기 / 발제 심박
<줄거리>
권여선_봄밤
권여선의 단편집 <안녕, 주정뱅이>의 첫 번째 단편 ‘봄밤’에는 두 인물이 주인공이다. 영경과 수환. 각각의 가슴 아픈 세월을 가진 두 사람은 각각의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난다.그때 나이 43세.
영경
서른둘에 결혼했고 1년 반 만에 이혼했고 남편은 이혼하자마자 다른 여자와 재혼했다. 처음엔 백일된 아들의 양육을 영경이 맡을 수 있었으나 시부모가 남편과 짜고 몰래 아이를 데리고 이민을 떠나버렸다. 경찰에 납치신고를 하고 소송을 준비하였으나 결국 그녀는 술에 의존하게 되고 알콜릭 증상이 심해지면서 20년 동안 재직한 국어교사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수환
선반, 절단, 용접 등 쇳일을 스무살에 시작해 작은 규모의 철공소를 차려 기반을 닦았으나 거래처의 횡포로 부도를 맞았다. 위장이혼을 제안한 아내가 이혼하자마자 자기 명의로 변경된 집과 재산을 모두 팔아 잠적했다. 다행히 자식은 없었다. 서른아홉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밤마다 자살할 시기를 저울질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고있다.
친구의 재혼식장에서 만난 그들은 처음부터 서로에게 마음이 끌렸고 술 먹고 뻗은 영경을 수환이 업어서 집에 데려다 주면서 인연이 연결되어 같이 살게 되었다. 그 때부터 12년간 그들은 딱 한번만 빼고는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 딱 한번은 수환이 재생불능의 류머티즘 병을 얻어 결국 시한부 통보를 받고 요양병원에 들어간 두 달이다. 영경도 알콜중독과 간경화, 심각한 영양실조로 같은 수환과 같은 곳에 들어가게 된다. 요양원 사람들은 그들이 각자 병실에 있다가 아침에 만나는 것을 이산가족 상봉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난히 의가 좋고 사랑스러운 대신 화약처럼 아슬아슬한 그들 부부는 ‘알류 커플’이라 불렸다.
수환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는 동안 영경의 증상도 나빠졌다. 술을 못 먹게 하는 시설의 규칙으로 괴로워하던 영경은 술을 먹기 위해 수환에게 말하고 시설을 나온다. 그 시간이 처음에는 하루가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고 일주일이 되었다. 담당의사는 격리 입원해야 한다고 하지만 영경은 그 말을 듣지 않는다. 마지막 외출 날에도 영경은 수환에게 이틀만 나갔다오겠다고 했고 수환은 영경 몰래 강력한 진통제를 맞으면서까지 괜찮은 척하며 영경을 마중한다. 영경이 의식불명으로 요양원의 앰뷸런스에 실려 왔을 때는 수환의 장례가 다 끝난 후였다. 영경은 그 이후로 의식을 되찾았지만 온전히 되찾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수환을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자신의 인생에서 뭔가 엄청난 것이 증발했다는 것만은 느끼고 있는 듯했다. 가끔 영경의 눈 앞에 무엇인가 떠오르곤 했는데 그럴 때면 오랜 시간 영경은 울기만 했다.
“요양원 사람들은 수환이 죽었을 때 자신들이 연락 두절인 영경에게 품었던 단단한 적의가 푹 끓인 무처럼 물러져 깊은 동정과 연민으로 바뀐 것을 느꼈다. 영경의 온전치 못한 정신이 수환을 보낼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견뎠다는 것을, 늙은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영경은 마지막 외출에서 술을 마시며 <김수영의 시 ‘봄밤’>을 중얼거리고 밤거리를 걸으며 외친다)
<김수영의 시 '봄밤'>
봄밤 _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