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일은 무엇일까?
● 치매에 걸린 사람은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가 없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일은 무엇일까? 사람들마다 모두 다르게 답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일반적으로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치매’가 아닐까 싶다. 치매의 상태에 있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더 이상 한 개인이라고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치매에 걸리는 일이 무서운 것은 단순히 기억을 상실하거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보다 무서운 것은 ‘자유 의지’를 행사할 수 없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무서운 것일 것이다. 우리는 이를 철학자 베르그송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베르그송은 『물질과 기억』에서 ‘신경의 손상과 자유의지와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따라서 관련된 신경 요소들은 수용된 진동들에 그 효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신경 요소들은 의지의 불확정성(indétermination du vouloir)을 상징한다. 이 신경 요소들의 통일성에 이 의지의 불확정성이 달려(dépend)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신경 요소들의 손상은 우리의 가능한 행동을 감소시키면서 그 만큼 우리들의 지각을 감소시킬 것이다.”
=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 중에서 =
위 베르그송의 진술은 한 마디로 신경요소들의 통일성이 상실되면 인간은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베르그송이 ‘의지의 불확정성(indétermination)’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의지란 본질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음’ 즉 ‘자유로운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지의 불확정성이 신경 요소들의 통일성에 달려있다’는 말은 자유로운 의지의 발로는 그 만큼 신경요소들이 잘 통일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반대로 신경요소들의 통일성이 무너지면 그만큼 자유로운 의지의 행사가 감소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분석은 과학적 차원 혹은 현상학적 차원의 분석이며, 의지의 자유가 오직 신경 요소들의 통일성과만 관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즉 신경요소들의 통일성은 자유로운 의지의 행사에 대해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닐 것이다.
●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없는 삶은 더 이상 인간적인 삶이 아니다.
어쨌든 치매에 걸린 사람이란 한 마디로 뇌의 신경세포가 손상을 입어서 기억을 상실한 것이며(기억을 불러올 수 없으며), 또 신경 전달이 잘 되지 않아서 스스로의 의지를 행동으로 실현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치매에 걸린 사람은 소변을 보고 싶지 않은데도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소변을 보게 되고, 잠들고 싶은데 잠을 잘 수 없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되고, 산책을 하고 싶은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게 되고... 등 등 이 같은 일들, 한 마디로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없는 일들이 일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닐 것이며, 더 이상 인간적인 삶이라고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런데 어쩌면 세상에는 치매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자유의지를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진실을 말하고 싶은데 그 어떤 이유로 진실을 말할 수 없고, 옳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 어떤 이유로 옳다고 말할 수가 없고, 부당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부당하다고 말을 할 수가 없고, 그만 두고 싶은 일이지만 그만 둘 수도 없고,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렇게 주장할 수가 없고, 정의롭게 행동하고 싶은데 정의를 말할 수조차 없고... 등 등 자신의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혹은 그에 반하여 행동하여야만 하는 일들을 일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경우 윤리도덕적인 일들에 혹은 법률적인 일들에 있어서 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양심을 가책을 더 느끼게 되고, 양심의 가책을 피하기 위해 급기야 이성으로 양심을 눌러 더 이상 양심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더 이상 무엇이 옳고 그런지 반성(성찰)을 하지 못하게 되고 오직 주변사람들의 시선이나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만 움직이게 되고,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삶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되면 어떤 관점에서는 마치 치매에 걸린 사람마냥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삶이 되어 버린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자신이 그러한 ‘도덕적 치매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옥에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에서 살아가는 끔찍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다양한 모습의 끔찍함이 등장하는데, 1옥~9옥까지 강도를 더해 가면서 끔찍함의 정도도 커진다, 그런데 이 모든 지옥의 사람들엑 공통되는 것이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지상에서의 끔찍했던 삶을 되풀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폭력을 행사했던 사람들은 끊임없이 폭력을 행사하고 있고, 폭언과 거짓말을 했던 사람들은 대화나 사는 것이 곧 폭언과 거짓말로 점철되고 있다. 전쟁을 일으킨 사람은 매 순간 전쟁을 기획하고 있고, 사기를 친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기를 관하고 사기를 치고 있다. 더 이상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알 수도 없이 현세에서 자신들이 습관적으로 가졌던 악습들이 곧 자신들의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물론 이러한 묘사는 일종의 ‘알레고리’ 일 것이다. 이 알레고리에서도 근본적인 문제는 곧 자신이 원하는 행동, 자신이 원하는 삶, 자신이 옳다고 하는 것, 자신이 해야만 한다고 여기는 의무. 이러한 것과 전혀 무관하게 한 마디로 ‘자유의지가 완전히 박탈된’ 상태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법과 정의와 멀어지게 되면 모든 생명체들 중 가장 끔찍하게 된다고 하였는데, 베르그송이나 단테는 ‘전혀 자신의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곧 법과 정의와 멀어지게 되는 것 보다 더 큰 끔찍함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