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과의 치수고치기'로 은퇴 후 첫 행마를 하는 이세돌 9단.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세계바둑계를 호령했던 불세출의 승부사가 두점을 먼저 놓고 대결을 시작한다.
은퇴 이세돌, 첫 행마는 AI와 치수고치기
두점(역덤 7.5)으로 시작… 세 차례 대국
이세돌 9단이 깔고(접히고) 둔다. 그리고 치수고치기로 자존심을 건다.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보도되어 왔던 이세돌 9단의 은퇴대국이 확정됐다. 이세돌 9단은 오는 18ㆍ19ㆍ21일에 세 판의 '은퇴기'를 벌인다. 대결 상대는 AI바둑 '한돌'이다.
24년 가까이 프로 활동하며 세계바둑계의 정점에 섰던 불세출의 스타 기사 이세돌 9단은 지난달 19일 한국기원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현역 프로기사직을 마감했다.
AI와의 치수고치기로 은퇴 후 첫 행마를 하는 이세돌 9단은 "은퇴대국에 욕심이 있었다"면서 "생각나는 기사분 중에 두 분을 뽑는다면 이창호 국수님과 구리 9단인데 부담스러워하실 것 같아 부탁드리지 못했고, 그냥 가기에는 개인적으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는 심정을 밝힌 바 있다.
▲ 프로 통산 1324승3무577패를 남겼다. 69.7%의 승률이다.
'한돌'은 한게임바둑을 서비스하고 있는 NHN이 국내 게임업계 최초로 자체개발한 AI바둑이다. 1999년부터 한게임바둑을 통해 쌓아온 방대한 바둑 데이터를 기반으로 10개월 정도의 개발 기간을 거쳐 2017년 12월에 출시됐다.
공개대국 첫 등장은 지난 1월 국내 최정상권 프로기사 톱5와 벌인 릴레이 대결. 당시 신민준 9단, 이동훈 9단, 김지석 9단, 박정환 9단, 신진서 9단을 차례로 꺾으며 화제를 일으켰다. 이어 지난 8월에는 첫 출전한 AI바둑대회(2019 중신증권배 세계AI오픈)에서 3위에 오르며 실력을 입증했다.
세 판의 대국은 각각 제한시간 2시간, 초읽기 1분 3회로 진행된다. 이번 대결이 더욱 주목을 받는 점은 이세돌 9단이 접혀서 시작하고, 또 승패에 따라 '치수'를 고쳐 나간다는 것이다. 치수(置數)는 실력차를 보완하기 위한 장치로 차이가 클수록 치석(置石ㆍ미리 놓는 돌)의 개수가 늘어난다.
치수고치기는 흥미 증대를 위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의견 일치를 본 방식이다. 첫 판은 이세돌 9단이 두점을 놓고 시작한다. 다만 7집반의 덤을 한돌에 준다. 일반적인 접바둑은 덤이 없지만 AI 시스템의 초깃값 설정 때문에 불가피하다.
치수는 매판 승패에 따라 한점씩 오르내린다. 이세돌이 2연패할 경우 최종 3국은 넉점까지 올라간다. 반대로 이세돌 9단이 첫 판을 이기면 2국은 '호선'으로 내려온다. 이세돌 9단이 흑으로 먼저 두게 되지만 7집반의 덤을 주므로 사실상 호선대국과 같은 조건이 되는 것이다. 2연승을 거두면 3국은 한돌이 흑으로 두어야 한다.
▲ 유리한 조건의 접바둑으로 시작하지만 이세돌 9단이 7집반의 덤을 부담하는 두점으로는 어려울 거라는 예상이 많다.
상수에게 지도기를 받을 때나 두는 접히는 바둑을 이세돌 9단은 프로에 입문한 후로부터 공개적으로 처음 두게 된다. 상당한 부담과 함께 패자에게는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치수고치기도 프로들의 승부에서는 거의 없다.
AI와의 공개적인 치수고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AI가 최정상 프로기사들의 실력을 이미 넘어섰고, 그렇다면 그 차이는 어느 정도인지, 정치수는 어떻게 되는지를 두고 바둑계와 바둑팬들은 설왕설래해 왔다. 이번 대결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게 됐다.
현역 시절 AI 공부와는 담을 쌓아왔던 이세돌 9단이지만 프로 승부사 인생을 정리하는 의미 있는 대국을 위해 '공부'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동안 접바둑을 두지 않았던 한돌 또한 최고의 대국 파트너가 되기 위해 새로운 환경을 훈련 중이다.
▲ 프로 통산 타이틀 획득수는 50회. 국제대회가 18회(메이저 대회 14회), 국내대회가 3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