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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리스 비극 개관, 아가멤논
그리스 시대는 세 가지로 나뉘어진다. 크레테, 미케네, 도시국가. 그런데 미케네와 도시국가 사이에 암흑기가 있고, 그 후에 아르카익 시대(620-480년 살라미스), 그 다음이 고전 시대(480-322), 그 다음이 헬레니즘 시대(322-31)다. 이 세가지 시대를 통틀어 도시국가라고 부른다. 아르카익 시대 전까지, 그리스의 식민지들은 다방면의 정신활동이 활발했던 반면 그리스는 잠잠했다. 그러나 그리스는 앗티케 비극을 완성하고 서양 드라마의 토대를 쌓는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 비극에 대한 논쟁은 아직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냥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서 그리스 안에서 비극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보자. 비극은 디튀람보스와 사튈로스 극이 결합된 형태라고 한다. 디튀람보스는 디오니소스 찬가로, 합창단에 의해 진행되었다. 합창에는 솔로 부분이 있는데, 솔로와 합창단이 주고받는 이야기로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사튈로스 극은 가장 큰 특징이 기괴함이다. 신화의 어떤 소재를 가지고 사튈로스 복장을 한 합창단이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이 사튈로스 극은 희극적인 부분이 있고, 디튀람보스는 비극적인 부분을 갖고 있다. 이 비극이 처음 진행될 때는 제멋대로 진행되다가 그리스 비극이 경연되기까지 이르게 되면 이것이 하나의 형태를 갖게 된다. 극의 출연자는 서로 대화하는 배우와 코러스로 나누어지고, 공연 방식은 3개의 비극과 1개의 사튈로스 극을 무대에 올려야 했다.
아이스퀼로스는 참주 시대에 태어났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적극적인 상공 및 문예진흥책을 펼쳤는데, 대디오니소스제를 연중행사로 거행케 했고 거기에서 비극 행사가 거행되었다. 아이스퀼로스는 페르시아 전쟁 즉 마라톤 전투, 테르모필레, 살라미스 해전을 모두 경험했던 사람이다. 이 전쟁이 끝나면서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와 그리스 비극이 꽃핀다. 페르시아 전쟁의 결과 그리스인들은 자신들 스스로가 자유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비극은 이 자유를 쟁취하는 과정으로서의 비극이다. 다음으로 페르시아 전쟁은 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했다. 그리스인은 신은 개인과 국가와 공생공존하며 세계 내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자로 포착했다. 이것이 아이스퀼로스를 만들어낸 시기이다. 아이스퀼로스는 비극의 대가다. 그는 수많은 작품을 썼지만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7개밖에 없다. 그중 하나가 ‘아가멤논’이다.
아가멤논의 집안은 저주로 점칠된 집안이다. 아가멤논 이야기를 하려면 트로이 전쟁을 뺄 수 없는데,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승리의 소식을 기다리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아가멤논은 아르테미스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바치게 된다. 이 일은 클뤼타이메스트라의 가슴속에 증오와 복수의 불길을 타오르게 한다. 클뤼타이메스트라는 모계사회 즉 여자의 권리를 대표하고, 아가멤논은 가부장, 남자의 권리를 대표한다. 이 이야기를 남자에 대한 여자의 승리를 이야기한다고 말한다.
등장가 중반에 제우스 찬가가 나오는데, 제우스는 고난을 통해 지혜를 얻게 하는 신이다. 인간은 행동함으로서 죄를 짓고, 죄는 고통을 주고, 고통은 지혜를 준다. 그래서 제우스는 인간이 죄를 짓도록 하고 벌을 주고, 그 벌을 통해 지혜로 나아가게 한다. 욥 역시 마찬가지다. 근동사상에는 이런 것이 있었고, 우리가 가진 신에 대한 생각을 한없이 넓혀주는 도구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제우스는 완전히 틀리다. 이 인과관계는 극 속에서 가문의 저주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운명의 강요와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에 모순되며 마침내 정의를 실현한다. 아이스쿠리로스는 이런 비극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제우스의 통치를 찬양하는 것이다.
첫 번째 정립가 후에 전령이 나타나고, 승리소식을 알린다. 두 번째 정립가는 헬레네로부터 출발한 재앙의 원인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이스퀼로스는 재앙이 신들의 질투라는 해석에 동의하지 않고 정의의 원칙에 따라 세계를 조종하려는 의지 때문에 이렇게 했다고 말한다. 아이스퀼로스는 제우스에 대해 심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곧 아가멤논이 카산드라와 함께 온다.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공주이자 아폴론의 사랑을 받은 예언자다.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예언의 능력을 얻었지만, 능력을 얻은 즉시 변심해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게 하는 저주를 받았다. 클뤼타이메스트라는 아가멤논을 환대하며 궁전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한편 코로스는 불길한 예감을 떨치지 못한다. 곧 클뤼타이메스트라는 카산드라도 궁전으로 들여보내려 하지만 실패한다. 클뤼타이메스트라가 들어가자 카산드라는 아가멤논 집안의 죄악의 사슬을 되짚으며, 아가멤논과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폴론을 저주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삶에 대한 체념이었다. 그녀는 곧 궁으로 들어가 아가멤논과 함께 클뤼타이메스트라의 손에 죽는다. 코로스가 어쩔 줄 몰라 의논하고 있을 때 클뤼타이메스트라와 두 제물이 보인다. 그렇게 죽이고 클뤼타이메스트라는 자신의 살인에 도취되어 찬가를 부른다. 하지만 곧 자신이 아가멤논 집안을 돌고 있는 죄와 벌의 사슬에 이제는 자신도 묶이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때 아이기스토스가 등장한다. 아이기스토스는 자신의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며 즐거워한다. 노인들은 격분했고, 아이기스토스와 한 판 뜰 기세였다. 클뤼타이메스트라는 더 이상 피를 보고싶지 않아 둘을 말린다. 그녀는 아이기스토스와 함께 앞으로 그들이 지배하게 될 궁전 안으로 사라진다. 서로의 입장에서 보면 다 정당한 이유가 있다. 아이스퀼로스는 관객들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과연 누가 옳은가?
아가멤논을 갈등측면에서 삼각관계로 보면, 클리타임네스트라-아가멤논-카산드라, 아가멤논-클리타임네스트라-아이기스토스로 볼 수 있다. 클리타임과 아가멤논은 본래부터 갈등선상에 놓여 잇었다. 클리타임은 본래 다른 남편이 있었는데, 아가멤논이 그 남자를 죽이고 강제로 결혼했다. 그녀는 공주였는데 왕권과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에 아가멤논이 남자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거기다 카산드라라는 여자를 데려왔는데, 카산드라를 데려옴으로 인해 출항 전에 이피게네이아를 바쳤던 사건이 생각나게 해서 갈증을 심화시키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삼각관계를 보자. 아가멤논과 클리타임 사이에 있는 갈등을 아이기스토스는 이용해 아가멤논을 죽이려 한다. 또 아가멤논 집안에 내려오는 저주, 그리고 클리타임의 집안에 있는 전설의 저주가 있다. 그런 깊은 갈등들이 마주친 것이다. 이 갈등 구조 속에서 클리타임의 선택에 의해 아가멤논은 죽게 된다.
아가멤논에서 나온 코러스를 보면, 코러스는 전체의 한 부분이 되어 극에 참가하고, 플롯과 관련하여 앞선 샆화에 대한 내용을 노래하며 다음 장의 내용까지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아가멤논은 겸손하고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그리스영웅의 모습이다. 오레스테이아에서 아가멤논은 3부작 중 1부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각 작품의 독립성은 떨어진다. 비극을 갈등의 부분과 해결의 부분으로 나눈다고 보았을 때, 1부에서는 클리타임의 복수로 1차적 해결을 보았지만, 카산드라의 예언과 코러스의 암시로 또 다른 갈등을 예고한다. 3부작 전체를 놓고 본다면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오레스테이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면, 이렇게 나눌 수 있다. 고대시대는 모계사회로, 핵심이 어머니가 된다. 모계사회의 법률은 피는 피로 값는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싸운다. 그런데 이 세계를 지배하는 신이 복수의 여신이다. 반면 아이스퀼로스가 옹호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부계사회로, 아버지가 중심이 되는 사회이면서도 법과 질서가 잡히는 사회다. 법과 질서의 사회는 잘못을 바로 응징하지 않고 법정을 열어 설득과 타협이 일어난다. 이것을 관장하는 신이 아폴론과 아테나다. 이 모계사회를 대표하는 사람이 클리타임이라고 보고, 부계사회를 대표하는 사람을 오레스테스라고 보는 것이다. 클리타임은 남편살해, 오레스테스는 친모살해이다. 아이스퀼로스가 사는 시대는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넘어가는 시대였다.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라는 것은 결국 클리타임이 유죄로 판결되고, 그것이 합당하게 결정되었다는 것이다)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아가멤논에서 이런 내용을 예측하여 언급할 수는 없다. 아가멤논은 전형적인 영웅이므로, 클리타임의 모정애라는 이름으로 죽었다는 것, 그리고 계속해서 내려온 저주와 함께 자기 아버지의 죄 때문에 아이기스토스에게 복수당하는 것은 큰 비극이라고 볼 수 있다.
아가멤논에게 딸을 포기하느냐 전쟁을 포기하느냐의 선택의 갈등이 부여된 것은 자신의 의지나 과실과는 관계없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의 굴레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의 굴레라고 볼 수 있다. 이럴수도 없고 저럴수도 없는 인간의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딸을 희생하는 고통을 겪었음에도 저주와 모정으로 인해 죽임을 당해야하는 아가멤논의 운명이 이 작품의 주제와 비극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아가멤논에서 처음 나오는 파수꾼은 불길한 징조를 내비치고, 클리타임은 흉계를 꾸민다. 코로스는 클리타임의 흉계의 원인과, 아가멤논 살해계획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곧 전령이 와서 승리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분위기가 반전되지만 그것도 잠시 아무것도 모르는 아가멤논이 등장하며 안타까워진다. 클리타임네스트라와 함께 들어간 아가멤논. 곧 카산드라는 아폴론의 예언 능력이 갑자기 빛을 발해서 엄청난 불길한 예언들을 한다. 그녀가 궁으로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가멤논과 그녀가 죽은 것이다.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코로스가 피는 피를 부르는 법이라고 하자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는 그것이 옳다고 말하며 궁전으로 들어간다. 대체 누가 옳은 것일까?
4코에포로이
-등장인물들
코에포로이에서는 등장인물이 더 뚜렷한 성격을 갖고 나온다. 인물들을 살펴보자.
오레스테스가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고 한 이유는 첫째로 아폴론의 신탁 때문이며, 둘째는 본래 자신의 것인 재산과 왕위를 탈환, 아르고스 시민들의 자유를 위해서이다. 지금 오레스테스의 기질에는 클리타임네스트라의 기질, 아가멤논의 기질이 둘 다 있다. 어떻게 보면 오레스테스는 클리타임네스트라가 했던 것과 같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는 결국 클리타임네스트라와 맞딱뜨려야 한다. 하지만 그는 혼자는 할 수 없으니 퓔라데스에게 묻는다. 퓔라데스는 모든 사람들에게 저주를 받아도, 신에게는 저주를 받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 말은 결국 어머니를 죽이라는 것이다. 퓔라데스는 아폴론의 대변인 역할을 한다. 오레스테스는 그 이야기를 듣고, 결국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인다. 하지만 아무리 복수심에서 복수를 했어도 어머니를 죽인 그 고통과 많은 생각들이 따라붙기 시작한다. 동시에 복수의 여신들이 몰려든다. 결국 오레스테스는 아가멤논 같은 선택을 한 것이다. 국가냐, 개인이냐, 신이냐, 개인이냐. 하지만 아가멤논은 복수의 여신들에게 죽임당하고, 오레스테스는 법정에 서 아폴론과 복수의 여신들 사이에서 결국 구원을 얻게 된다.
퓔라데스는 아폴론의 대변인 역할을 한다.
엘렉트라는 클리타임네스트라와 대비를 위해 존재하는 인물이다. 엘렉트라는 순종적이고 의존적인 여자로 어머니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면서, 아버지에 대해서는 깊은 존경을 표한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당시의 그리스인 여자들 가운데 굉장히 튀어나온 여자였다.
코로스는 전쟁으로 노예가 된 여인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단순한 방관자나 논평가의 입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극중 사건에 적극 개입한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오레스테스와 함께 이 극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저주의 대상이며, 오레스테스에게는 복수의 대상이면서 동시의 그의 감정으 동요시키는 인물이다. 그녀는 남성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적이고, 유능하며, 자부심이 강하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논리를 지니고 있으며 상환판단에 따라 대응하는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당대의 관행을 대변하는 코로스의 관점에서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여성의 본분을 벗어난 사람이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감한 여인이라고 볼 수 있다.
유모 킬리사의 비중은 크지 않지만 대단히 중요하다. 오레스테스가 태어났을 때부터 젖을 먹여 키웠다는 킬리사의 말은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아들을 키웠다는 주장을 공허하게 만든다. 킬리사의 역할은 오레스테스의 도덕적, 정서적 부담을 경감시키고, 관객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게 만든다. 그리고 아이기스토스에게 전달하는 말의 내용을 변경함으로서 오레스테스의 복수가 수월하게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아이기스토스는 복수의 대상으로만 존재할 뿐이기, 여자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폴론과 복수의 여신들. 아폴론은 오레스테스를 위해 변론을 해준다. 아폴론은 만일 어머니를 죽이지 않으면 복수의 여신이 쫓아올 거라고 말했고, 어머니를 죽인 후 복수의 여신들이 쫓아올 때 아폴론은 피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복수의 여신들과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이 여신들은 복수의 악순환이 가져오는 결과에는 관심이 없으며, 다만 자신들의 법이 지켜질 것만을 요구한다. 오레스테스의 3부작 마지막 작품인 에우메니데스에서 이들은 아테네 시를 지키는 여신들로 그 지위가 변화하게 된다. 이 작품의 큰 틀은 아폴론과 복수의 여신들의 갈등이다. 아폴론은 여신들을 논쟁을 통해 설득과 타협을 하며 좀 더 발전된 사회라는 느낌을 준다.
-극적 모티브와 이미지, 그리고 상징들
첫째는 빛과 어둠이다. 아트레우스 집안의 여러 대의 걸친 살육과 복수의 내력은 이 집안을 덮고 있는 어둠과 복수의 여신들의 어둠으로 나타난다. 이와 대조적으로 빛의 신인 아폴론은 오레스테스를 통해 이 집안에 빛과 희망을 제시한다. 아폴론은 피의 보복이 있을지라도 구원, 해방과 관련이 있다. 이 모든 것은 아이스퀼로스의 제우스 신앙관을 바탕으로 하고 전개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물과 덫으로 속임수, 계략, 사로잡음, 혼돈의 의미를 가진다. 카산드라는 아가멤논에서 환영을 보며 그것이 바로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자신을 죽이기 위한 덫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가멤논이 욕실에서 걸쳤던 겉옷도 그물의 이미지를 지닌다. 그물은 직접적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것과는 달리 미리 계획해야 하는 것이다. 그물은 모든 종류의 계책과 속임수, 덫과 연관성을 지닌다. 오레스테스 역시 이런 덫을 놓았다.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정말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먹잇감으로 둔 것이다.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는 그 먹이를 물었고, 죽었다.
네 번째로 아가멤논의 옷이다. 이 옷은 그물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오레스테스가 복수를 마친 후 이 옷을 두고 아가멤논의 혼령을 애도하는 데서 보듯 아가멤논의 혼령을 상징하기도 한다.
-줄거리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의 무덤 앞에 와서 울부짖는데, 그것은 아가멤논의 결말과 대조를 이룬다. 곧 엘렉트라와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이 보여 누구인지 살펴보았는데, 그것은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악몽을 꾸고 놀란 나머지 고인의 무덤으로 화해의 선물을 보내는 광경이었다. 여자 노예들로 구성된 코로스는 검은 옷을 입고 가슴을 치고 옷을 찢는다. 검은 옷에 대한 옛 가치는 복수고, 둘째로는 아가멤논에 대한 충성심이다. 그들은 오레스테스에게 아가멤논 편으로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복수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코로스들은 결국 복수를 기원하며 제주를 따른다. 제주를 따르던 엘렉트라가 오레스테스의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오레스테스와 극적 상봉을 이룬다. 코에포로이를 딱 하나로 이야기한다면, 모든 노래와 간구가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이라며, 그리고 그것은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의 몫이라는 이야기다. 오레스테스는 제우스가 독사에게 아비를 잃은 독수리 새끼를 보호하듯 자신들을 돌보아줄 것을 청원한다. 뱀은 암컷이 교미할 때 수컷의 몸을 물어 죽이고, 독사의 새끼들은 그 복수로 암컷의 자궁을 물어뜯는다고 그리스인들은 생각했다. 코로스와 오레스테스, 엘렉트라는 서로 돌아가면서 아가멤논의 죽음에 대한 서정적인 만가를 부른다. 코로스는 복수를 하도록 적극적으로 이들을 부추겨, 노래를 하는 가운데 분위기는 복수를 해야만 하는 방향으로 고조되어간다. 만가는 아가멤논의 복수를 위해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살해해야만 되는 정당성을 관객들과 오레스테스에게 심리적으로 고조시키기 위한 것이다. 만가를 듣기 전 오레스테스는 아가멤논의 복수를 아폴론의 신탁에 대해 정당성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만가를 들은 후 그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로 아폴론의 신탁은 뒷전으로 밀어둔다. 첫 번째 만가는 아가멤논의 어이없는 죽음에 대해, 두 번째 만가는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의 슬픔들, 그리고 엘렉트라가 어머니의 행패를 이야기한 순간, 오레스테스는 핀트가 나간 것이다. 이 저주의 운명을 순간 오레스테스는 받아들인 것이다. 이 만가를 들으면 화가 나고 속상하다. 이 만가는 복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는 아이기스토스와 어머니를 살해하려는 의지를 굳힌다. 코로스는 지금이야말로 행동을 취할 시기라는 것을 말한다. 그 전에 오레스테스는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어떤 꿈을 꾸었길래 제주를 바치러 왔냐고 물었다. 코로스장은 그녀가 뱀을 낳고 자신의 가슴에서 피섞인 젖을 빨았다고 말했다. 오레스테스는 뱀은 자신이며, 피는 자신이 어머니를 살해할 것이라고 말한다. 오레스테스는 엘렉트라를 먼저 궁에 보내고, 퓔라데스와 함께 포키스 출신의 여행객으로 변장하고, 코로스에게 자신들을 돕게 될 때까지 침묵하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복수를 해야하는 분명한 이유를 관객들에게 설득시키는 것이다. 세 사람이 자리를 뜬 후 코로스는 여인들의 격정 때문에 일어난 참사와, 심판들을 이야기한다. 곧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복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모계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것들을 비친다. 부계사회로의 필연적 이행을 설득하는 것이다. 오레스테스가 퓔라데스와 함께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가서 오레스테스의 죽음에 대해 알리자, 클리타임네스트라는 그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이제 죽었으니 복수의 여신들의 저주를 막을 희망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이 말을 다시 이야기하면, 이제 복수는 끝났다며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오레스테스와 친구가 왕궁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곧 유모 킬리사가 등장한다. 여기서 킬리사가 하는 탄식은 진정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보인다. 유모는 원래 아이기스토스를 무장한 호위병들과 함께 데려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코로스를 통해 사건의 내막을 알고 난 후 결정적 순간에 그 지시를 바꾸어 버린다. 코로스는 절대 중립적이지 않다. 오레스테스가 아이기스토스를 죽인 후,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모든 상황을 깨닫고 오레스테스의 감정에 호소한다. 여기가 남편살해와 모친살해, 그리고 엄마와 자식간에 밀당이 되어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퓔라데스는 죽이라고 한다. 오레스테스는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아이기스토스를 죽인 방으로 끌고 들어가는데, 끌려가며 클리타임네스트라는 한 번 더 목숨을 구걸하다가, 결국 오레스테스를 저주한다. 아가멤논에서처럼 궁전의 문이 열리며 살인자가 두 제물 곁에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아가멤논에서처럼 오레스테스는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주장하려 한다. 그 증인으로 아폴론을 세운다. 그런데 그 순간 한쪽으로 복수의 여신들이 나타나 오레스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인가, 아니면 구원받을 것인가를 저울질하게 된다. 어머니의 혼백이 부른 복수의 여신들이 그의 앞에 떠오르자 오레스테스는 아폴론에게 구원받기 위해 도망치고, 코로스는 3대에 걸친 아트레우스 집안의 저주가 언제 끝날 것인가를 물으며 퇴장한다.
어떤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 당시 사회의 경향, 가치, 윤리에 의해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를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해설
코에포로이는 아가멤논의 죽음을 둘러싼 오레스테스, 클리타임네스트라, 엘렉트라 사이의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코에포로이에서 아이스쿠리로스가 초점을 맞춘 것은 친모 살해의 정당성이다. 코에포로이를 이해하려면 아가멤논의 이해가 필요하다. 아가멤논의 조부인 펠롭스는 제우스의 손자다. 펠롭스는 오이노마오스의 딸 히포다메이아에게 청혼했는데, 히포데메이아의 아버지 오이노마오스는 사위에게 죽게 된다는 예언이 두려워 펠롭스에게 전차경기를 제안해 지는 자가 목숨을 내놓기로 했다. 펠롭스는 왕의 마부를 매수해 왕의 수레바퀴가 빠지도록 했고, 그로 인해 왕은 죽는다. 펠롭스는 마부에게 피사 왕국 절반을 주고 히포다메이아와 하룻밤 동침을 허락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바다에 던져 죽인다. 그때 마부가 펠롭스의 모든 자손들을 저주하며 죽는다. 그 저주는 펠롭스,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 그리고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순으로 내려오게 된다. 특히 두 개의 저주가 아가멤논 대에서 만났는데, 아가멤논 집안에서 이어져오고 있던 저주와,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집안에서 딸들이 처음 보는 남자와 눈이 맞게 될 거라는 저주가 만난 것이다.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과 그리스 승전 소식, 그리고 아가멤논의 귀환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한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남편 살해라는 것이 주제로 있다. 후속작인 코에포로이는 아가멤논의 자식들이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여 아가멤논의 원수를 갚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이퀼로스가 아가멤논에서 남편 살해를 문제삼고 있다면, 코에포로이에서는 친모살해를 문제삼고 있다. 고대시대에 친족 살해자는 반드시 죽여야 했다. 그것이 정의였다. 그런데 구시대는 아버지에 대한 자식의 복수를 정의로 간주했다. 그런데 친부살해에 대한 복수로 친모살해가 정말 정당할까? 그렇다면 친자 살해에 대한 복수로 남편을 살해한 클리타임네스트라의 행위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종막에서 코로스는 오레스테스를 두고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죽을 때까지 고통받으리라고 말한다. 코로스는 첫째로 신, 사회 가치의 대변자다. 둘째로 직접 사건에 개입한다. 셋째로는 이야기 전후로 관객을 유도한다. 코로스의 말을 들으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고통 이야기를 하며 관객을 3편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복수 행위에 인간의 의지가 개입되고 있지만 그런데도 이 작품은 운명적인 힘, 즉 인간으로서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이러한 힘이 인간의 노력이나 이성의 영역 밖에서 인간의 삶을 끊임없이 위협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패망의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아가멤논이, 오레스테스가 양자의 선택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선택을 해 나가면서 자신의 생명을, 삶을 운명에 던져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저주의 사슬 안에 얽혀들게 되는 것이다. 운명 앞에 인간의 존재는 너무 왜소하고 불안하다. 또한 어떤 인간도 고통과 근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연 오레스테스의 운명은?
양팔 저울이 있다면, 왼쪽에 자식을 위한 남편살해라는 추를, 오른쪽에 아버지를 위한 친모살해라는 추가 있다면 과연 이 저울의 추는 어디로 기울어질 것인가. 3편에서 결론으로 내려지는 것은 당시 사회의 가치관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아버지를 위한 친모살해를 옳다고 하지만, 이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할 것이 있다. 상대적인 모든 진리가 난무하는 이 세계를 넘으면 절대세계가 존재하고 있다. 절대세계에 주관적인 하나님은 친부, 친모를 죽인 자는 반드시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우리는 이 세계를 이해하면서 절대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제우스와 같지 않다. 제우스는 죄를 짓도록 협력하는 자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혜와 구원을 얻게 하지 위해 죄를 분별하게 하는 자로서 우리와 함께 서서 고난당하고 마침내 구원얻는 길을 걷게 하신다. 그것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은혜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상대적인 진리가 통치하는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이 비극을 통해 선악과 사건 이후 타락한 인간이 겪에 되는 운명의 고리에 매여져 마침내 비극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아담의 비극을 기억해야 한다. 마침내는 신까지 왜곡하여 죄와 협력하는 신이라고 말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보다 더 크신 분이어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아이스퀼로스의 비극이 있다면 욥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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