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예조 판서 홍상한(洪象漢)에게 이르기를,
"경이 장릉(莊陵)을 봉심(奉審)하고 왔으니, 먼저 어전(御前)에서 아뢰도록 하라."
하니, 홍상한이 말하기를,
"신이 영월(寧越)에 있을 때 우연히 《장릉지(莊陵誌)》를 읽어보았더니, 본릉(本陵)을 복위(復位)한 것은 지난 10월 28일이었는데, 신규(申奎)의 소(疏)로 인하여 그리 하였습니다. 장릉의 안에 사육신(死六臣)의 창절사(彰節祠)가 있는데, 고 감사 홍만종(洪萬鍾)과 이천 부사(伊川府使) 박태보(朴泰輔)가 힘을 합쳐서 개수(改修)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화소 안에 있는 사당을 옮겨서 건립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하교하여 《두시(杜詩)》의 ‘임금과 신하는 일체(一體)이고 제사도 같다[一體君臣祭祀同]’라는 귀절을 인용하고, 옮기지 말라고 명하였다. 또 사육신 서원(書院)에다 엄흥도(嚴興道)를 배향(配享)하였고, 안평 대군(安平大君)은 사육신과 같은 시기에 사절(死節)하였으나, 그에게는 이미 시호(諡號)를 주었는데, 사육신도 또한 마땅히 시호를 주어야 하였다. 지금 1주갑(周甲)을 당하여 월일(月日)이 마침 서로 합치한 것은 정말 우연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제사를 거행하는 것이 마땅하였다. 낙화암(落花岩)이 있는데, 그때 궁인(宮人)들이 사절(死節)하였기 때문에 ‘낙화암’이라고 이름 붙였으며, 토민(土民)들이 사당을 세운 것도 또한 치제(致祭)하는 것이 마땅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마침 60주년을 당하니, 내 마음이 서글퍼진다."
하고, 승지들에게 명하여 쓰게 하기를,
"지금 예조 판서가 아뢰는 것을 들어보니, 단종[端廟]께서 복위(復位)하신 간지(干支)가 금년 이달 28일과 같다고 하므로 서글픈 심회(心懷)를 억누르기가 어려워, 제문(祭文)을 마땅히 친히 짓고, 대신(大臣)을 보내서 제사를 섭행(攝行)하게 한다. 듣건대, 사육신의 창절 서원(彰節書院)이 능침(陵寢) 동구(洞口)에 있다고 하는데,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즉시 수리 보수하도록 하라. 사육신에게 특별히 정경(正卿)을 증직하도록 하고, 시장(諡狀)을 기다리지 말고 시호를 내려 주며, 예관(禮官)을 보내어 치제하도록 하라. 증(贈) 참의 엄흥도를 배향한다고 하니, 그에게 특별히 아경(亞卿)을 증직하도록 하고, 사육신과 일체로 치제하도록 하라. 사육신의 후손으로는 단지 감찰 박성협(朴聖浹)만이 남아 있을 뿐인데, 해조(該曹)로 하여금 그에게 특별히 그 관직에 준하여 승진시켜 서용(敍用)하도록 하라. 지금 대신의 아뢰는 말을 들어보면, 박팽년(朴彭年)의 혈손(血孫)이 남아 있다고 하며, 엄흥도도 또한 그 후손이 남아 있다고 하니, 모두 해조로 하여금 즉시 그 이름을 물어보고 민충(愍忠)이라고 하는 작은 사(祠)가 있다고 하는데, 또한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중건(重建)하도록 하라. 이런 여러 사람들이 이와 같은 절개를 세운 것은 지나간 역사에서는 들어보기가 어려운 것이니, 중건한 뒤에도 도신으로 하여금 수령(守令)을 차정(差定)하여 치제하도록 하라. 사육신은 이미 증직하고 증시(贈諡)하였으니, 김종서(金宗瑞)·황보 인(皇甫仁)·정분(鄭苯)도 또한 시장(諡狀)을 기다리지 말고 그들에게 특별히 시호를 주도록 하라."
하니, 홍상한이 말하기를,
"원주(原州)에 주천(酒泉)이라는 고읍(古邑)이 있는데 빙허루(憑虛樓)가 있었습니다. 심정보(沈廷輔)가 원주 목사로 있을 때 선조(先朝) )이 바야흐로 이를 등문(登聞)하고 옛날 누각을 중건하고 다시 어제시를 게시(揭示)하고자 합니다."
하니, 임금이 어제시 중에 ‘술 취해 난간에 기대어 대낮에 졸고 있다.[醉倚闌干白日眼]’라는 귀절을 외우고 말하기를,
"심정보는 비록 술에 취하기를 권하지 아니하더라도 오래도록 취해 있을 자이다. 내가 다시 시를 짓지도 아니할 것이며, 감히 후미(後尾)에 잇달아 쓰지도 아니할 것이다."
하고, 이어서 임금이 소지(小識)를 친히 짓고서 홍낙성(洪樂性)에게 명하여 교지(敎旨)를 받들어 쓰게 하였다. 어제시는 임금이 어상(御床)을 내려와서 친히 베껴 쓰고 말하기를,
"지난날의 어제시를 내가 어찌 감히 어상에 걸터 앉아서 베껴 쓰겠는가?"
하고, 나무에 새겨서 옛날과 같이 게시하도록 명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 행궁(行宮)의 뒤쪽 수림(樹林) 사이에 그때 궐중(闕中)의 사람들이 절개를 세운 곳이 있으니, 유수(留守)로 하여금 특별히 제단을 설치하여 치제하도록 하라."
하고, 이어서 임금이 명하여 소대(召對)하고 《심경(心經)》을 강(講)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