號雲我 又曰 松穆館主人 字虞裳者曰李彦瑱 譯學而通日本人言語也 庚申生 癸未入日本 翌年廼還 性悟竗 有能詩聲 丙戌元日 尹曾若 獲其詩軸一,日記紙三 使人示我 詩是遊日東者 而雜體四十首
호(號)가 운아(雲我) 또는 송목관주인(松穆館主人)이요, 자(字)는 우상(虞裳)이란 자가 이언진(李彦瑱)이다. 역학(譯學)을 배워 일본말을 한다. 경신년 생인데 계미년에 일본에 가서 이듬해에 돌아왔다. 성품이 매우 총명하고 묘하여 시에 능하다는 소문이 있었다. 병술년 원일(元日)에 윤증약(尹曾若)이 그의 시축(詩軸) 하나와 일기(日記) 세 편을 얻어 사람을 시켜 내게 보였다. 시(詩)는 일본에 놀 때 지은 것인데 잡체(雜體) 40수(首)였다.
余奇之 與曾若小帖曰 菰蒲中往往有奇士 伏而不出 吾輩平生苦癖 搜羅古初之奇書 不知訪現在之騷雅而爲師友 眞睫在眼前而不見者也 虞裳之什 淹博而不濫 幽奇而不癖 超悟而不空 裁制而不短 且筆氣蒼勁 日記三紙 破碎中逸媚橫生 正是人外物 吾但恐悟解深而病不離身 九疇之一曰 或不饒耶 恨不讀其全集也 其稿名歐血草 或曰游戱稿
내가 높이 평가하여 증약에게 작은 쪽지를 적어 보내기를 ‘초야에 가끔 기이한 선비가 묻혀 있으나 은둔하고 나오지 않는다. 우리들이 평생에 옛날의 기이한 글은 지나칠 정도로 찾고 있으나, 현재의 좋은 글을 찾아서 사우(師友)로 삼을 줄은 알지 못하니 참으로 눈썹이 눈 위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우상의 시는 깊고 넓으나 넘치지 않고 그윽하고 기이하나 괴벽하지 않고 매우 뛰어나지만 공허하지 않고, 간략하나 짧지 않고 또 붓 기운이 고아하고 굳세다. 일기 세 장은 격식을 벗어난 중에도 뛰어나게 아리따운 태도가 넘쳐 흐르니 정히 보통 사람의 글은 아니다. 나는 다만 글을 너무 깊이 보다가 병이 떠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니 수(壽)가 넉넉하지 못한가. 그 전집을 읽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했다. 그 초고(草稿)의 이름은 구혈초(歐血草), 혹은 유희편(遊戱篇)이라 부른다.
李虞裳軸自跋曰 痔卧壹岐島舟中 風聲雨聲水聲蛙吠聲擧集 灯下人間世 牢騷鬱陶至矣 間聞老奴 未曉寱語說園圃中事 情不得不動 而喉不得不癢之矣 吐而筆之 斷爛無序 其言萬里行李之所經者什一 而平生志業之所存什九 一切無摸擬心矜忮心 平濤鼓枻 以取適於道路耳 甲申六月二十八日 試雞毛筆 書于昌原客館 斜陽明窻 蟬聲滿樹
이우상(李虞裳)이 시축(詩軸)의 발문(跋文)에 이르기를 ‘치질로 일기도(壹岐島) 배 가운데 누워있는데 바람 소리, 비 소리, 물 소리, 개구리 우는 소리가 모두 등잔 밑에 모였으니, 인간 세상의 불평과 답답함이 지극하다. 간혹 늙은 종이 자면서 농사일에 대하여 잠꼬대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움직여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붓을 잡고 쓰니 단란(斷爛)하여 차서가 없다.’ 하였다. 만리 동안 행리(行李)의 경과를 말한 것은 10에 1이고 평생 지업(志業)이 담겨 있는 것은 10에 9인데 일체 모방하는 마음도 자랑하고 질투하는 마음도 없다. 오직 잔잔한 물결에 돛대를 두드리며 길에서 유유자적한 것을 취할 뿐이다. 갑신년 6월 28일에 닭털 붓으로 창원(昌原) 객관(客館)에서, “저녁 볕은 창에 밝고 매미 소리 나무에 가득하네.[斜陽明窓 蟬聲滿樹]” 라고 썼다.
其壹陽舟中詩曰 雨脚侵香穗 踈囪午夢初 病多仍奉佛 名斷尙貪書 苽熟生眞蒂 蟲游化小魚 苟能謀五畒 夫釣婦看蔬
일양(壹陽)에서 배를 타고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빗발이 향기로운 이삭을 침노하고 / 雨脚侵香穗성근 창에 낮꿈이 처음이다 / 疏窓午夢初병이 많아서 부처를 신봉하고 / 病多仍奉佛이름은 끊어졌으나 오히려 책을 탐한다 / 名斷尙貪書외가 익었으니 여문 꼭지가 생기고 / 苽熟生眞蒂벌레가 물에 들어가 작은 고기로 변했다 / 蟲游化小魚만일 오묘를 경작할 수 있으면 / 苟能謀五畝남편은 낚시질 아내는 채소를 키우리라 / 夫釣婦看蔬
又曰 自吾能作佛 心悟不師初 墨抹臨摹帖 爐燔剽窃書 貪嗔皆害馬 恩怨已忘魚 道在貧堪樂 終年食但蔬
또 다음과 같이 읊었다.
내가 부처가 된 뒤에는 / 自吾能作佛마음으로 본심을 깨달아 / 心悟不師初먹으로 모방한 서첩을 지우고 / 墨抹臨摹帖표절한 글을 화로에 사른다 / 爐燔剽窃書탐하고 화내는 것이 모두 해가 되고 / 貪嗔皆害馬은혜와 원망을 이미 잊었다 / 恩怨已忘魚도는 가난해도 즐기는 데 있으니 / 道在貧堪樂중년토록 채소만 먹는구나 / 終年食但蔬
其海覽篇祭海神 皆瑰奇譎 特多不能錄 余每嘆東國局於門閥 懷寶而窮餓者多 獨崔簡易少受用文章價 然承文提擧 豈活妻子而足榮簡易哉 屢以大事入明朝 只借銜或工曹禮曹判書 或吏曹參判 徒謾上國人耳 東人那肯呼之以崔判書乎 何異夜天子也 如虞裳者 持被直玉堂 爇紅蠟艸白麻 有何不可哉
그 해람편(海覽篇)․제해신(祭海神)이 모두 괴기(瑰寄)하고 휼특(譎特)하나 너무 많아 다 기록하지 못하였다. 내가 동국(東國)에서 문벌에 얽매여 좋은 자질을 가지고도 굶주린 자가 많은 것을 항상 탄식한다. 다만 최간이(崔簡易)만이 조금 문장(文章)의 값을 인정받았으나, 승문제거(承文提擧)가 어찌 처자를 살릴 수 있으며 간이를 영광스럽게 하였겠는가. 여러 번 큰일로 명 나라에 갔으나 다만 이름만으로 공조 판서(工曹判書)․예조 판서(禮曹判書)․이조 참판(吏曹參判)이라 했으니 한갓 상국(上國) 사람을 속인 헛된 이름인데 동국 사람이 어찌 즐겨 최 판서(崔判書)라고 불렀겠는가. 그러므로 야천자(夜天子)와 무엇이 다른가. 우상(虞裳) 같은 자는 특별히 옥당(玉堂)에 숙직하면서 조서(詔書)를 초(草)한들 무엇이 불가할 것이 있는가.
余愚下百無一能 而但人之有才 若己有之 此是百瑕中一瑜耳 不識虞裳之眉目何如 而余熟言之慣論之 且寫其詩文于雜記中 或謂之好事 吾當不少沮也
나는 어리석고 용렬하여 백 가지에 한 가지도 능한 것이 없으나 다만 다른 사람의 재주 있는 것을 내가 가진 것같이 생각하니 이것이 백 가지 결점 중에 한 가지 아름다운 점이다. 우상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익히 말하고 자주 논하며, 또다시 그 시와 문을 잡기(雜記) 가운데에 쓰는 그것을 두고 혹 일 벌이기 좋아한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그치지 않으리라.
人旣一墮于地 無論富貴貧賤 不如意事 十常八九
사람이 한 번 세상에 나면 부귀빈천은 말할 것도 없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다.
一動一止 掣者蝟興 眇然之身 前後左右無非肘也 善運肘者 雖千掣萬掣 不置肘於心 亦不爲肘所僕役 時屈時申 各極其宜 則不惟不傷肘 亦不損吾和氣 可自然遊順境中耳 彼祝髮入山者 苦不耐其掣之多也 然刺血鈔經 行脚乞米 反苦不勝 渾身之肘觸處皆掣也 是躁擾爲祟耳 如胡孫爲群蝎所螫 不知或避或除 善計處蝎之方 只煩惱騷屑 左爬右嚼 不少須臾耐了 蝎螫愈肆 斃而後已
한 번 움직이고 그치는 데에 받는 제지가 고슴도치 가시처럼 일어나므로 조그만 몸의 전후 좌우에 얽히지 않은 것이 없다. 얽힌 것을 잘 운용하는 사람은 비록 천번 만번 제지당하여도 얽힌 것을 마음에 두지 않고 또한 얽힌 것에 사역되지도 않으면서 때로 굽히고 때로 펴서 각각 그 마땅함을 극진히 하면 그 얽힌 것이 나를 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또한 내 화기(和氣)도 손상되지 않아 자연스럽고 순조로운 속에서 움직일 수 있다. 저 머리를 깎고 산에 들어가는 자들 가운데 자신을 얽어매는 것에 견디지 못하는 자가 많다. 그런데 피를 뽑아 경문(經文)을 베끼고 걸어다니면서 쌀을 동냥하는 것을 도리어 온몸이 제지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여긴다. 이것은 인내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생기는 재앙인 것이다. 마치 원숭이가 많은 갈(蝎)에게 쏘이면 갈을 피하며 제거하고 처치하는 방법을 세울 줄은 모르고, 걱정하고 쩔쩔매면서 긁고 깨물기만 하다가 얼마 안 가 더욱 쏘면 견디지 못하고 끝내 죽고 마는 것과 같다.
壞緜綻縫 虱必聚族 荒墻古竈 鼠必營宅 狐之妖媚 必於幽林之陰森也 梟之叫嘯 必於黑夜之窅暗也 窟室遼絶 盜賊之藪焉 叢祠昏翳 鬼魅之窩焉 此皆白日昭朗 無幽不燭 則不惟不掩其迹 不能少措其陰昏之計
해어진 솜의 타진 옷솔 틈에는 이가 많이 모이고, 거치른 담 오래된 부엌에는 쥐가 집을 짓는다. 여우가 사람을 홀리는 것은 깊숙한 숲의 음삼(陰森)한 곳에서요, 올빼미는 어두운 밤 컴컴한 곳에서 운다. 멀리 떨어진 굴 속에는 도적이 모여들고, 컴컴한 숲 사당에는 귀신과 도깨비가 보금자리를 삼는다. 이러한 것들은 밝은 해가 환하게 비치면 그 자취가 없어질 뿐만 아니고 그 음험한 계교를 부릴 수도 없게 된다.
夫小人眙盱翕張 目語額瞬 處零碎之事 其巧譎如詛 出恒平之語 其隱暗如謎 若夫營財肥己之事 戕物陷人之言 其陰狡尙何言哉 悲矣悲矣 吾之一片神明 舍乾淨通亮地也 何彼乃把作陰譎淫㐫之萃淵藪 凡諸憸夫之攸爲 小則虱鼠之咀齧 其次狐梟之爲不祥 大則盜賊之殘害 鬼魅之魘迷 無不溢現於眉睫之間 吻牙之旁 人之生生之氣 黯然消鑠久矣
소인(小人)은 눈을 희번덕거리고 눈짓과 고개짓으로 보잘것없는 일을 처리할 적에도 교활한 것이 남을 해하는 것 같고, 평상한 말을 할 때도 숨기고 컴컴한 것이 수수께끼와 같다. 재산을 관리하고 몸을 살찌게 하는 일과 물건을 해치고 사람을 헐뜯는 말 속에 숨은 그 음휼한 것을 어찌 말할 수 있으랴. 몹시 서글픈 일이다. 나의 신명(神明)은 깨끗하고 통명한 곳인데 어찌하여 저들은 음휼(陰譎)하고 음흉(淫凶)한 것이 모이는 연수(淵藪)로 삼는가. 무릇 간인(奸人)이 하는 짓은 작게는 이나 쥐같이 깨물고 다음은 여우와 올빼미처럼 상서롭지 못하고 크게는 도적의 잔인한 짓과 귀신이 홀리듯 하는 행동이 눈썹 사이와 입가에 나타나 생기가 점점 소멸된다.
君子則不然 出言也祥吉 處事也明白 表裡通透 無一纖翳如盎春之恬風 沐霜之昭月 又如靑天白日 通衢大道 八囪玲瓏 重門洞開 是之謂淸明在躬 志氣如神 和順積中 英華發外 其蘊畜而發施 不過淵嘿雷聲 尸居龍見而已 是以 人可以陽明爲瑞慶 陰暗爲旤厄也
군자(君子)는 그렇지 않아서 말이 점잖고 처리하는 일이 명백하여 안팎이 같아서 하나도 가린 것이 없다. 그래서 성한 봄의 조용한 바람이나 서리로 씻은 듯한 흰 달과 같다. 또 청천백일 아래 훤히 트인 길과 팔창(八窓)이 영롱한데 중문이 활짝 열린 것과 같다. 이것을 두고 청명한 것이 몸에 있으면 지기(志氣)가 신과 같고 화순한 것이 가운데에 쌓이면 영화(英華)가 밖으로 피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그 온축한 것이 겉으로 드러날 때 침묵하여도 뇌성과 같고 시신처럼 있어도 용처럼 보이는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양명한 것을 상서와 경사로 삼고 음암(陰暗)한 것으로 화와 액을 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