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해저터널과 아시안하이웨이
•이순신 장군이 놀랄 일
한일해저터널과 아시안하이웨이 한일해저터널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던 건 1982년이었다. 지방행정학시간에 R교수가 “벌써 일본에서 거제 앞바다까지 터널을 파두고 있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수업에 참여한 대다수 학우들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는데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R교수는 “한국에서 OK만 하면 언제든 일본은 한국까지 연결할 것이다”고 했다. 당시 ‘이순신 장군이 알면 기절초풍할 일이다’라 여겼지만 해저터널의 충격은 점차 식어갔다. 가끔 한일해저터널 이야기가 나오면 지방행정학 R교수의 발언을 떠올리곤 했다.
최근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한일해저터널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국민의 힘 부산시장 한 후보는 “풍력발전은 장기적으로 한일해저터널을 만들어서 그 위에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며 부산해상풍력단지 복안에 관한 질의에서 답했다. 그러가하면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한일해저터널 개통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아시안하이웨이 출발지 부산
한일해저터널은 아시안하이웨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시안하이웨이는 아시아 국가 간 물적·인적 교류를 확대하고 정치·경제·사회 등의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아시아 32개국이 기존 또는 신설 고속도로 및 국도 55개 노선을 단일 노선표기로 잇는 것이다.
1959년 국제연합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현재의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ESCAP)가 현대판 실크로드 구축을 통해 아시아 각국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국가 간 경제·문화 교류와 친선을 꾀하기 위해 입안했다.
ESCAP은 1980년대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아시안하이웨이 구축문제를 각국과 상의했으나 중국 등 일부 국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중국이 제안한 새로운 노선을 받아들임으로써 추진에 속도가 붙었다. 이에 2001년 서울회의와 2002년 방콕회의에서 각국의 도로망 연결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우리나라에는 일본~부산~서울~평양~신의주~중국~베트남~태국~인도~파키스탄~이란~터키 등으로 이어지는 1번 노선(AH1)과 부산~포항~강릉~원산~러시아(하산)~중국~카자흐스탄~러시아 등으로 이어지는 6번 노선(AH6) 등 2개 노선이 통과한다. AH1은 경부고속도로를, AH6는 동해안 7번 국도를 이용하게 된다. 두 노선 중 AH6은 부산에서 AH1은 일본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만일 한일해저터널이 건설되지 않는다면 아시안하이웨이의 모든 육상출발점은 부산이 될 것이다. 아시안하이웨이의 출발지 부산은 상상만으로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론 이 벅찬 감동의 절반을 일본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일본과의 힘의 격차 극복이 우선
아시안하이웨이를 제쳐두고서라도 한일해저터널이 건설되면 한일 상호간 이익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본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란 생각이다. 해저터널이 뚫혀 일본이 아시안하이웨이의 출발지가 된다면 한국은 그냥 대륙으로 가는 연결로에 불과할 것이다. 특히 물동량이 일본으로 몰려 부산은 빈 쭉정이로 전락할 위험이 클 것이라 짐작한다
과거 일본은 명나라로 가기 위해 우리에게 “길을 열어달라”는 얼토당토 않는 주문을 했고 대동아전쟁 때는 그 주문을 현실화하여 한반도를 유린한 적이 있다.
세상의 모든 강한 에너지는 주변의 약한 에너지를 흡수한다. 모두 일본의 대륙진출야욕에 비해 우리의 힘이 약해서 발생한 일이다. 지금의 상황 역시 일본의 대륙진출욕은 왕성한데 우리의 힘은 일본에 한참 못 미친다. 당장 한일해저터널 개통으로 다시금 대륙진출을 향한 일본의 숙원을 풀어준다면 결과는 역사 속에 나타나 있다.
한일해저터널, 기다리자. 우리의 힘이 일본을 능가하거나 최소 대등해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