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박 연근
오늘도 알람시계는 공사시에 정확히 울렸다.
요놈의 늙은 알람시계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늙어가는 자신의 신세를 원망했는지도 모른다.
잘못하면 침대의 용수철이 이 힘없는 늙은이를 바닥에다 던져 버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밖으로 나오니 나뭇가지 그림자는 억지광대 춤을 추려는지 조금씩 움직이고
바람은 소리내어 전주곡 준비를 한다.
지난 밤을 하얗게 밝히느라 피곤했던 가로등들이 깜빡거린다.
“녹색불이 켜졌습니다. 건너가도 좋습니다.“
낡은 병원 입구에서 밤 낮없이 행인들의 눈치만 슬슬 살피는 자판기에
천원 한 장을 밀어 넣자 다시 뱉는다.
“요 놈봐라! 왜? 천원이 싫다는거야!...엉?.....”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자판기는 돈을 삼키고 버튼을 힘주어 눌렀다.
위이이이잉~~~지이이이잉~~~~하는 소리와 함께 종이컵에 커피떨어지는 소리는 쪼르륵 졸졸졸 뚝··· 마치 늙은이의 거시기 볼 때처럼 그소리가 흡사했다.
황갈색커피는 절반도 채우지 않고 “옜다! 이놈 처먹어라!" 하는 표정이다.
마침 새벽 거리의 청소를 나온 미화원 부부에게 두 잔을 건네주고 나도 한 잔 뽑아 들고 있으려니 글쎄 이놈의 자판기는 벌써 계산을 마쳤는지 동전 한 닙을 딸랑 떨구어 주고는
마치 조금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 하는 식으로 아니면 무슨 불만이라도 있느냐?
하는 표정으로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당최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이냐?
“그럼 오늘도 수고 좀들 해주세요. 언제나 고맙고 감사합니다.”
“이봐요! 아저씨! 공무원은 아닌 듯 싶은데 만날 때마다 커피를 뽑아주고 왜 깎듯이 인사를 하고 그래요?
요즘 공무원놈들 아닌 놈들 가릴 것 없이 인사는커녕 마치 독오른 독사의 눈으로 노려보거던요.“
“에~이, 그럴 리가 있나요? 명색이 국민들의 공복들인데 뭐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겠지요.”
학교정문을 조금 지나면 잎새를 다 떨군 은행나무의 앙상한 가지들이 얼어 붙은 보도블럭을 화선지 삼아 그림을 그린다.
왼손에는 커피잔 오른손에는 담배를 들고 유심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가지마다 생김새가 모두 다른데 다른 것들이 모여 한 점 그림들을 아무런 댓가없이 그려 놓는 것이다.
이 넓고 넓은 세상에 뉘라서 이 그림들을 뜻을 알아주랴
지하도 언덕을 내려 가노라면 담뱃불도 꺼지고 커피도 바닥이 보인다.
습관처럼 양손에다 쓰레기를 주워 들고 다시 계단을 오르다가 어김없이 미화원 아무개씨를 만난다.
“에~이 나는 팔자가 사나워 이 짓을 한다지만 당신은 왜 맨날 이 짓을 하고 그래요?”
“팔자는 무슨 놈의 팔자타령이요. 내눈에는 분명히 부처님으로 보이는데요!”
“당신! 시방 날 놀리는겨~엉? 새벽에 도로청소하는 부처님도 다 있다던가?!”
안경점 앞에서 손에 든 쓰레기를 넣으려는데 눈이 돌아간다.
종이상자 속에는 아직은 새것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인형이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꺾이고
황금빛 머리털이 듬성듬성 뽑히어 버려져 있다.
상자의 뒷면을 열어보니
“우리 사랑하는 공주 다섯 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11월 ㅇㅇ일 아빠,엄마가.”
가방속의 하얀 비닐을 꺼내 곱게 싸서 한쪽에 세워 두고 가던길을 재촉한다.
듬성듬성 눈발이 날린다.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다 옷가게 앞 전봇대 아래에서 다시 걸음을 멈춘다.
마네킹 몇 개가 엎어져 서로 다리를 걸치고 하얗게 서리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상하다. 어제 저녁 퇴근 때는 없었는데 말이다.
맞은편 옷가게의 커다란 유리상자안에는 또다른 마네킹들이 신상품을 걸치고 교만하게 또는 요염한 모습으로 버려진 마네킹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구나 역시 버림받는다는 것은 비참하고 슬픈일들이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지난 밤 주인에게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길래 갑질을 당하고 발가 벗겨져 밖으로 내동댕이 쳐졌단 말인가
아무리 갑질을 해도 그렇지 이렇게 추운 날 옷이라도 한 벌 입혀서 내쫓을 일이지 그래 쯧쯧쯧..!
너무한다. 너무해 세상이 이처럼 각박해지다니...
멀지 않은 곳에서는 X-mas 트리의 번쩍거리는 불빛들이 마치 악마의 눈빛처럼 다가온다.
성질도 참으로 급하군 그래
아직도 날짜가 많이 남아 있는데 말이다.
편의점 앞에 다다르니 젊은 청춘들이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고 남녀가 거림낌없이 끌어 안고 고함을 지르고 머리 허연 노인이 열심히 청소를 하는데 앞에서 토악질하고 담배꽁초를 버리고 가래침을 칵칵거리며 벗어대고 담배꽁초를 손으로 튕겨버리고
세상난리도 이런 난리가 따로없다.
“여봐라 이팔청춘들아 이내 말을 들어라!
차마 대놓고 욕을 못하고 속으로만 욕을 한다.
너희들에게도 머지 않아 억새물 닮은 세월이 달려들어 머리털을 모두 뽑아 민둥산을 만들고 곱던 얼굴은 빨래판을 만들고 이빨은 모두 뽑아 합죽이를 만들어 놓을 것이다.
거기다 창끝으로 여기저기를 찔러대니 병원 문턱이 닳아 빠질 것이다.
시청 벽에 걸린 현수막들이 바람에 펄럭이며 마치 누군가의 따귀라도 때릴 듯이 소리를 낸다.
낡은 천막앞에는 내는 터널공사를 즉각 중단하라
오늘따라 버스는 난폭운전이다.
이십년이 넘도록 다닌 길이 이처럼 낯설다니
현재시간 05:50분이다.
일어나서 여기 도착하는데 소요된 시간은 약 두시간이다.
그 두시간동안 세상의 절반은 본 듯 하다.
조오현 시인의 하루살이는 하루를 살아도 볼 것은 다 보았다는 글들이 실감나는 시간이다.
정문입구에 들어서니 음악소리가 요란하다.
아직은 어두움이 그대로인데 보초를 서듯이 서있는 아저씨는 과거 공군대령 출신이다.
전역 후 상관에게 속아 푼푼히 모은 돈 모두 날리고 내려오다 보니 경비의 땅까지 내려 온 것이다. 머지않아 고희란다.
산을 오르는 기술은 날로 발전하는데 하산하는 기술은 후진국형이다.
“무슨일로 아침부터 음악을 틀고 그래요?”
“추락방지실험을 직접한데요!”
“이런..몇년 조용하더니 또 시작이네요.”
07시 30분이 넘자 모두들 오들오들 떨면서 모여든다.
실험이란 것이 5m 높이에서 성인의 평균몸무게의 맞추어 마네킹에게 한쪽은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한쪽은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추락을 시켜 피해상황을 직접 목격하게하고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
마네킹 안에다 붉은 염료를 섞은 페인트를 넣어 놓고 추락했을 때의 끔찍함을 극대화 시켜 주는 것이다.
사람들의 잔인함은 어디까지가 그 끝일까
몇천명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마네킹은 교수형을 당하는 자세로 몸에다 굵은 로프를 걸고 난간에 매달렸다.
마네킹은 말한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우리들이 어째서 인간들의 손에서 처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하는가?
마네킹들의 눈빛은 분노와 원망 절망 끝에선 눈빛들이다.
차라리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쿵 소리와 함께 파편 튀는 소리가 들리고 함성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몇날 몇일을 굶은 맹수들의 소리로 들렸다.
머리부터 산산조각이 나고 바닥에는 핏물이 흥건하다.
그래도 동녘의 태양은 무슨 일들이 있었느냐 하는 식으로 붉게 솟아 오른다.
들고양이 한 마리가 울타리 주변을 배회한다.
용케도 나를 알아보는지 반가운 소리를 낸다.
얼마 전 동가숙 서가숙하는 놈을 보고 추운겨울 잘 견디며 살라고 양지녘에다 커다란 집을 한 채 만들어주고 먹이까지 구해주었더니 몇일을 못가서 덩치크고 힘쎈 놈들에게 집과 먹이를 다
빼앗기고 저렇게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된 것이다.
나는 사람들만 갑질을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저 들 고양이놈 어서 힘을 길러 제집을 다시 찾아야 할텐데
과연 그 날은 오려는가?·····
갑질-박연근.hwp
퇴근버스에서 우연히 수원사는 홍가놈을 만났다.
“야! 박가! 이놈 이제 퇴근하냐?”
“야! 홍가! 네이놈 여기는 이형님의 나와바리인데 왜 인마 침범을 하냐?”
“흥! 나와바리 좋아하시네 짜~식아 그래 잘있었느냐?”
홍가와 박가 두 놈은 어려서부터 담배는 용골대이고 술과는 거리가 멀다.
거기다 생년 생월 생일 생시가 똑같다.
형편이 어려워 정규학교는 가지 못하고 낮에는 직장일에 매딜리고 어두움이 내리면 교복을 입고 야간학교로 가야 하는 당시의 상황을 어찌 지금에 와서 글과 말로서 다 설명하랴!
그때 그 시절은 그게 보통의 일로 여겨지던 시절이였으니까
몇놈이 모여 어두운 그 담장 앞에 숨어 담배를 피우다가 교무주임에게 걸려 몽둥이 찜질도 어려번 당했지 아마도···
그러다가 어줍지 않은 학생운동의 주모자에다 시국사범 올가미에 걸려 글쎄 성동경찰서 고동계로 끌려 갔는데 신원조회 과정에서 박가와 홍가놈이 똑같이 나온 것이다.
우리들을 심문하던 고등계 형사님왈
“이 개xx같은 놈의 새끼들이 아주 세트로 놀고 있구만!”
여지없이 날아오는 주먹세례들도 이제는 아련한 저 산 넘어 메아리가 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버스에서 내려 소위 카페라는 곳을 들어가니 젊은 놈들의 눈들이 날아와 가슴에 박힌다.
“야! 박가 신경꺼라!
우리들은 꼰대들이란 말이야, 마!“
“짜식이 옛날이나 늙어서나 그렇게 눈치가 빵점이냐!?...
야! 홍가놈아 몸은 좀 나아진 것 같으냐?“
“박가놈아 걱정하지 마라 이제 이형님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니놈이 몸이나 잘 챙겨라!“
“그런데 어째서 여길 다 온거야? 그리고 버스는 영통방향 버스를 타야지 우리가 내린 버스는 오산으로 가는 버스란 말이다.
“어~그게 말이지 동탄신도시에 사시는 친척누님 집에 볼 일이 좀 있거든..”
“혹시 일자리를 구하러 온거라면 나에게 부탁을 해도 된다. 걱정하지 말고 말해봐!
우리가 뭐 숨길 사이도 아니잖어“
“그런게 아니고 큰아들놈이 몇 년 전부터 굴삭기를 한 대 사서 일을 해 왔는데 이번에 쓸 만한 중고가 한 대 있다고 해서 살펴 보고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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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제 나름대로 수정본을 따로 올려놓았으니 원본 출력본과 대조하여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