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옥황상제님께서 도기 13년(단기 4254년, 서기 1921년) 신유(辛酉)년 설과 보름에도 단도수공부에만 전념하시고 명절치성은 시종들에게 위임하시더니 2월 중순에 백일공부를 마치시니라. 그동안 엄동설한에 바람막이 하나 없는 해도(海島)에서 불철주야하시는 공부에 동상으로 수족이 붓고 손마디가 터져 피가 흐르시므로 배접(褙接)까지 하셨으나 괴로운 말씀은 고사하고 내색도 아니하시니라.
2. 2월 하순에 상제님께서 범선(帆船)에 시종들을 태우시고 바닷길로 전라도 부안을 향하여 출항하시니라. 중도에 갑자기 폭풍우와 성난 파도가 일어 배가 심히 요동하여 전복당할 지경에 이르고, 돛대가 부러져서 그 돛대 조각이 도사공의 다리에 박혔으나 도사공은 그것도 모르고 항해에만 몰두하는데 시종들이 기겁하여 우왕좌왕하며 도사공에게 회항하자고 독촉하니라. 이때 상제님께서 태연히 갑판 위에 임어하셔서 엄명하시기를 “모두 나를 믿고 안정하라. 만약 뱃머리를 돌려 회항하면 모두 죽으리니 바람을 향하여 곧게 항해하라.” 하시며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거슬러 담뱃대를 던지시자 이내 바람이 멎고 파도가 낮아졌으며 상제님께서 도사공의 다리에 박힌 나무조각을 빼어 주시자 그때서야 도사공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이내 일어나 항해를 무사히 마치니라.
3. 이달 그믐에 부안 변산반도 해창포(海昌浦)에 행행하셔서 다시 우금바위 아래 최석래(崔錫來)의 집에 임어하셔서 공부설석하시니라. 여기서도 철도에서와 같이 낮에는 공부실에서 수도하시고 밤에는 그 집 후원에 설치하신 단 위에서""단도수""와""검무도수""를 보시니라.
4. 어느 날 낮에 상제님께서 공부하시다가 상식을 급히 부르셔서 검무도수에 쓰시는 칼을 내어 주시며 “속히 잘 숨겨 보라.” 하시므로 상식은 엉겁결에 받아 부엌 나뭇간에 숨기니라. 잠시 후에 왜경 한 사람이 와서 상식에게 “무엇하는 아이냐?” 하고 물으므로 “몸이 불편하여 이곳에서 수양하는 중이요.” 하고 답하자 다시 “누구와 같이 있느냐?” 하므로 “어머님과 같이 있나이다.” 하니 “어머님을 불러 오라.” 하는데 마침 이때 공부처에 계시던 선덕부인께서 후원으로부터 나오시니라. 순사가 부인께 “이 아이가 당신 아들이요?” 하고 물으므로 부인께서 “그러하오.” 하시니 순사는 더 묻지 않고 후원으로 가서 단을 보고 묻기에 상식이 “내가 수양하는 여가에 뛰어 노는 운동장이오.” 하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답하니 순사는 혼잣말로 “어떤 수상한 공부꾼이 와 있다기에 찾아왔더니 헛말이구나.” 하고 돌아가니라.
5. 순사가 나간 후에 상식이 부인께 “선생님께서 칼을 급히 숨기게 하신 일과 고모님과 모자간이라고 한 말이 서로 일치한 일과 순사가 단상의 깃대와 노끈도 보지 못하고, 선생님께서 송주(誦呪)하시는 용성(龍聲)이 밖에까지 울림에도 듣지 못함은 실로 신이(神異)한 일이옵니다.” 하고 아뢰니라. 부인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 그뿐이랴? 단 위는 고사하고 단 아래에도 풀이 나지 못하며, 새가 단상에는 날지도 앉지도 못하고, 비와 이슬이 깃발을 적시지 못하며 또 며칠 전에 개가 단상에 올라갔다가 하루종일 움직이지 못하는데, 선생님께서 보시고 ‘영각(靈覺)이 없는 짐승이니 풀어 나가게 하라.’ 하신 후에야 비로소 달아난 일도 있지 않느냐?” 하시므로 상식이 감탄하여 저도 모르게 단을 향하여 재배하니라.
6. 또 어느 날은 그 집주인 석래가 상제님의 신성하심을 듣고 와서 상제님께 “제가 토질로 여러해 동안 고생 중이오니 선생님의 신통력으로 고쳐 주시옵소서.” 하고 간청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의원이 아니니라.” 하시며 윤허하지 않으시더니 거듭 애원하므로 “정녕 그렇다면 나를 믿고 돌아가서 태을주를 백독하라.” 하시니라. 석래가 그 날밤 태을주를 외우자 갑자기 혼절하여 인사불성이 되므로 그의 처가 상제님께 황망히 와서 고하매 “그것은 병이 낫는 징조니라. 나를 믿고 기다리라.” 하시더니 이튿날 새벽에 쾌차하였으며 그 후로는 재발하지 아니하니라.
7. 하루는 상제님께서 상식과 창규에게 “오늘은 너희들이 자유로이 나가 놀다 오라.” 하시므로 그들은 뒷산 우금바위에 올라가서 구경하며 놀았는데 다시 내려오려 하니 그 바위는 사방이 수십길의 절벽인데 오를 때와는 달리 내려오는 길을 찾을 수 없으니라. 날은 점점 어두워져서 이제는 죽는구나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으나 문득 “너희는 위급한 일을 당하거든 언제나 나를 생각하고 태을주를 외우라.” 하시던 상제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그 자리에 법좌하고 상제님을 생각하며 태을주를 지극한 정성으로 외우매, 앞이 환하여지며 기운이 솟아나므로 바위 위에서 서로 손을 잡고 뛰어내렸으나 상처 한 곳 나지 않고 무사히 귀가하니라. 상제님께 뵈니 “다시는 그런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 도인은 위태함을 미리 피하여야 하느니라.” 하시고 잘못을 비는 두 사람에게 “사람이 잘못한 후에 빌기보다 평소에 심신을 성?경?신으로 닦아 잘못됨이 없어야 하느니라.” 하시고 부사의방(不思議房)과 진표율사(眞表律師)에 관한 전설을 하교하시니라.
8. 4월 중순에 상제님께서 통사동 공부처로 환어하셔서 수도하시다가 28일 봉천명일 대치성에 앞서 가족과 도인들에게 하명하시기를 “내가 13년 전 오늘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받들어 모신 이래, 구천상제님께서 물샐틈없이 짜 놓으신 도수를 풀어 맞추는 공부에 진심갈력(盡心竭力)하여 이제 그 도수의 제1단계 공사를 성취하였노라. 무릇 상제님의 도수는 현묘하고 심오한 진리로서 이루 다 형언할 수는 없지마는 그 원강(原綱)은 오직 무극대도라. 천명, 천서, 천보의 삼천대운(三天大運)에 부합하여 수많은 도수를 마쳤으니 이는 내가 구천상제님의 도통(道統)계승자임이 실증됨이라. 이에 나 스스로""무극대도주의 권명(權名)""을 천하에 고(誥)하노라.” 하시니라.
9. 이어 도인들에게 “나는 이제부터 대도의 진주로서 천명과 신권(神權)을 용(用)하여야 하므로 오늘 치성도 도주(道主)의 위격(位格)으로 올리는 것이니라. 그대들은 이를 명심하여 자금이후(自今以後) 나를 도주로 받듦을 본분으로 하되 제원(諸員)의 칭호를 도인으로 하노라. 또한 나의 도호가 정산(鼎山)임을 고하는 바, 이는 구천상제님께서 천명과 함께 미리 내리신 도호니 이제 도수를 받들어 사용하느니라.” 하시고 치성에 임하시니 모든 도인이 감복하니라. 이날 치성시에 맑은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뇌성이 울리므로 상제님께서 “뇌성보화(雷聲普化) 천존상제님께서 하감흠향(下鑑歆饗)하심이니라.” 하시니라.
10. 치성 후에""봉축주""의 신설과""진법주""의 일부 변경을 하명하시고 성령위지의 서식도 하교하시니 다음과 같으니라
봉축주(奉祝呪)
无極神 大道德 奉天命 奉神敎 无極道主 趙鼎山 大運大事
무극신 대도덕 봉천명 봉신교 무극도주 조정산 대운대사
所願成就케 하옵소서. 를 신설한다.
소원성취
진법주(眞法呪)
""九天 下鑑之位""를""九天應元 雷聲普化 天尊 姜聖上帝
구천 하감지위 구천응원 뇌성보화 천존 강성상제
下鑑之位""로""勿秘昭示하사 所願成就케""를""勿秘昭示하사
하감지위 물비소시 소원성취 물비소시
无極神 大道德 奉天命 奉神敎 无極道主 趙鼎山 大運大事 所
무극신 대도덕 봉천명 봉신교 무극도주 조정산 대운대사 소
願成就케""로 변경한다.
원성취
성령위지 서식(聖靈位紙書式)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 至神至聖聖靈之位
11. 이날 상제님께서는 도주님의 위격으로 도인들의 하례를 받으시고, 비로소 도의 체제(體制)를 정비하셔서 이상우, 권태로, 권영문, 이정두, 박붕래 등을 임원으로 임명하시니라. 이어 임원들에게 하명하시기를 “대도사업의 흥륭(興隆)이 오로지 그대들에게 있느니 그 사명을 명심하고 포덕에 더욱 힘쓰되, 오늘의 일을 전도인에게 공포하라.” 하시니라. 임원들이 서맹(誓盟)을 올리고 분발하니 이로부터 포덕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하였으며 상제님께서는 다시 백일공부에 임하시니라.
12. 5월에 상제님께서 서산공께 청탁하셔서 기유(己酉)년 망명 후에 남의 소유가 된 회문리(會文里)의 옛집을 사들여 복구하게 하시고, 그 가족을 이주시켜 옛집과 선영(先塋)을 수호하며 농사로 생계하게 하시니 서산공께서는 황새마을과 회문리를 수시로 왕래하며 이를 감독하시니라.
13. 8월 중순에 통사동 공부처에서 백일공부를 마치시고 선정대모와 상의하신 후 선덕부인과 강순임 등 증산상제님 유가족들을 비롯하여, 이상우, 권태로, 이정두 등 임원들을 대동하시고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淸道里) 김사일(金思日)의 집에 거둥하셔서 공부설석하시고 10여일간 도수를 보시니라. 9월 초5일 저녁에 그 곳 뒷산 장탯날 증산상제님의 초빈(草殯)에 고천의례(告天儀禮)를 올리신 다음, 일행으로 하여금 초빈을 헐게 하시니라. 친히 상제님의 성골(聖骨)을 관에서 정성들여 수렴(收殮)하셔서 칠성판(七星板) 위에 순차로 정제(整齊)하신 후에 통사동 공부처로 모셔 오시니라. 이 초빈은 상제님의 유명으로 대렴도 않은 채 입관하여 봉설한 곳이니라.
14. 상제님께서 성골을 다시 깨끗하게 닦아 백지로 감으시고 비단으로 봉렴(奉殮)하셔서 공부실 상좌에 봉안하신 다음, 대치성을 올리시니라. 이로부터 매일 목욕재계하시며 선덕부인을 위시한 유가족과 임원들을 대동하시고 조석상식과 삭망절사(朔望節祀)를 상례절차(喪禮節次)에 준하여 봉행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상제님의 도통을 계립(繼立)한 진주이나 재세시에 옥체를 직접 봉성(奉省)하지 못하였으므로 이제 이와 같이 모심으로써 천의(天意)를 받드느니라. 이는 상제님께서 도수로 정하신 일로서 염습(殮襲)과 매장(埋藏)을 절차대로 봉행하지 않고 초빈하게 하신 유명에 연유함이니 이 도수를""삭망도수(朔望度數)""라 하며 앞으로 9회의 삭망만 봉사하면 마치게 되느니라.” 하시고 성체(聖體)를 모신 공부실에서 이 도수에 따른 백일공부를 이해 12월 중순까지 하시니라.
15. 삭망도수공부 중 9월 19일 구천상제님 강세일에 대치성을 올리신 다음, 임원들을 공부실에 시좌시키고 하교하시기를 “나의 도통은 요순(堯舜)의 상수지법(相授之法)과 같으니라.” 하시며 기쁜 얼굴로 다음의 한시(漢詩) 한 수를 읊어 주시니라.
時時?誦空山裏 夜夜閑聽潛室中
시시묵송공산리 야야한청잠실중
分明造化成功日 堯舜禹王一切同
분명조화성공일 요순우왕일체동
16. 이어 하명하시기를 “내가 지금까지는 임시로 남의 재실을 쓰고 있으나 이제부터는 도의 근본이 되시는 구천상제님의 성령봉안처(聖靈奉安處)로서 도장(道場)이 긴요(緊要)하니 그대들은 이의 영건(營建)을 위한 방책을 세우도록 하라.” 하시니라.
17. 임원들이 명을 받들고 모든 도인에게 명령을 공포한 후, 성금으로써 영건비(營建費)에 충당하기로 협의, 결정하고 도장영건추진위원회(道場營建推進委員會)를 조직하니라. 위원회의 도유사(都有司)에는 서산공, 각도 유사(有司)에는 전라도에 권태로, 경상도에 이정두, 충청도에 이상우, 경기도에 정치성(鄭治成) 등을 선정하였으며, 그 관하(管下)에 다시 각 군 유사로 정읍에 박붕래, 김제에 김사일, 부안에 박순태(朴淳泰), 서산에 김창규, 보령에 이문삼(李文三), 한양에 박돌영(朴乭榮), 평택에 김성균(金成均), 안동에 권영수(權寧壽), 풍기에 조진명(趙鎭明), 금릉에 김태윤(金太潤), 밀양에 이종태(李鍾泰), 진주에 김윤진(金潤珍) 등을 선정하니라. 이를 상제님께 상신하고 재가를 받들어 즉시 임명을 모신 후, 유사들의 활동으로 이해 연말에 도장기금 3만원이 성금으로 원납(願納)되어 상제님께 올리니 도인들은 이를""원납도수(願納度數)""라 일컬으니라.
18. 상제님께서 인신(人身)으로는 독자이시며 종손이심에도 성혼하신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숭도부인께서 태기가 없으시므로, 도장 내외분께서는 항상 걱정하시면서 재혼을 추진하시니라. 이해 11월에 밀양 상동면 안인리 회동(檜洞) 전주 이씨(全州李氏) 선직(善直)의 장녀를 간택하여 혼인하게 하시니 신부는 성정이 순정하고 재덕이 비범하며 휘는 금한(金漢), 도호는 숭정부인(崇政夫人)이시니라.
19. 임술(壬戌)년 원조에 상제님께서 명절치성을 올리시고 세배를 받으신 다음, 임원들에게 하명하시기를 “지난 1년간 그대들의 정성으로 도세(道勢)가 융흥(隆興)하였음을 치하하노라. 그러나 호사에는 마가 많은 법이니 금년에도 더욱 도를 위하여 힘쓰되 머지 않아""현무 음해도수(玄武 陰害度數)""가 있으리니, 그대들은 각별히 조심하여 도업(道業)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 하시니라. 임원들은 음해도수라는 말씀에 불길한 예감이 들어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였으나, 도를 위하여 순명(殉命)할 것을 다짐한 임원으로서 오직 상제님만을 믿고 도령(道令)에 복종하리라는 결의를 다지니라.
20. 정월 보름 치성 후에 상우에게 하명하시기를 “너는 강열수(姜悅秀)를 데리고 보령지방(保寧地方)으로 나가서 도가를 순방하며 포덕과 교화에 힘쓰되, 열수의 행동을 잘 살펴서 내게 보고하라.” 하시니라. 열수는 진주 사람으로 지모와 학식이 있고 음양술(陰陽術)에 능하더니 입도 후에는 수완을 발휘하여 임원들의 신임을 받았으나, 그 성질이 간교(奸巧)하여 반복이 심하고 재리(財利)를 탐하는 위인이므로 상우는 상제님께서 이를 아시고 이와 같이 하명하심으로 생각하니라.
21. 상우가 열수를 데리고 보령으로 가는 도중 군산에서 유숙할 때, 열수가 “전주에 가서 동지를 만나야 할 일이 있으니 3일간의 말미를 달라.” 하므로 상우는 말리다 못하여 보내고 그곳 도가를 순방하며 열수를 기다리니라. 약속한 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므로 의심이 나서 그곳 도인 김윤성(金潤成)을 보내어 상제님께 “열수의 행동이 수상할 뿐더러 기약한 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사오니 더욱 의심스럽나이다.” 하고 상고하니 “3일 내로 돌아오지 않으면 돌아오라.” 하고 교시를 내리시니라. 상우는 다시 기다렸으나 오지 않으므로 24일 통사동으로 돌아오니라.
22. 23일에 상제님께서 우수절후치성(雨水節候致誠)을 입절 시각인 술(戌)시 초에 올리시니 참례원은 도장 내외분을 위시하여 선덕부인, 숭정부인과 정두, 영수 등 임원과 김정우(金正雨) 등 도인 몇 명이고 다른 임원들은 지방순회에 나갔으므로 도합 10명에 불과하니라. 이날 초저녁에 숭정부인께서 치성에 쓰실 법수(法水)를 길어 오기 위하여 재실 앞 샘에 나가시니 주변 소나무 숲속에서 인기척이 났으며 형언할 수 없는 살기를 느끼시니라. 치성 후에 일동이 음복(飮福)을 마치자 이상하게 졸음이 심하여 모두 각자의 침실에서 곤히 잠들었는데 자정경에 20여명의 폭도(暴徒)로부터 습격을 당하니라.
23. 폭도들은 저마다 복면을 하고 곤봉을 들었는데 10여명은 담 밖에서 재실을 포위하고, 10여명은 대문 안으로 들어와서 횃불로 온 집안을 밝히며 “꼼짝하면 모두 죽인다.” 하고 고함치니라. 그 중 몇 명은 문간방으로 들어가 정두, 정우 등 자던 사람들을 안마당으로 끌어내어 밧줄로 묶어 놓고, 몇 명은 재실 큰방으로 침입하여 “도주 여기 있다.” 하고 외치면서 주무시는 복우도장을 상제님으로 잘못 알고 곤봉으로 사정없이 내리치니 그 자리에서 혼절하시니라. 또 몇 명은 건넌방으로 침입하여 선덕부인과 숭정부인을 안마당으로 끌어내어 밧줄로 묶고 머리채를 함께 잡아매므로 숭정부인께서 “이놈들아, 강도라면 돈이나 빼앗아 가지, 사람은 왜 해치느냐?” 하고 외치면서 대항하시다가 그들의 곤봉에 맞아 한 동안 실신하시니라.
24. 이때 상제님께서는 미리 실내의 중요 물품을 가방에 넣어 놓고 공부하시다가 폭도들이 들이닥치자, 가방 하나만을 들고 대청에서 가족과 도인들의 안위(安危)를 살피시고 계셨으나, 폭도들은 바로 앞에서도 알아보지 못하니라. 마침 정두가 알아보고 밧줄을 풀며 일어나서 “도주님, 빨리 피하소서.” 하며 상제님을 호위하려고 대청으로 뛰어들 즈음, 폭도들도 비로소 알아보고 곤봉을 휘두르며 대드니라.
25. 상제님께서 대문 쪽으로 출어하심을 본 정두는 급히 뒤따랐으나 이내 보이지 않으시고, 폭도들만 좌우에서 달려들므로 날래게 피하여 황새마을까지 뛰어가서 이 사실을 서산공께 알리니라. 숭덕부인께서도 대문으로 나가시는 상제님을 폭도들이 추격함을 보시고 뒤따랐으나 보이지 않아 찾지 못하시고 언덕 너머 아랫동네로 뛰어가시며 “영모재에 강도 들었다.” 하고 외치시고 황새마을 본댁으로 돌아가시니라.
26. 폭도들은 상제님께서 나가심을 보고 추격할 때, 대문까지는 보였으나 그 후로는 담 밖을 포위하던 10여명의 폭도들도 모두 보지 못하니라. 이에 다시 들어와서 공부실을 샅샅이 뒤져 상제님께서 미리 문갑 속에 남겨 놓으신 약간의 돈과 상좌에 모셨던 구천상제님의 성체를 모시고 도망하니라.
27. 상제님께서 폭도들이 도망간 후에 환어하셔서 선덕부인과 함께 공부실을 살피시니 성체와 돈은 없어졌고, 증산상제님의 좌수성골(左手聖骨)만 남아 있으므로""천지도래일장중(天地都來一掌中)""의 뜻을 되새기시며 정중히 수습하여 간수하시니 선덕부인께서는 비통하여 흐느끼시니라. 상제님께서 안마당에는 상한 사람이 없음을 살피신 다음, 큰방으로 임어하시니 도장께서 그때까지 혼절 중이시니라. 상제님께서 일으키시니 그제야 깨어나셨으나 오른 손목에 심한 골절상을 입으셨으므로 “소자로 인하여 이렇게 혹독한 변을 당하셨으니 불효막급(不孝莫及)이옵나이다.” 하시며 애통하여 눈물을 흘리시니라. 날이 밝자 바로 원평 병원으로 모셔서 입원, 치료받게 하셨으나 달포가 지나도 완치되지 않으셔서, 다시 전주 도립병원으로 옮겨 치료에 정성을 다하시니라.
28. 한편 서산공께서는 정두로부터 급보를 받으시고 황새마을 청년도인 수십명을 동원시켜 황급히 통사동에 이르셨으나, 폭도들이 도주한 후이므로 교대로 파수보게 하시다가 날이 밝은 후에 돌려보내시니라. 도장께서는 입원 중에도 아우들과 함께 상제님의 신변을 염려하셔서 당분간 거처를 옮기시도록 간곡히 권유하시니라.
29. 상제님께서 숙부(叔父)들의 권유에 따라 황새마을로 거둥하셔서 며칠 동안을 본댁과 조송제(趙松濟)의 집으로 바꾸어 옮기시며 유어(留御)하시는데, 폭도들은 매일 2, 3명씩 작당하여 형사로 가장하고 통사동과 황새마을을 번갈아 뒤를 밟으니라. 하루는 그들이 상제님께서 본댁에 행재하심을 탐지(探知)하고 들어가면 송제의 집에, 또 송제의 집으로 찾아가면 본댁에 행재하셔서 그들이 집요하게 추적하였으나 끝내 찾지 못하니라.
30. 이에 앞서 상우는 군산에서 돌아오다가 중도에서 김정우를 만나니, 그는 열수의 친구이고 도인으로 행세하며 절후치성에 참례한 자로서 상우에게""열수가 김제에서 기다린다""하여 함께 가니라. 열수가 상우를 보자 “너로 인하여 대사를 망쳤으니 너를 죽이겠다.” 하며 포악하게 대들므로 상우도 약속을 어긴 사실을 들어 대항하니 싸움이 벌어지니라. 이때 정우가 중간에서 “지난 일은 막론하고 앞일이나 함께 잘 하자.” 하며 서로 화해시키므로 상우는 그들의 음모를 탐지할 속셈으로 거짓 화해하고 그들의 심복이 되기로 약속하니, 그들은 그제야 상우에게 음모의 경위와 계략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여 주니라.
31. 그들의 말에 의하면 열수는 그동안 모교단의 임원이던 문남룡(文南龍)의 꾀임에 빠져 남룡의 주동으로 비밀리에 폭도들을 규합하여, 이때 상제님께서 모신 증산상제님의 성체와 둔궤를 비롯한 도장기금(道場基金)을 강탈하기로 모의하니라. 이에 열수는 도중(道中)의 정보를 제공하고 탈취한 돈은 남룡과 반으로 나누기로 하되, 거사일은 우수절로 정하고 미리 정우를 치성참례원으로 가장, 잠입시켜 전수에 몽혼약(?昏藥)을 몰래 타는 등 치밀한 음모를 추진하니라. 그런데 상우가 이 사실을 상제님께 서찰로 보고하여 상제님께서 둔궤와 기금을 미리 숨기셨으므로 이번에는 증산상제님의 성체와 기금의 극히 적은 액수밖에 강탈하지 못하고 실패하였으니 이는 오직 상우의 탓이라 하니라.
32. 이어 그들은 상우에게 “지금도 계속 증산상제님의 좌수성골을 위시하여 기금 전부와 둔궤를 강탈하고자 심복들을 형사로 가장시켜 사방으로 도주(道主)를 찾는 중이나, 이제는 네가 통사동으로 돌아가 도주의 소재를 탐지하여 알려 주어야 하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비밀보장을 위하여 너를 죽일 수밖에 없다.” 하고 위협하니라. 상우가 둔궤는 조주일이 가져간 사실을 말하였으나 그들은 듣지 않고 더욱 협박하므로, 부득이 거짓 동의하고 열수와 함께 25일 통사동으로 돌아오니라.
33. 또 그들의 말에 의하면 이번에 폭도들이 사용한 곤봉은 인가목(人架木)으로 만든 것인데, 그 나무는 본래 증산상제님께서 재세시에 태인 도창현을 순행하시다가 단장을 길가에 꽂으시며 “이 단장목은 인가목이라. 이 나무가 살아서 후일 곤봉감이 되면 반드시 인명피해가 있으리라.” 하시더니 그 후에 과연 그 인가목이 살아나서 크게 자라자, 모교단에서는 “인명피해가 있으리라.” 하신 말씀을""필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잘못 믿고 더욱 번식시켜 많은 곤봉을 만들어 보관하던 것이라 하니라.
34. 상우와 열수가 돌아오매 통사동에서는 이러한 사정도 모르고 반기면서 강도사건을 설명하려 하므로 상우가 은밀히 그 내막을 알려 상제님의 행방을 극비에 붙이도록 단속하니라. 열수는 가족들을 거짓으로 위안하더니 며칠 뒤에 상우에게 약간의 쓸 돈을 주며 약속이행을 다짐받고 다시 김제로 돌아가니라.
35. 상우가 황새마을로 가서 상제님께 배알하고 제가 불민(不敏)하여 수난 당하심을 사죄하니 말씀하시기를 “도수임을 어찌하랴? 도시 천운이나 성사(成事)가 재인(在人)함도 잊지 말라.” 하시니라. 상우가 다시 열수의 배신 경위와 음모 계략을 상세히 보고하고 당분간 이어하시도록 상신하니 서산공도 수긍하시므로 상제님께서는 수년 전에 만주에서 대전으로 이사한 빙택(聘宅)으로 거둥하셔서 설석하시고 공부하시니라.
36. 이날 밤에도 형사를 가장한 자들이 다시 통사동 재실로 들어와서 방바닥과 천장, 주방, 광의 구석구석과 모든 그릇을 뒤져보고 마당 곳곳을 파헤치더니 가족들의 몸수색까지 하고자 하니라. 참다 못하신 숭정부인께서 “너희들이 정말 형사라면 강도 잡을 생각은 않고, 도리어 강도당한 집에 와서 이리 행패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하고 호되게 꾸짖으시니 그제야 그들이 돌아가니라.
37. 이즈음 숭정부인께서는 상제님께서 맡기신 기금을 넣은 전대(錢袋)를 허리에 차셨는데, 마루 앞에 서서 그들을 꾸짖으시는 동안 전대 끈이 풀어져서 아래로 흘러내려 발등에 떨어지므로 이를 발로 마루 밑에 밀어 넣으셨다가 그들이 돌아간 후에 다시 거두시며 “도적의 무리가 어찌 감히 하늘의 뜻을 거역하리요?” 하시니 듣는 이가 모두 숙연하니라.
38. 상제님께서 대전으로 행행하실 때 시종과 안내자도 없이 홀로 큰길을 버리고 좁은 길로 거둥하시더니 산길은 험하고 날이 저문데다 갈증마저 심하시니라.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으셔서 길가에 앉아 쉬시는데 뜻밖에 쉬기 전에는 보지 못하신 인가가 옆에 있으므로 주인을 찾으시매 약초 캐는 일을 생업으로 한다는 노인 내외가 처음 뵙는 상제님께 과분하리 만큼 융숭히 대접하니라. 하룻밤을 편히 쉬시며 위안을 받으시고 사례금을 주셨으나 끝내 받지 않으므로 “반시지반(半匙之飯)도 은공이어늘 이 또한 도심(道心)이로다.” 하시고 다시 출어하셔서 무사히 대전 빙택에 임어하시니라.
39. 3월 12일에 상제님께서 빙택에서 공부하시다가 집 앞에 거둥하시자 그때까지 추적하던 열수 등 폭도들에게 발각되셔서 그들의 소굴인 대전 본동 중앙여관으로 임어하게 되시니라. 그들은 상제님께 “좌수성골과 둔궤, 그리고 도장기금을 내놓지 않으면 죽인다.” 하고 협박하므로 “둔궤는 조주일이 가져갔고 성골과 금품은 너희들이 모두 강탈하고서 무슨 적반하장(賊反荷杖)이냐?” 하시며 대응하시니 언쟁이 벌어지니라.
40. 이 언쟁으로 여관이 시끄럽게 되고, 그 내용이 수상하므로 여관주인이 경찰에 고발하여 긴급출동한 형사대에 의하여 상제님께서도 그들 일당 10여명과 함께 대전경찰서로 연행되시니라. 조사 결과 상제님께서는 피해자이심이 판명되어 환어하시고 폭도들은 김제경찰서의 조회에서 강도, 상해 등 죄목으로 수배중임이 탄로나서 구속, 기소되어 실형을 언도 받았는데 열수와 정우는 대전형무소에서 옥사하고, 남룡 등 몇 명은 7년 형기를 마치고 출감하였으나 모두 패가망신(敗家亡身)하니, 이로써 폭도들의 만행은 근절되었으며 도중에서는 이를""현무 음해도수(玄武 陰害度數)""라 일컬으니라.
41. 이에 앞서 빙택에서는 상제님께서 말씀도 없이 출어하신 후 소식이 없으므로 심히 궁금하여 황새마을 본댁으로 사람을 보내니, 본댁에서는 그의 말을 듣고 당황하니라. 마침 이때 열수가 상우에게 보낸 서신을 보니 “지금 도주와 함께 대전경찰서에 구금되어 있으니 속히 와서 수습하여 달라.” 하는 내용인지라, 비로소 사유를 알고 당일로 서산공과 상우가 대전으로 가니 상제님께서는 이미 환어하신 후니라.
42. 상제님께서 며칠 후 정읍경찰서에서 대전경찰서의 연락을 받고 신변보호를 위하여 파송한 요원의 호위를 받으시며 위풍당당하게 황새마을로 환어하시니라. 이때 황새마을에서는 폭도들의 만행을 우려하여 달포 전에 통사동 공부처를 비우고 가족들이 모두 합솔하여 있던 중이며 동네에서는 축하연을 베푸니라.
43. 상제님께서 3월 중순에 새로 공부처를 물색하시더니 한양 도인 박돌영(朴乭榮)의 주선으로 마포 도화정(桃花町)에 전세집 1동을 얻어 공부설석하시니라. 먼저 도장 내외분과 숭정부인을 이사하게 하시고 며칠 후에 시종들을 거느리고 행행하셔서 백일공부에 임어하시며 포덕을 독려하시니 한양의 명사 다수가 입도하여 포덕에 힘썼으며 그 중에서도 이기창(李基昌), 노병선(盧炳先), 김윤진(金允珍) 등의 공적이 현저하게 많으니라.
44. 이와 같이 포덕이 날로 늘고 도인들의 내왕이 빈번하여 도화정 공부처가 협소하므로 가족들은 그대로 두시고 윤5월 그믐에 돈암정(敦岩町)에 큰 집을 얻어 설석하셔서 제2차 백일공부에 들어가시니라. 이 기간에 낮에는 공부실에서 수도하시고, 밤에는 후원에 새로 축조한 단 위에서 도수를 보시니라. 단 가운데 높이 세운 깃대에는 태극팔괘의 기를 달고 동서남북 사방에 각 12개의 작은 깃대를 세워서 만국기를 하나씩 단 다음, 중앙과 사방의 깃대를 서로 노끈으로 잡아매게 하심은 안면도 단도수에서와 같이 하시니라. 단에 임어하실 때마다 안개가 일어 아무도 단 위의 상제님과 세워 놓은 깃대를 볼 수 없었으며, 당시 경도(京都)의 사람들 사이에 난세(亂世)에 대도인(大道人)이 출현하셨다는 소문이 자자하니라.
45. 이해 추석 며칠 전에 상제님께서 상우에게 하명하시기를 “지난 정월에 내가 대전으로 갈 때 후대하여 준 산중의 노부부를 찾아가서 은공을 사례하라.” 하시며 그 위치를 자세히 하교하시므로 찾아갔으나 그곳에는 집도 노부부도 없으니라. 헛걸음하고 돌아와서 결과를 보고하니 미소하시며 “그 일은 마음으로 전하였으니 그로써 되었느니라. 다만 너희는 삼재(三才), 오행(五行), 우주만물의 무한한 은덕 속에 사는 고마움을 알고 보은을 명심하라.” 하시니라.
46. 9월 중순에 다시 적선정(積善町)에 큰 집을 얻어 제3차 백일공부를 하시고 계해(癸亥)년 원조 치성을 공부 파석(罷席) 치성과 아울러 올리시니라. 이때 도화정 가족과 임원들로 하여금 많은 전수를 장만하여 운반하게 하시니, 혹독한 추위에 수고한 숭정부인을 비롯한 가족과 임원들의 노고를 깊이 위로하시고, 치성을 더욱 정성되게 모셔서 인(寅)시에 마치시니 동천(東天)이 붉게 물들며 사람의 음성 같은 뇌성이 진동하니라.
47. 치성 후 세배를 받으시고 임원들에게 하교하시기를 “내가 이제 삼처삼도(三處三度)의 공부로써""서울도수""를 마쳤느니라. 이로써 진법이 서울서 조선 전토(全土)에 퍼지며 다시 세계 전지역에 미치리니 천행(天幸)이로다. 조선의 서울이 태극의 중심이 되는 도수라, 일갑(一甲)이 지나면 천하만국인이 가슴에 태극을 품고 서울로 와서 세계일가(世界一家)의 기틀을 다지며 환호하는 날이 있으리니 그 아니 장하랴. 그러나 그대들은 새서울이 따로 있음을 알지니라.” 하시니라.
48. 또 어안(御眼)을 감으시며 엄숙히 말씀하시기를 “그 일갑이 지나면 나의 태극진리가 문명(文命)으로 화하여 새서울에서 큰 소리를 치리니 시유기시(時有其時)며 시호시호(時乎時乎)니라.” 하시니라.
49. 상제님께서 정초에 가족과 시종들을 황새마을로 돌려보내신 다음, 숭정부인과 상우만을 거느리시고 회문리로 거둥하셔서 며칠 간을 행재하시니라. 이때 서산공의 맏사위인 칠원 구포(龜浦) 사람 배문걸(裵文傑)을 입도시키시고 시봉을 명하시니 문걸은 성정이 순후하고 학문이 뛰어난 선비였으며 이로부터 10여년간 상제님께 지성으로 시종하니라.
50. 정월 중순에 밀양 외가에 거둥하셔서 정사년에 물색하여 두신 밀양 하남면 동산리(東山里) 세천(洗川)마을 도인 김병문(金炳文)의 집을 공부처로 정하시고 백일공부를 하시며""둔도수(遁度數)""와""납폐도수(納幣度數)""를 보시니 숭정부인이 수종하시고 문걸 등이 시봉하니라. 상제님께서 이 곳 도수에 쓰신 납폐지(納幣紙)를 보존하셨다가 훗날 태인도장(泰仁道場)을 영건하실 때 영대(靈臺) 터에서 소화하시니라.
51. 5월 초에 밀양 상동면 유천리(楡川里) 도인 장득원(張得遠)의 집에 공부설석하시고 다시 백일간의 단도수를 보시며""진인보두법(眞人步斗法)""으로 수도하시니 혹독한 더위에 겪으신 고초는 형언할 수 없으시니라. 이때에도 숭정부인이 수종하시고 문걸 등이 시봉하였으며 황새마을 임원들은 교대로 매월 세천과 유천으로 가서 경과를 보고하고 명령을 모시니 이때에 밀양방면 등의 입도인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니라.
52. 유천 공부처에서 도수를 보시다가 구천상제님 화천일을 당하여 공부를 잠시 중단하시고 회문리 옛집에서 치성을 올리시니라. 이에 앞서 미리 명을 받은 밀양의 이우형(李佑衡), 김용국(金容國), 최창근(崔昌根), 김병문(金炳文), 장득원(張得遠), 부산의 박민곤(朴玟坤), 안동의 권태로(權泰魯), 의성의 조원규(趙源奎), 예천의 이종창(李鍾昶), 신용흠(申容欽),봉화의 박붕래(朴朋來), 김천의 김옥규(金玉圭), 풍기의 조진명(趙鎭明) 등 임원들이 참례하니라.
53. 이날 상제님께서 임원들에게 하교하시기를 “금년이 이재신원(利在新元)의 계해(癸亥)년이니 대도의 제왕지운(帝旺之運)이 다가오고 있느니라. 내 이제 전도문(傳道文)을 내리느니 이로써 세운(世運)을 자각하고 포덕, 수도에 더욱 힘쓰라.” 하시니라.
전도문(傳道文)
七閏十九歲爲章 二十七章是會當
칠윤십구세위장 이십칠장시회당
按 間一年置閏則 有餘日 間二年 置閏則 日不足 及至十九
안 간일년치윤즉 유여일 간이년 치윤즉 일부족 급지십구
年 置七閏則 無餘不足 故以十九年 爲一章 二十七章
년 치칠윤즉 무여부족 고이십구년 위일장 이십칠장
爲一會 一會 凡五百十三年 孟子所謂 五百年必有王者
위일회 일회 범오백십삼년 맹자소위 오백년필유왕자
此也.
차야
三會爲統三統元 循環往復互無疆
삼회위통삼통원 순환왕복호무강
按 一會 各五百十三年則 三會 合一千五百三十九年也 一統
안 일회 각오백십삼년즉 삼회 합일천오백삼십구년야 일통
各一千五百三十九年則 三統 合四千六百十七年 是爲一
각일천오백삼십구년즉 삼통 합사천육백십칠년 시위일
元.
원
四六一七前丁巳 軒轅立極肇斯元
사육일칠전정사 헌원입극조사원
按 黃帝 卽位 距今四千六百十七年前 丁巳 (上元甲前計算)
안 황제 즉위 거금사천육백십칠년전 정사 (상원갑전계산)
萬象萬事皆有定 諸法諸書總此源
만상만사개유정 제법제서총차원
按 天文地理人事 皆黃帝之所始敎而 史記紀年 亦自黃帝始
안 천문지리인사 개황제지소시교이 사기기년 역자황제시
也.
야
傳?頊?勛華禹 初統初會世世聖
전효욱곡훈화우 초통초회세세성
按 自黃帝 至於舜禹 略五百年矣 初統初會者 以黃帝 爲始
안 자황제 지어순우 약오백년의 초통초회자 이황제 위시
則 以黃帝元年 計以至於舜禹 五百十三年者也.
즉 이황제원년 계이지어순우 오백십삼년자야
日出萬暉同發明 春回品物共華盛
일출만휘동발명 춘회품물공화성
初統之中降中季 聖不承承但一時
초통지중강중계 성불승승단일시
按 初統者 黃帝以後 凡一千五百三十九年之謂而 五百十三
안 초통자 황제이후 범일천오백삽십구년지위이 오백십삼
年 以後則 初統之中會也 一千二十六年以後則 爲初統
년 이후즉 초통지중회야 일천이십육년이후즉 위초통
之季會也.
지계회야
禹後有湯湯後文 一會一聖應會期
우후유탕탕후문 일회일성응회기
中統由來世漸降 聖不道行但敎傳
중통유래세점강 성불도행단교전
按 中統者 黃帝卽位後 一千五百三十九年以後 爲中統也.
안 중통자 황제즉위후 일천오백삼십구년이후 위중통야
釋後有孔孔後耶 一會一敎各門筵
석후유공공후야 일회일교각문연
按 釋迦如來 距今二千九百五十年 (癸亥年計) 癸丑生, 孔子
안 석가여래 거금이천구백오십년 계해년계 계축생 공자
距今二千四百七十四年 庚戌生, 耶? 距今一千九百二十
거금이천사백칠십사년 경술생 야소 거금일천구백이십
三年 辛酉生.
삼년 신유생
季統敎亦無肇聖 惟有述聖繼啓來
계통교역무조성 유유술성계계래
按 季統者 黃帝卽位後 三千七十八年 以後之季統也.
안 계통자 황제즉위후 삼천칠십팔년 이후지계통야.
佛梁儒宋耶羅馬 一敎一昌應會回
불량유송야라마 일교일창응회회
按 距今一千五百年前 六朝及新羅之時 佛道中興, 其後 五百
안 거금일천오백년전 육조급신라지시 불도중흥 기후 오백
年 距今約一千年前 大宋之時 濂洛諸賢 一時傳道, 其後
년 거금약일천년전 대송지시 염락제현 일시전도 기후
五百年 羅馬法王 以耶?敎 爲西洋之盟主.
오백년 나마법왕 이야소교 위서양지맹주
54. 치성 후에 다시 유천리로 환어하셔서 백일공부를 마치시고 8월 중순에 청도(淸道) 화악산(華岳山) 적천사(?川寺)의 도솔암(兜率庵)에 공부설석하시고 백일간의""단도수""를 보시니 이때에도 수종과 시봉은 전과 같으니라. 단도수는 암자 옆 칠성각 위의 공지에 쌓으신 단 위에 수십개의 태극기와 신장명패(神將名牌)를 세우시고 반구정에서 보신""검무도수""와 같이 밤에 장검을 드시고 단에 오르셔서""천회지전보칠성 우보상최등양명(天回地轉步七星 禹步相催登陽明)""또는""신장명호(神將名號)""를 외우시며""진인보두법(眞人步斗法)""으로 공부하시니라. 공부하실 때에는 누구도 보지 못하게 하시고 기와 명패는 공부가 끝나는 즉시 거두게 하시니라.
55. 11월 그믐에 황새마을로 환어하셔서 측근 임원들에게만 하교하시기를 “단도수의 단은 법단(法壇), 천제단(天祭壇)의 단이며 단(檀)과 같은 뜻이므로 단군(檀君)의 명호도 이를 취함이니 나의 이 도수로써 해원(解?)의 대운이 제래(齊來)하게 되리라.” 하시니라.
56. 이때 도인의 수가 수만에 달하므로 황새마을에는 도인들의 왕래를 통제하시고 임원들만 출입하게 하셨으나, 그래도 매일 수십명씩 행렬을 지어 찾아와서 번잡하니라.
57. 상제님께서 12월 초4일 강세일 치성을 마치신 후에 가족들과 임원들에게 하명하시기를 “내가 도주의 위에 오른 지도 이미 3년이 되었고 그동안""삭망도수, 납폐도수, 단도수와 검무도수""등을 무사히 마쳤으니 이제부터는 당분간 큰 고난이 없으리라. 현재 당면한 가장 큰 사업은""음해도수(陰害度數)""로 일시 중단한""도장영건(道場營建)""의 일이니 속히 추진하라.” 하시니라.
58. 상제님의 하명을 모신 도중가족과 임원들이 협의하여 도장영건추진위원회를 재정비하고 업무를 개시하기로 하되, 우선 대지 선정은 명교(命敎)를 기다리기로 결의하여 상제님께 보고하니라. 상제님께서 임원들을 시립시키시고 하명하시기를 “도장영건사가 합의 구성되었으니 반가운 일이나, 임원들은 먼저 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여 천기를 누설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라. 도장의 기지(基地)는 구천상제님께서 이미 비장(秘藏)하신 바이나 이제야 말하느니 내 명령 없이는 도중에도 공표하지 말라. 또 공사를 추진함에 모든 가족과 임원들은 도유사(都有司)의 영에 따라야 하리라.” 하시고 맹세를 받으시니라.
59. 또 상우와 태로, 정두 등에게 따로 하명하시기를 “너희들은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고 내일 태인 도창현에 가서 도장기지로 마땅한 곳을 찾으라. 그 곳은 내가 가서 점지(占之)하여도 되지마는 증산상제님께서 즐겨 찾으시며""상유도창(上有道昌) 하유대각(下有大覺) 백의군(白衣君) 백의신(白衣臣), 운회지지(運廻之地)""를 말씀하시고 현무경(玄武經)을 소화하시며 공사를 보셔서 나에게 주신 비장(秘藏)한 곳이므로 너희들이 찾아야 하는 도수니라. 본래 비장은 일심의 지성이 아니면 찾을 수 없는 법이니 각별히 유념할지니라.” 하시니라. 상우 일행이 하명하신 대로 도창현에 가서 지형지세가 알맞은 곳을 찾아 놓고 돌아와서 결과를 보고하니 “그곳에 치마바위가 있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상우 등이 지표(地表)에 솟아나거나 언덕에 나타난 바위가 있는데 그 지방에서는 이를 치마바위라 한다는 사실을 상고하니 “옳게 찾았도다. 내가 내일 직접 가서 확정하리라.” 하시니라.
60. 초6일에 혹한을 무릅쓰시며 임원 몇 사람을 거느리시고 도창현에 거둥하셔서 치마바위를 확인하신 다음, 그 바위를 기준으로 도장의 경역(境域)을 정하시고 그 경역내의 토지를 매입하도록 명하시니라. 경역은 치마바위 위로 약 2,000평, 아래로 약 3,500평, 도합 약 5,500평이며 땅임자는 부근에 사는 김창집(金昌集) 등이니라. 지형은 완만한 경사의 밭인데 값은 정조(正租) 350석으로 흥정되어 다음해 정월 그믐까지 전부 매수되니라. 이때 도장영건 명령을 전달받은 도인들이 스스로 앞을 다투어 성금을 헌납하니라.
61. 상제님의 하명으로 대지가 매수되자 도유사의 지휘하에 인원, 공구, 자재 등을 준비하여 3월 초1일에 기공치성(起工致誠)을 올린 후, 정지작업을 시작하니 이 소식에 접한 전국 도인들 수백명이 운집하여 공사에 자진참여하니라. 명령으로 지정하신 경계선에 따라 높은 곳의 흙을 파서 남쪽 낮은 지역을 메우니 북쪽에 높이 약 3장, 길이 약 50칸인 치마바위의 암벽이 일직선으로 확연히 나타나서 마치 성도 같고 병풍도 같아 절경을 이루니라.
62. 대지는 그 주위에 좌청룡(左靑龍)인 황금산(黃金山), 우백호(右白虎)인 성황산(城隍山), 주산인 항가산(恒伽山), 안산(案山)인 도이산(道伊山)이 그림처럼 배열되고 중앙 한 곳에 청량천수(淸?泉水)가 줄기차게 용출하니 훗날 도인들은 이를 유천(乳泉)이라 하였으며 수천 도인의 용도에 넉넉하니라. 도인들은 물론 이 소문을 들은 인근 주민들도 모두 신기하여 감탄하였으며 임원들은 “구천상제님께서 비장하셨다가 나에게 점지하신 곳이라.” 하신 상제님의 말씀이 실증됨에 더욱 기뻐하며 감복하니라.
63. 도장대지 3,500평의 정지공사를 불과 25일만에 완료하자 상제님께서 즉시 정초 입주(定礎立柱)하게 하시며 설계, 시공의 세세한 부분까지 점검(點檢)하시니라. 또 금주령을 내리셔서 목공, 토공, 잡부 모두 경건히 공사에만 전념하게 하셨으며 도유사이신 서산공은 공사 전반을 일사불란하게 지휘, 감독하시니 이때에 매일 동원된 목수는 180여명, 석공은 80여명이며, 또 목재는 압록강 근처에서 구하여 사용하였고, 기와는 현장에서 구워 사용하시니라.
64. 이해 5월 초에 상제님께서 밀양 종남산 김용국(金容國)의 재실 영성정(靈聖亭)에 설석하셔서 백일공부로""납폐도수""를 보시고 도인들도 각자 10만장씩의 납폐지를 소화하게 하시니라. 이때 숭정부인께서는 임신 중의 불편하신 몸으로 음식, 의복 등 수발에 고난이 막심하셨으며, 더구나 매일 납폐지(納幣紙) 소화로 연기의 그을음에 절인 의복 세탁에 골몰하시니라. 상제님께서는 이 도수공부를 용화산 반구정으로 옮겨 마치시니라.
65. 이 영성정공부에 수종하던 안동도인 김해산(金海山)이 수년 후에 배신하고 영성정에 가서 상제님를 모방하여 신도를 모으다가 실패하자 밀양읍에 나가 야간에 군중을 모아 놓고 도술(道術)을 부린다 하며 전등불로 사술(詐術)을 자행하다가 발각되어 도망하니 세간에는 이 일이 상제님의 소행으로 잘못 전해지니라.
66. 8월 중순에 백일공부를 마치시고 대구 남산정(南山町)으로 행행하셔서 공부하시니라. 이때 수시로 시종들을 거느리시고 팔공산(八公山)으로 거둥하셔서 엽총으로 사냥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금 이 총을 발사하여 산을 울리게 함은 12월은 소를 뜻하는 축(丑)이고, 구(邱)는 언덕이니 소가 언덕에 비비는 격도 되지마는, 훗날 국운이 비색(否塞)할 때 이곳 대구(大邱)가 대구(大救)의 보루가 되어 구국할 큰 언덕이 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니라.
67. 9월에는 홀로 행행하셔서 만주 노고산과 중국 강동지방 등 망명 당시 공부하시던 곳을 두루 순행하시며 도수를 보신 후에 대구로 환어하시니라. 다시 회문리로 거둥하셔서 설을 쇠신 후에 칠서(漆西), 무릉(武陵)에서 공부하시고 2월에 태인으로 임어하셔서 도장공사를 독려하시니라.
68. 을축(乙丑)년 4월 15일에 도장의 주요 건물인 영대(靈臺)와 도솔궁(兜率宮)이 영건되고 그 밖의 건물과 시설은 다음해 말에 완공되니라. 영대는 총 48칸의 건물로서 상층에 구천상제님의 영위(靈位)를 봉안하시고, 2층과 하층은 집회장으로 쓰게 하시니 그 내부는 3층이나 외부는 2층의 구조이니라. 그리고 도솔궁은 총 72칸의 건물로서 상층은 33천(三十三天)을 봉안하신 도솔궁, 3층은 칠성신명을 봉안하신 칠성전, 2층은 육정신(六丁神)과 제대신명(諸大神明)을 봉안하신 봉령전(奉靈殿), 하층은 상제님께서 도수를 보시며 공부하시는 중궁(中宮)이라 명명하시니 그 내부는 4층이나 외부는 3층의 구조이니라.
69. 영대와 도솔궁을 중심으로 각종 회관과 사무실, 거실과 주방, 창고와 작업실 등의 건물이 있고, 도장 주위에는 담장을 축조하였으며 동서남북 사대문을 내니라. 전체 건물의 동수는 증축한 부분을 합하여 19동이며 총 칸수는 240여칸, 구조는 목조, 기와 지붕에 건물마다 단청을 한 전통 고전형(古典形)이니라. 공사 기간은 33개월, 동원 인원은 연 12만명, 공사비는 5만원에 달하니라.
70. 이달 28일 봉천명일에 상제님께서 도장영건을 겸한 영대봉안(靈臺奉安)의 치성을 봉행하시니라. 치성 전날 구천상제님의 존호(尊號)를 신격위로서는 구천응원 뇌성보화 천존상제님, 인격위로서는 강성증산상제님으로 봉대(奉戴)하신""구천응원 뇌성보화 천존 강성상제 지신지성성령지위(九天應元 雷聲普化 天尊 姜聖上帝 至神至聖聖靈之位)""의 성령위지(聖靈位紙)와 33천을 비롯한 제대신명의 위지를 배문걸로 하여금 봉서(奉書)하게 하셔서 치성시에 친히 봉안하시니라.
71. 치성 전야에 상제님께서 수천명 도인과 내빈이 운집하여 도열(堵列)한 영대 앞 광장의 단상에 의연(毅然)히 임어하셔서 고시(誥示)하시기를 “구천천존상제(九天天尊上帝)님의 진법(眞法)을 봉대, 수행하는 오도(吾道)의 도명은 무극대도니라.” 하시매, 천안(天顔)에서 광채가 발하고 용성옥음(龍聲玉音)에 산악과 전각이 향응하며 영대가 서광을 방출하고 화기난풍(和氣暖風)에 도장이 익익(翼翼)하니라. 이어 각 건물의 명칭을 친히 명명하시며 대도의 지표와 도인의 본분을 훈교하시니라.
72. 치성 후에 도장역사에 공이 많으신 서산공을 비롯한 각급 유사들을 치하하시고, 위로금과 음복을 하사하셔서 3일간의 축하연을 베풀게 하시니 도인들은 감격하여 환호, 갈채하니라. 그 후 1년 반에 걸친 나머지 공사도 도인들의 자진 참여로 순조롭게 완성되니라.
73. 이날 상제님께서 다음과 같은 무극대도(无極大道)의 취지서(趣旨書)를 포유(布諭)하시니라.
취지서
夫 道也者는 天所命而 人以行之者也ㅣ라. 天有无極大道하
부 도야자 천소명이 인이행지자야 천유무극대도
야 以无極之理로 化生人矣니라. 人生於此无極之理라, 故로
이무극지리 화생인의 인생어차무극지리 고
此道與理는 人皆所有者也ㅣ나, 然而나 人鮮能行此者는 何也
차도여리 인개소유자야 연이 인선능행차자 하야
오. 蓋 道卽理也ㅣ요 理卽无極也ㅣ며 无極卽天也ㅣ라. 凡 志
개 도즉이야 이즉무극야 무극즉천야 범 지
道者ㅣ 必須念天也ㅣ니, 念天也 故로 敬天하고 敬天也 故로
도자 필수염천야 염천야 고 경천 경천야 고
必對天有誠이라. 有誠也 故로 明하며 明而至하고 至而變하며
필대천유성 유성야 고 명 명이지 지이변
變而化하야 可以得贊乎天地化育矣니라.
변이화 가이득찬호천지화육의
然而나 蚩蚩衆生은 弊於物慾而 不念天하고 不知萬物之絪
연이 치치중생 폐어물욕이 불염천 부지만물지인
縕化育이 皆是天之所賜하며, 不覺萬有之運用動息이 皆是天之
온화육 개시천지소사 불각만유지운용동식 개시천지
所使하야 榮辱死生을 皆歸自己能力하고 窮達憂樂을 輒曰自
소사 영욕사생 개귀자기능력 궁달우락 첩왈자
然偶然타가 適陷於非常窮地者ㅣ 呼天訴天而 ?免危急則 輒
연우연 적함어비상궁지자 호천소천이 재면위급즉 첩
稱吾智吾力하야 祈天求命을 謂之惑하고 敬天事神을 謂之虛
칭오지오력 기천구명 위지혹 경천사신 위지허
하니 此非自絶於天者而何오?
차비자절어천자이하
唯天이 不棄斯民하사 賜我以大道하시니 曰无極이라, 无極
유천 불기사민 사아이대도 왈무극 무극
者는 天地無極之理라 天以理授人하시고 人以道受於天하니
자 천지무극지리 천이리수인 인이도수어천
須感天授하고 克念受道하야 專念對天하고 專事以道하야 必
수감천수 극념수도 전념대천 전사이도 필
行仁義禮智信하며 必守三綱五倫하고 勤於耕織하며 節約經濟
행인의예지신 필수삼강오륜 근어경직 절약경제
하고 應力商工하라. 職皆天之所授也則 必其務也ㅣ니라. 毋傷
응력상공 직개천지소수야즉 필기무야 무상
人하고 不害物하며 無爲凶雜鬪怒之事하고 不可爲分外之妄事
인 불해물 무위흉잡투로지사 불가위분외지망사
하라, 皆是天厭之穢德也ㅣ라, 故로 敎人에 務其廣布하고 勤
개시천염지예덕야 고 교인 무기광포 근
之勉之하며 信之至誠하면 同是天生赤子며 必如一身이라, 憶
지면지 신지지성 동시천생적자 필여일신 억
念誦讀經文에 使煩思雜慮로 不得生於心中하라, 然則 精神專
념송독경문 사번사잡려 부득생어심중 연즉 정신전
一하야 可以得心和氣和矣리라.
일 가이득심화기화의
天이 明明乎在上하시고 洋洋乎在左右하시니 造次戰兢하고
천 명명호재상 양양호재좌우 조차전긍
燕獨必愼하며 居坐出入에 唯天是念하고 視聽言動에 惟道是
연독필신 거좌출입 유천시념 시청언동 유도시
遵하며 敬以持身하고 習與性成하야 以至至誠하면 天必感應
준 경이지신 습여성성 이지지성 천필감응
하사 心靈自通矣리라. 心靈通則 明通乎无極之至理하야 以知
심령자통의 심령통즉 명통호무극지지리 이지
天體天하며 以與天地合其德하야 以至參乎天地矣리니, 惟我道
천체천 이여천지합기덕 이지참호천지의 유아도
友는 皆以勤勖而成就也ㅣ니라.
우 개이근욱이성취야
74. 이어 신조(信條)와 강령(綱領), 요체(要諦)를 명교하시니 이러하니라.
신조
陰陽合德 ? 神人調化 ? 解?相生 ? 道通眞境
음양합덕 신인조화 해원상생 도통진경
4강령
安心 ? 安身 ? 敬天 ? 修道
안심 안신 경천 수도
3요체
誠 ? 敬 ? 信
성 경 신
75. 또 도규(道規)를 공포하시니 이러하니라.
도규
1. 본도(本道) 도인은 본도의 취지, 강령을 심숭(心崇)하여 지원(志願)하는 자로 한다.
2. 본도 도인은 취지, 강령을 실체(實體)하고 심공(心工)을 성건(誠虔)히 하여 일체중생(一切衆生)에 선각(先覺)한 다.
3. 본도 도주는 도리(道理)를 천명하여 일반도인의 도통(道 通)과 일체중생의 진선(進善)에 지성심력(至誠心力)한다.
4. 본도의 본부는 전라북도 정읍군 태인면 태흥리에 둔다.
5. 본도의 임원(任員)은 아래와 같다.
본부임원
(1) 정위원(庭衛元) 1인
(2) 승정원(承正元) 1인
(3) 판정(判正) 약간인
(4) 순찰(巡察) 약간인
지방임원
(1) 수포감(首布監) 약간인
(2) 포감(布監) 약간인
(3) 선포장(宣布長) 약간인
(4) 포덕(布德) 약간인
6. 본도 임원의 임무는 아래와 같다.
(1) 정위원과 승정원은 본도의 전반도무(全般道務)를 총 할(總轄)한다.
(2) 판정은 승정원을 보좌하여 도중업무를 분장처리한다.
(3) 순찰은 본부로부터 지방에 파견하여 포감과 그 지방 의 도무(道務)를 협리(協理)한다.
(4) 수포감은 포감, 선포장, 포덕을 독려하고 본부와 지방 도인과의 연락사무를 맡는다. 단, 2인 이상의 선포장 을 도솔(道率)하는 자를 포감이라 칭한다.
(5) 선포장은 도인 1백20인을 교도(敎導), 관리한다.
(6) 포덕은 포덕(布德)에 종사한다.
7. 본도의 임원은 수도의 실험(實驗)과 포덕의 공효(功效) 에 따라서 임명한다.
8. 본도의 도인은 입도시에 수인금〈數人金: 입도례(入道 禮)〉으로 1원50전을 납입하고 매월 5전 이상의 월성금 (月誠金)을 납입한다.
9. 본도 도인 중에 본도의 강령과 규약을 위반할 시는 출 도(黜道)처분한다.
10. 본도의 도인은 심성을 시시(時時)로 수련하고 치성을 힘대로 봉행(奉行)하여 성의(誠意)를 표한다.
11. 본도의 치성은 아래와 같다.
(1) 기념치성
음 9월 19일 증산상제탄일(甑山上帝誕日)
음 6월 24일 증산상제둔일(甑山上帝遁日)
(2) 임시치성
도인이 수의(隨意)로 봉행(奉行)한다.
12. 본도의 지용(支用)은 수인금(數人金), 월성금(月誠金) 혹 은 도인의 자원표성(自願表誠)하는 물화(物貨)로써 충용 (充用)한다.
13. 본규에 미비한 조건은 관례에 의한다.
14. 본규는 필요에 의하여 개정함을 득한다.
76. 이날 도규에 따라 상급 임원을 다음과 같이 임명하시니라.
정위원 이우형(李佑衡)
승정원 권태로(權泰魯)
판 정 조원규(趙源奎) 장득원(張得遠)
포 감 이상우(李商雨) 이정두(李正斗) 정치선(鄭致先)
김사일(金思日) 권영수(權寧壽) 이종태(李鍾泰)
김대윤(金大潤) 김윤진(金潤珍) 김창규(金昌奎)
김성균(金成均) 박순태(朴淳泰) 김문삼(金文三)
순 찰 김근락(金瑾洛) 김병팔(金秉八) 조진명(趙鎭明)
77. 상제님께서 치성의 절차순위(節次順位)와 전수진설(奠需陳設)을 법제(法制)하시니 다음과 같으니라.
치성 절차순위
시립(侍立) 명촉(明燭) 진설(陳設) 분향(焚香) 배례(拜禮) 초헌(初獻) 아헌(亞獻) 삼헌(三獻) 배례(拜禮) 고유(告諭) 퇴갱(退羹) 헌다(獻茶) 유식(侑食) 하시(下匙) 배례(拜禮) 예필(禮畢)
치성 전수진설도
78. 또 입도치성의 절차도 법제하시니 일반치성에 준하되 명촉 후에 성령위지를 봉안하고 법수(法水)를 봉정(奉呈)하며 고유 후에 납명지(納名紙)를, 예필 전에 위지를 각각 소화하며 납명지의 서식(書式)은 다음과 같으니라.
납명지서식
79. 5월 초5일에 상제님께서 갑기일(甲己日)을 주일로 정하시고 도인의 기도봉행(祈禱奉行)도 법제하시니라. 시간을 평일에는 축?미(丑未)시 2회, 주일에는 자?오?묘?유시 4회를 추가하며, 장소는 자가 정침(自家正寢)으로 하되, 절차는 사전에 소세(梳洗), 정장(正裝)하고 설석하여 법수를 봉정하고 명촉, 분향, 배례한 다음, 법좌하여 사전에 지정하신 여러 종류의 주문을 연송하고 배례 후, 예필하게 하시니라.
80. 이때 수련, 또는 기도시에 봉송하는 주문을 하교하시니 천서의 주문 이외에 다음의 주문이 있으니라.
음양경(陰陽經)
乾定坤順 乾陽坤陰 日行月行 日陽月陰 有神有人 神陰人陽
건정곤순 건양곤음 일행월행 일양월음 유신유인 신음인양
有雄有雌 雌陰雄陽 有內有外 內陰外陽 有右有左 左陽右陰
유웅유자 자음웅양 유내유외 내음외양 유우유좌 좌양우음
有隱有顯 隱陰顯陽 有前有後 前陽後陰 天地之事 皆是陰陽
유은유현 은음현양 유전유후 전양후음 천지지사 개시음양
中有成 萬物之理 皆是陰陽中有遂 天地以陰陽成變化 神人
중유성 만물지리 개시음양중유수 천지이음양성변화 신인
以陰陽成造化 天無地 化無布於其下 地無天 功無成於其上
이음양성조화 천무지 화무포어기하 지무천 공무성어기상
天地和而萬物暢 天地安而萬象具 神無人 後無托而所依 人
천지화이만물창 천지안이만상구 신무인 후무탁이소의 인
無神 前無導而所依 神人和而萬事成 神人合而百工成 神明
무신 전무도이소의 신인화이만사성 신인합이백공성 신명
?人 人?神明 陰陽相合 神人相通 然後 天道成而地道成
사인 인사신명 음양상합 신인상통 연후 천도성이지도성
神事成而人事成 人事成而神事成 神明神明 天地諸神明 下
신사성이인사성 인사성이신사성 신명신명 천지제신명 하
鑑垂察 奉命神 太一聖哲 所願成就
감수찰 봉명신 태일성철 소원성취
운합주(運合呪)
元亨利貞 天地之道 仁義禮智 人神之道 乾坎艮震巽離坤兌
원형이정 천지지도 인의예지 인신지도 건감간진손리곤태
八位之精 東西南北 四位之精 周天三百六十五度四分度之一
팔위지정 동서남북 사위지정 주천삼백육십오도사분도지일
轉換之度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天十之精 子丑寅卯辰巳午
전환지도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천십지정 자축인묘진사오
未申酉戌亥 地十二之精 金木水火土 五行之精 靑紅黃白黑
미신유술해 지십이지정 금목수화토 오행지정 청홍황백흑
五色之精 宮商角徵羽 五音之精 黃鐘大呂太?夾鐘姑洗仲呂
오색지정 궁상각치우 오음지정 황종대려태주협종고세중려
?賓林鐘夷則南呂無射應鐘 律呂之精 酸苦甘鹹辛 五味之精
유빈임종이칙남려무역응종 율려지정 산고감함신 오미지정
春夏秋冬 四時之精 日月星辰風雲霹靂 造化之精 雨陽?寒
춘하추동 사시지정 일월성신풍운벽력 조화지정 우양욱한
調和之精 六洲山岳 鍾陸之精 江湖河海 鍾水之精 原濕井野
조화지정 육주산악 종륙지정 강호하해 종수지정 원습정야
率土之精 走飛草木 品物之精 正直剛柔 淸濁之精 萬國國土
솔토지정 주비초목 품물지정 정직강유 청탁지정 만국국토
京邑之精 萬國州郡 人民之精 儒佛仙 一合之精 文武才
경읍지정 만국주군 인민지정 유불선 일합지정 문무재
兼用之精 壽富貴攸好德多男子 五福之精 喜怒哀樂 中和之
겸용지정 수부귀유호덕다남자 오복지정 희로애락 중화지
精 貌言視聽思五事之精 食貨祀司空司徒司寇賓師 八政之精
정 모언시청사오사지정 식화사사공사도사구빈사 팔정지정
世界人民 觀測之精 王公侯伯子男六爵 封帙之精 萬國各都
세계인민 관측지정 왕공후백자남육작 봉질지정 만국각도
一合之精 天下壯士 使用之精 四海蒼生 赤子之精 四海疆土
일합지정 천하장사 사용지정 사해창생 적자지정 사해강토
一統之精 海印造化如意 做作之精 仙佛儒諸修道者 修道一
일통지정 해인조와여의 주작지정 선불유제수도자 수도일
合之精 諸道度 諸精氣 茁茁歸 茁茁歸 合吾太一聖哲 合吾
합지정 제도도 제정기 줄줄귀 줄줄귀 합오태일성철 합오
太一聖哲 崩騰績宇 周隨利隨 唵合? 玆利周利 遵制 娑婆
태일성철 붕등적우 주수이수 음합음 자리주리 준제 사바
?
아
옥추통(玉樞統)
天門地戶 玉樞大判 上帝出座 萬神擧令 左右劍戟 前後旗幟
천문지호 옥추대판 상제출좌 만신거령 좌우검극 전후기치
風雨大作 日月晦冥 霹靂聲震 山水崩潰 天轉地轉 陰陽變化
풍우대작 일월회명 벽력성진 산수붕궤 천전지전 음양변화
海印造化 無窮無極 無山退海 移野崩陵 殺氣消滅 惡物自死
해인조화 무궁무극 무산퇴해 이야붕릉 살기소멸 악물자사
神急人忙 不分晝夜 北斗樞 西斗樞 南斗樞 東斗樞 中斗樞
신급인망 불분주야 북두추 서두추 남두추 동두추 중두추
轉換 東岳柱 南岳柱 西岳柱 北岳柱 中岳柱 改立 東海門
전환 동악주 남악주 서악주 북악주 중악주 개립 동해문
西海門 南海門 北海門 開闢 金元氣 水元氣 木元氣 火元氣
서해문 남해문 북해문 개벽 금원기 수원기 목원기 화원기
土元氣 改定 急如雷火 疾如直矢 億兆蒼生 手下生活 天地
토원기 개정 급여뇌화 질여직시 억조창생 수하생활 천지
人大判決 大事定位 陰陽五行 順平定位 萬物群生 各各定位
인대판결 대사정위 음양오행 순평정위 만물군생 각각정위
天地復定 日月更明 山通水源 淸明世界 和順世界 萬理新制
천지부정 일월갱명 산통수원 청명세계 화순세계 만리신제
建哲極于中五 廣濟化 四極大定 永定五萬年 淸化之世 唵唵
건철극우중오 광제화 사극대정 영정오만년 청화지세 음음
急急 如律令
급급 여율령
명이주(明耳呪)
天地昇光 地支昇曠 日月昇曠 開呪聞耳 聞呪耳曠 耳邊有聲
천지승광 지지승광 일월승광 개주문이 문주이광 이변유성
速通人義 唵唵 急急 如律令
속통인의 음음 급급 여율령
오방주(五方呪)
謹請 東方工曹太?天? 靑帝將軍 南方太乙勝光小吉 赤帝
근청 동방공조태충천강 청제장군 남방태을승광소길 적제
將軍 西方傳送從魁河魁 白帝將軍 北方登明神后大吉 黑帝
장군 서방전송종괴하괴 백제장군 북방등명신후대길 흑제
將軍 中央黃帝將軍 降我局所 侍吾主人太一聖哲 吾奉三淸
장군 중앙황제장군 강아국소 시오주인태일성철 오봉삼청
眞王 急急 如律令
진왕 급급 여율령
오장주(五臟呪)
天尊曰 木肝中 靑氣氣從 左便重出化爲 火心中 赤氣氣從
천존왈 목간중 청기기종 좌편중출화위 화심중 적기기종
前面重出化爲 金肺中 白氣氣從 右便重出化爲 水腎中 黑
전면중출화위 금폐중 백기기종 우편중출화위 수신중 흑
氣氣從 背上重出化爲 土脾中 黃氣氣從 額上重出化爲 百節
기기종 배상중출화위 토비중 황기기종 액상중출화위 백절
氣從 千脈貫通 百事如意 萬事如意 天上天下 地上地下 人
기종 천맥관통 백사여의 만사여의 천상천하 지상지하 인
間萬事 無不通知 急急 如律令
간만사 무불통지 급급 여율령
구령삼정주(九靈三精呪)
天有貪狼文曲巨文祿存廉貞武曲破軍左輔右弼 九星 人有天
천유탐랑문곡거문녹존염정무곡파군좌보우필 구성 인유천
生武靈玄珠定中孑丹雷雷丹元太靈靈童 九靈 天有虛精六淳
생무령현주정중혈단뇌뢰단원태령영동 구령 천유허정육순
曲生 三台 人有太光爽靈幽精 三精 天人爲一 星靈不移 相
곡생 삼태 인유태광상령유정 삼정 천인위일 성령불이 상
隨人間 守護吾身 上照下應 道氣團圓 延命長生 福祿無邊
수인간 수호오신 상조하응 도기단원 연명장생 복록무변
與天同德 與日同明 與時順序 與物會合 江山不老 九州淵源
여천동덕 여일동명 여시순서 여물회합 강산불로 구주연원
上天入地 無不通明 觀形察色 無不通知 遠報近報 禍福影應
상천입지 무불통명 관형찰색 무불통지 원보근보 화복영응
如谷有聲 如影隨形 我兮神兮 感應感應 一如所願 吾奉九天
여곡유성 여영수형 아혜신혜 감응감응 일여소원 오봉구천
應元雷聲普化天尊 玉淸眞王律令
응원뇌성보화천존 옥청진왕율령
태극주(太極呪)
太極宮中 大聖 獨尊 亞聖太一聖哲之下 奉印使臣 ○○○
태극궁중 대성 독존 아성태일성철지하 봉인사신
前面 玉帝有命打神霹靂印佩 後面 靈天神君東來獨聖帝 蓋
전면 옥제유명타신벽력인패 후면 영천신군동래독성제 개
載天地 分野定位 九復之化 日月星辰 萬象之度 通心神 通
재천지 분야정위 구복지화 일월성신 만상지도 통심신 통
靈神 至靈至氣 至氣今明 通靈九宮 通神九度 飛天上天 至
령신 지령지기 지기금명 통령구궁 통신구도 비천상천 지
靈心君 飛天中天 至靈心君 飛天下天 至靈心君 飛天世界
령심군 비천중천 지령심군 비천하천 지령심군 비천세계
飛天玆地 至精今至 飛天上帝 至靈至靈 飛天九宮 飛天九宮
비천자지 지정금지 비천상제 지령지령 비천구궁 비천구궁
太極九宮 太極九宮 吾主太一聖哲所立 吾主太一聖哲所立
태극구궁 태극구궁 오주태일성철소립 오주태일성철소립
世界所立 世界所立 飛飛白雲 飛飛飛天 惟我太極 飛天無上
세계소립 세계소립 비비백운 비비비천 유아태극 비천무상
明明心君 至化至化 至精靈靈心君 九變九復 通靈心君 無
명명심군 지화지화 지정영령심군 구변구복 통령심군 무
窮無窮 造化心君 鑑視萬千 尊帝尊帝 上帝尊帝 飛化飛武
궁무궁 조화심군 감시만천 존제존제 상제존제 비화비무
至精靈光 赫赫開化 分野靈光 明明心天 度度靈光 靈儀玉帝
지정영광 혁혁개화 분야영광 명명심천 도도영광 영의옥제
淸境淸境 神明神明 天地宗道先生 白雲法師 諸大神君 造化
청경청경 신명신명 천지종도선생 백운법사 제대신군 조화
通心神 通靈神 助我千千變通 萬萬變化 天地嚴命 打神霹靂
통심신 통령신 조아천천변통 만만변화 천지엄명 타신벽력
印 應敎萬里 印神隱藏 印鬼卽滅 印山卽崩 印水卽渴 印火
인 응교만리 인신은장 인귀즉멸 인산즉붕 인수즉갈 인화
卽烟 印風卽空 千機萬機 飛弓飛乙 法火師 卽卽明印 武弓
즉연 인풍즉공 천기만기 비궁비을 법화사 즉즉명인 무궁
武乙 分野師 度度物印 進兵退印 ?疾滅印 授天眞言 天命
무을 분야사 도도물인 진병퇴인 학질멸인 수천진언 천명
道師 萬法道人 玉樞金剛 大化師 急如吾奉四海應身 律令勅
도사 만법도인 옥추금강 대화사 급여오봉사해응신 율령칙
예고주(曳鼓呪)
曳鼓神 曳彭神 石蘭神 東西南北中央神將 造化造化 云吾命
예고신 예팽신 석란신 동서남북중앙신장 조화조화 운오명
令?
령훔
학도희선주(學道希仙呪)
炎帝聖君 高上神宵 玉淸眞王 南極長生 周陵大帝 太陽九壘
염제성군 고상신소 옥청진왕 남극장생 주릉대제 태양구루
星君 南品大府 修鍊眞人 至眞霹靂大仙 仙都九儀九夷 蓬萊
성군 남품대부 수련진인 지진벽력대선 선도구의구이 봉래
蒼水使者 上淸三境都元帥 九天採訪使者 應元普運 妙化眞
창수사자 상청삼경도원수 구천채방사자 응원보운 묘화진
君 軸化律令大神 廣妙橫天演眞大元帥 掌行風催雨 除祀破
군 축화율령대신 광묘횡천연진대원수 장행풍최우 제사파
廟 驅除潭洞 總統三元八十一天 雷霆都摠管 炎帝天君 元始
묘 구제담동 총통삼원팔십일천 뇌정도총관 염제천군 원시
祖劫 一氣分眞 太乙雷聲普化天尊 說玉樞寶經 開經偈 神宵
조겁 일기분진 태을뇌성보화천존 설옥추보경 개경게 신소
雷祖帝 九天普化君 談道?丘峯 持法驅麒麟 統攝善惡杖 掌
뇌조제 구천보화군 담도질구봉 지법구기린 통섭선악장 장
令辨雷霆 三神逢初六 察人善惡情 消災幷度厄 稱名誦寶經
령변뇌정 삼신봉초육 찰인선악정 소재병도액 칭명송보경
天尊臨御 玉淸天中 七寶層臺 諸天諸仙 拱手侍立 雷師晧翁
천존임어 옥청천중 칠보층대 제천제선 공수시립 뇌사호옹
長禮長? 九峯丹霞 琅風淸微 光明如意 琦雲郁麗 至道深窈
장례장궤 구봉단하 낭풍청미 광명여의 기운욱려 지도심요
不在其他 道以誠入 道以?守 道以柔用 天地惟一 風土氣殊
부재기타 도이성입 도이묵수 도이유용 천지유일 풍토기수
愚可以智 濁可以淸 妙於自然 十方三界 諸天諸地 日月星辰
우가이지 탁가이청 묘어자연 시방삼계 제천제지 일월성신
仰照俯臨 上以學道希仙 下以除病度厄 延年益壽 福祿長遠
앙조부림 상이학도희선 하이제병도액 연년익수 복록장원
聞名得名 念功得功 吟龍成龍 思虎騎虎 入水不溺 入火不燒
문명득명 염공득공 음룡성룡 사호기호 입수불닉 입화불소
刀山任踰 劒樹自解 所求所願 一一如意 百千萬事 莫不靈圖
도산임유 검수자해 소구소원 일일여의 백천만사 막불영도
玉淸元始天尊 降臨佑我 上天靈普天尊 降臨佑我 太淸道德
옥청원시천존 강림우아 상천영보천존 강림우아 태청도덕
天尊 降臨佑我 九天貞明大聖 降臨佑我 監視萬天 浮遊三界
천존 강림우아 구천정명대성 강림우아 감시만천 부유삼계
學者神淸 道者氣爽 心曠體? 凡所希求 悉應無違 吾奉九天
학자신청 도자기상 심광체반 범소희구 실응무위 오봉구천
應元雷聲普化天尊 玉淸眞王律令
응원뇌성보화천존 옥청진왕율령
81. 상제님께서 태인 대각교(大覺橋) 옆의 상수답(上水沓) 20여정보를 매입하셔서 본부 직영(直營)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으로 경비와 식량을 자급(自給)하게 하시고, 도창현 너머에 5천여평의 치성답(致誠畓)을 두셔서 치성미를 자족(自足)하게 하시니라.
82. 대도의 기구(機構)와 신앙체계(信仰體系)가 완비되니 도인들의 신심이 더욱 굳어 포덕에 힘씀으로써 도세가 나날이 불어나 불과 몇 년 사이에 도인의 호수(戶數)가 10만을 넘으니라.
83. 9월 19일 구천상제님 강세일에 상제님께서 치성을 마치시고 다음과 같은 각도문(覺道文)을 포유(布諭)하시니라.
각도문
夫 聖人之經典은 不求文章之色彩而 求其眞理요, 眞人之心은
부 성인지경전 불구문장지색채이 구기진리 진인지심
求其實而 不求外飾이니 求其物之事理則 求其天然而 不求造
구기실이 불구외식 구기물지사리즉 구기천연이 불구조
作也ㅣ라.
작야
故로 聖人은 明心達道而 不求聞達이니 書不求文章之色彩
고 성인 명심달도이 불구문달 서불구문장지색채
하고 衣不求綾羅也ㅣ라. 求於文章者는 聖人之心法을 難得이
의불구능라야 구어문장자 성인지심법 난득
요, 求乎外飾者는 聖人之眞實을 難得이니 大哉라, 聖人之道
구호외식자 성인지진실 난득 대재 성인지도
德이여. 元亨利貞과 大經大法이 道正天地하고 數定千法而 理
덕 원형이정 대경대법 도정천지 수정천법이 이
定心法하야 正大光明하니 仙佛儒는 大道正通이라. 是以로
정심법 정대광명 선불유 대도정통 시이
天道代語先後天道하시니 理氣生이라. 大矣 至矣 聖矣로다.
천도대어선후천도 이기생 대의 지의 성의
惟我奉敎後學은 以承大德하고 以光大道하며 以弘大業하야
유아봉교후학 이승대덕 이광대도 이홍대업
淸和五萬年 龍華仙境에 一一同?之地면 千萬幸甚焉이라.
청화오만년 용화선경 일일동제지지 천만행심언
84. 12월 초4일 상제님 강세일에 다음과 같이 하교하시니라.
庚은 變更之伊始하고 申은 鬼神之宜當이라.
경 변경지이시 신 귀신지의당
天於斯於庚申하고 地於斯於庚申이라.
천오사어경신 지오사어경신
萬物終於庚申하고 我亦如是庚申이라.
만물종어경신 아역여시경신
85. 이해 연말에 일부 주문의 내용을 변경하시니 다음과 같으니라.
운장주(雲長呪)
""一別兵營""을 ""一般兵營""으로 변경한다.
일별병영 일반병영
칠성주(七星呪)
""左輔右弼""을 삭제하고,""護我形我 虛身形""을""護我身
좌보우필 호아형아 허신형 호아신
形""으로 변경한다.
형
24절주(二十四節呪)
""立春 雨水""를""冬至 小寒 大寒 立春 雨水""로,""大寒 長
입춘 우수 동지 소한 대한 입춘 우수 대한 장
孫無忌""를""大雪 長孫無忌""로,""諸大神將 卽通 天文地理
손무기 대설 장손무기 제대신장 즉통 천문지리
風雲造化 八門遁甲 智慧勇力 唵唵""을""諸大神將 所率諸將
풍운조화 팔문둔갑 지혜용력 음음 제대신장 소솔제장
一般兵營 唵唵""으로 변경한다.
일반병영 음음
개벽주(開闢呪)의 전문(全文)을 다음과 같이 변경한다.
天上玉京天尊神將 天上玉京太乙神將 上下變局雷聲霹靂將
천상옥경천존신장 천상옥경태을신장 상하변국뇌성벽력장
軍 白馬元帥大將軍 雷聲?惡將軍 惡鬼雜鬼禁亂將軍 三首
군 백마원수대장군 뇌성벽악장군 악귀잡귀금란장군 삼수
三界都元帥 地神霹靂大將軍 天地造化風雲神將 六丁六甲遁
삼계도원수 지신벽력대장군 천지조화풍운신장 육정육갑둔
甲神將 太極斗破八門神將 陰陽五行造化神將 三台七星諸大
갑신장 태극두파팔문신장 음양오행조화신장 삼태칠성제대
神將 二十八宿諸位神將 二十四節諸大神將 感我微誠 助我
신장 이십팔수제위신장 이십사절제대신장 감아미성 조아
大力 力拔山 吾奉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 姜聖上帝 勅速勅
대력 역발산 오봉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강성상제 칙속칙
速 唵唵 急急 如律令 娑婆?
속 음음 급급 여율령 사바아
86. 또 도인들의 기도시에 봉송하는 주문 12종의 봉송순위와 횟수를 다음과 같이 제정하시니라.
봉축주(奉祝呪) 1회
기도주(祈禱呪)
태을주(太乙呪) 이상 각4회
진법주(眞法呪)
칠성주(七星呪)
운장주(雲長呪)
이십팔수주(二十八宿呪)
이십사절주(二十四節呪)
도통주(道通呪)
개벽주(開闢呪)
해마주(解魔呪)
신성주(神聖呪)
태을주(太乙呪) 이상 각1회
87. 이해 대회일(大晦日)에 상제님께서 묵은세배를 받으실 때 이우형(李佑衡) 등이 우러러 아뢰기를 “도주님께서 새해에는 천자위(天子位)에 등극하옵소서.” 하니 훈계하시기를 “나의 일은 일국사(一國事)에 국한하는 군왕사업(君王事業)이 아니고 전 인류 나아가서는 삼계 전체를 개벽, 광구하여야 하는 무극대도(无極大道)의 공사니 외부 사람들이 설혹 나를 조천자(趙天子)로 호칭하더라도 너희는 이에 현혹되지 말라.” 하시니라.
88. 상제님께서 병인(丙寅)년 봄에 부안 변산 최석래(崔錫來)의 집에서 15일간 공부하실 때, 석래는 도술을 통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면서도 상제님께는 감히 청원하지 못하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먼저 석래에게 “네가 도술을 통하고 싶으냐?” 하시니 “진실로 바라던 바이옵니다” 하므로 “너에게 육정신(六丁神)을 응기시켜 보리니 감내하겠느냐?” 하셔서 다짐을 받으신 다음, 백지에 육정신을 쓰셔서 그로 하여금 소화하게 하시매 갑자기 뇌성벽력(雷聲霹靂)이 크게 일어나며 천지가 진동하니라. 석래가 황겁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리니 “도술을 통하기가 어려움이 아니라 안심, 안신하기가 어려우니라.” 하시니라.
89. 3월에 태인도장으로 환궁하셔서""담뱃대도수""라 하시며 담배통과 물부리에 태극문양(太極紋樣)을 새긴 크고, 작은 담뱃대 여러 개를 맞추게 하셔서 임원들에게 그 직위에 따라 나누어 주시고 평도인들에게도 이러한 담뱃대를 지니게 하시니라.
90. 4월에 서산공에게 청탁하셔서 회문리 옛집을 중수하게 하신 다음, 그 옆 공지에 3칸퇴(間退) 규모의 아담한 정사(精舍)를 짓고 앞에 연못을 파게 하시며 “이는 후일을 예비하는 도수니라.” 하시고""회룡재(廻龍齋)""로 명명하시니라. 다음해 선덕부인을 회문리 옛집에 거주하게 하시고 반상문(潘相文)으로 하여금 상주하며 시종하게 하시니라.
91. 5월에 선정대모 권씨부인께서 객망리 본댁에서 화선(化仙)하시니 상제님께서 장례를 도장(道葬)으로 모시도록 명하시고 서산공을 장의위원장(葬儀委員長)으로 하여 성정철(成丁徹) 등 많은 임원과 도인 100여명을 보내셨으나 보천교도들의 방해로 이루지 못하니라. 이때 장례 준비에 참여한 서산공과 임원들이 보천교도 300여명으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니 이 장례에 참례한 증산상제님 성도(聖徒) 김형렬, 박공우 등과 신도 이상호(李祥昊) 등이 모두 보천교의 횡포에 분개하니라.
92. 이해 여름에 숭정부인과 문걸 등을 거느리시고 한양 도렴정(都染町)에 행행하셔서 백일공부를 하시고 대치성을 올리신 다음, “이번 서울 공부는""금강산도수(金剛山度數)""의 전제(前提)니라.” 하시고 금강산 유점사(楡岾寺)로 거둥하셔서 공부설석하시니라. 밤에는 공부실에서 수도하시고 낮에는 시종이나 안내도 없이 홀로 산에 오르내리시며 도수를 보셔서 백일공부를 마치신 다음, “내 이제야 금강산 1만2천봉의 겁살(劫殺)을 벗기고 그 정기를 거두어 구천상제님께서 짜놓으신 도수를 풀었으므로 앞으로 108천(百八天)이 105천이 되고, 이곳 보리수(菩提樹)의 열매도 105개씩 열게 될 것이며, 후천선경도 차례대로 열리게 되리라.” 하시고 도장으로 환궁하시니라.
93. 정묘(丁卯)년 봄에 임원들에게 하교하시기를 “통사동 영모재는 내가 큰 도수를 많이 본 사적지(事蹟地)이므로 중수하여 줌이 마땅하니라.” 하시고 태인도장 영건 후에 남은 목재와 기와 등의 자재를 옮겨 중창하게 하시니라.
94. 이해 9월에 상제님께서 통사동 재실에 설석하시고 백일공부로서""주(籌)도수""를 보시니 선덕부인이 수종하고 문걸 등이 시봉하니라. 주판(籌板)은 오동목, 주대는 대나무로 만드셨는데 주대를 판 위에 굴리시면 그 소리가 밖에까지 울리고 밤에는 주대에서 섬광이 일어났으며 주판의 표면 일부가 타기까지 하니라
95. 무진(戊辰)년 원조 치성 후에 포유문(布諭文)을 내리시니 이러하니라.
포유문
曰 人生處世에 有何所欲고 唯名唯榮이라, 曰名曰榮은 人所
왈 인생처세 유하소욕 유명유영 왈명왈영 인소
共欲而 求之難得은 是何故也오?
공욕이 구지난득 시하고야
都是無他라 未知捷徑이니 捷徑은 非他求也ㅣ라, 吾之所求에
도시무타 미지첩경 첩경 비타구야 오지소구
有無量至寶하니 至寶는 卽 吾之心靈也ㅣ라. 心靈이 通則 鬼
유무량지보 지보 즉 오지심령야 심령 통즉 귀
神도 可與酬酌이요, 萬物도 可與具序로되, 惟吾至寶之心靈을
신 가여수작 만물 가여구서 유오지보지심령
無路可通하야 汨沒無形之中에 虛過一世러니 幸於此世에 有
무로가통 골몰무형지중 허과일세 행어차세 유
無量之大道하니 正吾之心氣하고 立吾之義理하며 求吾之心
무량지대도 정오지심기 입오지의리 구오지심
靈을 任上帝之任意로다.
령 임상제지임의
洋洋上帝ㅣ 在上하시고 浩浩无極道主ㅣ 奉命하니 肅我道友
양양상제 재상 호호무극도주 봉명 숙아도우
며 嚴我道友야 極誠極敬하고 極勇極烈하라.
엄아도우 극성극경 극용극렬
明明度數를 無私至公하사 引導乎無量極樂 五萬年淸華之世
명명도수 무사지공 인도호무량극락 오만년청화지세
하시면 難求之欲과 虛過一世之願을 至于斯而豈不解?哉아?
난구지욕 허과일세지원 지우사이기불해원재
欽吾道友는 勖哉勉哉어다.
흠오도우 욱재면재
96. 이해 봄에 상제님께서 청장년 도인들을 선발하여 진업단(進業團)을 조직하게 하시니 이는 수리(水利), 황무지 개간과 간석지 간척(干潟地干拓) 등의 사업에 종사시켜 산업을 장려하고 도가의 생활안정과 빈민구제를 위하심이니라. 진업단원은 어느 사업장에서도 성?경?신을 신조로 근무함으로써 신임을 얻고 좋은 실적을 거두니 도중에서는 이를""단원도수(團員度數)""라 일컬으니라.
97. 8월 추석치성 후에 하교하시기를 “나의 도가 지금 포덕이 많이 되고 있음은 도운성화(道運盛花)의 국격(局格)이니라. 그러나 개화(開花)에는 낙화(落花)의 도수가 따르느니라.” 하시고 한시 한 수를 읊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戊辰年來開花期 己巳??滿發期
무진년래개화기 기사정녕만발기
庚午辛未無限量 乙丙之間落花期
경오신미무한량 을병지간낙화기
98. 기사(己巳)년 9월에 도인 15인을 선발하셔서 하교하시기를 “내가 공부방법을 가르치리니 이는 개안공부(開眼工夫)니라. 일심으로 수행하면 영험(靈驗)이 있으리라.” 하시므로 하교하신 대로 봉행하니 7일이 되던 날 전원이 동시에 개안하여 과거, 현재, 미래와 천문, 지리, 인사 등을 통효(通曉)하게 되니라. 상제님께서 임원들을 배석시키시고 개안자들에게 천문, 지리 등 어려운 문제를 하문하시니 그들이 막힘없이 봉답하며 기뻐하니라. 상제님께서 “그만하면 족하니라. 대도의 궁극은 도통이라, 개안에 그칠 일이 아니니 이제 그만 거두고 공부도 중지시키노라.” 하시니 일제히 개안 전의 상태로 환원되니라. 이무렵 이 공부방법에 의하여 개안한 도인이 무수하니라.
99. 도기 22년(단기 4263년, 서기 1930년) 경오(庚午)년 봄에 상제님께서 각처의 진업단원들을 전부 소환하신 다음, 증원, 개편하셔서 2개단으로 나누어 1개단 200여명은 북만주 목단강(牧丹江) 근처로, 1개단 300여명은 함경도 무산(茂山)으로 보내셔서 각기 산림벌채사업에 종사하게 하시니라. 무산으로 간 단원들이 1년 만에 사업을 마치고 돌아오자 다시 목단강 사업장에 합류시키시더니 그 후 2년 간에 많은 실적을 거두니라.
100. 이때 왜경에서는 진업단원들이 독립군과 합세할까 의심하여 상제님께 그 해산을 몇 차례 요청하였음에도 윤허하지 않으시자 철도 화차 수십량을 동원하여 신태인까지 강제송환시키고 벌채허가를 취소시키는 등 진업단의 활동을 방해하니라.
101. 신미(辛未)년 여름 어느 날 복우도장께서 병환으로 와석하시매 상제님께서 안부를 살피신 다음, 임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인자지도(人子之道)로서는 조석문후(朝夕問候)는 물론, 시탕(侍湯)으로 어버이를 받듦이 마땅하나 나의 처지가 그러하지 못하여 황송하기 그지없으니 너희들이 친부(親父)로 받들고 친자로서 시탕하라. 그러나 환후는 오래가지 않으시리라.” 하시며 상식에게 명하셔서 탕약 한 첩을 달여 올리시니 환후가 즉일 쾌유하시니라.
102. 이해 겨울에 상제님께서 도장 동편 5리쯤에 있는 관왕묘의 관왕상(關王像) 앞 마루에 병풍을 치시고 백일공부를 하시며 엄동임에도 화기를 금하시니라. 공부를 마치시고 환어하신 이튿날 홀연히 관왕상의 수염이 없어졌으므로 묘직이 상제님께 상고하니 아무 말씀도 않으시고 검은 공단(貢緞) 3척을 하사하셔서 복원하게 하시니라.
103. 임신(壬申)년 4월 25일에 숭덕부인께서 향년 58세로 화선하시니 상제님께서 비통함을 금하지 못하시니라. 양례(襄禮)를 도장(道葬)으로 정읍군 옹동면 용호리(龍虎里)에 안장하셨다가 병신(丙申)년에 회문리 선영하에 도장산소와 합장하시니라.
104. 이해 여름에 상제님께서 재정담당 김병팔(金秉八) 등에게 명하셔서 전주 이서면(伊西面)의 사금광(沙金鑛)과 충북 음성의 무극광산(無極鑛山) 등 전국의 금광 72광구의 채광(採鑛) 허가원을 제출하시고 그 일부를 채굴하게 하셔서 많은 수익을 올리시니라.
105. 가을에 만주로부터 진업단이 왜경의 강제송환으로 벌채사업을 중단하고 돌아오니, 상제님께서 미리 안상익(安商翼)을 시켜 측량, 설계 등 면밀히 계획하셨던 안면도와 원산도의 간석지 간척사업을 착공하게 하시니라. 안면도 간척은 창기리 바다를 막아 80여정보, 원산도는 50여정보의 논과 염전을 만드는 사업이니라. 상제님께서 그 자금으로 현금 1만원과 백미 3백석을 하사하셔서 숙부이신 서산공과 신산공께서 주관, 추진하게 하시니라.
106. 계유(癸酉)년 봄에 상제님께서 안면도에 행행하셔서 간척사업에 종사하는 단원들을 위로 격려하신 다음, 다시 철도(鐵島) 박영호의 집에 공부설석하시고 해변에 단을 모으게 하시니라. 낮에는 공부실에서 수도하시고 밤에는 단 위에서 조수의 간만조석(干滿潮汐)을 밤새 관찰하시며 도수를 보시더니 백일만에 마치시고, 그곳 창기리(倉基里)에 있는 재실 홍일우(洪一宇)에서 15일간 공부하시니 서산 도인 이동만(李東萬)이 시종하니라.
107. 4월 어느 날 철도에서 도수를 보실 때, 시봉인 상식을 급히 공부실로 부르셔서 장검 석자루를 내놓으시며""숨겨 두라.""하셨으나, 상식이 무거워 하므로 “손으로 들고 가기가 힘에 겨우면 내려놓고 네 마음으로 숨겨 보라.” 하시니라. 상식이 마음 속으로 집 뒤 대밭 속에 숨길 생각을 하는 순간 칼은 보이지 않고, 이와 동시에 그 곳 면장 박준양(朴準?)과 함께 온 왜경이 공부실을 샅샅이 뒤지며 칼을 찾다가 헛걸음하니라. 왜경이 돌아간 후에 칼은 상식이 숨기려고 생각한 곳에 있으니라.
108. 며칠 뒤에 준양이 황급히 와서 뵙고 전날의 잘못을 사죄하며 “제 자식이 중병으로 사경에 있사오니 살려 주옵소서.” 하고 애원하니라. 상제님께서 상식을 거느리시고 거둥하셔서 “네가 먼저 병실에 들어가 살펴 보라.” 하시므로 상식이 들어가 보니 병자의 머리맡에 갑옷을 입은 신장이 칼을 뽑아 병자의 목을 노리고 섰으니라. 나와서 아뢰니 상제님께서 아무 말씀도 않으시고 병실에 임어하시자 신장은 칼을 거두고 절하며 물러가고 병자는 이내 쾌유하니라.
109. 다음날 준양이 다시 와서""아들이 죽었나이다.""하며 살려 주시기를 울며 호소하므로 다시 거둥하셔서 어수를 죽은 아이의 가슴에 대시니 아이가 깨어나서 가족들에게 “저는 한명(限命)이 되어 가오니 너무 애통하지 마옵소서.” 하므로 이윽고 상제님께서 어수를 떼시자 숨을 거두니라. 측은히 여기시며 “도시 운도(運度)니 무가내(無可奈)니라. 다만 죄 없이 가니 신계(神界)에서는 복이 있게 하리라.” 하시니라.
110. 5월에 도장으로 환궁하셔서 임원들에게 하교하시기를 “조수(潮水)에 음양의 기운과 이치가 있고, 그 출입에 도수가 있으니 조수의 이치만 알아도 반도통(半道通)은 되느니라.” 하시니라.
111. 갑술(甲戌)년 설날 상제님께서 임원들에게 하교하시기를 “내가 봉천명한 지 이제 26년이니 내가 그동안 증산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27년간 허도수를 마쳐 드렸으므로 머지않아 무극주(无極主)께서 구천상제님 제위에 임어하시게 되느니라. 전 도인은 각자 납폐지 10만장씩을 백일 이내에 소화하라.” 하시므로 봉행하니라. 이해 3월 초9일에 금산사의 미륵존불이 원인 모를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신이하게도 왼팔은 소실되지 않고 양협시불(兩脇侍佛)과 불전(佛殿)에도 연소되지 않으니라.
112. 이해 4월에 상제님께서 임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구천상제님께서 정음정양(正陰正陽)의 원리로 여자해원도수(女子解?度數)를 짜셨으므로 내 이제 그 도수에 맞추어""삼천궁녀해원도수(三千宮女解?度數)""를 보노라. 대저 자고이래로 제왕들마다 기십기백(幾十幾百)의 후비(后妃), 궁녀를 둔 폐단으로 인하여 쌓인 원한이 가장 심하므로 이를 여자해원의 첫머리로 하노라.” 하시니라.
113. 도기 27년(단기 4268년, 서기 1935년) 을해(乙亥)년 봄에 안면도와 원산도의 간척공사가 모두 완공되었으나, 안면도 간석지는 왜인 회사 마생(痲生)이 강탈하고, 원산도 간석지는 보령군이 강탈하니라. 이 사실을 상고하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나 도시 도수니라. 이 사업으로써 조수와 토지를 조화(調化)시켜 해원하였으며 많은 빈민이 품삯으로 생활하였고, 또 경작지를 얻어 구제되었으니 그것으로 족할 뿐, 그 소유가 누구에게 돌아감을 탓하지 말라. 장차 두고 보면 내가 시범(示範)한 오늘의 뜻을 알게 되리라.” 하시며 서산공과 신산공께서 계획하시는 소송을 중지시키시니라.
114. 8월 추석에 명절치성을 올리신 다음, 임원들에게 하교하시기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니라. 그 때가 바로 구천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도수이므로""시유기시(時有其時)라.""하시고 수운가사에도""시호시호(時乎時乎)라""함이니 그대들은 물실기시(勿失其時)하고 이대호기(以待好機)하라. 지금 이후의 시기는 이미 수년 전에 말한 대로""낙화도수(落花度數)""와""잠룡도수(潛龍度數)""니 꽃은 낙화요, 용은 잠룡(潛龍)이니라. 27년간 허공부, 허도수가 이 시기이므로 나는 다시 입산수도할 것이요, 그대들은 각자 귀가하여 내가 다시 찾을 때를 기다리라.” 하셨으나, 임원들은 어의를 깨닫지 못하니라.
115. 이해 12월 초에 상제님께 조선총독이 전라북도 지사 고원훈(高元勳)을 보내어 친서를 전달하고 무극도에서도 국내 다른 교단에서와 같이 내선일체(內鮮一體)와 황민화정책(皇民化政策)에 동조하여 줄 것을 종용하니라. 상제님께서는 이를 단호히 거절하시며 말씀하시기를 “그러한 일은 그대의 왕이 직접 와서 사정을 하여도 불가하니 나의 이 말을 총독에게 그대로 전하라. 그러나 그대들도 언젠가는 나의 도가 진법임을 깨닫고 수도 공부해야 하리라.” 하시니라.
116. 이달 24일에 전북지사가 다시 와서 비상시국에 관한 무극도의 협조를 재삼 간청하였으나 전날보다 더 완강하게 거절하시니라. 지사는 이것이 또한 도를 위하는 일이라는 등 억지의 말을 하였으나 상제님께서는 “나의 도는 도인을 해산시키고 때를 기다리기로 결심한 지 이미 오래이니 다시는 도에 대한 일을 거론하지 말라.” 하시니 그대로 돌아가며 소위 총독부의 종교단체해산령(宗敎團體解散令)을 전하니라.
117. 이해 섣달 그믐날 상제님께서 명절치성을 성대히 준비시키시고 치성 전에 임원들의 묵은세배를 받으신 다음, 전원을 정렬, 법좌시키시고 하명하시기를 “내가 이미 추석에도 말한 바와 같이 도는 낙화도수로서 결실(結實)을 기다려야 하고, 나는 잠룡도수로서""회룡도수(廻龍度數)""에 들어가야 하느니라. 다시 입산수도할 것이니 그대들은 각자 귀가하여 가업(家業)에 종사하고 생계를 유지하여 부모처자를 봉솔(奉率)하며 내가 찾을 때를 기다리라. 잠룡은 물용(勿用)이나 현룡(見龍)을 기(期)하고, 낙화는 비정(非情)이나 결실을 위함이니 결실 전에 요동하면 화가 있으리라. 1년이 될지, 3년이 될지, 10년이 될지라도 나와 도를 믿고 기다리되, 만약 나와 도를 잊고 난법난도(亂法亂道)하거나 지동지서(之東之西)하면 만나지 못하리니 각골, 명심하라.” 하시니라.
118. 이때 끝자리에 참례한 이용직(李龍稙)에게 하명하시기를 “용직이 너의 이름은 익히 들었으나 대면은 처음이로다. 너는 용직(龍直)도 되고 선식(先植)도 되니 내가 지금 한 말을 더욱 명심하라.” 하시므로 용직은 부복하여 명령을 받드니라.
119. 상제님께서 하명을 마치시고 잠시 일동의 얼굴을 묵묵히 조감(照鑑)하시고 의연히 영대(靈臺)로 오르셔서 치성을 집전(執典)하시니라. 예필 후에 영대의 촛불이 일제히 꺼지므로 다시 켜시고 철상(撤床)하게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