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문장이나 영화속의 대화에서 접하다 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영어와 한글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왜그런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영어는 통치와 유체이탈의 언어다”
이를 전제로 영어 문장 중 동사에 초점을 맞춰서 살펴본다.
동사는 크게 have, be, 조동사, 기타동사로 분류할 수 있다.
have, be, 조동사는 통치자를 표현하고, 기타동사는 노예를 표현하는 동사다.
기타동사에는 Make 같은 통치특성을 갖는 단어도 일부 있다.
통치 특성이 잘 드러나는 Have 동사부터 살펴보자.
I have lost my keys.
나는 가졌다 잃어버린 나의 키.
잃어버린 키를 가졌다니? 없는 걸 어떻게 가지지?
한국인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다.
그래서 문법적으로 완료시제 결과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무조건 외우라고 한다.
(내 때는 이랬는데 지금은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유럽에서 통치자는 신의 대리인
( 기름부음을 받은자로 표현한다)이므로 모든 것을 가진다.
그것이 물질이든, 정신이든, 작용이든, 결과든
노예인 피통치자는 어떤 것도 가질 수 없다. 그냥 제공만 해야한다.
기타동사 lost는 노예이므로 자신이 어떤 결과를 만들든 그것은 주인에 속한다.
lost가 만들어낸 결과는 주인인 have가 갖게 된다.
그래서 이 문장의 뜻이 키가 현재 없다는 뜻이 된다.
이번에는 기타동사 lost의 입장에서 문장을 살펴보자
“I lost my keys”
한국 사람 입장에서 보면 내가 키를 잃어버렸으므로 당연히 지금 나의 수중엔 키가 없다.
그러나 영어 입장에서 기타동사는 노예므로 lost는 그 결과를 소유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현재 그의 수중에 키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는 뜻을 내포하게 된다.
have로 공집합에 대한 설명도 쉽게 할 수 있다.
서양사람들은 공집합을 쉽게 이해한다.
없는 키도 가지니까 아무것도 없는 공집합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은 없는 걸 어떻게 가져? 라고 생각하니까 이해하기 어렵다.
나도 집합 배울 때 공집합에 대해 이해가 되지않아 고민을 많이 했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없었다. 그때 “답이 없다”에서 생각이 딱 떠올랐다
객관식에 익숙한 우리는 답이 4번까지니까 4번 안에 반드시 답이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답이 없는 경우, 즉 공집합의 경우도 있구나하고 깨달았다.
이번에는 be 동사 속 통치 관련 부분을 살펴보자.
be 동사가 수동태 뼈대로 낙점된 이유는, 두 가지 절대적 통치 특성 때문이다.
영어에서 기타동사(노예)들은 저마다 바쁘게 뛰어다니며
무언가를 때리고, 부수고, 잃어버리는 '역동적인 행위'를 하는반면,
be 동사는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는 절대 권력이다.
"그것이 어떤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 규정하는 통치자 칙령이다.
수동태 문장은 누가 저질렀는지(행위자)를 은폐하거나 지운다
Tom broke the window. 톰이 창문을 깨부수는 역동적인 '행위'에 초점
The window was broken. 창문이 깨진 '상태'로 존재하는 것에 초점
수동태가 되는 순간, 창문을 박살 낸 톰의 역동적인 도끼질은 문장에서 사라진다.
남는 것은 "깨진 상태로 세상에 존재한다"는 정적인 풍경뿐.
영어에서 '행위'를 소거하고 주어의 상태와 존재만 선언할 수 있는 동사는 오직 be 동사뿐
broken은 혼자서는 아무런 권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형용사(상태)에 불과하다.
여기에 통치자인 be 동사가 등장하여 "이 노예broken를 지금 내 영토 안의 '상태'로 임명하노라
하고 도장을 쾅 찍어주는 것이다.
통치자(be)가 존재의 힘을 부여해주어야 '수동태'라는 완성된 문장 제국이 성립된다.
I am loved. (나는 사랑받는다.)
우리말은 "내가 사랑을 느낀다",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처럼 주체의 감정 타인의 행위에 집중하지만
영어는 나(I)라는 인간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be 동사를 통해 "사랑을 당한 상태loved로 박제되어 존재하는am 대상"으로 묘사한다.
나는 내가 사랑받고 있는 그 기묘한 상태를 무대 아래 객석에 앉아 유체이탈하여 구경하는 관객이 된다.
내 감정의 주체성을 지워버리고,
나를 철저히 객체화하여 관찰하기에 가장 적합한 동사—그것이 바로 존재의 be 동사다.
Here you are.
상대가 물건 찾거나 요구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던 역동적인 상황(기타동사의 세계)이 있었지만,
내가 물건을 툭 건네며 "Here you are."라고 말하는 순간, 그 모든 소란은 정지된다.
are라는 절대적인 존재의 동사를 사용해,
"이제 상황 끝. 네가 원하던 상태로 여기에 존재하고 있음(are)"을 종결하는 통치자의 도장을 찍는 격이다.
행위는 없고 오직 '지정된 장소(Here)에 박제된 존재'만을 규정하는 be 동사 본질이 잘 드러난다.
It is.(심봤다 상황)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삼을 발견하면 "심봤다!"라고 외치고,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찾았다!"한다.
'내가' 눈을 부릅뜨고 노력해서 마침내 발견해 냈다는 인간 주체의 ‘행위’와 ‘성취’에 초점을 맞춘다.
영어는 내가 찾았다는 주체적 행위(find)를 완전히 지워버린다.
내가 땅을 파고 헤맨 수고는 쏙 빼놓고,
오직 "내가 그토록 갈구하던 바로 그것(It)이,
마침내 내 시야(무대) 안에 온전히 실재(Exist)하고 있다(is)"라는 사실만을 담담하게 선언한다.
인간의 노력마저 지워버리고 객관적인 풍경으로 박제해 버리는,
그야말로 철저한 '관객의 어조'이자 '존재론적 선언'인 셈이다.
이 발견의 순간에 쓰인 is는 뒤에 아무런 보어나 수식어가 붙지 않는 완전한 존재 동사이다.
"그것은 (내가 원하던 바로 그 모습으로, 다른 어디도 아닌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을 캐내기 전까지 세상은 불안정하고 결핍된 상태(기타동사들이 들쑤시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을 딱 발견하고 "It is."라고 도장을 찍는 순간,
모든 탐색과 방황의 소란은 종료되고 완벽한 질서와 평화가 찾아온다.
"완전 끝을 내버리는 동사"이고, 상황을 종결짓는 절대권력의 동사이다.
"내 노력으로 찾아낸 내 소유물"이 아니라,
"저기 무대 위에 그것이 스스로 존재하고 있고,
나는 그것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관객일 뿐"이라는
서구식 기계론적 관찰자 시선의 정점을 보여주는 문장이다.
다음은 조동사에 대해 살펴보자
조동사는 통치자(주어)의 의지,의도,감정등을 노예(기타동사)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조동사는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전부 주어(통치자)의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나오는 힘을 표현한다.
You will do this.
주어인 통치자의 의지대로 이걸 해야한다.
You may leave now.
주어인 통치자의 허락을 받아 지금 떠날 수 있게되었다.
이렇게 통치자와 노예의 영어에 물질주어가 통치자로 나서면
인간은 완전히 노예가 되고 나중엔 자신을 구경꾼처럼 관찰하게 된다.
마치 자신이 무대에서 연기하고 있는 걸 자신이 관객이 되어 구경하는 형상이다.
마지막으로 유체이탈의 대표적인 단어인 get에 대해 살펴보자.
"You got it.“
너의 뜻 알았어 정도의 문장이다.
`나'라는 주체가 사라지고,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대한 반응만 남는다.
이처럼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만이 남는 것이 유체이탈의 특징이다
"I need to get myself together." (나 좀 정신 차려야겠어.)
이 문장은 '나'라는 주체가 있고, 그 주체가 다시 '나'라는 객체를 '모아서(get together)'
정리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주체가 자신을 외부에서 바라보며 조언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유체이탈화법은 자신이 자신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관객처럼 보게 된다.
“그는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했다” 이런식의 문장도 자주 등장하고.
“나는 그녀를 위해 울어줄 시간을 갖지 못했다” 이런식의 표현도 나온다.
이런 표현에 빠져 살다보면 언어와 동화되어, 주체성을 상실한 삶.
삶으로부터 소외된 삶이 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