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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계. 봉황고성 여행기 1부 소산/문 재학 2016년 8월 22일(월) 맑음 풍년을 기대하는 벼의 出穗가 한창이고, 기록적인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있어 밭작물이 극심한 旱害를 입고 있었다. 오늘 서울의 온도가 36.6도라 했다. 벼농사야 정부에서 수원개발을 전국적으로 거의 완벽에 가깝도록 해두었기에 피해가 적겠지만 밭작물은 거의 속수무책이다. 농민들의 가슴은 함께 타들어간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장가계는 2005년도에 다녀왔지만 유명한 천문산을 멀리서만 본 아쉬움과 4000년 역사 봉황고성의 수백 년을 자랑하는 고색 찬란한 3~4층의 목조기와집의 신기한 풍광을 보러가는 길이다. 아침 7시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휴가철이라 그런지 여행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인천공항에서 보아온 것 중 제일 많아 보였다. 출국수속을 끝내고 오전 10시 15분 아세아나기(OZ2533)로 중국의 중경으로 향했다. 인천공항 활주로 주변의 잔디가 빨갛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중경국제공항까지 소요시간은 3시간 30분 정도다. 오후 1시 15분 중국의 상공은 약간의 흰 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울 뿐 날씨가 좋았다. 몽실몽실한 산봉우리 사이로 경작지들도 간혹 보이고 넓고 긴 물줄기를 이루는 댐 같은 것이 보였다. 인가는 보이지 않는데 꼬불꼬불 산길이 많이 나타났다. 잠시 후 야산과 들 사이로 흐르는 장강의 좌우로 산재된 주택들과 도로가 나타나는 것을 보니 중경시내가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현재 남은 거리 23km, 고도 2700m. 비행속도 394km이다. 이색적인 청색지붕들이 많이 보이는가 하더니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로도 나타났다. 이어 비행기는 중경 시내 상공을 지나갔다. 중경시내는 장강을 중심으로 고층 아파트 들이 숲을 이루고 낮은 건물은 지붕이 역시 청색으로 단장을 해두었다. 한눈에 보아서도 대단히 큰 대도시 같았다. 시내 중심을 지나 한국시간 1시 50분 (현지시간 12시 50분. 시차 1시간 앞으로는 현지시간으로 명기) 비행장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비행장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게류중인 비행기가 많았다. 그리고 계속하여 이착륙을 하고 있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와 현지 가이드 김보호씨(길림성 연길출신 교포 3세)를 만났다. 11명 일행과 수인사를 나누고 밖을 나오니 36도의 뜨거운 열기가 한증막에 들어서는 것 같았다. 무더위로 고생을 할 것을 생각하니 조금은 염려스러웠다. 중경시는 중국의 4대 직할시 중 두 번쩨 큰 도시이다. 면적은 82,300 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3,600만 명이다.(1위 무한 4,600만 명, 3위 상해 2,500만 명) 산악지대라 농경지는 거의 없고 공업도시이고 경제와 교통의 중심지란다. 그리고 위도는 우리나라 제주도 보다 남쪽에 위치하고 낮 온도가 41도를 오르내리는 불가마 지역이다. 一年의 1/3일인 130일 정도가 안개가 끼는 날씨라 했다. 겨울에는 최저온도가 영상 5도라 눈 구경을 할 수 없단다. 우리가 승차한 25인승 미니버스는 의자를 반 침대식으로 뒤로 눕힐 수 있고 차 바닥은 비닐 장판으로 깔아놓아 깨끗했다. 차 앞 유리창위에는 작은 전광판에 현재의 시간과 외기온도와 실내온도 등을 알려주고 있어 장거리 여행에 편리할 것 같았다. 차내 온도는 23도 냉방 성능도 좋았다. 곧바로 장가계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여행안내서에는 8시간 이지만 10시간이라 했다. 15분 정도 시내를 지나자 오후 2시 현재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왕복 8차선 도로변은 넓은 들판은 보이지 않고 낮은 산들 뿐이다. 이어 터널이 계속되는데 총 42개의 터널을 지내야 한단다. 긴 터널은 17km나 되는 것도 있단다. 2시 15분 현재 먹구름이 몰려들면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한 소나기가 내렸다. 앞으로 갈 길이 많이 남은 장거리 여행이라 걱정이 앞섰다. 2시 20분경에 장강을 지나는데 부둣가에는 붉은 철골장비로 하역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내 비가 잦아들고 시야가 터이고 있었다. 인가가 간혹 보이는 야산 구릉지대의 푸른 녹음이 물기를 머금고 한층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부근에 높은 산은 보이지 않았고 도로변에 樹壁을 이루는 나무들은 천년 闊雜木들이다. 곳곳에 약간의 경작지와 별장 같은 2층 주택들이 보였다 고속도로 중앙분리대는 油桃花 같은 꽃이 활짝 피어 시선을 즐겁게 하고 대형 野立看板은 타곳에 비하여 그렇게 많지 않았다. 3시경에는 왕복 4차선으로 바뀌고 날씨는 눈부실 정도로 맑게 개이었다. 넓은 들은 볼 수가 없고 산비탈 곳곳에는 수확을 끝낸 옥수수들이 말라버린 앙상한 대궁이만 남은 것이 보였다. 멀리 있는 것은 마치 화전 밭 같아 보였다. 산골짜기의 작은 논에는 벼가 황금빛을 자랑하며 익어가고 있었다. 계속해서 비슷한 지형과 불양한 林相이 이어지고 터널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터널 내에는 일정한 거리로 다양한 색상의 반원 아치형 조명시설을 해둔 것이 이색적이고 아름다워 영상으로 담았다. 3시 30분 경 고층 아파트가 많은 南川이라는 소도시를 지나기도 했다. 고속도로변 산에는 척박한 땅이지만 곳곳에 유카리스 나무를 인공재배를 하고 있었다. 3시 38분 수장이라는 휴게소에 들렸다. 부근의 집들은 대개 2층으로 규모가 크고 굴뚝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습기나 뱀 때문에 아래층은 창고 등으로 사용하고 2층은 주거용인데 보통 3대가 한집에 산다고 했다. 4시 23분 경 부터는 긴 터널이 연속으로 나타나더니 5시경부터는 험한 바위산 지대로 긴 터널이 이어지고 있었다. 너널을 빠져나오면 아름다운 풍경이 나타나고 비탈 경사지에 옥수수 밭들이 많이 보였다. 옥수수 재배 풍경이 강원도를 연상케 했다. 5시 33분경부터는 산의 5부 능선을 달리는데 대형화물차가 많이 보였다. 6시 25분 산마루를 넘는 석양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도로변 주택들 중 슬라브 지붕에는 물을 담아 놓아놓은 것을 자주 보였다. 모두 열기를 식히기 위한 것이라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했다. 2층집들은 하얀 벽에다가 나무들은 전부 붉은 페인트로 단장해 둔 것이 이색적 이였다. 더워서인지 마을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幽靈의 집같이 을씨년스러웠다. 그나마 주위 농경지에는 담배 .고구마. 호박 등을 재배하고 있어 사람이 사는 것 같았다. 7시 10분 어둠이 내릴 때 酉陽挑花源 관광지구 에 들려 현지식으로 저녁을 했다. 식당 주변의 집들은 3~4층의 목조들이 호기심을 자아낼 정도로 특이하게 아름다워 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며칠 뒤에 이곳 유원지 복희동굴 탐방이 있을 예정이다. 7시 45분 어둠속에 장가계로 향했다. 앞으로 3시간을 더 가야하는 지루한 여행길이다. 역시 터널을 많이 지났다. 검은 산 능선을 타고 따라오는 유난히 크게 보이는 어스름 반달을 줌으로 당겨 동영상으로 담았다. 간혹 야간 조명과 네온이 화려한 작은 도시들이 나타날 때마다 영상으로 담았다. 11시 3분 장가계 요금소를 통과 하여 11시 30분 경 크리스탈 호텔(梅洛水晶酒店) 1911호실에 투숙했다. 2016년 8월 23일(화) 맑음 아침에 호텔을 나와 보니 관광버스들이 호텔 앞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6시 30분 황석채로 향했다. 동정호(洞庭湖)를 중심으로 남쪽인 이곳 호남성은 면적 212천 평방키로(한반도 면적과 비슷함)이고 인구는 6300만 명이다. 그리고 장가계는 면적 9,516 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170만 명이다. 호남성은 모택동과 유서기의 고향이라 했다. 신흥건축물이 많은 장가계는 시내 중심으로 리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아파트가 많고 도로변은 중국 특유의 홍등과 적색 간판들로 뒤덮여 있고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어 활기가 넘쳐 보였다. 이곳은 4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데, 그 중 70%가 토가족 이라 했다. 도로변은 관광지답게 정원수 등으로 아름답게 조성하여 시선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장가계 시내를 벗어나 2차선 숲속 길을 달렸다. 도로변 농경지에는 포도 비가림 시설이 많이 보이는데, 호남성은 수박. 복숭아 등 과일이 많이 생산 된다고 했다. 7시경에 협곡으로 들으셨다. 이른 아침인데도 통행차량이 상당히 많았다. 대부분이 관광객을 실은 미니버스였다. 울룩불룩 허공에 능선을 그리는 산등성이 위로 이글거리는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버스는 가파른 경사 길을 굽이구비 돌아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긴 터널을 지나기도 했다. 2005년도에 왔을 때는 무릉 마을의 입구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자태가 설레임으로 넘치던 백장협을 통과 하였는데 지금은 새로 개발한 새 길을 가고 있어 또 다른 기대를 해보았다. 황석채로 가는 도로변은 상가들이 즐비하고 관광객들도 무척 많았다. 황석채로 들어가는 검표소에서는 입장권(카드)을 확인하면서 전자指紋 채취를 일일이 하는데 이는 카드의 이중 사용을 위해서라는데 새로운 제도였다. 부근의 산세는 장가계 특유의 바위산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어 관광객들의 카메라 세레를 받고 있었다. 출입구 좌측은 금관 계곡이라 하는데 울창한 삼나무 숲 사이로 맑은 물이 흘러가고 있어 나무 그늘과 함께 더위를 씻어 내렸다. 우수 용재림으로 각광받는 삼나무의 큰 나무들이 많아 상당히 부러웠다. 수백 미터 삼나무 숲길과 아름다운 산세를 보면서 올라가니 황석채 케이블카로 가는 셔틀버스가 많이 대기하고 있었다. 황석채는 유방의 참모인 張良이 조난 당했을 때 스승인 黃石公이 그를 구하였고 그 黃石公이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다 한다. 그 후로 사람들이 이곳을 黃石이라 부르게 되었단다. 관광객들이 많아 순서대로 승차하여 올라가는데 도로변은 온통 대나무밭 이었다. 3분 정도 올라가니 넓은 주차장 뒤편이 황석채 오르는 케이블카 타는 곳이다. 8인승 케이블카를 타고 그림 같은 산세를 사방으로 둘러보면서 8분 정도 올라가니 해발 1030m 전망대가 있는 평지가 나왔다. 울창한 삼나무 숲길을 한참 걸어가 오지봉 전망대에서 기묘한 五指峰을 동영상으로 담고 이어 뾰족하게 돌출된 바위 전망대 摘星臺에서 아름다운 산세의 풍광을 내려다보았다. 돌계단들은 관광객들이 얼마나 많이 다녔는지 돌이 달라서 반들반들했다.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가까운 정상에 있는 靑山白雲 액자가 걸린 六奇閣(1991년도 준공)이라 불리는 독특한 형상의 3층 6각 정자위로 올라가서 황석채의 전경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처음 보는 장가계의 다른 모습 이였다. 다시 케이블카로 하산하니 8시 38분이였다. 그리고 다시 셔틀버스를 2분 정도 타고 올라가 울창한 삼나무 숲길의 수백 미터 목책 산책길을 따라 오르면서 땀을 많이 흘렀다. 밀려드는 관광객 대부분이 중국 사람들인데 이런 깊은 산속을 걷는 기분이 묘했다. 땀은 흐르지만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산마루에 올라서니 8시 58분이였다. 능선 반대편에는 주차장이 있고 미니버스가 계속해서 운행되고 있었다, 관광객이 많으니 상가와 노점상도 있었다. 주위의 아름다운 풍광을 영상으로 담고 셔틀버스에 올라 급경사 길을 꼬불꼬불 내려갔다. 끝임 없이 셔틀버스기 지나갔다. 9시 12분에 楊家界 케이블카 타는 곳에 도착했다. 양가계는 북송의 양가장이 천자산에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오래 머물다 보니 양씨 가문의 후손들이 번성하여 양가계라 불리었다고 했다. 양가계 케이블카는 2014년도에 준공했다고 했다. 케이블카 타는 대형건물 앞에는 관광객들이 시장통처럼 붐비었다. 주위를 동영상으로 담느라 일행을 놓칠 뻔 했다. 정말 많은 인파가 밀려들고 있어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 기암괴석 사이로 오르는데, 선녀봉과 어필봉이 있다는데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모르고 주위의 돌출된 바위사이로 동영상을 담으면서 10여분 올라갔다 10여 년 전에 왔을때 들어본 이름 같기도 했다. 깎아지른 절벽에 시멘트로 기초를 하고 케이블카 지주를 세운 것이 대단했다. 올라가는 좌측 절벽에는 트랙킹 하는 울긋불긋한 많은 등산객들이 절벽사이로 개미같이 작게 움직이고 있었다. 진기한 石林 속을 눈으로, 영상으로 담으면서 해발 1300m 능선에 오르니 9시 29이였다. 북적이는 관광객을 뒤로 하고 수백 미터를 걸어가 다시 지프차를 티고 賀龍公園으로 향했다.(하룡공원은 천자산내 있는 전망대로 이곳 토가족 출신의 중국의 10대 원수 중 한사람인 하룡장군을 기념하기 위한 공원이다) 한참을 달려 차에서 내려 숲속 길을 들어가니 장가계의 진수를 맛볼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들이 펼쳐졌다. 옵션 관광코스라 그런지 관광객이 우리뿐이라 여유롭게 즐기면서 영상으로 풍경을 담았다. 계속해서 절벽 위 허리 길을 가면서 전망대마다 새로운 장면들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한참을 돌아가니 엄청난 관광객들이 붐비는데 이곳부터 원가계 지역이란다. 사람이 너무 많아 사진촬영은커녕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觀光路 바닥은 전부 돌로 깔고 돌계단으로 조성 하였는데 사람의 발길에 의 돌들이 역시 반들반들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얼마나 갔을까 산과 산이 天然的으로 다리가 형성된 천하제일교(天下第一橋 높이 300m, 넓이 2m, 길이 20m )를 만났다. 사람이 너무 많아 간신히 진기한 경관을 영상으로 담고 위로 올라갔다. 넓은 주차장이 있는 대형 木造건물 3층에서 11시 30분에 이른 점심을 하고 12시 10분 셔틀버스를 타고 백룡엘리베이터 로 향했다. 어디를 가나 관광객이 넘쳐나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2002년도에 완공된 백룡엘리베이터는 높이 335m, 실제 운행높이는 313m로 그중 156m는 수직 동굴이고 170m는 투명 창을 통해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운행시간은 1분 58초, 3대가 가동되는데 대당 최대 56명이 탈수 있다. 백룡에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2번째 타보는 것이지만 역시 대단한 시설이었다. 아래에 도착하여 넓은광장에서 주위의 장군봉 등 아름다운 산세를 영상으로 담고 까마득한 절벽에 붙은 백룡엘리베이터도 줌으로 당겨 보았다. 다시 한 번 아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셔틀버스가 대기하는 곳으로 가는 긴 지하터널은 시원해서 발걸음이 가벼웠다. 12 25분에 셔틀버스에 올라 십리화랑(十里畵廊)에는 12시 40분에 도착했다. 무더위 때문에 남자들도 일부 양산을 쓰고 있어 사진촬영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새롭게 단장한 모노레일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골짜기로 들어가는 좌측방향으로 보행로가 있고 溪川 건너편의 산 지형 5km가 그림을 펼쳐놓은 듯 아름다운 십리화랑의 풍광이었다. 한 가족 바위, 손가락바위, 약초 캐는 노인상, 그리고 낙타바위 종착지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세 자매 바위 등 시종 눈을 땔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종착지에서 부근의 풍광을 영상으로 담고 되돌아 나왔다.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모노레일과 나란히 나 있는 산책로(?) 따라 많은 사람이 걷고 있었다. 아마도 시간적 여유가 많은 중국인들 같았다. 다시 셔틀버스에 올라 무릉원 마을로 향했다. 좁은 산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니 무릉원 매표소였다. 필자가 처음 이곳을 통해 천자산을 찾았을 때와는 많이도 변해 있었다. 매표소 입구 부근에는 지금도 대형 건물들을 한참 신축하고 있었다. 대기하고 있는 우리버스에 올랐다. 현제시간 오후 2시를 조금 지나고 있었다. 무릉 시내도 많이 변해 있었다. 역시 관광지답게 독특한 양식의 상점이랑 집들이 화려하게 단장을 했다. 관광객들도 많았다. 시내에서 간단한 쇼핑과 마사지를 하고 4시 30분 버스는 보봉호 입구를 지나고 황룡동굴 입구를 지나났다. 다시 한 번 둘러보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이어 농산물 판매장을 들린 후 한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토가족 여인들의 친절한 서비스를 받으면서 삼겹살 무한리필로 저녁을 했다. 그리고 7시 10분경 매력상서쇼장으로 갔다. 공연장 주변은 이색적인 건물들과 조형물 등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 대형 공연장으로 들어가니 거의 만석인데 관람객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앞자리 중앙에 에매가 되어있어 관람하기에 제일 편리한 자리였다. 본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남자 한사람이 화려한 치장을 한 미녀들의 도움을 받으며 즉석에서 한문 글을 써서 대형 화면으로 보여 주었다. 필자는 필체를 모르지만 액자로 만들어 집에 걸어두고 싶을 정도로 잘 쓴 글씨 같았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장엄한 쇼를 1시간 30분 정도 관람하고 밖을 나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일행을 놓쳐버렸다. 미리 버스대기 장소를 기억해 두었기에 망정이지 큰일 날 번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주변에 있는 건물들의 화려한 네온들을 감상하면서 호텔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훨씬 지났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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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좋은 기행 글
감사드립니다
고운 댓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