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여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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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흐린 날씨에 가을비가 땅을 촉촉이 적신 한 주입니다. 한 여름 그토록 바라던 빗방울이건만, 꿉꿉해하며 햇님을 기다리는 지금의 이 변덕스런 마음을 어찌 해야 할까요? 그래도 마음 속 아궁이에 훈훈한 불을 지피는 이들이 곁에 있어 마음속 눅눅함은 이내 사라져버립니다.
이번주에는 강단보에 대한 고민이 깊었습니다. 3개월 전 이미 강단보를 디자인해놓고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일이 진척되지 않았었는데,지난 주일 5개 교회 연합예배를 드린 이후 더 이상 제작을 미룰 수 없다 판단되어, 만들기 어렵다면 기존의 제품을 구입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그렇게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에 강단보를 문의하였고, 이에 대해 지난 수요성경공부 후에 논의를 하였는데, 아쉽게도 디자인과 가격 면에서 저희의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뜻하지 않은 벽에 부딪혀 일이 진척이 되지 않을 때, 원래의 계획을 약간 수정하여 우리의 손길과 마음이 담긴 우리만의 강단보를 다시 제작하기로 결론지었습니다. 서툴더라도 우리의 손때 묻은 정성어린 강단보를 제작하는 것은 그 의미가 남다른 것이겠지요. 말 그대로 우리의 고백이 담긴 강단보가 탄생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오전에 모여 교회 청소를 하고, 성찬대에 니스칠을 한 후, 천을 사기 위해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습니다. 서문시장 2지구를 찾아가니 원단가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우리의 마음을 유혹하는 여러 가지 원단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여러 가게를 둘러보고 고민한 끝에 한 곳을 정하여 사려는 순간, 옆 가게에 진열된 창호문의 모양을 본떠 만든 예쁜 천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천을 본 순간, 모두가 하나같이 동공이 확장되었지요. 우리 교회에 너무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을 한 마음으로 느꼈던 겁니다. 그래서 결국 창호문 모양의 천을 우리 규격에 맡게 제작을 하기로 하고, 제작 의뢰를 하였습니다! 서문시장에 간 김에 국수골목에 들러 수제비와 잔치국수를 맛나게 먹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참 흐믓했습니다.
먼 길을 돌아 드디어 강단보를 제작하게 되었는데, 처음 구상보다도 오히려 더 좋게 만들어져 전화위복을 실감했습니다. 이 일을 위해 두 손 걷어 부치고 나선 교우들이 참 고맙습니다.
저는 행복한 목사입니다. 함께라면 무엇이든 기쁨으로 감당하는 교우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강단보 제작도 사실 제가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멋지게 만들어지면 이는 모두 교우들의 작품입니다.
저는 교우들을 떠올리며 함민복 시인의 시를 꺼내보았습니다. 함민복 시인의 시는 언제나 따뜻합니다. 불행의 조건들도 시인의 눈길을 거치면 의미 있는 것들로 되살아납니다. 무한 긍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신비 아닌 것이 없고, 감사 아닌 것이 없음을 시인은 가르쳐줍니다.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는 이를 곁에 두고 있다는 것은 따뜻한 난로를 하나 곁에 두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제 마음이 바로 그 마음입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다” 느꼈던 시인의 따뜻한 마음을 오늘 제 마음에 심어 놓았습니다. <2018.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