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10 민주의거 기념비
새벽을 밟고 등교하여 달빛을 등에 지고 하교하면서
靑苑 배움의 전당에서 우리는 勉學에 힘썼다.
眞理를 깨우치고, 正義를 신봉하며, 自由를 숭상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부당한 힘에 굽히지 않으며,
부패와 이기주의에 현혹되지 않는 삶을 배웠다.
愛國心으로 義士 ․ 烈士 ․ 志士가 될 용맹을 키웠다.
당시, 부패와 독재의 정부가 정권 연장을 위해
부정선거의 그림자를 신성한 학원에까지 드리웠다.
1960년 3 ․ 1절 전후, 피 끓는 전국 고등학생들의
抗拒가 시작되고 3월 10일 대전상고 학생 600여명은
교문을 박차가 나아가 신안동, 대전역, 도청 앞까지
경찰과 불온세력의 저지선을 맨주먹으로 대항하고
무자비하게 붙잡혀 가면서 突破하였다.
목이 터지라고 「학원의 정치도구화 반대」를 외쳤다.
학생들의 喊聲이 물결치는데도 3 ․ 15 부정선거가 강행되자
전국의 대학생과 온 국민이 목숨 걸고 민주항쟁에 나서
4 ․ 19 義擧는 성공을 거두었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민주 대한민국의 새 길은 찬연한 광채 속에 열렸다.
당시 1,2학년 대전상업고등학교 6회 ․ 7회 졸업생들은
그날 청원의 불꽃을 잊을 수 없어
졸업 60주년에 여기 기념비를 세운다.
서기 2020년 3월 10일
遇軒 朴憲晤 짓고
鳳山 宋昇憲 쓰다.
우송고등학교(대전상고) 6회 ․ 7회 일동
첫댓글 독재에 항거하기 보다 수업 빼먹는게 더 좋았던 어리석은 시절을 보냈네요.
4.19 때는 아니지만 우리의 고등학교 시절도 데모로 교문을 박차고 나온 때도 있었죠.
지금 생각하면 가장 소중했던 청춘을 보낼 절호의 기회였는데
어찌 그 의미를 찾지 못했을까요?
그러면서 성장해 갔겠죠.
단지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 만으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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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습니다.
어깨 동무를 하고 교문을 박차고 나올때 2학년 때인가 국어를 가르치셨던 김상록 선생님이 "성열아 들어가"라며
계속 뛰어 따라 오시면서 외치셨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서야 저도 선생님의 관심을 받고 있었던 학생임을 처음으로 느꼈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그 이후로 학교 성적이 제일 좋았던 때가 그 무렵이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