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식의 인사발령은 그 악명높은 즉석 인사발령이었다. 인사발령은 중대한 회사의 권위이다.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인사위원회가 열리고 거기서 문제의 심각성 그리고 회사에 끼친 해악들을 따져 징계를 내리거나 인사조치를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종식의 경우 그런 것이 모두 생략됐다. 보도본부장은 디제이의 복심인 사장의 노함을 진무시키기 위해 강한 조처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사장님 제가 이 나쁜 인간을 이렇게 응징했습니다. 흥분을 진정하소서. 그런 차원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면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 특히 인사부 관련자들은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했어야만 정상적인 조직이다. 그러나 새로운 민주정부가 들어서도 권위주의에 함몰된 방송국에서는 그런 행위가 생략됐다. 아니 나랏님을 욕보인 그런 인간을 파면조치해도 분이 안풀리는데 겨우 보직 박탈로 그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그 바른 말 잘한다는 노조도 아무런 말을 내지 않았다. 그냥 종식이라는 더러운 한 인간이 똥을 제대로 밟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종식의 처신이 잘못된 것인지 당시 브라보 방송사 분위기가 더러운 것인지는 훗날 밝혀지리라 생각하는 종식이다.
종식은 자신이 당한 즉석 인사발령에 대해 어필할 필요도 욕구도 느끼지 못했다. 연달아 이동한 부장인사 이동도 그렇고 이번 사태로 보도국 분위기도 그렇고 자신이 감당할 그런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이상하게 뭔가 멋져 보이는 인사를 택한 당시 보도본부장의 생각과 그에 저항하는 그룹들의 사이에서 종식은 여기저기 이런 저런 부장직을 감수해야했던 것은 아닌지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도 없는 쓸쓸한 보도국 라디오 편집부 한구석에서 종식은 즉석 인사조치가 일어났던 또 하나의 사건을 떠 올린다.
그때는 1983년 9월초였다. 얼마전 있었던 대한항공 007기 피격사건으로 온나라가 떠들썩한 그런 시기였다. 1983년 8월 30일 미국 뉴욕을 출발한 대한항공 007기는 한국 김포국제공항을 향해 순조로운 운항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항로를 바꿔 (왜 항로가 바뀐것인지는 지금껏 밝혀진 것이 없다.) 소련영해로 들어간 007기는 얼마후 연락이 끊기게 된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심각한 대립관계였다. 소련 폭격기가 출격해 007기에게 미사일을 퍼부었다. 그리고 007기는 추락하고 만다. 그리고 탑승자 269명은 차디찬 소련의 바닷가에 가라앉고 만다. 소련은 자신들의 영공을 침범했기 때문에 폭격할 수밖에 없었다고 발표했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난리가 났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언론통폐합과 삼청교육대 등등 엄청난 인권유린 그리고 언론유린을 감행했던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이었다. 그래서 가급적 국민들의 악감을 더 이상 사지않기 위해 이른바 노력(?) 노력이라니 우습지만 그런 것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일이 터졌다. 한국의 위상으로 감히 소련에게 항의할 그런 처지도 아니였다. 소련입장에서는 웃기는 조그만 나라 그리고 웃기는 정권일 뿐이었다.
종식은 전두환 군부독재시절에 브라보 방송국에 입사했다. 1981년 11월이다. 브라보 방송국은 당시 언론 통폐합의 여파로 어수선함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기존의 브라보 방송국 멤버로도 충분한데 여기에 동양방송 동아방송 기독교 방송 기자들이 몰려 들어오니 어수선할 수밖에. 그런 와중에 종식은 입사한 것이다. 종식은 이런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예측했다면 브라보 방송국을 왜 택했을까. 당연히 당시 화이팅 방송사로 갔을 것이다. 그곳은 적어도 언론 통폐합의 어수선함은 적을 것이니까.
그런 어수선함이 부른 방송사 최대 오보사건이 터졌다. 1983년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는 그런 어느날. 그날 종식은 편집부 말단 기자로 있었다. 입사후 일년이 조금 넘은 그런 시절이니까.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대한항공 007기가 사할린 근처에서 추락했기 때문에 시신과 유품들이 일본 홋카이도 해안으로 밀려들어오곤 했다. 유가족들이 현장에 가겠다는 소리가 높아지자 정부와 대한항공은 급히 특별기를 동원해 일본 홋카이도로 출발하기로 했다. 홋카이도 최북단 도시 왓카나이에서 유품들을 모아 유령제를 지내려는 것이 유족들의 소망이었다. 특별기에는 유가족들과 기자단이 탑승하고 있었다. 그 특별기가 출발한 뒤 조금뒤 보도국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기자가 소리친다. "일본으로 간 특별기가 실종됐데. 연락이 두절됐데. 특보 준비해야하는 것 아니야"
그날은 일요일이어서 기자들이 모두 출근하지는 않는다. 각부에서 두명씩 대충 전체 열다섯명 안팎의 기자들이 보도국에 있었다. 당시 당직 보도국장이 나선다. " 어떻게 된 거야. 야 빨리 확인해봐. 대한항공 그리고 정부청사 빨리 확인해. 그리고 특보 준비해 . 야 편집부. 특집 준비하라고. " 당직 보도국장 즉 당시 부장급 인사는 난리를 친다. 그도 그렇것이 007가 추락한지 이제 일주일도 안돼 그것도 유가족이 탄 특별기가 연락이 두절되다니. 당시 양복을 입고 출근한 기자는 유일하게 정치부 이 모기자였다. 그도 오늘 낮 후배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양복을 입고 왔을 뿐이였다. 취재는 여러 각도로 이뤄졌다. 대한항공에서는 아직 연략이 되지 않는 것은 맞지만 기상상태가 나빠 그럴 수도 있다는 입장이었다. 정부 각 부처로 연락을 해봤지만 구체적인 답을 얻지 못했다. 당시 보도국장 대행이던 부장은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이런 엄청난 상황에서 자신들에게 들어온 엄청난 특종을 놓치면 평생 그런 기회는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듯했다. 그때 출근한 부본부장에게 보고를 한다. 부본부장은 어떨결에 승인을 한다. 휴일 당직국장인 모 부장은 용단을 내린다. 특보를 내기로. 양복을 입고 준비하던 이 모 선배가 앵커자리에 앉는다. 편집부 기자가 진행을 맡는다. 온에어 사인이 들어오고 특보는 시작된다. 정규방송을 중단한 대단한 특별 뉴스인 것이다.
임시 앵커인 이 모는 힘주어 방송한다.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 브라보 뉴스 특보입니다. 대한항공 007기가 추락한지 일주일 만에 또 항공기가 실종됐습니다. 아마도 007기 사건의 또다른 테러인 것으로 판단합니다. 자세한 사항을 000기자를 연결해 알아봅니다. 전해주시죠. 녜. 오늘 아침 대한항공 007기 추락사건의 유가족들을 실은 대한항공 특별기가 실종됐습니다. 그 특별기에는 유가족 3백명과 취재진을 포함해 350여명이 탑승해 있습니다. 저희 브라보 방송사 기자도 3명이 타고 있습니다. 이 특별기는 오늘 아침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해 잠시뒤 홋카이도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연락이 두절된 상태입니다. 게다가 기상상황이 좋지않은 탓에 계속 연결이 되지않고 있습니다. 대한항공측에서는 아직 연결이 되지않는다는 입장만 밝히고 있습니다. 항공전문가들은 007기 피격사건이후에 악화된 소련과의 관계와 기상악화로 특별기가 최악의 상황에 놓인 것이 아니가 판단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계속해 브라보 뉴스속보를 통해 전해드리겠습니다."
입사한지 얼마 안된 종식은 이런 상황이 낯설다. 정말 엄청난 경험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종식이 엄청난 경험을 한 것은 조금뒤 더욱 엄청나게 현실이 된다. 특보방송을 한 것은 일요일 오전 9시쯤 그런데 9시 15분쯤 보도국 저 건너편 입구로 엄청나게 큰 거구의 사나이가 등장한다. 갑자기 입구가 소란스럽다. 어디선가 재털이가 날라온다. 그리고 엄청난 괴성이 들린다. " 이런 개새끼들. 오늘 야간 보도국장이 누구야. 이런 쌍놈의 새끼들. 야간국장 나와." 바로 브라보 방송국 사장이자 악명이 높은 이모 사장이었다. 부본부장이 신발도 신지 못한채 사장을 맞았다. 사장이 소리친다. "야 부본부장. 뭐야 이게. 이런 특보가 어떻게 가능해. 이런 쌍놈들." 사실 부본부장은 왜 사장이 이런 난리를 치는 것인지 그 당시는 알지못했다. 일요일인데 국민들에게 불편한 특보를 내보내 사장이 불편한 것인가 생각했다. 이모 사장은 전두환시절 전두환을 추종하는 핵심 인사였다. 전두환이 언론 통폐합 특히 방송 통폐합을 추진한 것은 바로 이 이모사장때문이었다는 것은 그시절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브라보 방송사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특전사 아니 계엄사령부보다 더 살벌했다.
그때까지 부본부장은 왜 사장이 이렇게 분노하는지 몰랐다. 그러자 사장이 " 야 너 보도본부 부본부장 그만둬. 그리고 너 정치부장 (당시 이모 부장) 너 부본부장 자리로 가. 그리고 정치부장자리는 너 정치부 차장 (길 모 차장) 이 맡어. 이런 오보 정말 이런 개새끼들. 너희가 기자야. 이런 빌어먹을 놈들." 졸지에 이뤄진 즉석 인사발령이다. 졸지에 부본부장에서 짤린 부본부장은 사색이었고 정말 졸지에 대 승진한 부본부장 그리고 정치부장은 왠 이런 횡재가 다 있나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전두환독재와 그에 따른 언론 통폐합 그리고 그로인한 언론의 자유는 이제 영원히 없는 것이구나 생각되는 상황이었다. 잠시후 왜 사장이 그토록 흥분하고 즉석 인사발령을 내렸는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브라보 방송국의 특보가 나가자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당시 전두환이 아침에 일어나 이 특보를 본 것이다. 즉시 비서실에 비상을 걸고 브라보 방송사 사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어 나 전두환이요. 이 뉴스 뭐요." 하루종일 뉴스를 보던 이모 사장이 하필이면 그때 화장실에 있었지 뭔가. 이사장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각하.급히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모사장은 뛰어서 회사로 왔다. 옷은 제대로 입었는지 그때는 확인이 안됐다. 그때 이모사장의 집과 브라보 방송국과는 불과 걸어서 이분 거리였다. 오던 중에 이모 사장은 보고를 받았다. 당시 특별기가 잠시 연결이 안됐지만 무사히 호카이도 공항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방송사상 이런 오보는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만한 대 오보사건이었다.이 사장은 분노에 분노가 그의 판단을 무시하고 있었다. 브라보 방송사 보도국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특보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다. 그때부터 내린 결론은 확인안된 것은 방송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맞다. 맞고 말고 .당연하지.그러나 백퍼센트 확인후 기자작성하면 백퍼센트 물먹는 것이 현실인 것을 어떻하겠는가.
종식은 생각했다. 그런 이후로 즉석 인사발령은 적어도 브라보 방송국에서는 한번도 없었다. 적어도 그런 즉석 인사발령은 종식이 18년만에 처음이 아닌가 생각들었다. 그것도 회사의 우두머리인 사장인 아닌 보도본부장 선에서 말이다. 종식의 회사인 브라보 방송국의 현실을 리얼하게 알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종식은 이놈의 브라보 방송국은 이 정권이 돼도 저 정권이 돼도 업보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혼자 단골 술집에 들린다. 포장마차 아줌마는 눈을 실실 웃으며 종식을 맞는다. "아이구 부장님. 왠 일이래요. 이른 저녁에. 오늘 왜 내가 생각났나요." "맞네요. 누님.나와 술이나 즐펀히 마십시다. 누님 말고 내편이 누가 있소. 술이 내편이고 누님이 내편이지." "아이구 부장님 오늘 누구에게 바람맞았나. 바람이 횡횡 부네 그려. 오늘 같이 마셔봅시다. 문 걸어 잠글까." 그렇게 종식은 초저녁부터 많이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