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책의 내용이 전반적으로 생산수단과 자본주의의 특성을 중심으로 역사의 흐름이 전개되며, 퇴보 없이 발전만 하는 진보적 성향을 띈 직선적 역사관을 바탕으로 쓰인 것이라는 점을 배우고 역사 파트의 내용을 전개해나갔다.
추가적으로 - 마르크스가 제시한 역사의 다섯 단계를 근현대사 이전을 전근대사로, 근대 자본주의부터 현대까지 근현대사라 부르며, 전근대사에선 생산수단을, 근현대사에선 자본주의의 특성이 중심이 되어 전개된다는 것을 세부적으로 배웠다.
- 책의 내용 중 생산수단으로써 돌, 조각이 잘못된 고증의 예시인 것을, 시대적 특성을 이용해 식물을 생산할 시기에는 땅에 떨어져 깨진 돌을 사용하는 뗀석기가 아닌 그다음 시대인 돌을 갈아 사용하는 간석기라는 사실을 통해 배웠다.
1. 원시 공산사회에서는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하며, 같이 일하고 함께 나누어 먹는 공산사회를 형성한다. 하지만 어느 날 돌, 조각을 생산수단의 예시로 들며, A가 돌, 조각이라는 조금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생산수단을 가지고 B보다 많은 곡식을 축적하였고, B는 A의 잉여 생산물을 받기 위해 노동을 하였다 는 간단한 이야기를 통해 지시 관계가 형성되었음을 배웠다. 이는 A가 가진 생산수단의 의해 발생한 생산물이라는 물질로 권력관계가 나타남으로 원시 공산사회에서 재산의 차이가 발생하여 지배계급, 피지배계급으로 나뉘는 고대 노예제 사회가 형성된다.(예시를 위해 돌, 조각이라는 도구를 생산수단)
2.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이 돌, 조각에서 토지와 영토로 바뀌었다. 생산수단을 가진 A는 시간이 지나며 왕과 귀족으로 구성된 지배계급이 되고, B는 피지배 계급인 평민과 노예가 되며 점차 사회는 계급으로 체계화되었다.
여기서 생산수단은 다른 사람의 이용 도구로서 사회적 관계를 왜곡시키지만, 노동을 대신할 사람이 필요한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 통해 A는 생산물을 얻고 이를 판 이익의 일부를 임금의 형태로 B의 노동력에 대가를 지불한다. 하지만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을 하며, B가 가꾼 생산물을 일을 하지 않는 A에게 주고, 임금을 받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관계 왜곡이 발생된다. B의 사회적 관계 왜곡 인지를 발견한 지배계급 A는 자신을 신이라는 존재로 만드는 신화 작업을 통해 제정일치 사회를 구성하여 자신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였다.(토지와 영토가 생산수단)
3. 중세 봉건제 사회에서는
장원이라는 생산수단을 중심으로 계급체계가 세분화되었는데 로마로부터 그리스도교가 핍박받는 상황에서 로마를 통일한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국교 중 하나로 인정함으로써 그리스도교는 유럽 전체로 영향력을 펼쳤다.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그리스도교 문화권에 속한 A라는 국왕은 더 이상 신이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신이 주는 정당성은 신을 섬기는 성직자 계급이 인정해주었고, 국왕은 생산수단과 영주에게는 없는 종교의 인정이라는 권력의 정당성으로 피지배 계급(B)을 지배할 수 있었다. B는 A의 지배에 불만을 표출할 수 없는 견고한 중세 보건사회의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중세 후기에 새로운 생산수단인 1.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상인 계급이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그리고 18세기 발생한 산업혁명은 제임스 와튼의 증기기관 발명으로 분업 시스템과 만나, 또 다른 생산수단인 2. 공장이 만들어져 생산물을 대량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새로운 생산수단인 공장을 가지게 된 B가, 권력을 갖은 부르주아 계급으로 탄생하게 된다.
새로운 생산수단의 발생으로 권력을 가진 신권력 B가 많아지자, 구권력 A가 견고하게 지배하던 중세 봉건제 사회의 분위기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신권력은 구권력의 권력을 정당화해주는 신을 이성으로 대체하려 하였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신권력, 피지배 계급과 구권력이 충돌하게 된 사건이 프랑스 대혁명이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앙시앵 레짐이라는 구제도(절대권력)의 모순됨으로 인해 약 98%의 피지배 계급(3계급)이 2%의 지배계급(1계급, 2계급)의 사치와 미국 독립전쟁으로 인한 비용을 세금으로 부담하는 사건이 발생됐다. 이러한 구제도의 모순에 테니스 코트의 서약 - 국민의회 조직 - 무력 진압 - 혁명으로 전개된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는 왕과 신의 존재를 없앴고, 부르주아에게는 더 이상 지배받지 않는 자유를 주며, 중세가 마무리된다.
추가적으로 - 4세기부터 14세기 무렵까지의 1000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고,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이 강했음을 오랜 세월 동안 사용되는 세기를 나타내는 단어인 B.C = Before Christ(예수 탄생 이전), A.D = Anno Domini (주의 해)에서 엿볼 수 있다. (장원이 생산수단 -> 중세 후기 무역과 공장이 추가 생산수단)
4. 근대 자본주의에서는
계급이 재편되어 지배 권력이 부르주아로 이동되었고, 사회 계급 또한, 생산수단을 소유한 부르주아(자본가, 시민, 유산계급)와 소유하지 못한 프롤레타리아(노동자, 무산계급)로 나뉘었다. 여기서 시민은 세금을 내며, 정치에 참여하는 부르주아 계급을 뜻한다.
-1. 산업혁명
공장은 기계와의 분업을 통해 대량생산을 하였고, 이렇게 많은 양의 생산물이 화폐경제와 만나 초기 자본주의를 구성하게 되었다. 물건을 구입하려는 욕구(수요) 보다 생산된 물품이 더 많은 상태(공급-재고)가 자본주의의 특성인데 이를 다른 말로 공급과잉, 초과공급이라 한다. 어느 날 수요가 대폭 줄어들어 초과공급 상태가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ㄱ. 공급을 줄이는 방법과 ㄴ. 수요를 늘리는 방법이다.
ㄱ. 공급을 줄이는 방법은 공장 가동을 멈추는 방법인데 임금, 유지비, 임대료 등의 고정비용이 발생하므로 공장을 가동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ㄴ. 수요를 늘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A. 시장개척, B. 가격 인하이다.
-2. 제국주의
산업혁명으로 인해 발생된 자본주의의 특성인 공급과잉을 식민지로 시장을 개척하여, 수요를 늘리려 식민지 차지 경쟁을 하던 시대이다. 일찍 산업화에 성공해 초과공급 사태를 겪은 영국은 인도를, 스페인은 남미를, 프랑스는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들어 시장을 개척하였지만, 뒤늦게 산업화에 성공한 독일은 식민지 경쟁에서 밀려나 기회를 엿봤다.
-3. 제1차 세계대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태자 암살 사건인 사라예보 사건이 독일의 눈에 띄었고, 세르비아(슬라브 민족)와 싸우던 오스트리아는 같은 슬라브 민족 국가이던 러시아에게 전쟁을 선포하였다.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이탈리아가 3국 동맹과 영국과 프랑스와 러시아가 3국 협상을 결성하여 전쟁을 치렀다. 전쟁은 막대한 수요를 창출했고, 이로 인해 공급과잉이라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일시적으로 해소해주었다.
추가적으로 유행 또한 공급과잉을 일시적으로 해소해줄 수 있다고 한다.
-4. 경제 대공황
산업혁명으로 인해 발생된 자본주의의 특성인 공급과잉을 수요를 늘려 해결하기 위해 가격 인하를 목표로 노동자의 임금이 낮아지고, 대량 실업이 발생하여 소비자인 노동자들은 소비가 위축되었고, 소비위축은 다시 공급과잉을 발생시켰다. 이렇게 대공황이 발생하였다. 해결 정책으로 미국의 뉴딜정책(수정자본주의), 러시아의 공산주의(소련), 독일의 군국화가 있다.
추가적으로 독일의 군국화는 전쟁배상금으로 인해 경제가 어려운 거라면 배상금을 내지 않고, 전쟁을 통해 회복할 수 있다.
-5. 제2차 세계대전
산업혁명으로 인해 발생된 공급과잉과 대공황으로 과도한 공급량의 해결을 위한 식민지의 확보, 무역협정에서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축군(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 연합군에게 패배했다. 참전한 연합군의 국가들은 국가와 식민지를 보호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하였다.
---근대사의 끝, 현대사의 시작---
-6. 냉전 시대
전쟁이 끝나고 세계는 자본주의 진영(미국)과 공산주의 진영(소련)의 냉전으로 새롭게 재편되었다.
미국과 소련의 전쟁은 전 세계의 막대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쿠바 위기, 베를린 위기,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의 형태로 대립이 발생했다.
결국 소련의 경기침체와 체제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공산주의 진영이 무너지고, 미국과 화해와 긴장 완화(데탕트)의 시기가 찾아왔다.
-7. 신자유주의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가 자본주의 독주 시대가 찾아왔음을 알리면서, 세계에 자본주의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정부의 시장개입을 좋지 않은 것이라 주장하며 동시에 최대한의 자유시장을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