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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는 유대인들
2020년 7월 12일 / 신명기 6:2-9
신 6:2-9 / 여러분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명령하는 주님의 계명과 규정들을 모두 지키십시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또 손자들이 언제나 주님을 경외하며 살면 주께서 여러분에게 길이길이 복을 누리며 살게 하실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주님의 명령을 듣고 그대로 지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일이 그대로 이루어져서 여러분이 복을 받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크게 번성할 것입니다. 4)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우리의 하나님은 여호와요, 여호와는 한분뿐이십니다.’ 5) 그러므로 마음을 다 쏟고 정성을 다 기울이고 힘을 다 바쳐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십시오. 6)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명하는 주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사십시오. 7) 자녀들에게 이 말씀을 분명히 가르쳐 주십시오. 여러분이 집에서 자녀와 함께 앉아 있을 때나 함께 여행을 할 때나 잠자리에 누울 때나 잠에서 일어날 때에 항상 이 말씀을 자녀들에게 전해 주십시오. 8) 여러분은 이것을 손목에 매달고 다니며 항상 기억하고 두 눈 사이에 붙여 표를 삼으십시오. 9) 또 여러분의 집 문기둥과 성문에도 모두 이 말씀을 써놓으십시오.
대단한 유대인 / 미국의 인구는 2019년 현재 329,676,200명으로 그중 유대인은 2%이다. 그런데 미국의 40대 부자 중 22명이 유대인이다. 22명이 모두 최상위를 차지한다. 미국의 제1대 부자는 빌 게이츠, 제2위는 조지 소로스, 제3위는 워런 버핏이다. 이들 모두가 다 유대인이다. 유럽에서 히틀러에게 6백만이 희생될 때 독일 전체 인구의 6%가 유대인이었다. 이 6%가 독일 마르크화를 28%를 점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유럽 사람들 전체가 유대인의 시장 지배력에 위협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다 히틀러에 동조하고 나섰던 것이다. 노벨상이 1901년에 제정되었는데, 그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세계 0.2%의 유대인들이 35%, 경제학상은 65%를 가져갔다. 사회 각 분야의 지존은 거의 유대인이다. 사회과학자의 지존은 칼 막스인데 그도 유대인이었다. 프로이트도 유대인이다. 자연과학계의 지존인 아인슈타인도 유대인이고, 원자폭탄의 오펜하이머도 유대인이다. 에디슨도 유대인이다. 갈릴레이 갈릴레오도 유대인이다. 정유업계의 지존인 록펠러도 유대인이다. 지금도 유럽 금융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노스 차일드 가문도 유대인이다. 맥도날드, 코카콜라 등이 미국 자본주의를 대표한다고 알지만 다 유대인 기업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 자본들은 거의 유대 자본이다. 10여 년 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대표적인 37개 기업의 유대인 자본 점유율이 엄청나는데 시티은행은 100% 유대인 은행이고, 국민은행까지도 85%, 하나은행 84% 등이다. 2011년 한 해 우리나라 예산이 307조로 삼성의 최대 매출이 150조였는데, 유대인 자본이 우리나라 37개 기업을 통해 가져간 돈이 275조라고 한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유대인들의 임신법 / 가장 규모가 큰 국제적인 유대인 연구기관이 유네스코의 닛다 프로젝트이다. 닛다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임신법 / 태교법으로 타이밍 임신법이 바로 닛다 임신법이다. ‘닛다’는 히브리말로 여성들의 생리라는 말인데, 닛다가 유대인의 민족성과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연구하는 프로젝트가 닛다 프로젝트이다. 닛다 임신법은 단순하다. 지금도 유대인은 닛다를 지키고 있다. 닛다에 의하면 유대인 부부는 여성이 월경을 하면 부부관계를 갖지 않고, 월경이 끝나도 이후 7일까지는 금욕이다. 그리고 거의 13일째 부부관계를 갖는다. ‘니크베’라는 우유 목욕을 하고 부부생활을 한다. 그래야 난자가 신선하고 정자가 가장 역동적이라고 한다. 그때 수정에 이르면 가장 우량한 아이가 생산된다는 것이다. 이게 닛다 임신법으로 유대인들은 회당을 통해 이것을 철저히 교육을 받는다. 유대인들은 부부생활도 랍비들의 지도를 받는다. 임신이 되면 태교에 들어가는데, 닛다를 따른다. 랍비가 태교를 하는데 시편을 노래하고, 신명기를 읽어주고, 기도해 준다. 한 가정의 아이라기보다는 선민(選民)을 주셨다며 민족적인 차원에서 아이를 생각한다. 남편보다 랍비가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율법에서 말하는 부정한 음식은 제한시킨다. 랍비들이 관리하는 태교가 닛다 교육이다.
「유대인 어머니」는 자녀가 두세 살 무렵부터 성경을 읽어주는 등 성경 때문에 교육을 특히 중요시하게 됐으며, 그 결과 문맹률 0%인 민족이 되었다.
요즘 상당수의 이스라엘 여성들이 직장을 갖게 되어 유대인 어머니다운 자녀교육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어느 직장이든 빼어난 보육시설이 갖춰져 있는 것도 직장여성들이 직업 때문에 자녀교육을 소홀히 하게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직장여성기구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 탓이라고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채 말을 하기도 전에 쉐마부터 읽어준다. 쉐마가 바로 신명기 6장 4-9절이다. 쉐마는 <들으라>라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항상 쉐마를 아침저녁으로 가르친다. 쉐마가 이스라엘의 원초적 신앙고백이자 그 고백의 근간이다. 쉐마의 핵심은 5절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그러므로 마음을 다 쏟고 정성을 다 기울이고 힘을 다 바쳐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십시오).”
그뿐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아기를 목욕 시킬 때 기도문이 있다.
1. 머리를 감기면서 “하나님, 아이의 머릿속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가득 차게 하옵소서.”
2. 얼굴을 씻어주면서 “아이가 얼굴은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의 소망을 갖고 자라게 하소서.”
3. 입안을 씻어주면서 “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복음의 말이 되게 하소서.”
4. 손을 닦아주면서 “이 아이의 손은 기도하는 손이요, 사람을 칭찬하는 손이 되게 하소서.”
5. 가슴을 닦아주면서 “이 아이가 5대양 6대주를 가슴에 품고 살게 하소서.”
6. 배를 씻어주면서 “아이의 몸속의 모든 기관, 오장육부를 튼튼하고 강건하게 하소서.”
7. 성기를 씻어주면서 “결혼하는 날까지 순결을 지켜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을 이루게 하시고 축복의 자녀를 준비하게 하소서.”
8. 다리를 씻겨주면서 “부지런한 다리가 되어 온 나라와 민족에 복음을 증거할 전도자의 걸음으로 인도하소서.”
9. 엉덩이를 씻어주면서 “교만한 자리에 앉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에 앉게 하옵소서.”
10. 등허리를 씻어주면서 “보이는 부모를 의지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소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핵심인 쉐마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하는가?
1. 마음에 새기라(6절).
마음은 본래 심장이란 말이다. 새긴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돌판에 십계명을 새긴 것처럼 그렇게 심장에 각인하라는 뜻이다. 매우 강하고 극단한 표현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목숨을 바쳐서 받들어야 할 계명인데, 이것을 머리가 아닌 박동하는 심장에 새기라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이 말씀이 삶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시 1:2-3 / 얼마나 복되랴! 여호와의 가르침을 기뻐하고 그 가르침을 밤낮으로 읽으며 늘 명상하는 이는. 3) 이런 이는 시냇가에 옮겨 심은 나무 같아서 철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는 나날이 푸르리니 하는 일마다 끊임없이 번창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원하는 마음보다 훨씬 더 간절히 - 아니 백 배, 천 배, 만 배 더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가 복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각자 부르심을 받은 삶의 자리와 각자의 분량만큼의 복을 다 받아 누리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우리가 각자의 분량에 따라 정해진 복을 다 받아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뜻이 이루어지게 되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온전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께서 왜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을 시키셨는가?
그들이 부당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어서인가? 애굽의 바로 왕이 히브리인들의 번성을 막기 위해 사내아이들이 태어날 때 그 아이들을 죽였기 때문인가? 그들이 너무 심한 학대로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에 불쌍해서인가? 그들이 이 모든 것들 때문에 탄식하며 부르짖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응답으로 그들을 출애굽을 시켜 주셨는가? 출애굽기 2:23-25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출 2:23-25 / [이스라엘의 탄식을 들으시는 하나님] 오랜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에 애굽 왕은 죽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전히 강제 노동에 시달려 신음하며 울부짖었다. 그 강제 노동에 견디다 못해 제발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하나님에게까지 사무쳤다. 2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시고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맺은 계약을 생각하여 25) 이스라엘 사람들을 굽어 살피셨다.
그러나 당시 고된 노동 때문에 고통 중에 부르짖었던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뿐인가? 애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만큼, 아니 그 보다 더한 고통으로 신음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 아래 있는 언약백성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고통당한 기간은 짧으면 80년, 최소한 100년 이상으로 추측된다. 모세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남자 아이들이 태어나면 다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실제로 남자 아이들을 죽였다. 그리고 고된 노동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그렇게 긴 기간 동안 고통을 당하며 부르짖고 있었지만 정하신 때를 기다리셨다. 그리고 때가 찼을 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셨고, 그 언약의 성취를 위해 첫 걸음을 내 디디신 것이다. 언약의 성취를 위해서는 그들을 먼저 애굽에서 구원해 내셔야만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 땅의 모든 민족이 그들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제사장 나라로 세우시고자 출애굽을 시키신 것이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증표로 두 돌 판에 새긴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말씀들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아무 민족에게나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니다. 특별히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연결되는 택한 백성에게만 주신 것이다.
출 19:3-6 / 모세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올라가자 여호와께서 산에서 모세를 불러 말씀하셨다. `너는 야곱의 자손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라. 4) `내가 애굽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또 내가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어떻게 내게로 데리고 왔는지 너희는 다 보았다. 5) 온 누리가 다 나의 것이 아니냐?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가 세워 준 계약을 잘 지키면 너희는 뭇 민족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되리라. 6) 너희야말로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반드시 일러주어라'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갖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으신 언약의 성취를 위해 십계명을 비롯한 말씀을 주셨다. 그 언약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로 이를 위해 그들에게 말씀을 주신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이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벧전 2:5, 9-10 / 그러니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집을 짓는 데 쓰실 산돌이 되십시오.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그리스도를 통해 드리십시오. 9) 그러나 여러분은 다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손수 택하신 민족이요, 왕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하고 순결한 겨레이며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널리 찬양하기 위한 것입니다. 10) 여러분이 전에는 아무런 가치 없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그 은혜를 입고 여러분의 생활이 변화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주신 말씀 / 신명기는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정복하러 갈 광야 2세대, 자녀 세대에게 모세가 설교한 말씀이다. 모세는 출애굽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사건을 회상하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곳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를 매우 간절하게 당부하고 있다. 이런 모세의 마음은 신명기 곳곳에 구구절절하게 묻어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하다. 광야 2세대가 하나님께서 주신 땅, 가나안 땅에서 지켜야할 말씀이듯이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게 하신 삶의 터전에서 지켜야할 말씀이다. 가나안 땅은 우리가 장차 가게 될 천국을 상징하는 의미는 있지만, 실제로 적용하자면 천국이 아니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러했듯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어진 삶의 터전이다.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한다.
▶ 특별히 신명기 5장과 6장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언급하면서 십계명을 주신 목적에 대해 반복해서 강조하였다.
신 5:27 / 그러므로 이제는 당신이 혼자 가서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모두 듣고 그것을 다시 우리에게 전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듣고 그대로 하겠습니다.
신 5:29 / 다만 그들이 항상 그런 마음을 품고 있으면 좋겠다. 그들이 항상 그렇게 나를 두려워하고 내 명령을 지킨다면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언제까지나 복을 받아 잘될 것이다.
신 5:33 /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명령하신 그 길로만 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살아남아서 좋은 일을 보고 여러분이 이제 차지하게 될 땅에서 오래도록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신 6:2-3 / 여러분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명령하는 주님의 계명과 규정들을 모두 지키십시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또 손자들이 언제나 주님을 경외하며 살면 주께서 여러분에게 길이길이 복을 누리며 살게 하실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주님의 명령을 듣고 그대로 지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일이 그대로 이루어져서 여러분이 복을 받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크게 번성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 요약해 본다. “나는 너를 통해 영광을 받고 싶다. 너를 통해 나의 뜻을 이루고 싶다. 이를 위해 너에게 복 주기를 원한다. 나는 네가 복을 받고 크게 번성하기를 원한다. 너만이 아니라, 너의 자녀들과 손자들도 복을 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너에게 준 삶의 터전에서 너의 날이 너와 네 자녀들, 네 손자들에 이어 오래 지속되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도 훨씬, 백 배, 천 배, 만 배 더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가 복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공동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부르심의 분량대로 예비된 복을 다 받기를 원하신다. 이 복을 받아 누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너에게 준 말에 순종해라. 이것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네가 복을 받고 너의 날이 오래 지속되기를 원하면, 즉 너의 가문이 대대에 이르러 복을 받으려면 너만이 아니라, 너와 네 자녀들과 네 손자들이 너처럼 각각 내 말에 순종해야 한다. 나는 너 뿐만이 아니라, 너의 자자손손에 걸쳐 복을 주기 원한다. 그러므로 너와 너의 자녀들, 손자들이 나의 복을 받아 누리기를 원한다면, 너는 내가 너에게 명한 말씀을 먼저 너의 마음에 새겨라. 그리고 너의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쳐라. 그래서 그들의 마음에도 나의 말이 새겨지게 해라’
오늘의 관건은 감성적으로 ‘나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는 고백이나 노래가 아니다. 오늘의 관건은 6절 말씀이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오늘 본문에서는 5장의 십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그리고 7절 상반절의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지 않는다면 그는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자이다.
자녀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고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바라며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가르치지 않고, 말씀을 자녀의 마음에 새기기를 힘쓰지 않는 부모는 하나님보다 자녀를 더 사랑하는 부모이다. 이런 부모는 자녀가 잘 되기만 한다면, 자녀를 위해서라면, 자녀의 인생에서 중요한 시점마다 - 대학진학, 직장, 결혼을 위해서라면 하나님에게서 다른 신으로 갈아 탈 확률이 매우 높다. 하나님 신앙을 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특히 십계명)을 너와 너의 자녀의 마음에 새겨라’는 것이다. 이것이 나와 내 자녀의 복(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주시는 복)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는 것은 무엇일까?
말씀을 머리에 새기라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새기 위해서는 먼저 머리에 새겨야 한다. 즉 말씀을 암송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암송을 했다고 자동적으로 마음에 새겨지는 것은 아니다. 성경을 아주 많이 암송하지만 마음에 새겨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31장에서 날이 이르면 이스라엘과 유다에 새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하시면서 3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은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이것은 법적으로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말씀을 그들의 마음에 새기시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6:45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한 사람은 그 선한 마음에서 선한 행동을 하고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이 속에 숨어 있어서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이 입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는 것은 마음에 가득한 것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요, 그의 삶의 모습을 가장 먼저 드러내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새겨져야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께서 말씀을 마음에 새겨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이 예수님의 승천 이후, 오순절 날에 성령님의 오심으로 성취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성경을 읽거나 공부하거나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이, 기도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성경을 기록할 필요가 없었고, 예수님도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그렇게 심혈을 기우려서 가르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오로지 성령을 받으라고 기도만 시키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사도들도 초대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칠 필요가 없었고, 성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날마다 모이기를 힘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하였다.
딤후 3:16-17 /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 받은 영감으로 쓰여 우리 손에 주어진 책이며 진리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우리 생활에서 악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주는 데 유익한 책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을 바르게 하고 옳은 일을 행할 힘을 줍니다. 17) 하나님께서는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를 모든 면에서 온전하게 하시고 남에게 착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해주십니다.
딤후 4:1-2 / 나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장차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하여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엄숙히 그대에게 명령합니다. 2) 언제 어느 때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으로 전파하시오. 기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또 그 시기가 좋든지 나쁘든지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시오. 신도들의 허물을 바로잡고 책망해야할 때는 책망을 하시오. 옳은 일을 행하도록 격려하고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키우시오.
우리의 죄악된 본성은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거니와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저주스런 멍에로 여기고 절대로 메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사랑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지키려고 노력하게 하신다.
▶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 사람이 다윗이다. 다윗을 통해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는 것이 무엇이며, 그 방법에 대해 알 수 있다.
다윗은 시편119편에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시 119:13-16 / 주께서 주신 법 잊을까 큰소리로 외우고 또 외웁니다. 14) 세상 모든 재물을 다 얻은 것처럼 주님의 명령 따르기를 기뻐합니다. 15) 주님의 가르침 연구하며 주님의 도 깊이깊이 묵상합니다. 16) 주님의 법 기쁨으로 삼고 주님의 명령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시 119:47-48 / 나 주님의 명령 사랑하기에 그 명령 따르는 것 기쁨으로 삼으렵니다. 48) 주님의 명령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주님의 가르침 깊이깊이 명상하렵니다.
시 119:72 / 주께서 이르신 가르침은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금은보다도 훨씬 더 이롭습니다.
시 119:97-104 / 주님의 법 너무나 사랑하여 하루 종일 온종일 생각합니다. 98) 언제나 주님의 명령 곁에 두고 있기에 이 몸은 원수들보다 슬기롭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깊이 명상하기에 99) 이 몸은 그 어떤 스승보다도 더 깊은 깨달음을 얻고 100) 나이 많은 이들보다도 더 깊은 주님의 명령 따라 살고자 한 까닭에 깨달음을 얻습니다. 101) 주님의 말씀 따라 살고자 마음먹었기에 못된 짓이라면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으며 102) 오직 주님만이 나의 스승이시니 주님의 가르침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103) 주님의 가르침은 너무나 달아 꿀맛보다도 더 달디답니다. 104) 주님의 법 읽고 또 읽어 슬기를 얻었기에 모든 거짓을 혐오합니다.
시 119:97 / 주님의 법 너무나 사랑하여 하루종일 온종일 생각합니다.
시 119:104 / 주님의 법 읽고 또 읽어 슬기를 얻었기에 모든 거짓을 혐오합니다.
더불어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다.
시 119:9-12 / 어떻게 살아야 젊은이가 일생을 깨끗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주님의 명령 따라 살아간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10) 온 마음 다 바쳐 이 몸은 주님을 섬기려 하오니 주님의 명령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그 모든 것을 없이하여 주소서. 11) 혹시라도 주께 죄지을까 주님의 법 마음속에 고이 간직합니다. 12) 여호와여, 주께 찬송 올립니다. 주님의 길을 가르치소서.
시 119:27 / 주님의 법 깨닫게 도와주소서. 주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 깊이 명상하리이다.
시 119:35 / 주님의 법 지키는 것은 나의 큰 기쁨 주님의 법 따르는 지름길을 가게 하소서.
시 119:58 / 온 마음 다 바쳐 주께 비오니 주님 약속하신 대로 자비를 베푸소서.
날마다 주의 말씀을 소리내어 반복해서 읽고, 읽으면서 ‘깨닫게 해 달라, 행하게 해 달라,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게 되고 그 말씀대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천천 금은보다 사랑하여 날마다 소리내어 읊조릴 때, 그리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기를 기도할 때, 말씀이 마음에 새겨진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셔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게 하신다.
그러므로 본문의 7-9절의 말씀처럼 날마다 성경을 펼쳐서 읽는 것은 물론, 십계명을 비롯한 약속의 말씀들을 적거나 프린트해서 눈에 잘 띠는 곳에 붙여 놓아 수시로 보고, 읽고, 기도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매우 유익하다. 또한 자녀들과 손자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원하신다면 그들로 성경을 소리 내어 읽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새겨질 때까지 말이다.
2.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
자기만 쉐마에 철저하고, 자기 심장에만 문신하듯 새기면 되는 게 아니라 자녀에게도 가르쳐야 한다. 쉐마 계승의 얘기이다. 이것이 부모의 가장 큰 사명이요 도리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살면서도 끝까지 살아남고 기적처럼 나라를 재건하고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자녀 교육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세계 역사를 보면 얼마나 많은 국가가 흥망성쇠 했는가? 그런데 이스라엘을 보라. 나라 없이 보낸 기간이 2천 년에서 많게는 2천 7백년이 넘는다. 그런데 그들이 1948년 5월 14일, 영국의 위임통치 종료와 함께 독립이 되었다. 나라가 세워지자 귀국한 저들은 곧 바로 언어가 소통이 되다니 얼마나 놀랄만한 사실인가? 저들은 나라는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잊어버리지 않았다. 땅은 없어도 저들의 말은 잊어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나라가 없어진 후에는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경외하며 매일 성전이 있었던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을 전통으로 삼았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잃어버린 것은 결코 아니다. 옥스퍼드 대학교나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신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그들 대부분이 자원입대를 했고, 상당수가 전사했다고 한다. 특히 1967년 6일 전쟁 때 많은 사람들이 전투에 참가하기 위하여 고국으로 가고자 했다. 특히 유대인 지원병들로 인해 이스라엘로 향하는 모든 비행기 표가 매진되었고, 사람들은 각 공항에서 대기표를 받고 기다려야 했다고 한다.
작년도 본토에 있는 이스라엘 인구는 총 9,201,230명으로 유대인(74.2%)과 아랍인(20.9%)으로 되어 있다. 외환 보유고가 $83,976,000,000이다. 1인당 GDP(국내 총생산)가 $42,823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뛰어난 것은 이들의 교육법이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교육을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렇게 노벨상을 많이 받을 수는 없다. 생각하는 교육은 다른 선진국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교육법이지만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해 살면서 올바른 교육을 받았을 때 이와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유대인들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정신적인 성숙, 즉 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쉐마 교육으로 인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디아스포라로 살면서도 목숨처럼 닛다를 태교로 삼고, 쉐마를 자녀교육의 핵심으로 삼은 그들의 전통적 교육 덕분이었다. 우리의 자녀에게 하나님 사랑,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저들의 미래가 복 된다. 유대인 자녀들은 누구나 돌만 지나면 침대 머리맡에서 읽어주는 쉐마를 들으며 잠이 든다. 유대인은 자녀에게 신명기를 읽어주고 쉐마를 들려주는 베갯머리 교육을 가장 신성한 의무로 여긴다. 닉슨 대통령 시절에 국무장관을 지낸 키신저 장관의 자서전을 보면, 자기 부친이 그렇게 유별나게 쉐마 교육을 했다고 했다. 자녀들에게 쉐마 교육을 하라. 하나님 사랑과 말씀을 가르치라. 그래서 여러분의 자녀가 유대인처럼 크게 복 되기를 바란다.
▶ 유대인들에게는 ‘밥상머리 교육’이 있다. 그들은 토요일이 안식일이라, 금요일 저녁부터 안식일을 준비하는데, 흩어졌던 가족들이 금요일 저녁만 되면 모두 가정으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함께 한다. 식탁에는 하얀 식탁보를 깔고 촛불을 켜고, 시작 찬송을 부른다. 가족들이 서로 축복한다. 가난한 이웃에게 전해줄 동전을 모은다. 포도주를 마시고, 밥을 먹는다. 후식을 먹으며 토론과 대화를 나눈다. 이들은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이런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아이들을 축복한다.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하나님께 감사하고, 부모님께 감사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웃을 돌본다. 그리고 안식일을 준비한다. 이것은 어려서부터 시작된다. 잠언 22:6에 보면 ‘마땅히 걸어야 할 그 길을 아이에게 가르쳐라. 그러면 늙었어도 그 길을 떠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사무엘상을 보면, 엘가나의 아내 한나가 아이를 낳아 그 이름을 사무엘(여호와께 간구해서 얻은 아들)이라고 하였다. 한나는 그 아이를 양육하며 젖떼기기까지 기다리다가, 젖을 뗀 후 그를 데리고 실로의 성전으로 갑니다. 외경 마카베오상 7:27에 보면, ‘나는 너를 아홉 달 동안 뱃속에 품었고, 너에게 삼년 동안 젖을 먹였으며, 지금 내 나이에 이르기까지 너를 기르고 교육하며 보살펴 왔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한나는 사무엘을 삼년 동안 품고 가르쳤다는 말이다. 우리도 그리 말한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그 세 살까지의 교육이 없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것이 무얼 알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 아이는 이미 자기 나름대로의 인격적 형태를 갖추어 간다. 그리고 세 살이 넘으면, 그것을 바꿀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교육학자들은, ‘아이가 TV에 눈 돌리기 전에 교육을 마쳐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밥상머리 교육을 시도해 보라. 일주일 중 토요일 저녁에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고 하나님께 감사해 보라. 이웃을 돕고자 작은 동전이라도 모아 보라. 특히 자녀가 어릴수록 그 교육의 효과는 클 것이다.
3. 쉐마를 생활화하라(8-9절).
쉐마를 온 가족이 삶의 규범으로 삼아 실천하며 살라는 것이다. 생활로 하나님 사랑하기를 구현하라는 것이다. 실제 9절 말씀처럼 유대인들은 문설주에 쉐마를 새기고, 양피지에 쉐마를 적어 문틀에 홈을 파고 넣어두고 드나들며 입을 맞춘다. 벤허 영화를 보면, 벤허가 흉가가 된 집에 돌아와 벽감에 손을 대고 입을 맞춘다.
아무리 소중하고 내 심장처럼 귀중한 계명이라 해도 그게 내게 복이 되기 위해서는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 말씀은 염불이 아니다. 입으로 떠드는 것으로 되는 게 아니다. 쉐마의 가르침대로 내 삶을 통해 실천해야 복이 된다. 쉐마는 실천 강령이다. 삶의 규범이다. 실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한걸음 나아가 ‘이웃 사랑’을 ‘민족 사랑화’하여 이웃 사랑을 철저히 실천해야 한다. 미국 국무부 장관이었던 그리고 하버드대학교 교수였던 헨리 키신저는 사실 동독에서 미국으로 건너왔을 때 무일푼의 거지였다. 그렇지만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유대인들이 그를 키운 것이다. 그런 키신저가 국무부 장관이 된 이후 지금까지 또 다시 키운 유대인 젊은이들이 얼마나 될까? 유대인이 돈이 많은 이유는 로스차일드가 이후의 구조적 측면과 함께 동족을 서로 키워주는 시스템의 미학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유태인들은 거액의 자금을 이민자들에게 무이자로 빌려주는 이웃 사랑을 철저히 따랐다. 유대인들은 동족에게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순종을 잘하는데 6일 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안식일은 꼭 지킨다. 한국 사람들이나 대부분 돈을 벌려고 365일 매일 매일 일하는데, 잘 살 때 쯤 아파서 병원비로 돈 쓰던가, 큰 병에 걸려서 죽는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쉴 때는 철저히 쉬니까 돈도 많이 벌면서도, 건강도 나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1년 술값이 23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쓰는 반면 유대인들은 그 돈 가지고 십일조, 감사헌금 등을 의무적으로 한다. 유대인들은 드린 헌금으로 학교,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는데 쓴다고 한다.
그렇다고 유대인들이 모두 잘 사는 것만은 아니다. 예루살렘에도 거지는 많지만 이스라엘에는 약자를 위한 ‘나눔의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로마에 의해 멸망해서 전전했던 민족으로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서로의 생명을 지켜주는 차원에서 서로 나누어야 하는 절박한 배경도 있어서 그것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 부분에서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은 영국, 프랑스, 미국의 큰 손인 로스차일드가와 록펠러가를 중심으로 하여 유대인 큰 손들이 유대인들을 키우고 배양하는 조직력을 발휘했다. 로스차일드가의 등장 이후 유대인들은 ‘돈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
한 예로 유대인들은 아이를 낳으면 부모가 아이를 위해 우리로 치면 100일, 돌잔치 등에서 주변으로 받은 돈을 통장에 적립하고 부모들도 아이를 위한 돈을 통장에 적립하여 그것을 20세에 전달한다. 20세면 대학을 가거나 사회로 진출하는데 그 때 받는 돈이 1억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럼 그 1억으로 유학을 가거나 사업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결 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분명히 새기라. 그리고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자. 사람을 죽이시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사람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유하게도 하시고, 낮추시기도 하시고, 높이시기도 하시는 분 역시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존중하며, 그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를 사랑하며 복을 주실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자녀를 위해 무엇을 놓고 기도하는가? 성적인가? 건강인가?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아버지는 철학자다. 그에게 여섯 번째로 태어난 죄렌 키에르케고르는 철학에 소질을 타고 태어나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깊은 생각에 잡기고, 우수(憂愁)에 잠기고, 가끔 엉뚱한 질문도 했다. 아버지는 몹시 걱정하며 아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했다. “하나님! 죄렌이 어떤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믿는 사람이 되게 해 주소서.” 그 아들은 위대한 신학자가 되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잘 양육하라. 무엇보다 여러분이 신앙사실 자녀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교육이다. 종교개혁이 이루어진 대부분의 나라에서 교육이 강조되었고, 이것은 부모교육에 대한 중요성으로 연결되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를 교육시키는 것이 다시 강조되었다. 그 후에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사회가 급속이 변화되었다. 이때에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책임은 가정 밖에 있다고 착각하였다. 그래서 교육이라고 하면 학교에서만 가르치는 것이 되어버렸다. 교육에 대한 부모의 학습기회가 줄어들었다. 이제는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그리고 좋은 학교 또는 좋은 학원을 찾아다닌다. 그래서 좋은 대학을 보내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의 주위를 뱅뱅 맴도는 것이다. 이런 엄마를 ‘헬리콥터 맘’이라고 한다.
더구나 가정이 다양한 형태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자녀를 가르치는 자녀교육보다도 부모를 가르치는 부모교육이 더 중요해졌다. 무엇보다도 신앙교육이 중요해졌다. 부모가 올바른 기독교인상과 부모상을 수립하고 기독교 부모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자녀에 대한 교육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가정을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부모들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하려고 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안다고 하지만 수박 겉핥기뿐이다.
또 문제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고만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는 건 많은 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배운 것 많은 데 제대로의 삶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계속 강조되는 것이 인성교육이다. 사람 됨됨이의 교육이다. 우선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 아닌 다름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웬만한 교육학자들은 다 안다. 그러나 그렇게 가르칠 수 없다. 학부모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빨리 진도가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뒤쳐지면 안 되고 빨리 끝장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됨됨이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머리로 배우는 공부가 아니라 삶으로 나타나는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
더구나 중요한 것은 이런 교육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단계적으로 자란다. 그러나 그 단계는 단절된 단계가 아니다. 예를 들어 앞에서 습득한 경험과 지식은 반드시 다음과 연결된다. ‘2+3=5’라는 것은 계속 사용되는 것이다. 어느 날 알고 있다가 어느 날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평생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에 교육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이론적이지 않다. 사랑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다. 남이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요즘 젊은 부모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특히 신앙교육을 위해서 교회학교에 자녀를 보내놓고 ‘그쪽에서 알아서 교육을 시키겠지’하며 모든 것을 맡기는 듯하다. 그리고는 만일 자기 자식이 한 대 맞았거나 지식이 좀 모자란듯하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와서 CCTV까지 보자며 항의를 한다. 가르치는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심을 자녀들이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존재로만 생각하기에 문제가 커진다. 그러기에 본문의 말씀은 오늘날 부모나 자녀 모두에게 매우 필요한 것이다.
다시 한 번 본문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자 한다.
신명기 6:4-8 /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우리의 하나님은 여호와요, 여호와는 한분뿐이십니다.’ 5) 그러므로 마음을 다 쏟고 정성을 다 기울이고 힘을 다 바쳐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십시오. 6)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명하는 주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사십시오. 7) 자녀들에게 이 말씀을 분명히 가르쳐 주십시오. 여러분이 집에서 자녀와 함께 앉아 있을 때나 함께 여행을 할 때나 잠자리에 누울 때나 잠에서 일어날 때에 항상 이 말씀을 자녀들에게 전해 주십시오. 8) 여러분은 이것을 손목에 매달고 다니며 항상 기억하고 두 눈 사이에 붙여 표를 삼으십시오. 9) 또 여러분의 집 문기둥과 성문에도 모두 이 말씀을 써놓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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