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기 좋은 당진 면천읍성과 조종관
돌아보기 좋은 당진 면천읍성과 조종관
당진 면천읍성에서 돌아보는 면천군의 옛 모습
▲ 당진 면천읍성 관아
돌아보기에 좋은 당진 면천읍성과 최근에 복원된 조종관을 돌아보았다.
당진시 면천면에 가면 옛 면천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 당진 면천읍성
조선시대의 당진현과 면천군이 1914년 통합하여 당진군이 되었다. 대체로 옛 당진읍과 그 서북부지역은
옛 당진현 영역에, 당진읍 동쪽 지역은 옛 면천군에 해당되고,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가 되었다.
▲ 당진 면천읍성
면천면소재지 중심에는 둘레 약 1,200m의 면천읍성이 있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91호로 지정이 되었는데
평면은 네모꼴에 가까운 타원형을 이르고 있다. 조선 초기 해안지역 읍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며, 남문·동문·서문이 있다.
▲ 당진 면천읍성
성안에는 군자지(君子池)라는 연못이 있는데 그 안에는 군자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군자지에는 수련이 아름답게 피어나 여름을 물들이고 있다. 성의 북쪽 산기슭에서 흐르는 작은 개울이 북벽을 통과한다. 성벽은 남벽과 서벽이 잘 남아 있고, 성벽의 아래쪽은 커다란 돌을 사용하고, 위로는 차츰 작은 할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여 조선시대 읍성 축조 기법의 전형적인 형식을 보여 주고 있다.
▲ 당진 면천읍성 군자정
옛 면천초등학교 자리에 관아가 있었는데 당진시가 그 자리에 지난달 16일 조선시대 왜구 방어를 위해 쌓은
성곽인 당진 면천읍성 내 객사의 복원이 완료됨에 따라 복원 준공을 기념하는 ‘조종관’ 현판식을 가졌다.
▲ 당진 면천읍성 객사 뒷면
객사는 고려와 조선시대 각 고을에 설치했던 관사로 지방을 여행하는 관리나 사신의 숙소로 사용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정청에 전패와 궐패를 모셔 지방관이 왕에 충성을 다짐하는 곳으로 중앙집권과 지방행정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 당진 면천읍성 측면
면천객사는 1433년(세종 15)에 처음 세워진 이래, 다섯 차례 중수를 거쳐 1622년(현종 3)에 다시 지어졌으며 1911년 일제강점기 시절 면천공립보통학교로 사용되다 1972년 면천초등학교가 현대식 건물로 확장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 당진 면천읍성 조종관
이번에 복원된 면천객사의 규모는 정청 3칸, 서익헌 3칸, 동익헌 5칸 등 11칸으로 그 면적은 총 207㎡이다. 이날 보니 한 가족이 마루에 앉아서 여름을 즐기며 면천객사를 돌아보는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 당진 면천읍성 풍락루
한편 당진시에서는 향후 지방 관아의 주요 시설인 동헌, 내아, 사령청 등을 추가적으로 복원해 면천 관아의 위용을 높이고 문화재 활용사업에도 더욱 힘쓸 예정이다. 왼쪽에는 풍락루가 서 있는데 옛 면천관아의 문루이다.
▲ 당진 면천읍성 은행나무
객사 앞 오른쪽으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두 그루가 천연기념물에 지정되어 있는데 한 그루는 가슴높이줄기지름 1.93m, 높이 20.5m이고, 다른 한 그루는 가슴높이줄기지름 1.94m, 높이 21.5m이다.
▲ 당진 면천읍성
당진시가 천연기념물 당진 면천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551호)에 대한 공동부 유지관리 사업을 완료했다. 전에 시술한 은행나무 내 상처 치료 부위의 파손된 부분에 대해 표면정리 및 살충·살균처리, 방부처리 등을 통해 유지관리 했으며, 질산칼륨 등 영양제를 2회 공급해 전체적인 은행나무의 생육환경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한다. [자료출처 : 보도자료 인용 ]
▲ 당진 면천읍성
이 은행나무는 면천에 살고 있던 고려의 개국공신인 복지겸(卜智謙)이 병으로 누워 있었는데 백약이 무효하므로 그의 딸 영랑(影浪)이 아미산에 올라 백일기도를 드렸다. 그랬더니 마지막 날에 신선이 나타나 두견주를 빚어 100일 후에 마시고 그곳에 은행나무를 심은 뒤 정성을 들여야 나을 수 있다고 하여 그대로 하였더니 병이 치유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당진 면천읍성 군자장 수련
▲ 당진 면천읍성 3월 10일 학생독립 만세운동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