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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38년~1894년 김산 봉황대를 방문한 문인들의 이야기
1838년 김산군수 이능연이 봉황대를 중수한 이후, 김산의 연화지와 봉황대는 많은 문인들이 방문하여 시작(詩作)의 소재로 등장한다.
호수 가운데로 옮겨진 봉황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거룻배를 타야 했지만, 이 또한 봉황대의 매력으로 받아 들여졌다. 19세기 초기에는 김산군수와 관련된 인물들이 남긴 시문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으나, 후기로 갈수록 일반 여행객들의 글이 나타난다.
주요 방문객은 인근의 지방관과 성주 거창 함양 등지에서 방문한 문인들이 대부분이다. 1832년 이후 김산봉황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봉황대 판상운을 차운하거나, 새로운 압운을 사용하여 봉황대에 오른 감회를 표현하고 있다.
○ 1848년경 지은 이병영(李秉瑩,1784~1851)이 지은 봉황대판상차운시를 살펴보자
경상대 고문헌도서관 >천관문집<川觀文集>
이병영(李秉瑩,1784~1851)의 자(字)는 성실(聖實). 호(號)는 천관(川觀)으로 본관은 경산(京山)이다. 성주에 거주하였으며 1825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838년 팽택찰방으로 좌천되어 부임하였다가 낙향하였다. 그 후 사헌부 장령에 제수 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저서로 천관문집<川觀文集>을 남겼다.
同金山柳倅 道宗 次鳳凰臺板上韻
김산군수 류도종과 봉황대 판상운을 차운하다
作1848년 이병영(李秉瑩,1784~1851)
湖中臺立似浮船(호중대립사부선) 호수 가운데 봉황대 배가 떠 있는 듯
彩鷁齊飛上下天(채익제비상하천) 채익처럼 가지런히 하늘을 날고 있네.
焉用落星藏妓樂(언용낙성장기낙) 어찌 높은 누대 사용하여 기악(妓樂)을 감추리
復觀黃鶴降詩仙(복관황학항시선) 황학을 다시 보고자 시선이 내려오네.
山嫌野阻千尋退(산혐야조천심퇴) 산이 싫고 들이 멀어 천 번을 물리치다
月合烟空一局圓(월합연공일국원) 달이 뜨고 안개 걷히어 형편이 원만하였네.
鳳去江流千古恨(봉거강류천고한) 봉황 가고 강물 흘러 천고의 한이지만
歲華爭奈逝如川(세화쟁나서여천) 꽃피어 다투는데 어찌 강처럼 떠나리오.
*류도종(柳道宗,1789~1833) 본관 풍산. 김산군수(1847.5.6.~1849.12.12.). 류운룡의 후손이다.
*채익(彩鷁) : 화려하게 꾸민 배를 가리킨다. 익(鷁)이라는 물새가 풍파를 잘 견디므로 뱃머리에 이 새의 모양을 그려 넣었다 한다. *낙성(落星) : 누대의 이름으로서 높기로 유명하다.
○ 1859년과 1860년에 김산을 방문하여 지은 상주목사 홍한주(洪翰周,1798~1868)의 봉황대 글을 살펴보자
한국문집총간 > 해옹고(海翁藁)
홍한주(洪翰周,1798~1868)의 본관은 풍산(豊山). 호는 해옹(海翁)이다. 조부는 병조 판서를 역임한 홍낙명(洪樂命)이고, 부친은 부사 홍직모(洪稷謨)이다. 부인은 병조판서 권상신(權常愼)의 딸이다.
앞서 홍한주는 1827년 개령현감으로 부임하여 그의 문집속 ‘영표집초(嶺表集鈔)’에 개령을 풍경을 소재로 한 작품과 기우문(祈雨文) 등을 남기고 있다.
개령 현감으로 재직할 때의 평가를 일성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일성록> 순조 29년 기축(1829) 12월 18일(무인)
영남우도 암행 어사 조기겸(趙基謙)이 서달과 별단(別單)을 올렸다.
개령 현감(開寧縣監) 홍한주(洪翰周)는 일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하고자 하는데 어리석은 백성이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장(杖)을 칠 때에는 반드시 엄하게 하는데 교활한 아전이 오히려 그 습관을 업신여겼습니다. 재결의 배분과 진휼곡의 분급, 군정(軍丁)의 징집, 환곡의 상환에는 그다지 큰 흠결이 없으나 함부로 가축을 도살한 것과 관련해 자기 마음대로 속전을 거둔 일은 실로 법의를 위반한 것이며 중죄수가 도망쳤는데 잡지 못한 죄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1858년 상주목사로 부임하여 상주 부근의 명승지를 여행하면서 지은 시문을 <해옹시문집(海翁詩文集)> ‘상산집초(商山集鈔)’에 남기는데, 이 작품은 1859년 가을과 1860년에 봉황대를 방문하여 남긴 작품이다. ‘상산집초(商山集鈔)’에 남긴 작품으로 여행 경로를 살펴보면, 상주 공검지에서 양산 영국사를 방문하고, 김산을 거쳐 화양동 속리산을 경유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金山鳳凰臺。與主守澹湖共賦
김산 봉황대. 고을 수령 담호와 함께 짓다.
1859년 홍한주(洪翰周,1798~1868)
秋晩高臺萬象含(추만고대만상함) 만추의 고대(高臺)는 만상을 담고 있고
登臨有客忽成三(등림유객홀성삼) 올라온 나그네 세 사람을 이루었네.
樓頭野色靑如染(루두야색청여염) 누각 위 들판은 물들인 듯 푸르고
池底天光碧欲涵(지저천광벽욕함) 연못 아래 비친 하늘은 옥빛을 담고 있네.
地主詩名驚白下(지주시명경백하) 사또의 시(詩) 명성은 백하정을 놀래키고
壺中景物想江南(호중경물상강남) 단지 속 경물에 강남을 상상하네.
何須別界逃殘暑(하수별계도잔서) 구태여 별계에서 남은 더위 피하면서
到此蕭涼酒不酣(도차소량주불감) 도착한 이곳 쓸쓸하여 술을 들지 못하네
*담호(澹湖) : 홍재봉(洪在鳳,1801~) [생1840] 본관 남양(당홍). 字성용(聖用). 號담호(澹湖). 1860.3.12.~1863.1.3. 김산군수를 역임하였다
*성삼(成三) : 이태백(李太白)과 함께 노닐 만한 경지의 세 사람이란 뜻으로, 한유와 구양수, 증공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백(李白)의 시에 “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노니, 나와 달과 그림자가 세 사람을 이뤘도다.[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라는 명구가 있다. 《李太白集 卷22 月下獨酌》 *백하(白下) : 금릉(金陵)에 있었던 백하정(白下亭)을 가리킨 것으로, 이곳은 옛날 금릉의 문사(文士)들이 많이 회집(會集)했던 곳으로 알려졌는바, 이백(李白)의 시집에도 백하정에 관한 시가 여러 편 보인다.
김산 방문 이듬해인 1860년 김산군수 홍재봉(洪在鳳,1801~)의 초청으로 홍한주는 직지사를 여행하는데, 이때 동행한 사람들과 직지사의 사정을 함께 기록한 작품이다.
遊直指寺 幷敍
1860년 홍한주(洪翰周,1798~1868)
金山守樗湖簡要一會。故攜李純屋往赴。仍與共遊直指寺。姜曠士 性欽,黃漢案 伍,鳳溪鄭生 遠睦 幷來。一宿而歸。寺去郡衙纔二十里。殊無泉石奇觀。而余於己丑秋。以開寧知縣。曾一遊賞者也。時有詩僧號菡鏡者。頗解聲律。郡人曺友禮奎皆同遊。而曺已歸泉臺。鏡師年今七十六。癃病住持山上小庵。不得相見。俯仰三十三年。存沒如此。重爲一慨也。
김산 사또 저호가 간찰을 보내어 한 번 모일 것을 요청하여, 이순옥을 데리고 가서 직지사를 함께 여행하였다. 광사 강성흠, 한안 황오, 봉계의 정원목도 더불어 왔기에 하룻밤 자고 돌아왔다. 절은 군의 아문에서 겨우 이십 리에 있는데 천석의 기이한 볼거리는 자뭇 없었다.
나는 기축년(1829년) 가을 개령 현감으로 있으면서 일찍이 여행한 곳이다. 그 당시에 함경이라 불리는 시(詩)를 잘 아는 스님이 있었는데 성률을 자못 이해하였다. 군의 사람 조예규와 동행하였는데, 조우는 이미 죽었고 함경 선사는 금년 76세이다. 병이 위독하여 산 위의 작은 암자에 살고 있어 볼 수가 없었다. 삼십 삼년을 굽어보니 있고 없어진 것이 이와 같으니 매우 개탄 스러웠다.
*홍재봉(洪在鳳,1801~) [생1840] 본관 남양(당홍). 字성용(聖用). 號담호(澹湖), 저호(樗湖). 김산군수(1860.3.~1863.1.)
*강성흠(姜性欽,1805~) 본관 晉州. 字일성(曰成) 號광사(曠士),
*황오(黃五,1816 ~ ) 본관 장수. 字사언(四彦), 號녹차거사(綠此居士) 한안(漢案) 상주 모동면 수봉리 거주 ▶녹차집(綠此集) 에 수록된 시문은 별도 정리
*정원목(鄭遠睦) 김산 봉계거주
自直指寺。還金山郡衙。歷登鳳凰臺。呼韵共賦。五言近軆一首。
직지사에서 김산군아로 돌아오다. 차례로 봉황대에 올라 같이 부를 짓고 5언근체시 1수를 짓다
作1860년 홍한주(洪翰周,1798~1868)
去宿山中寺(거숙산중사) 지난 밤 산중 절에서 자고
來登池上樓(래등지상루) 오늘은 연못 위 루에 오르니
波光斜暎日(파광사영일) 물결은 비스듬히 햇살에 비치고
樹影倒涵秋(수영도함추) 나무 그림자 거꾸로 가을을 담고 있네.
詩事餘黃菊(시사여황국) 시 짓는 일 황국화에 남겨두니
官緣媿白頭(관연괴백두) 벼슬살이 나이 들어 부끄럽네.
佳招輕百里(가초경백리) 좋은 자리 초대되어 백리길 가볍고
無處不風流(무처불풍류) 풍류가 아닌 곳 어디에도 없다네.
○ 1860년경 황오(黃五,1816~1877)가 남긴 글을 살펴보자.
경상대 고문헌도서관 >황녹차집(黃綠此集)
황오(黃五,1816~1877)의 자(字)는 사언(四彦), 자호(自號)는 녹차거사(綠此居士)로 본관은 장수이다.
황보신(黃保身)의 후손으로.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에서 태어나 말년에는 상주 모동면 수봉리에서 살았다.
저서인 <황록차집(黃綠此集)> ‘자전(自傳)에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十歲誦詩書 二十遊京師觀風俗人物 三十以蹇驢錦囊周覽名山大川 四十歸田園
“10대에 시서를 외우고, 20대에 한양에 올라와 풍속과 인물을 보았고, 30대에 명산대천을 유람하고. 40대에 집으로 돌아왔다.”
뛰어난 글 솜씨로 김정희(金正喜), 조두순(趙斗淳), 김병연(金炳淵,일명 김삿갓) 김병학(金炳學) 등 당대 사대부들과 교류하였다. 전원으로 돌아와 상주 모동면 수봉리 거주할 때, 김산군수 홍재봉(洪在鳳,1801~)의 초청으로 직지사를 방문하여 상주 목사 홍한주(洪翰周,1798~1868) 등과 함께 시회를 개최하고 김산 봉황대를 방문하여 남긴 작품 중의 하나이다. 이후 홍재봉이 김산군수로 재임하는 동안 김산을 방문하여 많은 시문을 남긴다.
이때 김병연(일명 김삿갓)이 이 모임에 참석하였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황오가 그의 문집에 김병연에 대한 '김사립전(金沙笠傳)'을 남기고 있고, 김사립이 '직지사 스님에게 주다'라는 글이 남아 있는 점으로 미루어 이 때 직지사를 방문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특히 김병연이 김천 농소면에 있었던 <열락재문집>에 다음과 같은 운을 남긴 흔적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 김산을 방문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열락재 유고에 남긴 김사립의 운
自直指寺上鳳凰臺
직지사에서 와서 봉황대에 오르다
作 1860년경 황오(黃五,1816~1877)
西風直指客(서풍직지객) 서풍에 직지사 이른 나그네
落日金陵樓(낙일금릉루) 해질 녁 금릉의 루에 오르네.
碧水閭閻夕(벽수려염석) 푸른 물은 마을의 저녁 알리고
黃花郡縣秋(벽수려염석) 국화꽃은 군현의 가을을 알리네
游魚行澤腹(유어행택복) 물고기 연못 속 나아가며 노닐고
宿鷺坐沙頭(숙로좌사두) 해오라기 모래 머리에 앉아 잠자네.
李白此題去(이백차제거) 이백이 이 제목으로 나아가듯
靑天江自流(청천강자류) 청천(靑天) 아래 강은 저절로 흐르네.
鳳凰臺 次李白韻
봉황대. 이백의 운을 차운하다.
作 1863년 황오(黃五,1816~1877)
鳳凰不復鳳凰遊(봉황불복봉황유) 봉황이 돌아오지 않은 봉황대 유람하니
江自鳳凰臺下流(강자봉황대하류) 강은 봉황대 아래에 흐르네.
甘文國破龍吟峽(감문국파용음협) 감문국 무너져 골짜기에서 용이 노래하고
直指寺春鶯囀邱(직지사춘앵전구) 직지사 봄 되어 언덕에 앵무새 우네
靑天納納鳥浮野(청천납납조부야) 푸른 하늘 넓은 곳 새 떠있는 들판과
碧水茫茫花發洲(벽수망망화발주) 푸른 물 아득히 꽃 피는 모래섬
悵望江南無李白(창망강남무이백) 강남에 이백 없어 슬프게 바라보니
東風草綠使人愁(동풍초록사인수) 동풍에 초록빛이 시름지게 하는구나.
○ 1874년경 최종태(崔東泰,1844~1877) 가 남긴 글을 살펴보자
경상대 고문헌도서관 >日溪集(일계집)
최종태(崔東泰,1844~1877) 의 본관은 전주 자(字)는 경구(景九) 호(號)는 일계(日溪)이다. 진주 출신으로 한주 이진상(李震相,1818~1886)의 문인이다.
행장에 김산을 방문 봉황대를 방문한 경위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甲戌(1874년) 拜寒洲李公於金山旅次。有講辨。上金烏謁吉先生祠。歷雙溪入武屹。向紅流。多有題詠。
갑술년(1874년) 한주 선생을 김산 여차(旅次)에서 뵙고 강의의 논점을 가졌다. 금오산에 올라 길재 선생의 사당을 배알하고 쌍계를 거쳐 무흘산방에 들렀다가 홍류동으로 향했다. 제영이 많이 있다.
*여차(旅次) : 군사들이 번(番)들어가는 차례를 말함.
>경상대 고문헌도서관 > 日溪集(일계집)
金陵鳳凰臺
作 1874년 최종태(崔東泰,1844~1877)
落拓江湖千里客(낙척강호천리객) 실의에 빠진 강호의 먼 나그네
湧金門外倚高樓(용금문외의고루) 용금문 밖 높은 루에 기대네.
孤城沈翠煙將暮(고성담취연장모) 푸른 안개에 잠긴 외로운 성은 저물어 가고
小檻引涼水欲秋(소함인량수욕추) 써늘한 물 당기는 작은 난간엔 가을이 오네
艇破浮萍行澤面(정파부평행택면) 거룻배로 부평초 헤쳐 연못가에 나아가니
路穿眠柳立堤頭(노천면류입제두) 길을 뚫은 버드나무 제방 머리에 서 있네.
箇中別有怡神處(개중별유이신처) 그 중에 특별한 게 신명을 기쁘게 하니
雲影天光蘸玉流(운영천광잠옥류) 하늘빛과 구름이 옥류에 담겨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