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자아 (自我)
(문) 부모를 인연으로 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이윽고 자아(自我)에 눈뜹니다.
자아(自我)란 도대체 무엇이며,
또 마음의 영역의 어느 부분인 것입니까?
자아(自我)라는 말은 매우 추상적이어서 오해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자아(自我)라는 말은 위아(僞我), 선아(善我), 진아(眞我)의
세 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통상적으로 자아(自我)라고 불리는 의식은,
타(他)의 대상과 구별하여 의식되는 자기자신입니다.
즉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자기가 의식되는 자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갓 태어난 아기는, 아직 자아의 의식이 눈뜨지 않습니다.
생후 3개월에서 6개월이 지나면,
비로소 부모와 자기를 구별하고,
주변의 여러대상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자아(自我)속의 위아(僞我)는,
대상 속의 자신을 가장 강하게 의식하고,
그 때문에 자기 본위로 흐르고, 자기 중심으로 생활하고 마는 자신을 말합니다.
흔히 에고라고도 말하며, 남의 불행은 고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일만 생각하는,
작은 자기입니다.
작은 나 밖에 모르면, 불안과 동요가 끊이지 않고,
마음 속은 괴로움으로 가득 찹니다.
마음이 작으면 작을수록, 세상의 진실이 잘 보이지 않고,
판단력이 흐려져서 늘 문제에 부딪치고 괴로워합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일컬어 번뇌라고 합니다.
번뇌라고 하는 미혹의 원인은,
전부 세상사에 대한 집착, 매달림, 작은 마음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선아(善我)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은 자기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모두와 손잡고, 사랑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생활하고 있지만,
세상사의 뒷면을 살펴보면
모두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관계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며,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목을 자기가 조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서로 상부상조하고 대화하면서 살아가는 사랑의 생활이야말로
자기를 살리고, 모두를 살리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자아(自我)입니다.
모름지기 인간은, 이러한 사랑에 눈뜨고, 상호관계 속에서, 남을 살려 가는 것입니다.
이 길에서 벗어나면, 벗어난 분량만큼 자신이 괴로워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진아(眞我)는
이러한 상대의 관계에서 벗어나,
남과 나는 본래 하나이며, 따로따로가 아니다.
나타난 세계에서는 따로따로이어도,
신의 자식으로서의 마음은 하나여서,,
만생만물은, 신의 품에서 살려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자아입니다.
이 단계의 자아는, 대아(大我)라고 하는 것이며,
자비와 사랑으로 일관하여 사는 것입니다.
우주즉아(宇宙卽我),
곧 우주가 자기라는 것을 느끼는 진아(眞我)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의 자아는
마음의 영역 가운데 어느 부분에 속하는 것일까요?
마음의 영역에 있는 본능, 감정, 지성, 이성의 기능이,
각자 단독으로 의지로 연결될 때.
위아(僞我)로 되어서 나타납니다.
감정이 단독으로 의지와 연결되면,
예를 들면, 화가 치민 감정이 폭발하고,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현실은 파괴로 이어집니다.
지성이 단독으로 의지로 연결되면
냉혹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선아(善我)의 자아는, 반성에 의해 자각됩니다.
따라서 각자의 상념의 활동은,
감정으로부터 의지로 연결되는 단독 행동으로는 되지 않고,
상념은 각 영역에 골고루 작용하여,
사랑의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우선 반성에 의해 위아(僞我)에서
선아(善我)로 이행(移行)하면,
올바른 생활이 약속됩니다.
즉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당신도, 선아의 자신이 눈 뜰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마음의 문제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졸저 < 마음의 원점 > < 심행의 언혼 > < 반성의 요점 >을 반복해서 읽어 주세요.
그리하면 차츰 이해됩니다.
마음의 대화 -- 다카하시 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