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정경희
고향에서 직장생활 시작한지 칠년이 되었다. 퇴근 후에는 꽃꽂이와 붓글씨 배우며 자기개발에 힘썼다. 한껏 멋 부리고 재미있어하는 나와 달리 엄마는 볼품없는 딸 시집 못 보낼까 걱정이 태산 같다. 엄마의 성화 때문이었을까? 깊이 생각도 못했는데 떠밀리다시피 양조장집 막내며느리가 되었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급하게 결혼 하고 앞만 보며 살아왔다. 예순이 넘어서야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여유를 가진다.
붓글씨 학원은 사무실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사거리 지나 신나게 걸어가고 있는데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풍겨온다. 주전자에 막걸리 받아오며 홀짝거리던 기억에 혼자 씨익 웃는다. 양조장 옆 초록대문 앞을 지나는데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듯하다. 슬그머니 고개 들어 보니 노 부부가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참 이상한 사람들이라 생각하였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느 날 양조장 앞을 지나는데 키 큰 남자와 마주쳤다. 업무관계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 아는 체 하며 이 시간에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숙직하러 간다고 하였다. 그때만 해도 이미 결혼한 아저씨로 알았기에 전혀 쑥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냥 껄렁 껄렁 인사하며 지나쳤다. 양조장 집 막내아들이었다.
매일 아침 수돗가에서 쌀 씻으며 엄마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렇게 시간은 가고 있는데 다 큰 딸은 연애할 생각도 않고 있으니 큰일이라고 한다. 부스스한 얼굴로 마루에 걸터앉은 나는 못 들은 척 딴청을 부린다. 사람 꼼짝 못하게 해 놓고 이제 와서 연애 못한다고 하면 말이 되느냐고 도리어 큰 소리 친다.
엄마가 기뻐할 일이 생겼다. 먼 친척 아주머니가 중매를 선 것이다. 어디 근무하는 누구의 아들이 있는데 한번 만나보라고 한다. 며칠 전 길에서 만났던 그 아저씨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결혼한 사람인데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다른 아들이 있는 모양이라고 한다. 중매하는 이도 어슬프기 짝이 없다. 그래도 아주머니 체면 위해 읍내 다방에 나갔다. 황당하게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내 마음 결정할 여유 없이 어른들에게 떠밀려 결혼하게 되었다. 어른들이 아니라 시아버지가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킨 것이다. 결혼 날짜까지 정해진 상태에서 엄마는 사위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사람이 너무 물러 보인다고 걱정 하였다. 아무리 중매결혼이라지만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일생의 동반자를 정하는데 후다닥 떠밀려 결혼한 이는 세상에 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양조장 옆 초록대문을 드나들며 나의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직장 앞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우리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있는 친정이 있다. 왼쪽으로 가면 시어른과 남편이 있는 새로운 터전이다. 한동안은 퇴근할 때마다 사거리 빵집 앞에서 오랫동안 서성거렸다. 평소 출퇴근하던 습관처럼 친정 방향으로 한참을 가다 돌아오기도 하였다.
매일 막걸리 냄새 맡으며 드나들었지만 만드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하였다. 내 일하느라 관심 가질 여유도 없었다. 쌀과 누룩을 배합하여 발효시키면 술이 된다는 것만 들었을 뿐이다. 성질이 전혀 다른 두 가지 물질이 합쳐져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신기하다. 우리네 인생도 그런가 싶다. 쌀과 누룩처럼 떨어져 있던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였다. 좋은 날도 당연히 많았지만 서로 맞추어 가며 힘든 날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막걸리 만들 때 나오는 기포처럼 수 없이 속 끓이며 지금까지 왔다. 그나마 힘든 일들은 쉬이 잊혀지니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어른들은 나를 무척이나 아껴주었다. 새 신부가 올리는 아침 문안 인사는 한번으로 끝났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양조장에 나가는 시아버지는 며느리 절 받으러 시간 맞추어 들어와야 하였다. 어른이 도리어 시집 사는 모양새이기도 하지만 배려라고 여겼다. 그 당시 시댁은 연탄으로 난방 하였다. 불 지펴서 무쇠 솥에 밥하고 소죽 끓이며 난방 겸하던 친정보다는 한층 발전된 형태이다. 하루에 두어 번 연탄 가는 일은 시아버지 담당이다. 몇 년을 같이 살면서 연탄 한번 갈지 않았고, 당연하게 생각 하였다.
한 가지 어려운 점은 시아버지의 철저한 정리정돈 습관이다. 멀리 출타하거나 행사 계획이 있으면 미리 옷과 구두까지 챙겨두었다. 집안에서 사용하는 마당 빗자루 등 소소한 기구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필요한 물건이 제 자리에 없으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 셋이 똑 같다. 한번 쓰고 나면 제자리 둘 줄 모른다” 시어머니와 남편, 나는 한편이 되어 킥킥거리며 웃었다.
직장에서는 내 직급과 이름으로 불렸지만 밖에만 나오면 사람들은 나를 양조장집 막내며느리라 불렀다. 일하다보면 가끔 민원전화 받을 때가 있다. 무슨 업무 담당자 누구를 찾으면 되는데 시골지역 어른들은 그렇지 않다. 한참 뜸을 들이며 누구 며느리 맞느냐며 확인 하였다. 참으로 황당한 순간이다.
가끔 직장 체육대회 연습하는 날이나 회식이 있으면 배주라 불리는 뻑뻑한 막걸리를 한말들이 통으로 가져가기도 하였다. 화창한 가을날 축구연습 하느라 땀 흘린 직원들 분위기는 최고조가 되었고 덩달아 내 어깨도 우쭐하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시댁과 친정의 어른들은 하나 둘 돌아가셨다.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는 서로 맞추어가며 나이 들어가고 있다. 불 같이 사랑한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담담하게 서로 의지하고 위로한다. 자랑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다. 쌀과 누룩이 만나 탄생한 막걸리는 만드는 곳 따라 맛이 다르다. 사람도 그런 것 아닐까? 아직도 꽤 멋진 막걸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움츠리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하다. 눈만 뜨면 자랑해대는 군상들 속에서 내 인생은 아직도 발효 중이다.
(20241014)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