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철도는 지하철이라고도 부르며 궤도 교통수단으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교통난 완화를 위해 건설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부터 급속한 산업화·도시화로 서울·부산 등 대도시의 교통난이 심각하자 1970년대 건설을 시작해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면서 도시 철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도시 철도의 최대 장점은 무엇보다 시간을 잘 지킬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 아닐까싶다. '코리안 타임'(Korean time) 은 약속시간에 일부러 늦게 도착하는 행동이나 그 버릇을 일컫는 말이다. 이 말의 어원은 한국 전쟁 때 주한 미군이 한국인과 약속을 한 뒤 약속시간보다 늦게 나오는 한국인을 좋지 않게 생각하여 '한국인은 약속 시간에 늦게 도착한다. 이것이 한국인의 시간관이다.'라고 하여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어떤 교통수단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도시 철도가 있는 지역에서는 차가 막혀서 늦었다고는 변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도시 철도는 그만큼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런데 도시 철도를 이용하고도 약속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지각을 하여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다.
서울 지리를 잘 아는 사람에게 묻고 또 물어 대구에서 출발하여 서울역에 도착하여 도시 철도를 이용하여 ‘콜로키움’ 장소인 고려대 까지 타고 내리는 연습을 가상으로 수없이 반복하였다. 준비성이 철저하다는 평가를 듣고 살아온 만큼 주요행사 진행을 맡았으니 늦지 않도록 부탁한다는 주최 측 당부에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서울역에서 내려서부터 계획된 시간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서울역과 맞닿아 있다던 도시 철도는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하여 도시 철도 1호선 탑승 장소를 찾는 데에만 여유 시간 반 정도를 사용하고 말았다. 환승역에 내리니 상황은 예상 밖 이었다. 환승역은 걷는 길이만 1km가 넘었다. 걷고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여 겨우 환승 열차를 타니 콜로키움 시작 시간이 다되었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고 학술회장에 도착하기까지 마음 졸인 생각을 하면 두 번 다시 도시 철도를 이용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예행연습이라는 것이 있고 사전 답사가 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도시 철도는 나에게 또 다른 유쾌하지 못한 추억이 있다.
옛날 통학 버스나 통근 열차는 시끌벅적 하다못해 밀치고 밀리다보면 비명소리며 욕설까지 주고받는 진풍경이 벌어지기가 일쑤다. 요즘 도시 철도는 숨소리까지 조심스러울 만큼 조용할 때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리에 않은 사람이나 서 있는 사람이나 휴대폰을 보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들 또래는 지정 좌석이 없는 버스나 도시 철도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면 굳이 경로나 노약자석이라 지정하여 놓지 않아도 어른들이 타면 의례히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몸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지금 도시 철도나 시내버스는 자리를 양보하는 풍경을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 볼 수 없다. 어떨 땐 노약자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휴대폰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인종 차별적 생각이 아니라 아이러니컬하게도 인성과 예를 중시 한다는 중국인이나 한국 학생들은 지하철을 타고 자리가 나면 양보안하고 뛰어가서 자리를 선점하는 모습을 본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그런 것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왜 그럴까? 그러다가 바로 터프한 유럽 젊은이들한테 참교육을 당한다고 들었다. 유럽 사람들은 자리 나면 서로 양보한다. 근데 동양인이 들어오면 바로 자리를 차지해버리니 오히려 미풍양속을 헤친다고 보는 거란다.
연세가 많아 몹시 힘들어 보이는 할머니가 지하 철도를 탔다. 작은 키 때문 손잡이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넘어질 듯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학생인 듯 보이는 젊은이에게 자리양보를 요구했다가 봉변 아닌 봉변을 당했다.
“ 재수 없게 웬 참견이냐 ”는 식의 말을 듣고는 오지랖을 넓히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모든 용기가 사라졌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폭행을 당했다는 뉴스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러고도 동방예의지국일까? 동방예의지국은 중국의 말을 잘 듣는 나라에 불과한 것일까? 일본도 중국으로부터 수례지방(首禮之邦)이란 말을 들었다. 그러나 이 말에 일본인들은 수준 높은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듯하다.
진정한 동방예의지국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뿐인 제 자식만 곱게 여기는 마음부터 버려야 한다.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을 견디지 못하고 순직한 교사의 사건이 알려진 뒤 ‘교권침해’를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고는 하나 교사는 여전히 참교육을 위한 정당한 체벌을 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제 대한민국이 진정한 인성교육을 다시 시작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