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6월 17일(월) 전도서 9:11-16 찬송 369장
1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12.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13. 내가 또 해 아래에서 지혜를 보고 내가 크게 여긴 것이 이러하니
14. 곧 작고 인구가 많지 아니한 어떤 성읍에 큰 왕이 와서 그것을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에
15. 그 성읍 가운데에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의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그것이라
그러나 그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16.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나으나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의 말들을 사람들이 듣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개역 개정)
- 삶의 불확실함으로 인한 인생의 허무 -
제 4강화 전반부인 8:14-9:16 가운데 세 번째 단락인 오늘 말씀에서
전도자는 해 아래 세상이 한계를 갖는 인간의 지혜로써는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한 세상임을 지적함을 통하여
우주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는 해 아래 속한 인생의 허무한 삶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전도자는 인간의 삶 가운데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 중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능히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일들을
‘시기(時期)’와 ‘기회(機會)’라는 짤막한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11절)
그런데 이 말은 인간 지혜의 한계를 드러내주는 동시에
전우주를 주관히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및 섭리의 실제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한편 전도자는 본문에서도 지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인정을 하고 있다.(13-15절)
그러나 본문에서는 지혜가 주는 유익을 강조하기보다는
피조물인 인간이 지니고 있는 지혜와 경험의
불가피한 한계를 드러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전도자는 인간의 지혜로운 행위가 어리석은 행위보다
우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지극히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며
절대적인 것일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인간 지혜의 한계를 표출시키고 있다.(11-12절)
아울러 그는 당시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한 가지 예화를 들어 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13-16절)
이처럼 전도자는 인간이 살고 있는 현 세상의 불확실성 및
그러한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 지혜의 본질적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어
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혜와 지식에만 의존하는 해 아래 인생은
결국 헛되고 허무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본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① 인간이 소유한 그 어떤 것으로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이끌어 가시는 섭리를 거역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이 본질적으로 유약하며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절대적 섭리에 순응하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대하20:6; 계19:6)
② 행운과 불행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지혜와 능력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운을 얻는 자를 존중하고
불행을 당한 자를 멸시하는 인본주의적 구분법을 버려야 한다.
또한 자신이 불행을 당하였을 때에나 행운을 맞이하였을 때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달아
좌절하거나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욥2:10)
12절)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여기서 ‘자기의 시기’란 인간이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는 큰 재앙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는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인 죽음을 의미한다.
솔로몬은 이러한 인생의 재앙과 죽음에 대해 말하면서
그것이 물고기가 그물에, 새가 올무에 걸림같이
갑작스럽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때에 들이닥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즉 오늘 이 순간 갑작스럽게 어찌될지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며
내일 아니 한 치 앞의 일도 보장할 수 없는
불안하고 위태하기 그지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과 재앙을 그저 두려워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비하며 영적으로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죽음이나 재앙에 국한해서 말씀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죽음이나 재앙보다 더 중대한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재림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처럼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며
그 날을 맞이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종말론적 신앙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참 신앙의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주님께서는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마24:42-43)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흘연히 하늘로서 임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때와 기한이 아니며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느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얼마나 깨어 기도하며
주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는가?
점점 악의 역사가 강해지는 이시대에 영적으로 무장하고 기도하며
의롭고 진실한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심판을 준비하고 있는가?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눅12:36-37)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주님 오실 때 예비된 등불을 밝히고 예비한 거룩한 예복을 입고
그 분 앞에 나아가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주님과 더불어 기쁨의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 모두가 그처럼 준비하는 삶, 축복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눅21:3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