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22) 칙사 독우(督郵)의 행패
어전에서 이같이 끔찍한 일이 벌어지자 영제는 크게 떨며 무서워하였다.
그러자 십상시들은 영제를 다른 곳으로 피신시키면서 말한다.
"폐하! 미친자의 말을 믿으셔서는 아니되시옵니다."
"그럼 모두 장균이 꾸며 낸 헛소리라는 말이오?"
"그러하옵니다. 폐하께서 아직 어리신 것을 이용하여 환심을 사려한 것이옵니다."
"하지만 지금 성밖에는 공을 세우고도 기다리고 있는 유비란 자도 있다던데..."
"그런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사옵니다. 황건적을 소탕하는 데는 십여 년에 걸쳐, 수십 만명의 관군이 동원되었사옵니다. 그 많은 병사들의 공과를 심사하다 보면, 잘못하여 누락되는 사람도 나올 수 있는 일이옵니다. 하오니 폐하께서는 장균의 말을 전적으로 믿으셔서는 안 될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다시 조사하여 불만이 없도록 하시오."
"당장 재조사하여 불만을 없애도록 하겠사옵니다."
"음, 그렇게 해 주시오."
이런 일이 있은 다음에, 십상시들은 논공행상에 불평이 있는 사람들을 무마하기 위해 대대적인 조사를 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벼슬을 후하게 주었다.
성밖에서 외곽경비를 맡고있던 유비에게도 어느날 황제의 칙사가 찾아왔다.
황제의 칙명으로 유비는 중산부(中山府 = 하북성) 안희현(安喜縣) 현위(縣尉 = 경찰서장) 벼슬을 얻게 되었다.
시골 현위로 있으면서 오백여 명의 군사들을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고락을 같이해 온 부하들을 모아 놓고,
"여러 병사들이 방금 들은것 처럼 나는 안희현의 현위로 임명되었소. 현위의 신분으로 여러분을 거느릴 수는 없는 일이오. 지금까지 함께 싸우고 함께 고생하여 헤어지기가 섭섭하고 가슴이 아프나 어쩔 수 없이 우리 의용군은 이만 해산할 수밖에 없게 되었소. 그동안 군수품으로 사용하던 물품이 남아 있어, 이것을 공평하게 나눠드릴테니 각자의 길을 가기 바라오. 그동안 나라를 위하여 열심히 싸워주셨소. 나는 여러분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오."
그러자 부하 병사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저희들이야말로, 훌륭한 분 밑에서 싸워 온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유비는 이렇게 오랫동안 고락을 같이해 온 부하 군졸들에게 노자를 후히 주어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측근자 이십여 명만 데리고 안희연으로 부임해갔다.
유비가 현위로 부임한 지 석 달이 안되서 안희연의 치안 질서는 이전과는 몰라 보게 바로잡혔다.
마을마다 들끓던 도둑들과 불량배를 비롯한 강도들은 자취를 감추고, 백성들은 두려움을 갖지 않고 편안한 일상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백성들로서는 유비의 선정을 칭송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현위로 부임한 지 넉 달째 되는 늦은 겨울에 조정에서 칙사의 임무를 띤 독우(督郵)가 행정감사(行政監査)로 내려왔다.
유비는 관우, 장비 두 아우와 함께 그를 영접하러 나갔다.
수레위의 독우는 유비를 내려다보며,
"안희현이란 곳이 지독한 산골이네그려. 오늘밤 나의 처소는 어디로 정했는가? 나는 워낙 깨끗한 곳을 좋아하는 성미니까, 깨끗한 곳으로 안내하게! "
하고 놀랍도록 교만을 부리는 것이었다.
관우, 장비는 그 소리를 듣자 이맛살을 찡그렸다.
그러나 유비는 공손한 태도로,
"예, 칙사 어른께서 주무실 숙소는 이미 마련해 놓았습니다."
하고 말하며 독우를 객관으로 인도하였다.
독우는 객사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유비를 보고 힐난한다.
"자네는 도데체 이 고을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소인은 바로 이 고을의 현위인 유비이옵니다. 원로에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하, 자네가 바로 이 고을의 현위였던가? 자네는 황명을 받들고 내려온 나를 무엇으로 알고 이리 더러운 곳으로 모셨는가?"
하고 따지듯이 묻는다.
그러자 유비는 겸언쩍은 말로 칙사를 위로한다.
"황송하옵니다. 시골이온지라 이 이상 깨끗한 객사가 없사옵니다."
"음 ... 그건 그렇다 치고, 자네는 어디 출신인가?"
"소인의 고향은 유주 탁현이옵는데, 본시는 중산정왕의 후손입니다. 오랫동안 초야에 묻혀 지내다가 이번에 황건적을 토벌한 공로로 이곳 현위가 되었사옵니다."
그러자 독우는 벼락같은 고함을 내지른다.
"이 우라질 놈아! 입을 닥치거라! 너 같은 미천한 놈이 무슨 중산정왕의 후손이란 말이냐? 나는 너처럼 거짓말로써 백성들을 우롱하는 벼슬아치를 다스리려고 내려온 칙사다. 당장 물러가거라! "
" ....."
유비는 변명을 하려다 말고 그대로 물러나와 버렸다.
그리고 수행원의 한 사람에게 물었다.
"칙사 어른께서 무엇 때문에 이리도 화를 내시는지 말씀좀 해주시오."
그러자 수행원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현위께서는 눈치도 없으시군요. 우리 칙사님께서 화를 내시는 이유는 뻔한 일이 아닙니까? 오늘 칙사를 영접하시는 객사에서는 은밀히 뇌물을 준비하셨다가 드려야 할 것인데, 보아하니 그런 것도 준비하시지 않은 것 같고, 어여뿐 관기(官妓) 로 하여금 맞아들이셨어야 될 일 인데 아무것도 준비하신 것이 없으니 화를 내실 수밖에 없지 않겠소."
"....."
유비는 그 소리를 듣고 기가 막혔다.
백성들은 황건적의 난동이 막 지난 후인 지라, 입에 풀칠을 하기도 어려운 지경인데, 누구한테서 돈을 거두어 뇌물을 바치란 말인가?
유비는 조정의 칙사를 맞으며 뇌물과 여색을 바칠 준비를 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독우는 다음날에도 뇌물을 가져올 기색이 없어보이자 크게 화를 내며 수행원들에게,
"현리(縣吏)들을 모조리 불러오너라! "
하고 추상같은 호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득달같이 불려온 현리들이 대령하자, 독우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고을에 현위라는 자는 일개 천민으로써 왕실의 후예인 양 사칭하고 있으니 불측스럽기 짝이없는 놈이다. 내가 낙양으로 올라가거든 황제 폐하께 아뢰어 당장 파직을 시키도록 할 것이니, 너희들은 그런 뜻으로 이 자리에서 황제 폐하께 올리는 상소문을 한 장씩 쓰도록 하여라."
현리들은 평소의 유비의 인정(仁政)에 탄복하고 있었는지라, 칙사의 명령에 떨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치만을 살피고 있었다.
"너희들이 상소문을 안 쓸 작정이냐? 그렇다면 너희들도 같은 죄로 다스릴 것이다! "
독우가 이렇게까지 엄포를 하는 바람에 현리들은 마지못해, 유비의 없는 죄상을 열거하며 상소문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독우가 그런 상소문을 살펴보더니 낙양으로 올려 보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로부터 사오 일이 지난 뒤였다.
황제의 칙사가 고을로 들어와서 유비에게 뇌물과 여색을 바치라는 생떼를 쓰고 있는 것을 뻔히 알고 있던 장비가 홧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다 보니, 칙사 독우가 거처하는 객사앞에 백 여명의 농부들이 땅바닥에 모여 앉아 소란스럽게 떠드는 것이 보였다.
"뭐요? 당신들은 무슨 일 때문에 여기 모여 앉아 떠드는 거요?"
장비가 농부들에게 물었다.
농부들은 장비를 보자 크게 반가워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리께서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시는 모양이십니다그려? 칙사께서 우리 고을 현리들을 모두 불러 모아, 강제로 상소문을 쓰게하여 낙양으로 올려보냈다고 하는데 그 말씀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상소문이라니? 칙사가 현리들에게 무슨 상소문을 쓰게 했단 말이오?"
"우리들이 믿고 의지하는 유비 장군께서 우리고을 백성들을 무한히 괴롭히고 있다는 등, 세금을 가혹하게 받아낸다는 등, 뇌물을 마구 받아 먹는다는 등, 멀쩡한 거짓말 상소문을 어거지로 쓰게 했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도 기가 막혀서 칙사에게 우리의 옳바른 뜻을 말하려고 찾아 왔더니, 수행원들이 다짜고짜로 우리들을 마구 두들겨 패고 대문을 잠가 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나리님! 세상에 이렇게 잘못 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장비는 그 소리를 듣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면서 농군들을 둘러보며 격분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놈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줄 테니, 당신네들은 모두 물러가 있으시오. 여기 있다가는 나중에 무슨 앙화를 당할지 모르니, 어서 빨리 물러가도록 하란 말이오."
농군들은 술취한 장비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모두들 멀찌감치 물러가 몸을 숨기고 엿보았다.
농군들이 몸을 피해 물러가자 장비는 객사의 대문을 부서져라 하고 두들겨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