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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번째 금강경 16장
復次須菩提야 善男子善女人이 受持讀誦此經호대
若爲人輕賤하면 是人이 先世罪業으로 應墮惡道련마는
以今世人이 輕賤故로 先世罪業이 卽爲消滅하고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리라
須菩提야 我念過去無量阿僧祗劫하니
於燃燈佛前에 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하야
悉皆供養承事하야 無空過者호라
若復有人이 於後末世에 能受持讀誦此經하면
所得功德이 於我所供養諸佛功德으로 百分에 不及一이며
千萬億分乃至算數譬喩로 所不能及이니라
須菩提야 若善男子善女人이 於後末世에
有受持讀誦此經하는 所得功德을
我若具說者면 或有人이 聞하고
心卽狂亂하야 狐疑不信하리니
須菩提야 當知하라
是經은 義도 不可思議며 果報도 亦不可思議니라
* 낱자 공부
輕가벼울 경, 賤천할 천, 墮떨어질 타, 消사라질 소, 滅:멸할 멸, 承이을 승, 받들 승,
阿:언덕 아, 僧:중 승, 祇:마침 지, 燃:불사를 연, 燈:등잔 등, 事일 사, 섬길 사,
値만날 치, 값 치, 那:어찌 나,
算셀 산, 譬비유할 비, 喩깨우칠 유, 비유할 유, 狐여우 호, 義옳을 의, 뜻 의,
議의논 의, 강론 의, 於어조사 어, ~에, ~에서, ~보다,
狂미칠 광, 亂어지러울 란, 狐:여우 호, 疑의심할 의, 具갖출 구, 자세히 구,
* 단어공부
阿僧祗劫 ~ 수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많은 수 또는 시간.
항하사(恒河沙)의 만 배가 되는 수.
那由他 ~ 나유타는 산스크리트어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 라는 뜻이다.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억-십억-백억-천억-조-경-해-자-양-구-윤-정-재
-극-항하사-아승기-나유타-불가사의-무량대수
燃燈佛 ~ 불교에서 말하는 과거 7불(過去七佛)의 하나.
과거세에 수행하는 보살이던 석가모니에게 성도(成道)하리라는 수기(授記)를 준
부처이다. 〈수행본기경 修行本起經〉에 따르면 과거세에 제화위국(提和衛國)에
등성(燈盛)이라고 하는 성스러운 임금이 있었다. 그는 임종 때 태자 정광(錠光)에게 나라를 맡겼다. 그러나 태자는 세상이 무상함을 알고서 동생에게 나라를 물려주고 출가하여 사문(沙門)이 되었다. 그는 여러 해의 수행 뒤에 성불하여 부처가 되었으니, 그가 바로 연등불이다.
* 해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환경이 똑같지 않습니다.
부유한 집에 태어나기도 하고 가난한 집에 태어나기도 합니다.
취향도 각각 다릅니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전생에 닦은 것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생에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데도 가난하고 어려우면
전생에 지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생의 공덕으로 대원 정각을 꼭 이룰 것입니다.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은 공부하실 적에
모든 부처님을 가까이하고 법문 듣기를 좋아했으며 공양을 올리고 섬겼습니다.
가까이하고 섬기니 닮아가고 끝내는 성불을 한 것입니다.
금강경을 수지 독송한 공덕은 실로 대단하다는 말씀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글을 좀 읽는 것이 무슨 그리 큰 공덕일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에는 부처님의 정신이 있습니다.
그 정신은 시간을 초월하여 여여합니다.
그 정신은 공간을 초월하여 여여합니다.
언제 어디서고 읽히면 그 정신이 드러나서
주변을 정화 시키고 사마 악취를 몰아내며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주는 힘이 있습니다.
또한, 금강경을 주제로 서로 토론하고 공부해도 그런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금강경뿐만 아니라 다른 경도 위력이 있습니다.
또한, 금강경은 부처님의 핵심 정신이 갊아 있으므로
더욱 위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국화꽃을 말리면 작아지고 색깔도 숨기고 있다가
따뜻한 물을 부으면 크기도 커지면서 색깔도 돌아오고 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절에 가면 많은 분들이 부처님의 가피를 입기 위하여 경을 읽습니다.
우리도 천도 의식 때에 금강경을 외웁니다.
새 부처님 대종사님께서 일원상 서원문, 일상수행의 요법, 주문들
그리고 참회문(참회게), 천도법문 등도 많은 위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경을 외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하면 경의 위력으로 대원 정각에 가까워질 수 있고
무수한 공덕이 함께 하리라 믿습니다.
원기 109년 2월 27일
경계 : 어머니의 넘어짐
어머니가 손가락 비지 제거 수술 후 실밥 제거를 위해 병원을 다녀오시며 우리 집에 오셨다. 차에서 내려 걸으려다 다리에 힘이 없으니 주저앉으며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잘 움직이지 못하시고 불편함을 호소하신다.
나는 남편에게 직접 부축해서 내려드리지 왜 혼자 내리게 했냐며 타박을 했다. 남편은 왼쪽 다리가 힘이 없긴 해도 혼자 살살 잘 다니시니 괜찮을 거로 생각했단다. 남편의 방심으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원망심이 나온다. 그러다 또다시 “주차하고 어머니를 내려서 같이 들어왔으면 되었을 텐데….” 라며 탓을 한다.
그 순간 아차~ 하며 마음을 멈춘다. 생활 속에서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어찌 다 예측하여 방어할 수 있겠는가? 나 또한 그런 일이 없었던가?
나에게 있어지는 원망심을 들여다보니 그것은 나에게 있을 불편함에서 나오는 것임이 알아진다. 그렇구나…. 경계 따라 있어진 마음에는 항상 ‘내’가 들어 있음이다. 경계를 알아차리니 지금, 이 순간 가장 걱정되고 마음이 힘든 사람은 다름 아닌 남편일 것이고 몸이 아파서 힘든 사람은 어머니임이 인정된다.
물론 어머니가 아파서 거동이 불편하면 나 또한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 그에 따라 일어난 속상해하는 내 마음도 본다. 그러니 이것이 바로 나와 남편 그리고 어머니가 하나 됨이구나 하고 작은 깨달음을 맛본다. 간섭하는 마음 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있으면 남도 있는 그대로 믿게 되고 그것이 너와 내가 가야 할 도덕의 길이고 신앙의 길이며 정신 세력이 확장되는 것으로 바로 너와 내가 하나 되는 길이라는 공부의 진리를 다시 마음에 새겨본다.
교무의 의견
시어머니께서 병원에 가셨다 집에 들르셨네요. 남편이 차로 모시고 왔는데 차에서 내리면서 넘어지셔서 불편해하시네요. 그 상황이 되면 남편을 먼저 탓하게 되지요. 어머니를 모시려면 잘 모시지 넘어지게 했다고 어머님이 아프시면 병원에도 가야 하고 간호하려면 불편하고 그러면서 원망을 하지요. 겉으론 남편을 원망하지만, 속으론 어머니도 원망이 되지요.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셨으면 바로 가시지 왜 오셨느냐고 좀 조심해서 내리지 그렇게 넘어지냐고 원망심이 나오게 되지요. 원망심이 일어나는 건 누구에게나 있는 일입니다. 불편하면 남을 원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원망심은 표현할 때는 좀 시원한지 몰라도 듣는 사람도 불편하고 서로 사이도 멀어지게 만듭니다. 넘어지게 하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넘어진 분의 아픔을 살펴드리고 위로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어머님이 넘어지셨으니 아들이 얼마나 속상할까 알아주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일어나는 마음은 분별성과 주착심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어난 마음을 그대로 낼 수도 있으나 자기의 의지 때문에 안 낼 수도 있습니다. 경계임을 알아차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낙원으로 가는 길인 가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원기 109년 2월 17일
제목 : 말 한마디
미용실에 들어서니 바뀐 원장님의 머리 모양이 이뻐 누가 잘라줬냐고 물으니 일을 배운다고 함께 일하고 있는 딸이 잘랐는데? 마음에 안 들어 며칠째 너무 화가 나 죽겠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아주 잘 어울리는데……. 라며 나도 이렇게 잘라주면 좋겠다고 하니 옆에 계신 손님도 원장님 머리 잘 어울린다고 한마디 거들어주신다. 미심쩍은듯하면서도 금세 얼굴 표정이 바뀌며 좋아하는 모습이 보인다.
딸의 솜씨가 원장님 마음에는 별로였다가 손님들이 이쁘다고 하니 엄마 마음으로? 딸의 솜씨를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 것 같다. 한층 신이 난 목소리로 그럼 언니도 진짜 이렇게 해줄까 라며? 머리를 만져주니? 나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 나왔다.
정산종사법어 응기편 말씀에 말과 행실을 잘하여 남의 수행에 모범이 되어 주는 것도 훌륭한 자리이타가 된다고 하신 말씀처럼 이렇게 한마디의 말로도 살리는 말이 되니 자리이타가 실천되는 것이구나!
교무의 의견
미용실 원장님이 딸에게 머리를 맡겼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네요. 그런데 사람들이 보고 머리자 이뻐 보인다고 하니 잘못되었다는 마음은 사라지고 밝은 표정이 되었네요.
원래 잘하고 못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고 듣고 배우고 하여 나름으로 틀을 만들고, 그 틀을 기준으로 하여 잘했다 못했다 하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도 다른 사람들이 좋다 하니 그 틀이 없어진 것이지요.
이쁘다 밉다에 속을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의 취향에 맞으면 되지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취향에 맞다 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서로의 약속에 어긋나는 것은 조심하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칭찬을 하는 것은 좋은 것 같습니다. 남의 칭찬을 받으면 자긍심이 살아나고 행복해지는 것을 자주 봅니다. 가능하면 칭찬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원기 109년 3월 19일
경계 : 타이어 교환
자동차 엔진 오일을 교체하러 정비소에 갔다. 차를 점검하시던 사장님께서 '뒤쪽 타이어도 갈아야겠어요.'라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렇게 빨리 뒷타이어도 교체할 거였으면 두 달 전 앞타이어 교체할 때 하라고 하지 그때는 교체하려고 돈도 마련하였었는데 그때는 사장님께서 뒷타이어까지 교체하기는 너무 아깝다며 조금 더 타도되겠다고 하셨었다. 그런데 지금은 엔진 오일만 교체하려던 계획이었는데 뒷타이어를 바꾸라고 한다. 두 달이면 길지도 않은데 이랬다저랬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나는 내 생각을 얼른 알아차려 진다. '요즈음 자동차를 많이 탔더니 뒤쪽 타이어도 많이 닳았죠?' 라며 뒤쪽 타이어를 살피고는 사장님께 '잘 교체해주세요'라는 말이 바로 나와진다. 그러니 정비소 사장님에 대한 시비가 사라진다.
내가 시비가 끊어진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이 알아진다.
교무의 의견
지난번에 타이어를 4쪽 다 교체하려고 정비소에 갔었는데 사장님이 뒷바퀴는 더 타도된다고 하셨네요. 그런데 이번엔 엔진 오일을 교화하려고 갔더니 뒷바퀴를 바꾸라 하였네요. 사장님이 이랬다저랬다 일관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군요.
바퀴를 교환하는 것은 나의 마음입니다. 언제 바꾸느냐는 내가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전문가인 정비소 사장님 이야기는 판단하는데 조언일 뿐입니다. 조언하는 걸 잘했다 잘못했다 할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조언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하는 것이지 꼭 하라는 강요는 아닙니다.
두 달 전에는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여 더 타도된다고 하였던 것 같습니다. 나의 세정을 살펴 주었으니 고마워할 일이고 지금 뒷바퀴를 바꾸라고 한 것은 안전을 생각해서 한 말이니 감사한 일입니다.
생각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고마운 일이 원망이 되기도 하고 원망스러운 일이 감사한 일이 되기도 합니다.
원기 109년 3월 3일
제목 : 좋고 나쁨이 없건마는
엄마를 봐주러 오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드라마를 보다 세상에 좋은 사람이 어디 있냐면서? 나는 세상에 좋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왜 그렇게 부정적이야!! 좋은 사람이 있기도 하지!! 라고 말을 하고선 생각에 잠겼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따로 있나 상황 따라 또는 때에 따라 나에게 맞으면 좋은 것이고 안 맞으면 나쁜 것이라고 규정을 한다. 분별하는 나의 틀에 좋고 나쁘고가 있을 뿐이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욕 얻어먹는 세상에 누구를 좋다 나쁘다 할 수 있을까.
다만, 그런 마음이 일어날 때 좋다 나쁘다고 분별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원기 109년 3월 19일
제목 : 감정 표현
그동안 나의 삶을 잘 바라보면서 내가 지금 직면한 가장 큰 숙제는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감정 표현을 있는 그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현재의 나를 만든 것 같다. 경계에 따라 생기는 미움 혐오 불안 게으름 화, 이런 부정적인 것들은 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누르고 참아오다가 별안간 폭포수가 되어 엉뚱한 이야기로 쟁투를 벌여왔다.
남편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부터는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연습을 하겠다고 하면서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자기야 감정은 옳다 그르다가 없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어. 지금 현재 올라오는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내 감정이 이렇다고 전달하는 것은 소통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남편에게 제안했다. 우리가 감정을 표현하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시비를 따지기보다는 소통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남편도 해보겠다고 한다.
교무의 의견
경계를 당하면 여러 가지 감정들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감정을 표현하면 안 되는 것처럼 교육을 받았습니다. 유교에서는 이성의 발로는 좋은 것이지만 감정의 발로는 안 해야 한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따라서 선비는 감정의 표현을 잘 하지 않습니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 마음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상대방 마음을 알지 못하면 공감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정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남남이 되고 협력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감정의 표현이 상대에 화를 내고 원망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내 감정이 이렇다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시비가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자기의 감정을 말하고 상대의 감정을 읽어주고 그러면 소통이 될 것 같습니다.
원기 109년 3월 19일
제목 : 아들과 대화
아들과 몇 년 만에 단둘이 점심 외식을 했다. "너랑 단둘이 외식하는 건 정말 몇 년 만인 것 같다. 네가 자취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다고 할 때 처음엔 걱정이 되었다. 네가 밤에는 게임을 하고 낮에는 자고 그럴 텐데 그런 너를 잘 보아줄 수 있을까?
그런데, 네 인생에서 취업 전까지 언제 쉬어보겠니?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 그리고, 그래 그동안 공부했으니 얼마만큼 성과가 있는지 시험해보는 시간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때론 네 방문 앞에까지 가다가 다시 알아차리고 돌아오기를 몇 차례 하기도 했었지. 다시 마음 챙겨서 아들이 새벽까지 자지 않고 낮에는 잠만 자니 건강이 걱정되는구나! 그런데 영원히 그럴 거 아니잖아! 이렇게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네가 집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또 엄마도 편안하게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냈단다.
"나도 엄마가 편안하게 해주는 거 알고 있었어~~. 그래서 좋았어. 그리고 편안했고~~.“
있는 그대로 나를 먼저 보고 알아차리는 것이 참 중요하구나!!
원기 109년 3월 19일
제목 : 딸과 전화
작은딸의 이사가 궁금해서 전화했다. 처음엔 받지 않더니 한참 후에 전화 와서 불퉁한 목소리로 “집이 정리가 다 되면 전화하던지 문자 할 텐데~~. 왜 이렇게 전화하는데? 그리고 우리가 지금 애야?” "엄마가 아파서 못 도와주니 미안하고 어떻게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서지~~." "엄마~~. 엄마가 너무 한가해서 우리에게 너무 집중된 것 같아~~. 엄마도 엄마 일을 찾아봐!!" "그래, 이사하느라 바쁜데 자꾸 전화하니 짜증도 나고 너희를 너무 어린애 취급한 것 같은 마음도 들 거고 예전에 너희들에게 너무 집착해서 모든 걸 알아야 하듯 내가 행동했네~~. 그렇게 느꼈다니 미안하다. 난 못 도와주고 궁금해서 그랬는데, 또 급한 성격이 튀어나왔네.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면 앞으로도 엄마가 또 지나친 관심과 걱정을 하면, 엄마 지금 너무 지나쳐요~~. 좀 기다려주세요, 하고 이야기해줘~~. 그럼 엄마가 빨리 알아차릴게~~."
"나를 또 나쁜 딸 만드네." "아니야~~, 엄마는 이제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는 그대로 보고 듣기로 했어~~. 그래서 나도 내 마음을 그대로 말하는 거야. 걱정되면 말하고~~. 너희들 기억 속에 예전의 엄마 모습이 각인되어 있으니 쉽게 말하지 못했겠지만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된단다.“ 내 말을 전하면서 ”예전에는 내 말대로 해야만 해 하는 식으로 했지만 내 생각은 이런 데 들어주면 고맙고, 너희와 다른 생각으로 아니라고 말하면 그것도 그대로 수용하려고 해~~. 그러니 널 나쁜 딸로 만들 생각으로 한 건 아니야.”
“엄마는 이렇게 바로 네 마음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 더 좋아~~ " 연습은 나 혼자가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하니 그때마다 말해서 한 가지 한 가지 풀어가야 할 것 같아!
원기 109년 3월 19일
제목 : 원망심
계속 연이어 나에게 있어지는 경계들을 마주하며 나의 마음 안에서 원망심이 나옴을 본다. ‘이 원망심의 대상은 무엇일까?’일차적으로는 상대로부터 비롯되어 일어난 경계이니 상대인 ‘너’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경계 따라 있어지는 원망심과 그로 인해 나 스스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더 깊이 나를 들여다본다.
『경계를 당하여 경계임을 모르는 것, 그리고 경계임을 알지만, 초점을 상대에게 맞추어 있어진 마음을 털지 못하는 것이 배은이다.』 라고 설명해 주시는 글을 읽으며 ‘경계를 당하여 초점을 ‘나’가 아닌 ‘상대’에게 맞추니 있어진 원망심을 털지 못하고 상대만 탓하며 스스로 괴로워했구나‘ 해지게 되고 그러니 나에게 있어진 마음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가끔 다시 그 마음이 올라오면 ’그렇구나‘ 하고 인정이 되니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이렇게 마음을 들여다보니 그 원망심 안에는 항상 ‘내’가 있어서였음도 알아진다. ‘상대’가 아닌 바로 ‘내’가 원망심의 근원이었는데 그걸 알아채지 못하니 상대가 만든 것이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연히 오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다 지어서 받는 것이며, 알고 실행하면 오직 은혜만 있을 뿐이다.』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다시 나를 보니 이젠 편안한 모습을 하고 있음이 보인다.
그러니 상대가 수용이 되고 무엇을 하게 될 때 기쁜 마음으로 해진다. 이것이 바로 ‘알고 실행하면 오직 은혜만 있을 뿐이다.’라는 것이구나 해지며 깨우침의 은혜에 감사하다.
원기 109년 3월 19일
제목 : 타 종교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에 가기로 했던 사진전에 가자고 하신다. 가기로 했는데 가지 못해서 마음이 걸렸는데 이참에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에 법회 끝나고 점심을 함께 먹고 사진전에 가기로 하였다.
호성동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매우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젊은 사람들이 웃는 얼굴로 안내를 하는 모습이 인상 깊어 나도 교당에서 저렇게 친절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밀린다는 이유로 1층 대기실에서 하나님의 교회 홍보영상을 보고 사진전을 관람해야 한다고 한다. 밀린다는 것은 핑계이고 홍보영상을 보여주기 위한 계획인 거 같았다. 어머니에 관련된 사진전을 통해서 마음을 움직여 전도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음 아닌 것이 없음을 다시 느끼게 된다.
형님은 내가 남편과 어머니랑 당신 종교와 관련된 곳을 방문하고 관심을 가져주니 기분이 좋으신지 뭐라도 설명해 주시려고 한다. 그렇지. 마음이 작용하니 말씀을 많이 하시네. 형님의 관심 분야를 그동안 이단이라는 선입견으로 관심조차 주지 않으려고 했었구나! 이렇게 관심을 조금만 보여도 말을 많이 하는데 ~~.
사진전에 다녀와서 셋째 동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형님 사진전에 다녀오셨다는 이야기를 동서에게 이야기하신 것이다. 형님네 교회 다녀왔느냐고 하면서 형님은 아버님 49재 모시면서 법당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면서 작은형님한테는 성전에 들어오라고 하는 모순이 어디 있냐고 한다. 나는 동서에게 종교가 다르면 심리적인 작용으로 인해 많이 부담스럽지. 특히 유일신 사상 믿음 때문에 더욱 거부하는 마음이 컸을 거야 하고 동서에게 말을 해 주었다. 큰형님을 포용하려는 작은 형님 마음을 보고 마음공부를 제대로 잘하고 있다고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고 하면서 웃는다.
형님의 전도방식보다는 대종사님의 마음공부 전도방식이 셋째 동서의 마음을 훨씬 많이 움직였음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