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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 장 청혼(請婚) 야산. 홍의소녀와 동사불은 서로 대치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단궁비는 커다란 고목 나무에 깃털처럼 소리 없이 날아 내렸다. 그는 먼저 장내를 살폈다. 두 진영은 팽팽하게 대치해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실로 묘했다. 홍의소녀는 대단한 미녀였다. 늘씬한 팔등신의 몸매는 염후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차가운 안색이다. 반면에 동사불의 키는 매우 작았다. 홍의소녀의 허리밖에 차지 않았다. 그로 인해서 마치 소녀가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산책이라도 나온 것 같았다. "형님! 아무래도 이 계집이 심상치 않은데요?" 동사불의 막내 사불(四佛)이 전음으로 말했다. "그렇구나. 경공술과 저 당당한 태도를 보니 명사의 가르침을 받은 계집이 분명하다. 조심해라!" 대불은 전음으로 경고를 보냈다. "형님, 교란작전을 폅시다. 계집이 아무리 침착해 봐야 욕지거리 몇 번 듣고 나면 흥분해 허점이 보일 것입니다." "크크! 거 좋은 생각이다." 의견일치를 보자 사불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홍의소녀의 몸을 아래위로 훑으며 능글맞게 웃었다. "계집, 젖가슴부터 만져 주랴? 아니면 아랫도리부터 긁어 주랴? 네년을 보고 있노라니 손이 근질거려서 도저히 참을 수 없구나!" 대뜸 입을 열자마자 지저분한 소리를 나불대는 사불을 본 홍의소녀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오랑캐가 아니라 짐승이구나! 그리고 네놈의 키에… 꿈도 꾸지 말아라. 잠시 후 네놈의 눈알을 뽑아 줄 테니!" "크크크, 얼씨구? 이거야 원 어디 살벌해서 춘사를 제대로 치르겠나? 계집이 나긋나긋한 맛이 있어야지!" 삼불이 음소를 날리며 낄낄거렸다. 홍의소녀는 수치심으로 인해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고작 허리 정도밖에 차지 않는 자들이 음탕하기는 색마 못지 않은 것이다. "네놈의 그 혀를 다시는 놀리지 못하게 목숨을 끊어주마!" 홍의소녀가 흥분하는 걸 본 단궁비는 혀를 찼다. '저 소녀가 흥분하고 있어! 동사불의 계략에 당하고 있어!' 단궁비는 그녀를 위해 근심했다. 그녀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이유를 모르는 끌림 때문이다. 그때 홍의소녀는 번쩍 손을 치켜들고는 대뜸 강력하게 내리찍었다. 상대가 워낙 작기 때문이다. 파아아앙-! 소녀의 수영은 섬뜩한 소리를 울리며 삼불의 정수리를 노렸다. 그 공격을 본 대불이 놀라 소리쳤다. "분화불혈수(分花佛穴手)! 도가(道家)의 신공절학이다. 아우, 조심해라!" 대불의 경고를 받은 삼불은 전력을 다해 양손을 하늘을 향해 올려쳤다. 퍼버벙---! 한 차례 굉렬한 폭음이 일었다. 백중세였다. 소녀는 한 걸음 물러섰고, 삼불은 발목이 한 치 정도 푹 빠져 그렇지 않아도 작은 키가 더욱 작아 보였다. 그 사실이 삼불의 노염을 돋구었다. 새까맣게 어린 계집과 동수를 이뤘으니 당연히 열이 받은 것이다. 그는 땅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일장을 날렸다. 이번에는 수평으로! 그러자 홍의소녀도 일장을 날렸는데, 이번의 공격도 범상치 않았다. 양 손가락이 갈고리 모양으로 변해 삼불의 안면을 향해 쇄도해 든 것이다. "저 계집이 불가(佛家)의 쇄심인(碎心印)까지?" 삼불은 질겁했다. 그 순간에도 홍의소녀의 공격은 매섭게 날아와 삼불의 공격과 다시 한 번 충돌했다. 삼불은 허공에서 일 장 가량을 쭉 밀렸다. 일단 선기를 잡은 소녀는 숨쉴 틈조차 주지 않았다. "이것도 받아 보거라." 도가, 불가의 무공에 이어 이번에는 살을 얼리는 한기(寒氣)를 내포한 장력이었다. "한빙장(寒氷掌)!" 삼불은 질겁해 감히 맞받지 못하고 급히 몸을 날려 피했다. 그 광경을 본 대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계집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불(佛), 도(道), 마(魔)의 절세무공들을 모두 익히고 있는 것일까?' 그가 의문에 잠겨있는 동안 삼불과 홍의소녀의 결투는 벌써 수십 초를 지나고 있었다. "안되겠습니다. 형님, 합공합시다." 이불이 건의했다. 그 말을 들은 대불은 생각의 여지도 없이 홍의소녀를 덮쳤다. 나머지 두 사람도 먹이를 노리는 늑대처럼 홍의소녀를 향해 폭사해 들었다. 그러나 홍의소녀의 위세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허리를 꼿꼿이 세운 상태로 폭사해 들어오는 그들을 노려보았다. "추잡한 늙은이들! 한꺼번에 없애 주마." 위이잉-! 홍의소녀가 빙글 신형을 돌리자 강한 회전기류가 형성됐다. 엄청난 무형의 회전 압력(壓力)은 달려드는 동사불을 찢어발길 듯이 압박해 들었다. 단궁비는 질겁할 듯이 놀랐다. 홍의소녀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실에 놀란 것이다. 홍의소녀의 용모가 변하고 있었다. 윤기 흐르던 흑발이 눈처럼 새하얀 백발로 변한 것이다. 또 초승달 같은 검은 눈썹도 피처럼 붉은 적미(赤眉)로 변한 것이다. ---백발적미(白髮赤眉)! 단궁비는 경악한 눈으로 홍의소녀를 바라보았다. 백발적미, 구천 중에서 가장 신비하고 종적을 알 수 없는 인물이 아닌가? 그녀가 백발적미였던 것이다. "피해! 부딪치면 안된다." 경악한 대불의 외침이 숲을 울렸다. * * * 동사불은 거의 넋이 빠져 있었다. 대마천의 천주 사율 능각표는 수하들에게 중원에 들면 주의해야 할 세 사람에 대해 언급했다. ---혈궁의 궁주! 그를 보면 무조건 피해라. ---단궁비! 그를 보면 무조건 사로잡던가 아니면 무자천서를 강탈해라. ---백발적미! 그녀와는 절대로 겨루지 마라. 그녀는 비록 구천의 한 사람이지만 혈궁의 궁주보다 더 무서운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 능각표의 주의사항이 떠오른 동사불은 급히 장세를 벗어났다. 순간 백발적미의 눈빛이 싸늘히 빛나더니 날카로운 외침이 터졌다. "단철신강!" 콰우우---! 그 음파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음의 영역을 초월한 것 같았다. 고막이 얼얼한 가운데 무시무시한 거력이 밀려들자 대불은 대경실색 크게 외쳤다. "조심해라. 백발적미의 절초인 단철신강이다." 단철신강(單鐵神 ). 구천의 한 사람인 백발적미의 성명절기! 쇳덩이조차 두부처럼 뜯어버린다는 패도적인 무공이 아닌가! 백발적미의 작고 앙증맞은 손에서 이런 패도적인 장법이 발휘될 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대불의 경악성에 나머지 세 사람도 화급히 일신 내력을 뿜었다. 단궁비 역시 놀라 백발적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불, 도, 마의 무공에 저런 가공할 무공까지…! 백발적미가 구천 중에 신비인으로 꼽히는 데는 이유가 있었구나!' 단궁비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었다. 오랑캐와 싸우는 중원 여인이라서만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강한 운명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은 구천과 그와 얽힌 좋지 않은 인연 때문이다. 단궁비는 일단 주시하기로 했다. 동사불은 낭패한 표정이었다. 그들 네 사람의 합공을 마치 도끼로 장작 패듯 쪼개며 날아드는 그 가공할 공격을 어찌할 것이란 말인가! 첫 참사는 삼불이었다. "크아아아악!" 삼불의 신형이 실 끊어진 연처럼 허공을 날았다. 그의 안면(顔面)은 이미 엉망으로 뭉개져 묵사발이 되어 있었다. 볼 것도 없는 즉사였다. 다시는 혓바닥을 놀리지 못하게 만들겠다던 약속을 이렇게 잔인하게 지킨 것이다. 그 뒤는 사불이었다. "크아악! 눈… 눈이… 안 보여!" 고통에 찬 비명을 꽥꽥 지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사불을 보며 대불과 이불은 식은땀을 흘렸다. "넷째야!" 이불이 사불을 불렀다. 그러나 사불은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손을 허우적거릴 뿐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이 정도로 강하단 말인가?' 대불은 어금니를 뿌드득 갈았다. 일단 지풍을 날려 사불의 혼마혈을 짚은 후 대불은 백발적미를 향해 다가갔다. 그런 그의 눈에 순간적으로 이채가 번뜩였다. 홍의소녀도 무사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의 안색도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그녀의 단철신강은 대단한 무공이었지만 동사불 역시 대마천에서 서열 십 위 안에 드는 고수들이다. 그들의 합격을 혼자 감당하기에는 애초부터 무리였다. '진기를 모을 수 없어.' 백발적미는 내부가 진탕되어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대불과 이불은 수십 년 동안 칼날 아래서 잔뼈가 굵은 마두답게 곧 그녀의 상태를 파악했다. "카하하핫! 아우들, 너희들의 희생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대불이 흉소를 날렸다. "크크크! 년! 네년의 껍질을 홀랑 벗겨 아우의 무덤 앞에 한 달 동안 걸어 놓으마. 그러면 내 아우의 원한이 풀릴 터! 열염환희장(烈炎歡喜掌)!" 대불의 쌍장에서 짙은 홍무가 뻗어 나왔다. "열염환희수(烈炎歡喜手)!" 이불도 동시에 쌍수를 날려 백발적미를 공격했다. 두 사람의 공격을 받은 백발적미의 안색이 대변했다. 그들이 펼친 공격에서 기이한 향이 풍긴 것이다. 대불은 자신이 말한 대로 그녀를 음약에 중독시켜 아우들의 무덤에서 몸부림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악랄한 늙은이들 같으니! 밀종무예(密宗武藝)의 최음공(催淫功)을 사용하다니!" 백발적미가 냉갈을 토했다. 그녀의 눈에서는 한기가 뿜어졌다. 진기를 끌어올릴 수는 없지만 그녀에게는 최후의 한 수는 남아 있었던 것이다. 격발진기(擊發眞氣)! 혈을 짚어 잠재력을 극도로 발산시키는 수법! 백발적미가 자신의 혈도를 몇 군데 짚자 찰나지간에 기력이 용솟음쳐 올랐다. 격발진기는 한 번 사용하고 나면 내공을 회복하는 데 한 달이 필요했다. 더구나 공격은 단 한 번밖에 할 수가 없다. 그녀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다. 두 사람의 공격을 유심히 살피다가 적의 공격이 눈 앞에 들이닥친 순간, "단철신강!" 앙칼진 외침과 함께 일 장을 날렸다. 그녀의 장심에서 엄청난 빛이 번뜩였다. 꽈가강! 장력이 충돌하는 순간 백발적미는 급히 호흡을 막았다. 기이한 향이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임기응변은 매우 빨랐지만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머리가 띵 울리는 걸 느끼며 그녀는 몇 걸음 물러났다. 스치거나 냄새만 맡아도 중독되는 열염환희장에 당한 것이다. 백발적미는 급히 몇 군데 혈도를 점했다. 솟구치는 음욕을 막기 위함이었다. 반면에, 대불과 이불은 전신을 피로 도배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즉사한 것 같았다. 백발적미는 그들을 싸늘한 눈빛으로 훑어보고는 급히 걸음을 옮겼다. 단궁비 역시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몸을 날렸다. 예전이었다면 호기심을 누르지 못해 그녀에게 몇 마디 물어 보았을 것이나 그는 과거의 단궁비가 아니었다. 얼마를 달렸을까? "아악!" 다급한 여인의 비명에 단궁비는 걸음을 멈췄다. 비명소리는 백발적미의 음성 같았다. 단궁비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비록 성격이 차게 변했다고는 해도 여인의 위기를 외면하는 졸장부는 아니었다. 한편, 숲에서는! 백발적미는 더 이상 없었다. 공력이 풀리며 그녀는 본래의 싸늘하고 아름다운 미소녀의 용모를 회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무릎을 쪼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런 그녀의 앞에는 피투성이이지만 동사불 중 대불과 이불이 기세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얼핏 보면 매우 우스웠다. 양손으로 굵고 기다란 막대를 잡고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자세히 보면 그게 일반 막대기가 아닌 키의 절반 크기에 달하는 거대한 양물임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간단했다. 대불과 이불은 죽지 않았던 것이다. 정공법으로는 그녀를 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들은 죽음을 위장하고 열염환희공의 암습이 성공하기를 기다린 것이다. 마침내 계략이 성공하자 그녀를 겁간하기 위해 양물을 드러내고 만족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두 노마는 천천히 홍의미녀를 향해 다가갔다. 홍의소녀는 다급히 외쳤다. "늙은이들… 가까이 오면… 죽어…!" "크크크! 그래 죽여 봐라! 네년이 우릴 죽이지 못하면 우리가 네년을 극락에 오르도록 죽여주마! 이렇게 말이다." 부욱! 이불이 그녀의 상의를 잡아 낚아채자 옷이 찢기며 분홍빛 젖가리개가 드러났다. 겉모습은 십대 후반의 소녀였지만 그녀의 유방은 풍만해 젖가리개 밖으로 유방의 일부가 드러나 있었다. 그 모습이 더욱 뇌살적이었다. 홍의소녀는 급히 몸을 움츠리려고 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불의 손길이 몸을 스치자 알 수 없는 묘한 쾌감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고 있었다. "으음…!" 홍의소녀는 침음성을 흘렸다. 최음공에 당해 하얀 속살을 드러낸 채 신음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은 두 늙은이의 아랫도리를 뻐근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크흐흐흐, 우선 네년에게 운우지락(雲雨之樂)의 묘락(妙樂)에 대한 가르침을 내린 뒤 아우들의 죄를 묻겠다." 대불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겠다는 음탕한 표정으로 홍의소녀를 바라보다가 남아 있는 그녀의 옷자락을 거칠게 잡아뜯었다. 젖가리개가 제거되며 그녀의 풍만한 유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참으로 아름다운 유방이었다. 눈처럼 흰 살결에 몽실거리는 느낌을 주는 명품이었다. "크아! 죽이는군." 대불은 밭고랑같이 패인 갈퀴 같은 손으로 그녀의 육봉을 와락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낭랑한 음성이 대불의 후면에서 들렸다.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추악한 장면이군." 홍의소녀의 눈동자에 어리는 추레한 청년, 홍의소녀의 얼굴에 떠오른 안도의 빛을 발견한 두 노마가 흠칫했다. "웬 놈이냐?" 대불과 이불이 동시에 신형을 돌렸다. 바로 코 앞에 선 단궁비를 본 대불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 '헉 언제 이 놈이 이렇게…. 으으! 오늘은 재수가 옴붙은 날이군. 어째서 등장하는 것들마다 다 고수냐!' 그렇다고 약세를 보일 수는 없다. 건들거리는 양물을 재빨리 바지 속으로 쑤셔 넣은 대불이 호통을 쳤다. "애송이! 못 본 것으로 하고 돌아간다면 목숨은 살려주마." 단궁비가 피식 웃었다. "대마천의 인물이라던데 확실하나?" "그렇다. 어르신들이 바로 변방의 하늘이라는 아수라원을 박살낸 동사불이시다." "보아하니 네 쌍둥이 같은데, 쌍둥이라면 죽음도 같이 해야 하지 않겠나?" 두 노마의 안색이 일변했다. "이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이불이 노성을 내지르며 단궁비를 향해 우권(右拳)을 내질렀다. 산악이라도 쪼갤 것 같은 장력이다. "좋은 개산권(開山拳)!" 단궁비가 마주 좌권(左拳)을 쭉 내뻗었다. 보기에는 아무런 힘이 실리지 않은 것 같으나 사실 이 일격은 무서운 위력을 담고 있었다. 그 사실을 파악한 대불이 급히 소리를 질렀다. "아우! 부딪치면 안돼." 그러나 이미 두 사람의 정권은 정면으로 충돌했다. 퍼억---! 섬뜩한 파육지음(破肉之音)이 울리며 이불의 우수가 손목까지 뭉개져 버렸다. "크으윽!" 고통에 찬 신음을 토하는 이불의 얼굴은 진흙처럼 뭉개졌다. 그는 급히 너덜거리는 손목부위를 지혈했다. "이놈!" 노갈을 터뜨리는 대불이 번쩍 손을 치켜들었다. "불마회선탄강류!" 아수라원을 박살낸 그 무공이다. 비수의 파편같은 강기가 단궁비의 요혈을 파고들었다. 단궁비는 양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연후 강하게 일 장을 내쳤다. 귀색혼이다. 단궁비는 이번 공격에 팔성의 진력만을 사용했다. 이들을 사로잡아 대마천의 내막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귀색혼에 격타당한 대불이 추풍낙엽처럼 날아갔다. "크윽, 분하다……. 하지만 두고보자. 오늘은 이만 간다만 다음 번엔 이 빚을 꼭 갚고 말겠다." 이빨을 뿌드득 갈아붙인 두 노마는 삼불을 옆구리에 끼더니 꽁지가 빠지게 줄행랑을 놓았다. "줄행랑을? 그게 가능할까?" 단궁비는 대마를 추격하기 위해 몸을 날리려 했다. 그때 누군가 그의 발목을 콱 움켜쥐었다. "아학…!" 달뜬 신음소리! 고개를 숙인 단궁비는 난감해지고 말았다. 백발적미, 즉 홍의 미소녀가 그를 붙들고 늘어진 것이다. 단궁비는 할 수 없이 동사불의 추격을 포기했다. 소녀의 눈은 지독한 음욕으로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전신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체된다면 홍의소녀는 전신혈맥이 폭발하고 말 것이다. 단궁비는 우선 소녀의 혈도를 짚었다. 예전이었다면 이런 상황이 닥치면 일단 여자를 안고 으슥한 숲으로 달려갔을 것이나, 지금 단궁비는 멍히 서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에 몸부림치는 홍의소녀는 그의 이성을 깨웠다. 단궁비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소녀를 감싼 뒤 몸을 날렸다. "우선 안전한 곳으로 가자." * * * 이곳은 호젓한 객점의 방 안이었다. 단궁비는 홍의소녀를 침상 위에 누인 뒤 고민에 빠져 있었다. 홍의소녀는 아직 의식이 없었다. 하지만 음악(淫惡)한 밀종무예인 최음공에 당해서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어떤 조치든 급히 취해야 했다. 물론 그 조치가 뭔지 단궁비도 알고 있었다. 단궁비는 지그시 소녀를 응시했다. 이 여인은 구천의 일인, 함부로 손을 댈 수는 없다. 그런데 왜였을까? 단궁비는 그녀를 보며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단궁비는 급히 고개를 돌렸으나 그 두근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주약란을 처음 만났을 때도 이랬다. 나중에야 쌍봉쌍령 중 하나인 천상보령체란 것을 알고 자신들이 하늘이 맺어 놓은 운명의 굴레임을 느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없다. 단궁비는 고개를 돌렸다. 솔직히 이제는 여자라면 두려웠다. 다시는 고통을 받고 싶지 않았다. 단궁비는 일어섰다. "미안하오, 소저! 다른 사내로 하여금 낭자를 취하게 하겠소!" 그녀가 금령지극체이든, 자신이 그녀를 취하면 삼봉쌍령금상지체를 완성하든 필요 없었다. 무림은 그와는 이제 이질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단궁비는 단호하게 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가 끼이익 문을 열자 찬바람이 몰아쳤다. 그런데 그 찬바람이 소녀의 의식을 깨운 듯 갑자기 그녀가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단궁비가 어찌할 사이도 없이 그녀는 단궁비의 목을 감고 매달렸다. "손을 치워!" 싸늘한 단궁비의 말! 소녀가 고개를 들어 단궁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욕망으로 불타고 있을지언정 그 깊은 곳은 순백의 눈처럼 맑고 깨끗했다. "공자, 나를 죽여주세요. 순결을 잃느니 차라리 죽고 싶어요." 그녀의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아주 짧은 순간 그녀의 이성이 돌아온 것이고, 그녀는 단궁비가 동사불의 손에서 자신을 구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 사내라면 일생을 의탁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애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궁비는 냉정했다. 손가락을 빳빳이 세워 인간의 자율신경을 좌우하는 혈도를 삽시간에 점했다. "삼 일 정도는 버틸 수 있을 터, 그 안에 다른 사람을 찾아보도록!" 냉정하게 말을 끊은 단궁비는 찬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런 단궁비의 뒷모습을 보는 여인의 두 눈에 이채가 번뜩였다. '안돼. 저 사람을 놓치면 안돼!' 홍의소녀의 신형 역시 바람처럼 사라졌다. * * * 동해혈랑단의 대당가라는 칭호를 들었을 때부터 그의 욕망은 중원에 있었다. 세외이대천이란 거창한 칭호가 붙었지만 능각표의 꿈은 중원 정복이었다. 그가 굳이 동해의 섬 자귀도에 거했던 이유는 오직 자귀도에 안배된 기연을 얻기 위해서였다. 기연은 얻었다. 팔황마예의 기연을! 나백의 후인 중 일부가 세운 팔황마예의 기연을 얻은 그는 진정한 나백의 무공이 한 곳에 있음을 알았다. 혈궁, 바로 그곳이다. 그 후 그의 목표는 혈궁으로 고정되었다. 아니 혈궁의 궁주인 마야라는 청년에게! 대마천의 천주 사율 능각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하남대평원에 있었다. 장장 두 달, 그 동안 그는 시체로 길을 만들며, 피로 목을 축이며 이곳까지 도달했다. 이제 이 하남대평원을 지나면 혈궁의 세력권으로 접어든다. 신비각과의 연합.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주약란을 보았을 때 솔직히 말하면 침상의 노리개 정도로 생각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우령화를 생각나게 하는 그런 순수한 계집이란 존재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계집이 요술을 부리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협조를 당부하면 계집은 핑계를 대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극단적인 예가, 며칠 앞으로 다가온 주약란과 담자무와의 결혼식이다. 대마천의 뿌리는 변방에 있다. 서역에 있는 것이다. 장기전은 여러모로 불리했다. 그래서 주약란이 연합을 요청했을 때 신비각을 짓밟으려던 계획을 수정해 연합을 맺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그는 중원제일세인 혈궁과 중원의 패권을 놓고 일전을 치른 후 중원의 신으로 군림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연합공격을 제의했을 때 년이 핑계로 댄 것이 결혼식이었다. 이 겨울이 더 깊어지면 대마천은 전멸이다. 지금까지는 잔인한 살육과 생존자를 남겨 두지 않는 행동으로 공포심을 조장해 감히 대적하려는 문파가 없지만… 공포는 세월이 흐르면 결국 무뎌지는 것이다. 벌써 각지에서 대마천에 반기를 드는 문파가 속출하고 있었다. 능각표는 외눈을 번쩍 떴다. "요요(要要)!" 능각표가 나직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부르자 허공 중에서 운무처럼 희뿌연 기운이 서서히 하강했다. 사라라라랑-! 운무는 흐릿한 몽영을 드리우면서 능각표의 전면에서 일렁거렸다. "요요, 너의 진면목을 본 자는 아무도 없다. 본좌의 수하들도 너의 존재는 모른다. 진정한 삼 푼의 힘은 숨겨 두는 것이 원칙, 네가 나의 삼 푼의 힘이다." 능각표는 일렁이는 운무를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일 년 전 본좌가 처음 너를 보았을 때 너의 미모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그 이후 나는 너의 얼굴을 보는 것이 겁이 났다." 운무의 형체가 여인이었단 말인가? 더구나 능각표가 일 년 전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한 절색의 여인이라니…. "마라혈강기를 익히기 위해서는 색욕을 억제해야 했기에 본좌는 너를 품지 않았다. 대신 그 누구도 모르는 비밀병기로 너를 키웠다." 나백이 남긴 팔황마예의 비전절기 마라혈강기는 색욕을 억제해야만 극성에 도달할 수 있는 극양의 마공지학(魔功之學)이었다. 중원을 독패하기 위해서는 마라혈강기를 극성으로 익혀야 했다. 요요를 품는다면 그 꿈은 신기루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요요를 능각표는 삼 푼의 숨겨진 힘으로 남겨둔 것이다. "명령을 내리겠다." 몽영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하명하십시오!" 절묘한 음색! 미미한 색기와 고고한 청정함이 버무려진 음색이다. 이 음성을 듣고도 피가 끓지 않는다면 남자가 아니리라. "마야, 그를 굴복시켜라. 네 종으로 만들어라!" 능각표의 냉랭한 음성! "명이라면… 따르겠어요! 그 전에 마지막으로 제 얼굴을 천주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능각표의 근육이 한순간 물결쳤다. 기묘한 흥분과 기대감이 서린 표정이다. 그러나 그는 일대의 효웅답게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았다. "필요없다. 가랏!" * * * 만승산, 중턱에 우뚝 선 거대한 성채를 향해 뻗은 관도! 두두두두두-! 사두마차(四頭馬車) 한 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쾌속하게 달려 삽시간에 혈궁 앞에 도착했다. "멈춰라." 냉오한 음성과 함께 혈궁의 경비무사가 마차 앞을 막아섰다. "어디서 온 누군가?" 경비무사 중 수장(首長)의 물음에 마차의 주렴이 걷혔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신비한 음성! "대마천주 능각표 대협이 보내는 선물입니다." 요요의 음성이 흐르자 경비무사의 수장은 입에 거품을 물고 넘어지고 있었다. "재미있는 친구로군." 마야 나청군이 자신의 거처에서 요요를 맞이하며 처음으로 내뱉은 음성이다. 능각표, 그가 천하의 효웅인 줄은 알았지만 설마 여인을 선물로 보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니고, 미인계에 속아넘어갈 마야가 아니지 않은가? 능각표가 머리가 없는 인물이라면 모를까, 그 정도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여인을 보낸 것은? 자신이 뻔히 눈치챌 것을 꿰뚫어 보면서도 이 여인을 보낸 이유는? '이 여인을 믿는다는 뜻이겠지. 아울러 이 여인의 방중술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뜻이겠지!' 마야는 빙긋이 웃었다. 그 얼굴에 서린 웃음은 참으로 맑았다. 그 웃음을 보는 면사여인 요요가 휘청 흔들릴 정도로! 마야 나청군이 천천히 돌아섰다. 팔등신의 요요를 보고 담담하게 웃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취의(翠衣)를 걸친 요요의 환상적인 몸매를 시선으로 훑으며 그는 담담한 목소리를 흘렸다. "대단하오. 내가 본 여인 중에 가장 완벽한 몸매외다." 누구나 이런 말을 했다. 그러나 이렇게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 사내는 없었다. 요요의 기억에는! 특이한 인물! 그런 글자가 요요의 뇌리에 화인처럼 박혔다. 요요는 면사 속에 가려진 눈으로 마야의 눈을 깊숙이 들여다 보았다. 유리처럼 맑고 투명하다. 순수하고 담백해 보인다. 그러나 그 눈빛을 본 요요의 몸이 휘청 흔들렸다. 그 눈빛 이면에 숨은 잔인한 마성을 본 것이다. 오직 그녀의 눈에만 보이는 그 눈빛을! '백만마종주의 눈! 이 눈빛은 백만마종주만이 타고나는 대마왕의 눈이다. 천주시여…! 당신은 이 사실을 아시나이까!' 절망이 밀려든다. 요요는 허리에 힘을 주어 곧게 섰다. 외눈박이일지언정 그녀를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 대해 준 유일한 사내, 능각표! 그를 위해 그녀의 영혼은 굳게 섰다. 마야가 물었다. "소저의 방명을 알 수 있겠소?" "요요입니다." 웃는다, 그 말을 하며. 어떤 사적인 기운도 배제한 철저한 여인의 눈으로! 미(美)는 눈으로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게끔 하는 것이다. 그것이 미인계의 기본이고, 천하 뭇 남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방법이다. 요요는 그런 조건을 타고 난 여인이었다. 그 음색과 눈빛을 느낀 것인가? 마야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요요! 당신의 음성만 들어도 능히 그 미모를 알 수 있을 것 같소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미모는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구려!" "다섯 살 때 황궁의 궁녀를 구하러 다니는 채홍사가 제 몸에 도장을 찍어 놓고 갔었습니다. 열 한 살에는 감숙성의 포정사가 자신의 수청을 들라 강요하다가 아버님이 거부하자 일족이 멸문당하는 화를 당했습니다." "저런 몹쓸 놈이…, 그래 화를 당하진 않았소?" "어사대인이 당도해 화를 면했습니다. 그 후 열 다섯 살이 되자 제 주변의 사내들이 모두 늑대로 변했다가 투옥되는 걸 보았죠. 그 후 전 얼굴을 면사로 가리고 다녔어요. 저 자신조차 거울을 보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 천주님의 명령으로 면사를 벗었지만 그때도 전 제 얼굴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럼 요 근래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해 자신도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다 그 말이오?" "그렇습니다." 마야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동안의 대화를 통해 그는 요요의 심성을 파악한 것이다. 마야가 그녀에게 비로소 의자를 권했다. 그 후 그녀가 앉자 다시 물었다. "낭자는 내게 무엇을 기대하시오? 대마천의 천주가 그대에게 원하는 것이 있었을 것 아니오?" "저는 혈궁의 궁주를 제 종으로 만들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 명을 충실히 이행할 따름입니다." 요요는 속이지 않았다. "하하하핫! 종이라? 이 마야 나청군이 여인의 종이 된다 이 말이오? 하하핫, 대마천주의 자신감이 실로 놀랍구려!" 웃음을 멈춘 마야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낭자, 그대의 진면목을 보여 주겠소?" 섬섬옥수가 면사를 잡았다. 그 손은 파뿌리처럼 희거늘, 면사가 걷히며 드러난 피부에 비하면 오히려 검었다. 그녀의 손목에 찬 팔찌의 한 가운데서 영롱한 빛을 발하는 흑요석은 일개 성을 살 수 있는 천하의 보석이었지만 면사 아래 드러난 그녀의 검은 동공에 비하면 탁하기가 구정물 같았다. 오똑한 콧날과, 가는 숨결을 뿜는 앵두빛 입술! 면사가 완전히 제거되었을 때 마야는 무심히 한 마디를 뱉었다. "세상이 환해지는구려!" 염후를 보았고, 주약란을 보았다. 주약란은 충격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 여인에 비하면 그녀 역시 흠이 있었다. 요요는 그 아름다운 눈을 살며시 내리깔고 있었다. 마야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좋아, 좋소이다. 기대하겠소. 그대가 나를 어떻게 종으로 만들지! 단, 낭자가 나를 종으로 만드는 데 실패하면 그대는 내 종이 되어야 하오. 약속할 수 있소?" 요요가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담는 그릇에 따라 그 품격이 틀려진다 했어요. 궁주는 대해를 닮았군요." 미녀의 칭찬, 마야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 여인에게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 번 뱉은 말은 책임을 지는 성격! "고맙소! 지금껏 들은 그 어떤 칭찬보다 나를 기쁘게 하는구려!" 마야 나청군의 가슴에서 한 여인이 멀어지고 있었다. 어제까지 그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가치를 부여했던 여인! 이제 더 이상 그녀를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 '너를 산산이 부숴 버릴 시간이 다가 온 것 같구나!' * * * 집요하다. 끈질기다. 그래서 그녀가 더욱 싫다. 하루 종일 도주에 도주를 거듭했지만 홍의소녀 백발백적의 경공술은 그에게 뒤지지 않았다. 수십 개의 산을 넘고, 몇 개의 강을 건넜다. 이제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단궁비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왜 나를 졸졸 따라 다니는 거야?" 버럭 고함을 지르자 홍의소녀는 우뚝 멈췄다. 그리고는 해사한 웃음을 머금고 단궁비를 바라보았다. 대마천의 동사불을 상대로 일전을 벌이던 앙칼진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단궁비는 어이가 없었다. "이봐, 낭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어서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졸라 후딱 결혼식을 올려. 그게 싫으면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사내를 찾아가던가!" 홍의소녀가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사랑하는 사내가 없어요. 그리고 오라버니가 며칠 안으로 결혼을 해요. 그러니 전 결혼을 할 수도 없죠!" "그럼,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거야?" "당신이 날 안아 주면 되어요. 그게 어려운 일인가요?" 왕소름이 돋는다. "난 유부남이야. 이미 사랑하는 여자가 있단 말이야." "호호! 상관없어요. 제 오라버니는 다섯 명의 여자를 거느리고 있어요. 그런데 며칠 후면 또 결혼을 해요. 이번 여자는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는데도 오라버니의 절묘한 계략에 빠져 결국 혼인식을 올리게 된 거죠!" "그래서?" "당신이 결혼을 했어도 나를 아내로 맞이하면 된다는 말이에요!" 단궁비는 더 이상 말해야 입만 피곤하다는 것을 알았다. 도주, 쌩! 단궁비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갔다. 순간 홍의미녀가 아름답게 웃었다. "당신은 몰라요. 최음제 탓이라고 생각지 말아요. 난 많은 남자들을 보았지만 당신처럼 매력이 넘치는 남자를 보지 못했어요!" 말을 마친 순간 그녀는 벌써 단궁비의 꽁무니를 쫓고 있었다. 됐다. 단궁비는 환호성을 질렀다. 절이다. 그것도 보통 절이 아닌 무림의 태산북두 대소림사다. 홍의미녀의 추적을 피하다 보니까 이곳 소림사가 있는 숭산 소실봉까지 당도한 것이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잼 납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