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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대지는 왕룽이 남방에서 돌아왔을 때 그가 도시에서 받은 모든 마음의 상처를 풀어 주었듯이, 이번에도 그의 비옥한 논밭은 열병과 같은 애욕의 구렁에서 다시 그를 건져 주었다. 그는 홍수가 지나간 눅눅한 밭을 밟을 때마다 발에 느껴지는 감촉을 느끼며 씨앗을 넣기 위해 갈아 일으킨 흙냄새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그는 부리나케 머슴들을 부리는 한편 자신도 손수 쟁기를 잡고 소 등에 채찍질을 하며 땅이 깊게 갈리는 것을 보고야 칭 서방을 불러 고삐를 맡기었다. 그러고는 괭이를 들고 갈아붙인 흙덩이를 이리저리 부수면서 부드럽게 했다. 부드러운 흙에는 아직도 물기가 배어 있어서 검었다. 그는 그럴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의 뼈에서 솟아오르는 기쁨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부지런히 일하다가 지치면 그는 그전처럼 흙바닥에 누워서 잠을 잤다. 흙 속에서 피어 오르는 대지의 입김이 그의 몸에 배어 들어 애욕의 상처를 아물게 했다. 그의 애욕의 열병은 이렇게 해서 씻겨졌다. 한점의 구름도 없는 하늘에 태양이 서쪽으로 기어들 때 그는 놀 속에서 고된 몸에도 무한한 행복감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일한 그는 마치 개선 장군처럼 안뜰로 통하는 휘장을 걷어 젖히고 유유히 들어서니 보통때 같이 비단옷을 입은 렌화가 거닐고 있었다. 그녀는 흙투성이가 된 왕룽을 보자 그만 놀란 듯 자지러지게 소리를 치며 그가 가까이 다가서지 몸을 도사렸다. 그러나 그는 너털웃음을 한바탕 웃고 나서 그의 흙묻은 손으로 섬세한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때? 네 주인은 농군인 걸 알았지? 너는 농군의 계집이야." 렌화는 날카롭게 말했다. "당신이야 뭐든, 난 농군의 계집은 아니에요." 왕룽은 더한층 소리높여 너털웃음을 웃고는 아무 미련도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그는 흙투성이인 채로 저녁밥을 먹었다. 그리고 자기 전에도 내키지 않는 목욕을 했다. 억지로 몸을 씻으면서도 계집을 위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혼자 흡족하게 웃었다. 애욕의 구렁에서 벗어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그는 또다시 웃었다. 왕룽은 오랫동안 집을 비워 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여러 가지 할 일이 한꺼번에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논밭에는 가을 씨앗을 뿌려야 하는 것이다. 그는 매일 들로 나갔다. 여름 동안 애욕에 빠져서 창백했던 그의 피부는 다시 햇볕에 검게 그을었다. 들로 나가게 되고부터 그는 점심과 저녁을 모두 오란이 지은 식사로 했다. 쌀과 배추, 두부, 그리고 마늘 등을 넣어서 만든 밀가루 빵이었다. 그가 렌화의 방에 들어 가려면 렌화는 코를 막으며 냄새가 난다고 호들갑을 부렸지만 그는 태연히 웃을 뿐이었다. 오히려 렌화의 코에 숨을 내뿜으며 지금부터 난 먹고 싶은 대로 먹을테니 네가 참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완전히 건강을 되찾았고 애욕에서 해방되었다. 언제나 그녀의 방에 들어가지만 일을 끝내면 곧 그녀를 잊고 다른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한 집안에 두 여자가 있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불상사는 사라지고 다시 자리가 잡혔다. 렌화란 여자는 왕룽의 노리개이고 성욕의 대상으로서, 아름다운 것으로서, 섬세한 것으로서 왕룽을 만족케 하고, 오란은 아들을 낳아준 안주인으로서 처신을 간소하게 하며 그의 남편과 시아버지와 아들의 의복과 식사를 맡아 보았다. 왕룽은 마을 사람들이 호사스런 첩 살림을 부러워하는 말을 할 때면 어깨가 저절로 으쓱해졌다. 그것은 세상의 귀한 보석이나 노리개 등과 같이 그 자신의 일상 생활에서 소용이 없는 것이지만 평시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이 궁색지 않은 부유한 생활의 표시로 마을 사람들은 여간 부러워하지 않았다. 더구나 왕룽이 부자라는 것을 유별나게 떠들고 다니는 사람은 그의 허풍선이 삼촌이었다. 요즘의 삼촌은 마치 충실한 개처럼 조카의 환심을 사려고 갖은 애를 다 썼다. "내 조카는 우리 같은 평민은 보지도 못한 선녀같은 첩을 가졌지." 라고 치켜세우기도 하고, "그 여자는 명주나 공단만 몸에 걸치고 마치 대갓집 마님 같아. 난 못봤지만 우리 마누라는 잘 알지." 그리고 또 이렇게도 지껄였다. "내 형님의 아들인 우리 조카는 굉장한 부자가 된 셈이야. 그 집 아들도 부잣집 아들이 됐으니 평생 놀고 먹을 수 있어." 그 덕에 마을 사람들은 더욱 왕룽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왕룽을 벌써 그들 자신과는 처지가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대갓집의 고귀한 사람으로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들은 왕룽에게 돈을 빌리러도 오고 그들 자녀들의 혼사에 대한 의견도 들으러 왔다. 또 밭의 경계 때문에 싸움이 생겨도 그에게 해결을 부탁하러 왔다. 그들은 왕룽의 판정에 두말 없이 복종했다. 지금껏 애욕에 사로잡혔던 왕룽은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하늘의 비는 계절에 맞추어 내렸고 밭의 밀싹은 무럭무럭 자랐다. 그해에도 겨울이 되자 왕룽은 곡식을 성안의 시장에 내었다. 그는 값이 오를 때까지 곡식을 저장해 두었던 것이다. 이번엔 큰아들을 데리고 갔다. 자기 아들이 제 손으로 문서를 꾸미고 또 소리 높여 남에게 읽어 주는 모습을 보는 일은 그 어버이로서 무척 신이 나는 일이었다. 왕룽은 지금 그런 뿌듯한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그는 어깨를 젖히고 자기 아들이 읽고 쓰는 양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전에 자기를 업신여기던 점원들이, "참 글씨를 잘 쓰는데...... 영리한 아드님을 두셨군요." 하고 칭찬을 했지만 겉으론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태연한 척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이 글자는 삼수 변에 쓸 것을 나무목 변이 되어 있군요." 하고 계약서의 잘못된 글자나 문장을 지적하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뻐근할 만큼 기뻤다. 왕룽은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옆을 돌아보며 침을 뱉거나 기침을 하면서 그런 감정을 감추려고 하였다. 잘못 쓴 글씨를 지적한 것을 보고 점원들이 놀라는 기색을 보여도 왕룽은 그저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을 뿐이었다. "그럼 고쳐 써라. 틀린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야 있나?" 그는 장남이 붓을 들고 계약서를 고쳐 쓰는 것을 옆에 서서 바라보며 무한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계약서를 다시 고쳐 쓰고 곡물 매도증서와 대금 영수증에 왕룽의 이름을 대필하고 도장을 찍은 다음 부자는 집으로 돌아왔다. 왕룽은 집으로 돌아오며 이렇게 생각했다. "내 아들도 이만하면 다 컸다. 더구나 장남이니 어버이로서 부끄럽지 않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내 아들은 부잣집 지주 아들이니까 옛날의 나처럼 어느 부잣집의,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 종을 아내로 맞이할 필요는 없어." 이날부터 왕룽은 며느리감을 구하기 시작했으나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민의 딸을 며느리로 데려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어느 날 밤 하루 일을 마치고 칭 서방과 가운뎃방에 앉아 봄씨앗으로는 무엇이 얼마나 들 것인지 또 얼마큼 사들여야 하는지를 의논한 다음 이런 사정을 얘기하였다. 물론 칭 서방은 그런 의논 상대가 될 수 없지만 그래도 믿음직한 칭 서방에게 그런 얘기라도 하면 속이 후련해질 것만 같았다. 칭 서방은 언제나 탁자 앞에 앉아 있는 왕룽 앞에 서서 주인과 같이 걸터 앉는 일이 없이 조신스럽게 얘기했다. 왕룽이 부자가 된 이후로 왕룽이 아무리 권해도 그는 결코 마주 앉는 법이 없었다. 주종간의 구별을 엄격히 지키며 어떠한 왕룽의 태도에도 대등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칭 서방은 왕룽의 아들에 대한 얘기라든가 며느리에 대한 얘기에 귀를 기울이더니 이윽고 한숨을 내쉬며 속삭이듯 약간 주저하며 말했다. "내 딸년이 있었던들 은혜를 갚을 겸 그저 드리겠지만 죽었는지 살았는지......" 왕룽은 칭 서방의 생각이 고맙게 여겨졌지만 한편 칭 서방 따위의 딸은 턱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칭 서방은 어진 사람이긴 하지만 역시 한갓 농사꾼에 지나지 않고 또 그의 머슴에 지나지 않는가? 그런 말은 가당치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왕룽은 며느리감에 대한 것을 혼자 여러 가지로 궁리했다. 찻집에서 처녀 이야기가 나거나 또 그럴 듯한 부잣집 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그는 그쪽으로 귀가 솔깃해졌다. 그러나 숙모에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눈치를 감추려고 애썼다. 숙모는 찻집에 있는 색시를 소개하는 데는 알맞겠으나 여염집 딸을 가진 사람을 알 까닭이 없고 또 소중한 아들의 장래에 대한 것을 그런 가벼운 여자에게 말하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그해도 저물어 눈이 많이 쌓이고 몹시 추운 겨울이 왔다. 그리고 곧 설날이 와서 온갖 음식물을 장만해서 먹고 마시며 놀았다. 왕룽의 집에 세배 오는 사람들은 마을 사람 뿐이 아니었다. 성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세배를 왔다. "이 이상 더 바랄 것이 있겠소? 아들도 많고, 마님도 있고, 돈도 있고, 땅도 있으니까 더 바랄 것이 없군요." 왕룽은 비단옷을 입고 좋은 옷을 입힌 두 아들을 양 옆에 나란히 앉혀 놓고 사람들을 맞이했다. 복을 비는 붉은 종이들은 어느 방에나 붙어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도 무한한 행복에 만족했다. 봄이 왔다. 버들가지가 푸릇푸릇하고 복숭아꽃이 다시 피어 올랐다. 그러나 왕룽은 아직껏 며느리감을 찾지 못했다. 봄은 더욱 짙어가고 해는 길어지고 날씨도 더욱 따뜻해졌다. 자두꽃, 벚꽃이 향기롭게 피고, 축 늘어진 버들가지에는 잎이 활짝 피었다. 나무마다 푸른 새 잎이 하늘거렸고 축축한 땅에선 무럭무럭 아지랑이가 피어 올랐다. 그러자 왕룽의 장남이 갑자기 어른이 되어 갔다. 점점 우울해지고 괴팍해져서 음식도 전과 같이 아무거나 먹지 않고 책을 읽는 데도 곧 싫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왕룽은 갑작스런 큰아들의 태도에 놀라 근심했으나 의원을 불러 보아도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그는 큰아들에게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의 비위를 맞추어 줄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아들의 심각한 우울증은 부드러운 말로 휘어잡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왕룽이 참다 못해 화를 내면 그는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제 방으로 달아났다. 왕룽은 더욱 놀라 아들 뒤를 쫓아가서는 될 수 있는 대로 부드럽게 말하였다. "나는 네 아버지야. 못할 말이 어디 있니? 무슨 말이든 얘기를 해." 그러나 아들은 더욱 흐느끼며 머리를 흔들 뿐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서당에는 가지 않고 성안 거리를 여기저기 배회하다가 돌아오곤 했다. 어느 날 둘째놈이 집에 돌아와서 심술궂게 아버지에게 일렀기 때문에 왕룽은 비로소 그 사실을 알았다. "오늘 형은 서당에 안 갔어요." 왕룽은 화가 나서, 큰아들에게 소리쳤다. "공연히 월사금만 버릴 셈이냐?" 그는 화가 나서 대나무 회초리로 아들을 마구 때렸다. 그때 부엌에서 오란이 이 소리를 듣고 부리나케 뛰어나와 아들을 가로막아 섰다. 그래서 아들을 때리려던 매가 오란에게 떨어졌다. 장남은 조그마한 잔소리에도 곧잘 울면서 이렇게 매맞을 때는 이상하리만큼 새파랗게 질려 상을 찡그리고 결코 소리를 내지 않고 매를 맞는 것이었다. 왕룽은 밤낮 그 까닭을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도무지 그 까닭을 알 길이 없었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고 난 후에도 왕룽은 이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날도 장남이 서당엘 안갔기 때문에 매질을 했던 것이다. 오란이 조용히 방에 들어왔으나 그는 눈앞에 다가설 때까지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그녀의 얼굴을 보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입을 열었다. "왜,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당신은 이제 그 애를 때리기만 해서는 안돼요. 내가 황부잣집에 있을 때에 서방님들이 그렇게 되는 걸 몇 번 봤어요. 젊은 서방님들이 차츰 그 모양이면 영감님은 으레껏 종년을 붙여 줬어요. 제 힘으로 못 구할 때는...... 그렇게만 하면 아무 일 없어요." "그런 그? 그러나 꼭 그런 것도 아닐 거야." 하고 왕룽은 반대를 했다. "내가 젊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어. 저렇게 우울해 있거나 울거나 신경질을 부리지는 않았단 말야. 종년이라곤 없었으니까." 오란은 왕룽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말했다. "나도 젊은 서방님들밖엔 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당신이야 들판에서 일하느라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그 애는 전날 그 서방님들처럼 어디 당신같이 거친 일을 해요?" 왕룽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그 말이 옳았다. 그가 지금의 아들 나이일 때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서 들판에 나가면 온종일 소와 싸워야 했고 쟁기질을 하거나 괭이질을 하며 추수 때는 등벼가 부러지도록 소처럼 묵묵히 일만 했던 것이다. 지금의 자기 아들처럼 우울한 얼굴을 하여도 달래 줄 사람도 없었거니와 그의 아들이 서당에서 달아나듯 쟁기를 내던지고 집으로 돌아간댔자 당장 먹을 것이 없는 만큼 그는 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일을 회상하자 왕룽은 생각을 달리했다. "내 자식은 나와 다르다. 나같이 몸도 튼튼하지 않다. 우리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나는 부자다. 일할 필요 없이 놀고 먹을 수 있다. 집안에는 머슴들이 몇 사람이라도 있으니 학자 같은 놈을 들판에 내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왕룽은 속으로 이런 학자 같은 아들을 가졌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글쎄, 임자 말처럼 그 애는 부잣집 젊은 서방님들 같아. 그렇지만 종년을 사줄 수야 있나. 빨리 장가를 들여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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