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강 훈육의 목적: 혼내기보다 바른 길을 가르치라
본문 | 잠언 22:6, 히브리서 12:11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자녀를 사랑한다고 해서 언제나 원하는 대로 하게 둘 수는 없습니다.
잘못된 행동은 바로잡아 주어야 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에는 분명한 기준을 세워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훈육하다 보면 자녀를 바른 길로 이끌기보다 부모의 화난 감정을 쏟아 낼 때가 있습니다.
특히 같은 잘못을 반복하거나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부모는 쉽게 감정이 앞설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못을 바로잡아 주려고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목소리가 커지고 자녀를 몰아붙이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녀를 훈육할 때는 무엇을 잘못했는지만큼이나 어떤 마음과 목적으로 훈육하고 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훈육은 혼내는 것이 아니라 바른 방향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잠언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아직 무엇이 옳고 그른지 충분히 분별하지 못할 때 바른 길을 알려 주고, 그 길을 걸어가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훈육은 자녀를 제압하여 부모의 말을 듣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게 하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일입니다.
히브리서 12장은 하나님의 징계가 당시에는 즐겁지 않고 슬퍼 보이지만, 후에는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직접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를 훈련하고 징계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훈육을 하나님의 징계와 그대로 동일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다만 여기에서 부모가 배울 수 있는 원리는 분명합니다. 징계의 목적이 단지 고통을 주는 데 있지 않고 바른 열매를 맺게 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훈육할 때에도 그 목적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녀를 혼내고 벌주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잘못을 깨닫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가르치며, 옳은 방향으로 돌아서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훈육할 때 부모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하려는 이 말은 내 감정인가, 아니면 자녀를 바르게 세우려는 마음인가?”
부모가 화가 난 상태에서 쏟아 내는 말은 훈육이 아니라 감정의 배출이 되기 쉽습니다. 단호함이 필요한 순간에도 그 목적은 자녀를 겁주거나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깨닫고 바른 방향으로 돌아오도록 돕는 것이어야 합니다.
훈육의 목적은 자녀를 혼내서 부모의 뜻에 따르게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르치고 자녀가 스스로 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이끄는 데 있습니다.
사랑과 기준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자녀에게 바른 길을 가르치려면 사랑과 분명한 기준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사랑만 있고 기준이 없으면 자녀는 옳고 그름과 책임을 배우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기준만 있고 사랑이 없으면 부모의 말이 두려움과 상처로 남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부모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이 함께 나옵니다. 부모의 지나친 말이나 행동으로 자녀를 노엽게 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잘못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도 안 됩니다. 사랑으로 대하면서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명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탈무드에는 부모가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흥미로운 가르침이 있습니다.
랍비 제이라는 아이에게 무엇을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약속일지 모릅니다.
“이번에 이것을 하면 아빠가 사 줄게.”
“주말에 같이 가자.”
그런데 약속해 놓고 부모가 아무렇지 않게 잊어버린다면 자녀는 부모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약속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자녀에게 정직하라고 가르치면서 부모가 약속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자녀에게 기준을 가르치려면 부모 역시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지켜야 할 기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잘못인지 평소에는 알려 주지 않다가 문제가 생긴 뒤 부모의 기분에 따라 갑자기 크게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미리 알려 주고, 잘못했을 때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도 자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훈육할 때는 자녀의 행동과 자녀 자체를 구분해야 합니다.
“네가 한 행동은 잘못되었다”라고 말하는 것과 “넌 왜 항상 그 모양이니”, “너는 안 되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잘못된 행동은 분명하게 바로잡아야 하지만 자녀의 인격까지 깎아내려서는 안 됩니다. 한 번의 잘못으로 자녀 전체를 판단하거나 과거의 잘못까지 끄집어내어 몰아붙이면 훈육의 목적은 사라지고 상처만 남게 됩니다.
부모의 감정이 너무 격해졌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훈육하지 않는 것도 지혜입니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뒤 이야기하는 편이 낫습니다. 부모 역시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했다면 자녀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아빠가 화가 나서 너무 심하게 말했구나. 그건 아빠가 잘못했다.”
부모가 사과한다고 권위가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통해 자녀는 책임과 회개를 배웁니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잘못을 외면해서도 안 되고,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이유로 상처를 주어서도 안 됩니다. 부모도 자신이 세운 기준 앞에 정직하면서 사랑으로 자녀를 가르치는 것, 그것이 자녀를 바른 길로 이끄는 훈육입니다.
자녀의 성장에 따라 훈육의 방법도 달라져야 합니다
어린 자녀와 청소년 자녀를 같은 방식으로 훈육할 수는 없습니다. 자녀가 성장하면 부모의 역할과 훈육의 방법도 달라져야 합니다.
잠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네 아들에게 희망이 있은즉 그를 훈계하되 죽일 마음은 두지 말지니라”(잠 19:18).
성경은 부모가 자녀의 잘못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말고 훈계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훈육은 부모의 감정을 쏟아 내거나 자녀를 몰아붙이는 일이 아니라, 자녀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배우도록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의 나이와 성장 정도에 따라 가르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합니다.
어린 자녀에게는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분명한 기준을 알려 주고 반복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아직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충분히 자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일방적인 지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 기준이 필요한지 설명하고 자녀의 생각도 들어 주면서, 자신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배우도록 도와야 합니다.
자녀가 더 성장하면 부모가 모든 것을 결정해 주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어릴 때에는 부모가 바른 길을 알려 주고 이끌어 주었다면, 성장할수록 그 길을 자녀가 스스로 선택하며 걸어가도록 도와야 합니다. 부모의 역할도 명령하고 통제하는 데서 점차 대화하고 조언하는 쪽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결국 자녀의 성장에 따라 훈육의 방법은 달라져야 하지만 그 목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언젠가 부모의 손을 떠난 뒤에도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옳은지를 분별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며 바른 길을 걸어가도록 가르치는 것, 그것이 부모가 자녀를 훈육하는 이유입니다.
저자의 노트
아들이 중학교 3학년이었을 때, 또래들과 어울리며 여러 문제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이를 염려한 선생님이 아내에게 연락했고, 아내는 여러 차례 학교를 찾아가 선생님과 상담하며 상황을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그동안의 일을 제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게 되면 아들을 크게 야단칠까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혼자 감당하다가 더 이상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어느 날 제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걱정도 되고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심하게 야단친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마침 방학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들이 한동안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공부가 힘들다면 잠시 쉬어도 괜찮다. 누나가 있는 중국에 가서 한 달 정도 지내며 언어 연수를 해 보는 것은 어떻겠니?”
아들은 의외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선택이 아들에게는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한 달을 지내고 돌아온 아들은 이전과 달라졌습니다. 스스로 학원에 다니며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후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하여 지금은 목사가 되어 목회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그때 필요했던 것은 아들을 더 세게 혼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흘러가지 않도록 잠시 환경을 바꾸어 주고, 다시 시작할 길을 열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지나며 저는 훈육의 목적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훈육은 부모의 화를 보여 주는 시간이 아니라 자녀가 바른 방향을 찾도록 돕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때로는 단호하게 말해야 하지만, 그 단호함의 끝에도 자녀를 다시 세우려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살아가기
1. 나는 자녀를 훈육할 때 바른 방향을 가르치기보다 내 감정을 쏟아 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2. 나는 자녀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는다는 이유로 자녀의 인격까지 비난하거나 과거의 잘못을 다시 꺼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3. 이번 한 주 동안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한 가지 기준을 정하고, 화를 내기보다 그 이유를 설명하며 자녀의 생각도 들어 봅시다.
송파물댄동산교회
(부설 주야로기도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