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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을 세우시고 승리케 하신 하나님 / 역대상 14:1-17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탈무드와 미드라쉬는 유대인의 구전 전통입니다. 수백 년 동안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가르침을 정리한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성경처럼 영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서 성경 해석에 도움이 됩니다.
제가 며칠 전에 탈무드와 미드라쉬를 통해서 다윗 왕과 관련된 내용을 읽었습니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시 108:2과 관련된 내용이 있어 소개합니다. 먼저 말씀을 읽겠습니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새벽을 깨우겠다는 말은 자기가 새벽 전에 일어나서 하나님을 만나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새벽 전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비파와 수금이 자기를 깨워야 한답니다.
탈무드에는 이와 관련된 신비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 왕의 침실 창가에는 늘 수금이 걸려 있었습니다. 다윗이 밤에 잠자리에 들면, 자정이 될 때마다 북풍이 불어와 수금의 현을 터치했고, 그 바람 때문에 아름답고 장엄한 찬양의 선율이 울려 퍼졌습니다. 다윗은 이 거룩한 하프 소리를 하나님이 자기를 기도의 자리로 부르시는 소리로 여겼습니다. 밤마다 하프 소리가 들리면 다윗은 즉시 침상에서 일어나 새벽이 올 때까지 율법을 연구하고, 시편을 지으며, 하나님과 깊은 영적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역대상 14장은 다윗이 왕으로 즉위한 후에 이스라엘이 어떻게 견고해졌는지와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빼앗고 왕국을 세우자, 당시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던 두로의 왕 히람이 사신들과 함께 백향목, 석수, 목수를 보내어 다윗을 위하여 왕궁을 건축해 주었습니다. 다윗은 이방 왕조차 자신을 돕는 이 상황을 보며 중요한 영적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모든 번성이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자신을 왕으로 세우시고 그 나라를 높이셨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숙적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꺾기 위해 쳐들어왔습니다. 다윗은 군사적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즉시 하나님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다"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은 올라가라고 말씀하셨고, 다윗이 치러 나갔을 때 하나님은 블레셋 군대를 물을 쏟음 같이 흩으셨습니다. 다윗은 이 승리 후 그곳 이름을 ‘바알브라심(흩으시는 주님)’이라 불렀습니다.
패배한 블레셋이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또 침략했습니다.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대적이 쳐들어왔으므로 이전 경험대로 싸울 수도 있었지만, 다윗은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기도로 묻습니다. 이번에 하나님은 정면 대결을 피하고, 뽕나무 수풀 맞은편으로 돌아가 매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인을 주셨습니다.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나가서 싸우라" 다윗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이끌고 앞장서셔서 블레셋 군대를 치셨고, 다윗은 승리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다윗의 명성이 온 세상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역대상 14장은 다윗의 왕권이 공고해지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는 역대상 14장에 계시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주권자이신 하나님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시기적으로 약간 뒤섞인 것 같습니다. 다윗 왕 곁에는 늘 용맹하지만 성격이 불같은 장수들이 많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아비새였습니다. 어느 날 다윗 왕이 큰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온 백성들의 환호를 받을 때였습니다. 백성들은 길거리로 나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며 다윗 왕의 이름을 드높였고, 곁에 있던 아비새 장군은 왕의 어깨가 한껏 으쓱해졌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날 밤, 아비새는 다윗 왕이 혼자 골방에서 깊은 한숨을 쉬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아비새가 "왕이시여, 오늘 온 나라가 왕의 승리를 찬양하며 기뻐하는데 어찌하여 그리 슬퍼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다윗 왕은 조용히 왕관을 벗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비새야, 백성들이 치는 저 박수 소리와 찬양은 나라는 인간 다윗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내 뒤에서 보이지 않게 대적을 물리치신 만군의 여호와를 향한 것이다. 만약 내가 저 칭송을 내 것으로 취하는 순간, 나는 과거 교만하여 버림받았던 사울 왕과 다를 바 없는 비참한 존재가 될 것이다. 나는 왕의 자리에 앉아있을 때가 가장 두렵다." 아비새는 승리의 영광 앞에서도 자신을 철저히 낮추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려는 다윗의 겸손함과 영적 무게감을 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은 왕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주권자이심을 알았습니다. 2절입니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줄을 깨달았으니 이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의 나라가 높이 들림을 받았음을 앎이었더라" 다윗은 자신이 능력이 많아서 왕이 되었거나 스스로 나라를 강성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자기를 왕으로 삼으셨고,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지위와 국가의 흥망성쇠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전쟁의 승패를 쥐고 계십니다. 10절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묻고 전쟁을 했습니다. 군사력이 아무리 강해도 전쟁의 승패는 인간에게 있지 않고, 참된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14절에서 블레셋의 두 번째 침략이 있었을 때도 다윗은 다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묻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모든 상황의 통치자이심을 알았던 것입니다. 15절에서 하나님은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나가서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보다 하나님이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리라" 아멘. 하나님은 영적 군대를 이끌고 다윗보다 앞서 나아가셔서 대적을 치시는 주권적 구원자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하나님에 관한 계시가 아주 선명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를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대표적으로 네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①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지혜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지혜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역사의 미래와 종말의 비밀을 다니엘에게 드러내셨습니다.
② 환난 중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하늘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비록 징계를 받아 이방 땅에 포로로 잡혀 온 백성일지라도 그들의 고난 한복판에 찾아오셔서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③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나라를 세우시는 왕이십니다. 다니엘서는 금, 은, 놋, 철로 상징되는 세상의 제국들이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할 것을 계시합니다.
④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이로서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핵심입니다만 설교의 편의성상 네 번째로 언급한 것입니다. 다니엘서에 계시되신 하나님은 바벨론과 페르시아라는 거대한 이방 제국의 압제 속에서 절망하던 유대 백성들에게 세상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다니엘서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입니다. 이방 왕들이 아무리 강해 보이고 세상 제국이 영원할 것 같아도, 그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에 불과합니다. 역사의 진정한 통치자는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특히 느부갓네살 왕의 사건에서 하나님이 절대 주권자이심이 드러났습니다. 다니엘서 2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고 번민합니다. 왕은 바벨론의 술사들에게 "내가 무슨 꿈을 꿨는지 맞히고, 그 해석까지 내놓으라"는 불가능한 명령을 내리며, 맞히지 못하면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때 다니엘은 왕에게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고 믿음의 친구들과 함께 부르짖어 기도했고, 하나님은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응답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꿈을 해석해주며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선포합니다. 단 2:21입니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하나님은 때와 계절을 바꾸시는 주권자이십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며, 다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것이 그냥 자전과 공전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시고 계절을 바꾸어주시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폐해지고 세워지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지혜자에게 지혜가 있는 것도, 총명한 자에게 지식이 있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다니엘서 4장에 보면 흥미로운 사건이 나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바벨론이라는 대제국을 가졌기에 자신의 권세에 도취해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그를 치시니 그는 정신 이상이 되어 7년 간 짐승처럼 풀을 먹고 살았습니다. 이후에 그가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고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그는 회복된 후에 하나님의 통치를 찬양했습니다. 단 4:17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 이렇게 다니엘서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심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본문은 다윗이 왕이 된 직후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내용이라면, 역대상 29장에서는 다윗이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렇게 보면 다윗은 일생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산 사람입니다.
대상 29:11입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대상 29:12입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인간의 생사화복과 권세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인정하는 구절입니다.
대상 29:14입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물질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구절입니다.
다윗은 자신과 백성들이 바친 엄청난 성전 건축 예물에 대해 생색을 내거나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나왔고, 우리는 그저 주님의 손에서 받은 것을 원래 주인에게 다시 돌려드렸을 뿐”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내 주머니에 있는 재물조차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라는 철저한 주권 인정입니다. 역대상 29장에서 다윗은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 물질과 권세, 그리고 인간의 운명까지도 친히 쥐고 흔드시는 절대 주권자이심을 인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내 삶의 운전대를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경영자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잠 16:3입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어려운 상황이나 위기가 찾아올 때, 잠을 이루지 못하며 염려하는 대신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기도로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 고난과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원망하지 않고 좋으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공과 축복의 때에 교만하지 않고 사명을 바라보게 됩니다.
2.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블레셋이 침략하니 그 위기 속에서 다윗이 "내가 올라가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올라가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고 즉각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14,15절에 보면 블레셋이 2차 침략을 하니 다윗이 또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마주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나가서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물으면 그 기도를 기뻐하시고, 구체적으로 지도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사람들은 기도에서 중요한 것이 자신의 목적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소통이고, 하나님과 소통으로 인한 인생 경영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기도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구하는 행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신다는 진리를 정말로 믿는다면, 기도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내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고 계심을 믿기에, 성도는 일방적인 요구를 넘어 "주님, 이 상황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인격적인 소통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통을 통해서 내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내 지혜와 방법으로 처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지혜로운 인생 경영을 하게 됩니다. 다윗은 기도하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과 소통이 잘 되었으며, 하나님과의 소통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인생으로 경영해 나아갔던 것입니다.
탈무드와 미드라쉬에 다윗의 기도에 관한 다양한 사건들이 나옵니다. 그 중에 하나입니다. 다윗 왕이 자신의 인간적인 지혜와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의 완전하신 주권을 구했던 깊은 신앙적 성찰이 담긴 기도의 응답입니다. 이 일화는 다윗이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어떻게 그토록 깊고 오묘한 시편의 고백들을 써 내려갈 수 있었는지, 그 배경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다윗 왕은 자타가 공인하는 이스라엘 최고의 지혜자이자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했고, 백성들의 복잡한 송사를 명쾌하게 판결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윗의 마음속에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과 지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영적인 자만심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권자이신 하나님, 제게 세상의 어떤 왕들보다 뛰어난 총명과 명철을 주셔서 감사하나이다. 이제는 제가 하나님의 율법의 깊은 비밀을 다 통달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다윗의 자만심이 가득한 기도에도 응답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이 기도에 직접 음성으로 대답하지 않으시고 독특한 방식으로 그의 영적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루는 다윗 왕이 평복을 입고 예루살렘 성문 밖 거리를 거닐며 백성들의 삶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때 길가에서 한 평범한 여인이 어린 자녀들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왕으로서의 지적 호기심과 은근한 자만심이 발동하여, 그 여인에게 다가가 성경 율법의 아주 까다롭고 복잡한 논쟁거리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랍비들조차 밤새 토론해야 답을 낼 수 있는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다윗은 내심 여인이 당황하여 답을 하지 못하면, 자신이 멋지게 해석해 주며 지혜를 뽐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다윗의 질문을 듣고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오히려 성경 본문의 핵심을 찌르는 명쾌하고도 장엄한 대답을 단 한 문장으로 내놓았습니다. 다윗은 여인의 입에서 나온 깊은 영적 통찰력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인은 이야기를 마치며, 이 질문을 던진 다윗을 향해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랍비여,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는 끝이 없는 거대한 대양과 같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한 왕이라 할지라도, 그 바다에서 겨우 조개껍데기 하나로 물 한 모금을 떠 마신 것에 불과합니다. 어찌 인간의 작은 머리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통치와 섭리를 다 담으려 하십니까?"
그 여인의 말에 다윗은 충격을 받았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교만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왕궁으로 돌아온 다윗은 보좌에 앉지 않고 바닥에 엎드려 통회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교만하였나이다. 보잘것없는 여인의 입술을 통해 저의 무지와 한계를 보게 하셨나이다. 참된 지혜는 내 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만물의 머리이신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음을 고백하나이다." 하나님은 다윗의 이 겸손한 회개를 기쁘게 받으셨고, 그에게 더 깊은 영적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이 사건 이후 다윗이 고백한 심정이 바로 시편 131편의 고백입니다. 시 131:1입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다윗이 교만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졌는데도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다윗은 기도로 하나님과 소통이 되었고, 그 소통을 통해서 얻은 영감으로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경영해 나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3.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뛰어넘으시는 하나님입니다.
미드라쉬에 보면 “거미와 모기, 그리고 미치광이”라는 다윗과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이 젊은 시절 사울 왕의 질투를 피해 도망 다닐 때, 세상의 소외된 피조물들을 보며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하나님, 세상에 거미나 모기 같은 해충은 왜 만드셨으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미치광이는 왜 존재하게 하셨습니까?" 그러자 하나님은 "네가 인생을 살다 보면 이 세 가지가 네 생명을 구하는 가장 소중한 도구가 될 날이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훗날 다윗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은 기가 막히게 성취되었습니다. 한 번은 사울의 군대에게 쫓기던 다윗이 급히 동굴 속으로 숨었습니다. 군사들이 동굴 입구까지 들이닥쳤을 때, 하나님은 즉시 거미 한 마리를 보내어 동굴 입구에 거미줄을 촘촘히 치게 하셨습니다. 사울의 군사들은 "거미줄이 찢어지지 않은 걸 보니 여기엔 아무도 없다"며 그냥 지나쳤고, 다윗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또 다윗이 사울 왕의 진영에 몰래 들어가 그의 창과 물병을 가지고 나오려 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하필 사울의 거구 경호실장이었던 아브넬이 다윗의 다리 위로 다리를 얹고 잠드는 바람에 꼼짝달싹 못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모기 한 마리를 보내 아브넬의 다리를 물게 하셨고, 아브넬이 가려워 다리를 잠시 움직인 사이에 다윗은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또 다윗이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 붙잡혀 정체가 탄로 날 위기에 처했을 때, 다윗은 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는 미치광이 연기를 하여 살아남았습니다. 이 부분은 성경에는 짧게 언급되지만, 유대 전승에서는 이를 다윗이 품었던 의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으로 연결 짓습니다. 다윗은 거미와 모기, 미치광이가 왜 세상에 존재하는지 몰랐고,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하나님은 실제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다윗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블레셋이 두 번째로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은 첫 번째 승리 공식인 정면 돌파를 반복하게 하지 않으시고, 다른 방법을 주셨습니다. 14절입니다. “다윗이 또 하나님께 묻자온대 하나님이 이르시되 마주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하나님은 인간의 고정관념이나 과거의 경험에 갇히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매 순간 가장 완전한 길을 예비하시는 놀라운 지혜를 소유하신 분입니다.
제가 제 아내를 처음 만날 때는 1988년 초가을이었습니다. 38년 되었네요. 제 동기 전도사님이 아내가 다니던 교회 전도사였는데, 그 전도사님이 저에게 그 교회에서 만나자고 해서 만나러 갔습니다. 청년들의 모임에서 갑자기 저에게 설교를 하라고 해서 제가 준비도 없이 즉흥적으로 열왕기하 6~7장 내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 설교에 제 아내가 제게 넘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열왕기하 6~7장에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겹겹이 포위하고 있어서 성안에는 지독한 기근이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으니 여인들이 자식을 삶아 먹는 참혹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때 물가는 엄청났습니다. 왕하 6:25에 보니 나귀 머리 하나에 은 80세겔입니다. 비둘기 똥 4분의 1 갑에 은 5세겔입니다. 나귀 머리는 평소에는 먹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80세겔입니다. 1세겔이 노동자의 4일치 품삯이니 80세겔이면 320일 품삯입니다. 노동자 하루 품삯을 20만 원으로 계산하면 나귀 머리 하나에 약 6,400만 원입니다. 비둘기 똥 4분의 1갑에 은 다섯 세겔입니다. 4분의 1갑은 0.3~0.5리터입니다. 작은 우유 팩 하나 정도 되는 양입니다. 여기서 비둘기 똥은 실제 새의 배설물이라기보다는, 당시 가난한 이들이 삶아 먹던 야생 식물의 뿌리나 구장목의 씨앗을 뜻하는 은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5세겔이면 약 400만 원입니다. 인플레가 엄청난 것입니다.
이때 엘리사 선지자가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예언을 합니다(왕하 7:1). 내일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1스아는 약 7.3리터이고, 우리가 흔히 쓰는 곡물 무게로 환산하면, 1스아는 약 6kg 정도입니다. 밀가루 6kg에 80만 원입니다. 두 스아는 약 12kg이 됩니다. 보리는 12kg에 80만 원입니다. 여전히 현대 물가로는 비싸 보이지만, 하루 전까지 '나귀 머리'를 6,400만 원 주고 사야 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군사력이나 원조를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밤에 아람 군대는 거대한 병거 소리와 말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공포에 질려 모든 양식과 은금을 버려두고 도망쳤습니다. 성 밖을 헤매던 네 명의 나병환자들에 의해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엘리사의 예언대로 단 하룻밤 만에 지독한 기근이 풍요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불가능을 비웃으시듯 하늘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신 극적인 사건입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 같이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경험으로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없고,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셔야만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있습니다. 고전 1:18의 십자가의 도를 생각해보세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계시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십자가의 도가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왜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계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경험으로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통 과거의 데이터와 상식, 내 짧은 지식을 가지고 "이 일은 절대로 해결될 수 없어", "내 경험상 이건 끝났어"라며 스스로 한계선을 긋곤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내 생각과 계산이 틀릴 수 있고, 내 한계가 하나님의 한계는 아니다라는 사실입니다. 인생에는 변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변수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빛 가운데서 한계를 뛰어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역대상 14장을 통해서 “다윗을 세우시고 승리케 하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살펴봤습니다.
1. 주권자이신 하나님입니다.
2.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3.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뛰어넘으시는 하나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