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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장 석가장(石家莊)의 비밀(秘密)
①
석문(石門).
하북과 산서의 경계지에 위치한 석문은 아주 중요한 전략의 요충지였다.
산악지대인 산서와 평원지대인 하북을 가로막고 있는 태행산맥(太行山脈)의 유일한 통로인 석문은 고대로부터 항상 싸움이 끊이질 않았던 요지 중의 요지였다.
그 석문에서 서쪽으로 이십 리 가량 떨어진 곳에 웅장한 장원이 하나 있었다.
석대장(石大莊).
그곳은 바로 무림구대세가 중에서 무림제일지가로 명성을 떨쳐온 석대세가였다.
그러나 석대장은 중원의 모든 싸움과는 다소 무관한 곳이었다. 아니, 오히려 중원의 그 어떤 문파와도 친교가 두터운 곳이 그곳이었다. 따라서 정도는 물론 흑도(黑道)와도 갈등이 없는 곳이었다.
그것은 모두 당금의 석대장주인 천문선생 석붕의 인품과 지혜가 뛰어난 탓이었다.
마침내 휘몰아치던 눈발이 그쳤다.
구름에 가려졌던 태양이 다시 나타났다. 평원은 온통 눈부신 설야였다.
정오(正午) 무렵이었다.
두두두.......
설야를 가로질러 한 필의 백마가 달려왔다.
백마 위에는 두 청년이 타고 있었다. 한 명은 바로 석대장의 소장주이자 무림구공자의 한 명인 다지신호 석장청이었다.
석장청의 뒤에는 다소 허약해 보이는 마의청년이 있었다. 그는 바로 독심절의 구불리의 유일한 제자인 진우명이었다.
대전(大殿).
그곳은 석대장의 중심에 위치한 의사청이었다.
수십 명은 족히 넘는 인물들이 진중한 얼굴빛을 하고 모여 있었다.
대전의 중앙에 하나의 태사의가 있었다. 태사의에는 백색 문사의를 단정히 입은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그는 눈썹이 길어 양쪽 관자놀이까지 뻗은 특이한 모습이었다.
그는 바로 석대장의 장주인 천문선생 석붕이었다.
천문선생 석붕의 좌우에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은 승(僧), 도(道), 속(俗), 개( ) 등 다양한 부류의 인물이었다.
그들은 바로 석대장을 도와주기 위해 파견된 구파일방을 비롯한 강호 인물들이었다.
그들의 좌우에는 또다시 영기발랄하고 기도가 비범한 일곱 명의 청년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름아닌 신주제일룡 사유성과 육공자였다.
두 청년이 태사의에 앉아 있는 중년인과 여러 중인들을 마주보며 서 있었다. 바로 석장청과 진우명이었다.
"공자가 바로 구절의(仇絶醫)의 고제자(高第子)이시란 말이오?"
천문선생 석붕은 두 눈에 현기를 담으며 물었다. 진우명은 포권지례를 취하며 공손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허허... 그간 구형께서 이토록 비범한 제자분을 두셨다니 정말 경하할 일이오."
진우명은 담담히 말했다.
"소생이 자질이 미천하여 사부님의 신학을 따르지 못합니다."
"허허... 아니오! 노부가 보기에 공자의 자질이야말로 인중지룡(人中之龍)이 아닌가 하오. 특히 무공은 더더욱......."
그때였다. 석장청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버님, 진공자는 무공일도(武功一道)를 익히지 않았습니다. 오직 의술만 집념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석붕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렇소? 노부는 진공자의 무공이 화경에 이르러 신광(神光)을 안으로 갈무리한 줄로 알았소."
"과분하신 말씀입니다."
진우명은 겸손히 말했다. 그때였다.
"......!"
진우명을 바라보며 왼편에 앉아 있던 누군가의 눈이 날카로운 빛을 발했다. 그 눈빛의 주인공은 바로 신주제일룡 사유성이었다.
그는 의자에 앉아서 진우명을 세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사유성은 내심 중얼거렸다.
'일개 의생치고는 지나치게 침착하다. 더구나... 일신에서 풍기는 저 기도는 범상치가 않다.'
사유성은 정확히 진우명의 정체를 꿰뚫어 보았다.
그는 정녕 한 마리 용이었다.
난세의 탁우(濁雨)를 거슬러 올라갈 한 마리 용. 그러나 그는 아직 몸을 사리고 있었다.
석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풍설을 마다않고 와주셔서 노부 감읍하오이다. 아무쪼록 진공자께서 신술을 발휘해서 본 장의 흉사를 해소시켜 주시기 바라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진우명은 길게 읍했다. 상견례가 끝나자 석붕은 주위를 둘러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공자를 태화각(太華閣)으로 모시어라."
"네!"
즉시 대답이 들리며 무복을 입은 두 명의 청년이 나섰다.
"그럼 소생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진우명은 두 청년을 따랐다.
그가 대전을 나가자 장내의 중인들은 일제히 석붕을 바라보았다. 그들 중 백미의 노화상이 합장하며 물었다.
"아미타불. 장주, 저 청년이 과연 독을 해독할 수 있을 것 같소이까?"
그 말에 석붕은 빙긋이 웃었다.
"능히 해내리라 믿소이다. 독심절의는 독의 대가이오. 그가 믿고 보낸 제자이니만큼.... 하지만......."
"......?"
중인들은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사풍객 그 자를 잡는 일입니다. 어쩌면... 벌써 그 자는 우리들 중 누군가로 변장해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
"어...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지."
중인들의 안색이 급변했다. 여기저기서 신음성이 터져나왔다.
"아미타불. 그러나 여태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지 않소?"
노화상이 다시 입을 열었다.
"허허... 백미선사(白眉禪師). 물론이오. 그러나 놈은 살쾡이같이 교활하오. 항상 적기를 노리니까... 그가 지금까지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것은 완벽한 기회를 위해 이빨을 숨긴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오."
석붕은 확신에 찬 듯이 말했다.
"......!"
백미선사의 검미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아미파(峨嵋派)의 장로이자 당금 아미 장문인 백공선사의 사제이기도 했다.
석붕은 중인들을 둘러보며 엄숙히 말했다.
"사풍객은 무림사상 일찍이 찾아보기 힘든 효마(梟魔)요. 그는 우리가 상상키 힘든 방법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날 것이오. 우리는 항상 긴장을 풀지 않아야 할 것이오."
"......!"
중인들의 얼굴에 싸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죽음의 손길이 자신의 뒷덜미를 조이는 듯한 압박감을 받고는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②
어느덧 사흘이 경과했다.
"......!"
진우명은 태화각에서 침식도 잊은 듯이 약초와 씨름하고 있었다. 그는 오직 삼일 동안 약초를 배합하는 일에만 몰두한 것이었다. 그동안 진우명은 한 걸음도 태화각 밖으로 나간 일이 없었다.
그는 석대장 전체가 무겁고 소름끼치는 분위기에 놓여 있는 것을 느꼈다. 그 느낌은 일개 서생인 그에게 압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였을까? 그는 태화각 밖으로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는 묵묵히 한 가지 약만을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이미 석대장의 삼백여 식솔을 중독시킨 독의 정체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누군가... 식수에 독을 풀었다. 그 독은 무색무미무취(無色無味無臭)한 것으로 모두 아홉 가지의 독초를 배합한 것이다."
진우명은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스스스.......
그의 등뒤로부터 한 줄기 미풍이 이는 듯 싶었다. 뒤이어 환영처럼 하나의 인영이 소리없이 진우명의 등뒤에 나타났다.
그는 바로 신주제일룡 사유성이었다. 그러나 진우명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홉 가지 독초 중에 무근초(無根草)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 효력이 빨리 나타나지 않았고......."
슥!
사유성은 손을 들었다. 찰나지간 그의 손끝은 예리한 한 자루의 비수(匕首)처럼 변했다.
"......!"
진우명의 뒤통수를 노려보는 사유성의 깊은 눈이 날카로운 빛을 뿜었다.
다음 순간,
쐐액!
그의 손이 곧장 진우명의 정수리로 떨어졌다. 그의 일수는 설사 바윗덩이라 할지라도 무우베듯 쪼갤 것 같은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진우명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중얼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남해(南海)에서만 나는 산공해균초(散功海菌草)가 식솔들의 기(氣)를 흩어지게 했다."
그때였다.
팟!
사유성의 수도가 진우명의 정수리에서 머리카락 한 올을 사이에 두고 멎었다.
"더구나 천년구지왕초(千年九枝王草)가 독의 효험을 차츰 경맥(經脈) 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작용을 했다."
스스스.......
진우명의 중얼거림이 끝나는 순간 사유성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는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때 진우명은 몸을 일으켰다.
스르르.......
그가 몸을 일으키자 그의 머리에서 잘려진 머리칼이 몇 올 떨어져 내렸다. 그것을 본 진우명은 흠칫했다. 그러나 곧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창문을 열었다.
드르륵.......
어느새 밤이었다. 겨울의 막바지에 다다른 밤 하늘에는 별도 달도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돌연 진우명의 눈빛이 날카롭게 반짝이는 것이 아닌가? 이어 그는 내심 이렇게 중얼거렸다.
'맞은편 지붕에 하나... 십 장 밖 교목 속에 하나... 처마 밑에 둘...화원 속에 네 명.......'
다음 순간 진우명은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아음... 피곤하군."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창문을 도로 닫았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그가 창문을 닫는 바로 그 순간에 참으로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그것은 바로 머리를 만졌던 그의 손이 번개보다 빨리 뻗어나간 것이었다. 그 순간 정확히 여덟 명의 인영이 숨 소리 하나 없이 꾸벅거리며 졸기 시작했다.
창문을 닫은 진우명은 침상으로 다가가 반듯이 누워 잠들었다.
그는 몹시 피곤한 듯 안색이 창백해 보였다. 바로 그 순간 정말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스스스.......
침상 위에서 잠든 진우명의 몸 속에서 유령(幽靈)처럼 또 하나의 진우명이 일어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한 광경은 눈으로 보았다고 해도 믿지 못할 일이었다. 어느새 진우명은 한 가닥 연기로 화해 밖으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침상 위에는 여전히 그가 잠들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도문에서 내려오는 극히 사악한 술법인 마령이혼분영대법(魔靈離魂分影大法)이었다.
혼을 분리하여 몸을 둘로 나눈다는 전설적인 마의 대법을 일개 의생에 불과한 진우명이 펼친 것이다.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영빈관 안에서 들렸다.
경악에 가득 찬 눈을 부릅 뜬 채로 백미선사(白眉禪師)는 뒤로 넘어지고 있었다. 그의 정수리에서는 시뻘건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있었다.
"네... 네가... 네......!"
그는 미처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정수리에서 솟구친 뜨거운 선혈이 목과 가슴을 타고 흐르며 가사를 붉게 물들였다.
"으아악!"
죽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점창파(點蒼派)의 고수 유성신필(流星神筆) 고검우(孤劍友)는 목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그의 눈에는 공포가 어려 있었다.
"끄... 끄윽!"
종남(終南)의 고수인 비월도객(飛月刀客)은 가슴에서 피를 토해내며 앞으로 푹 거꾸러졌다.
그의 가슴이 쩍 갈라져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영빈관에서는 도합 십팔 명이 숨을 거두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참혹하고 잔혹한 검상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영빈관은 중원 각처에서 온 고수들이 묵는 곳이었다. 그곳은 경비가 삼엄했다. 무엇보다도 죽은 자들은 각파의 고수들로 일신무공이 극강한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단 일합(一合)도 대항해 보지 못한 채 당한 것이다.
그들의 눈은 모두 한껏 부릅떠져 있었다. 그것은 엄청난 공포를 담고 있는 눈빛이었다.
③
"사풍객! 그... 그 자가 드디어 살수를 펼치기 시작했다!"
부르르.......
천문선생 석붕의 긴 눈썹이 분노로 떨었다.
대전 안에 모인 고수들의 얼굴은 납덩이처럼 굳어져 있었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안 보이는 얼굴이 열여덟이나 되었다. 중인들은 모두 주먹을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다.
"대체 놈이 어떻게... 이런 끔찍한 살수를 펼칠 수 있었는지 알길이 없소이다."
석붕은 노기를 주체하지 분성을 토해냈다.
바로 그 순간 대전으로 한 청년이 들어섰다. 그는 바로 진우명이었다.
그가 들어오자 석붕은 흠칫했다. 그는 가까스로 노기를 억누르고 물었다.
"진공자! 무슨 일이오?"
진우명은 그에게 읍하고 나서 약간 들뜬 음성으로 말했다.
"장주님, 소생이 드디어 해독법을 알아냈습니다!"
그 말에 석붕은 눈을 크게 떴다.
"오! 그게 정말이오?"
진우명은 비로소 중인들의 굳어있는 얼굴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데 왜... 여러분들의 안색이......?"
"아니, 그렇다면 진공자는 아직도 몰랐소?"
"무슨 말씀이신지......?"
"어젯밤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단 말이오?"
"비명소리라니요? 소생은 일찍 잠이 들어서 영문을 모르겠군요. 도대체 무슨......."
"고인 십팔 명이 죽었소이다."
"넷?"
진우명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순간 석붕의 눈이 번쩍 빛났다.
"사풍객이 한 짓이오."
"사... 풍객?"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진우명이 석붕을 주시했다.
"진공자는 아직 모르는 모양이구려. 그 자는 희대의 살인마요."
"그... 그럴 수가?"
진우명은 공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석붕은 진우명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으며 차갑게 말했다.
"공교롭게도 진공자가 온 후에 놈이 행동을 개시했소."
"그... 그럼......!"
진우명의 안색은 금방 흙빛이 되었다.
석붕은 그런 진우명의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쏘아보는 것이었다. 잠시 후 그는 대소를 터뜨렸다.
"헛헛! 뭐 그렇다고 진공자와 관계가 있다는 것은 아니오. 단지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을 뿐이오."
"......!"
"어쨌든 공자가 해독법을 알아냈다니 정말 기쁘오. 언제 노부의 식솔들을 구해 주시겠소?"
진우명은 겁을 집어 먹은 듯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두... 두 가지 약초가 필요합니다."
석붕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게 무엇이오? 본 장에는 거의 모든 약초가 다 구비되어 있는데 말만하면 즉시 구해드리겠소."
"휴우!"
진우명은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그는 말했다.
"별로 귀한 것도 아닙니다. 황선엽(黃仙葉)과 만자황근(萬子黃斤)입니다."
그 말에 석붕은 즉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장(張) 총관!"
"네!"
한 명의 황의노인이 즉시 나와 무릎을 꿇었다.
"그 두 가지 약초를 당장 가져 오시오."
그때였다. 장총관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안색이 홱 변했다.
"자... 장주님!"
"왜 그러는가?"
"그... 그것이......?"
"그것이 없단 말인가?"
"그... 그렇습니다."
"아니, 그 두 약초가 그토록 귀한 영초란 말인가?"
"그... 그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장총관은 낭패한 모습으로 쩔쩔맸다.
"장내 식솔들이 중독된 것을 알았던 보름 전부터... 장주님의 분부대로 약재상으로부터 여러 종류의 약초를 모두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
천문선생 석붕은 물론이거니와 중인들까지도 모두 의혹의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일제히 장총관의 입을 주시했다.
"그런데 유독 황선엽과 만자황근은 없었습니다."
"뭣이?"
"그...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중인들은 아연실색을 금치 못했다. 장총관은 자신이 큰 죄나 지은 듯이 쩔쩔매며 말했다.
"아무리 뒤졌으나 사방 오백 리 안의 약재상에 유독 그 두 가지 약초만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란 말이오?"
석붕이 노기를 참지 못하고 호통치듯 물었다.
"두 달 전 어떤 자가 그 약초들을 몽땅 사갔다는 것입니다."
"으음!"
장내는 그만 침통하게 가라앉고 말았다. 천문선생 석붕의 안색은 특히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노... 놈이 이토록 치밀할 줄이야!"
그의 눈에는 분광이 줄기줄기 뻗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풍객의 마수는 너무나 교묘하면서도 악랄했던 것이다.
다급하게 된 석붕이 진우명을 향해 물었다.
"그럼... 진공자는 그 두 가지 약초가 없이는 해독약을 만들 수 없단 말이오?"
진우명은 난색을 지었다.
"총 삼십육 가지 약초가 들어가는데 그중 서른네 가지는 이곳에 있는 것을 이용하면 되오나 그 두 가지만은......."
"안 된단 말이오?"
석붕은 자신도 모르게 음성을 높였다.
우웅.......
그의 노후에는 진기가 실려 있었다. 대전이 허물어질 듯이 진동했다.
"......!"
진우명은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자신의 몸을 가눌 수가 없다는 듯이 부르르 떨었다.
석장청이 급히 그를 부축하며 말했다.
"아버님, 진공자는 무공을 모르옵니다."
그 말에 석붕은 급히 안색을 바꾸었다.
"오! 미안하오. 진공자, 노부가 그만 흥분하였소."
이때였다. 장총관이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저... 장주님, 그런데 그 두 가지 약초를 몽땅 사간 곳을 알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뜻밖의 희소식이었다. 석붕은 두 눈을 번쩍 빛냈다.
"어... 어디인가? 왜 아직 그 말을 하지 않았는가?"
"그것이... 너무 뜻밖의 곳이라서......."
"어디인가?"
석붕은 초조히 물었다. 장총관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다름 아닌... 바로 석문부사(石門府使)의 부중(府中)입니다."
"뭐... 뭐라고?"
석붕은 놀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중인들 모두는 너무 의외의 일에 그만 아연하여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석문부중에 있다고......?"
석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림인은 대체로 관(官)과는 왕래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국법이나 관세와 무관한 것이 무림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석문부중이라면 석붕이 잘 알고 있는 곳이었다. 석문부사 이원릉(李元凌)은 그와도 교분이 있었던 것이다. 천문선생 석붕은 몇 차례 석문부사 이원릉과 만난 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교분도 두터웠다.
그것은 석대세가가 대대로 석문에 발을 붙이고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두 가지 약초를 공교롭게도 이원릉이 몽땅 사들였다는 말이었다.
"이런 괴사(怪事)가......!"
석붕은 신음을 흘렸다. 그는 좌중을 둘러보며 곧 말을 이었다.
"이부사가 약초를 사들인 데에는 필시 이유가 있을 것이오. 그리고 본인은 그와 교분이 있으니 노부가 부탁하면 얼마쯤 얻을 수 있을 것이오."
그는 진우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공자는 하루만 여유를 주시오. 곧 두 가지 약초를 구해 드리리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진우명은 공손히 읍했다. 뒤돌아선 그는 고개를 숙이고 대전을 빠져나갔다.
진우명이 사라질 때까지 대전 안에서는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 하나 없었다.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진우명의 등을 응시하는 눈길이 있었다. 바로 사유성의 무심해 보이는 눈이었다.
휘익!
한 줄기 인영이 어둠을 가르며 석대장을 빠져 나갔다. 다소 왜소해 보이는 인영이었다.
그러나 인영은 분광환영종(分光幻影踪)이라는 절정신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것은 오직 석대장 독문의 경공신법이었다. 인영은 쾌속하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석대장에서 일 마장(一馬場)쯤 떨어진 곳.
두두둑... 팟!
갑자기 땅이 갈라지며 한 흑영이 지하로부터 솟구쳐 올라왔다. 석대장은 기문진법의 천라지망이 쳐져 있었다. 그러나 그 흑영은 땅 속으로부터 솟아나왔기에 그를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스스.......
흑영은 괴이하게도 땅에 그림자를 바짝 붙이며 날았다. 그가 날아가는 곳은 조금 전에 한 왜소한 인영이 사라진 곳과 같았다. 삽시에 괴영의 모습은 사라졌다.
태화각.
"......."
진우명은 밤이 깊었는데도 불구하고 의자에 앉아서 약초를 배합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이상하게도 일말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너무나 피곤했던 탓일까? 그는 의자에 앉은 채 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스스스.......
방 안에 한 인영이 나타났다. 일신에 백삼을 걸친 인영은 바로 신주제일룡 사유성이었다.
"후후!"
그는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띄우며 진우명을 바라보았다.
"네가 잠든 체 하지만 내 눈은 틀림없다."
그는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진우명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사유성이 자신의 처소에 나타난 것도 모르는 듯했다.
사유성은 냉소했다.
"후후!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 사유성의 눈만은 속일 수 없다. 네가 사풍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
사유성은 여전히 잠들어 있는 진우명을 내려보며 말했다.
"어젯밤 영빈관에서 살인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나는 이곳으로 달려왔다. 너는 비록 잠든 체 하고 있었지만... 나는 네가 수작을 부렸다는 것을 알았다. 웬지 아느냐?"
"......."
"너를 감시하기 위해 매복된 여덟 명의 고수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점혈(點穴)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 자신조차 몰랐으나 그들은 머리카락에 수혈을 적중당해 잠깐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곳에 왔을 때 마침 그들 중 한 명이 아직 깨어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
"후후... 너의 점혈수법은 정말 천하제일이다. 그들은 자신이 잠깐 졸은 것으로만 알더군. 그러나 어떻게 동시에 그들이 졸 수 있겠느냐? 더구나 결정적인 것은......."
사유성은 손을 뻗어 번개같이 진우명의 머리칼을 뽑았다.
"바로 이 머리카락이다!"
그는 또 한 손에 다른 머리칼을 쥐고 있었다. 그는 두 개를 대조해 보았다. 하나는 화원에 매복했던 고수의 수혈에 박혀 있던 것이었다.
"이것은 필시 똑같은 것이다. 왜냐면 바로 너의 것이니까... 엇!"
부르르.......
사유성은 몸을 떨었다.
"이... 이럴 수가... 틀리다니!"
사유성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대조해 본 두개의 머리칼은 완전히 틀렸던 것이다. 한 개는 부드럽고 윤기가 흘렀으나 다른 한 개, 즉 막 뽑은 머리칼은 올이 굵고 거칠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사유성은 휘청거렸다.
그는 확신했다. 자신의 짐작이 틀림없으리라고 단정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자신의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
사유성은 한동안 넋을 잃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는 잠든 진우명의 어깨를 거칠게 흔들었다.
"이... 일어나게!"
그때였다.
스르르... 쿵!
진우명이 목상인 것처럼 빳빳하게 굳은 자세로 의자에서 굴러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앗!"
사유성은 대경실색했다. 그의 눈이 한껏 크게 떠졌다. 사유성은 진우명의 가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진우명의 가슴에는 원반형의 상처가 뼈속까지 베어져 있는 것이었다. 말라 붙은 핏줄기 사이로 반짝거리는 금속의 파편이 박혀 있었다.
"사... 사풍인!"
사유성은 너무나 놀라 한참만에야 간신히 그렇게 부르짖었다.
④
"그...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노인은 얼굴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
석장청은 대답을 하는 것도 잃은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앞에는 금포를 입은 풍체가 당당한 노인이 화려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바로 석문부사(石門府使) 이원릉(李元凌)이었다.
이원릉은 심야에 석장청의 방문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천문선생 석붕이 친히 쓴 서찰을 읽었다. 뒤이어 그는 고개를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네."
석장청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 두 가지 약초를 백부님께서 사서 부중으로 가져오시지 않으셨단 말씀입니까?"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이원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노부가 무엇에 쓰려고 그토록 많은... 그것도 하등 쓸모없는 그 두 가지 약초만을 사들이겠는가?"
"하... 하긴 그렇군요. 하지만 그 약초는 분명히......."
"분명 약초는 본 부중에 창고를 가득 메우고 쌓여 있네."
"그... 그렇다면 어째서?"
석장청이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이원릉은 의자 팔걸이를 두드리며 다소 분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괘씸한! 감히 노부를 흉계에 이용하려 들다니......."
"......?"
"어떤 놈이 임의로 그 두 가지 약초를 산 후 무조건 본 부중으로 운송시켜왔단 말이네!"
"네?"
석장청은 너무도 뜻밖의 말에 입을 벌렸다.
"한 달 전부터 매일 마차로 두 대 분량의 약초더미가 부중으로 운반되어 왔네. 마부는 단지 은자를 받고 시키는 대로만 했다고 했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궁금했었는데... 이제보니 어떤 놈의 흉계였군 그래!"
"도... 도대체......."
석장청은 그만 전신에서 힘이 빠져 버렸다.
'이곳에 오면 단서를 잡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때 이원릉부사가 입을 열었다.
"현질. 대체 어떤 놈이 이런 일을 벌였을까?"
"글쎄요......."
"놈이 그 약초더미를 본 부중으로 보낸 데에는 필시 흉계가 있을 것이 아닌가?"
"......!"
그 순간 석장청의 눈이 빛났다.
'그렇다. 필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더구나 본장과 멀지도 않은 이곳 부중을 택한 것은.......'
석장청의 안색이 불현듯 창백해졌다.
'호... 혹시!'
그의 얼굴에 일말의 두려움이 떠올랐다. 그는 몸을 흠칫 떨었다.
'노... 놈은 필시 모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곳으로 약초를 구하러 올것을 대비해 이곳에까지 무엇인가 흉계를 묻어 두었을 것이 틀림없다. 으으으!'
석장청은 평생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검은 살수가 금세라도 자신의 목덜미를 찍어 누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곧 마음을 안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백부님께 그 두 가지 약초를 빌어갔으면 합니다. 우선 식솔들의 독을 푸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 말에 이원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얼마든지 가져가게."
"고맙습니다. 백부님."
석장청은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잠깐!"
이원릉이 그를 불렀다.
"......?"
이원릉은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이왕 왔으니 화영을 보고 가게. 그 아이가 자네를 무척 보고 싶어하는 모양일세. 허허!"
"그건......."
한순간 석장청은 난색을 띄웠다.
이화영(李華瑛).
그녀는 이원릉부사의 손녀였다.
그녀는 그야말로 장중보옥(掌中寶玉)으로서 발바닥에 흙 한점 묻히지 않고 자란 절세가인이었다. 떠도는 풍문에 의하면 그녀의 외척이 황족이라는 설도 있었다.
석장청은 수 년 전에 부친을 따라 석문부중에 왔을 때 그녀를 만난 적이 있었다.
젊은 남녀. 그들은 처음 상대방을 보았을 때부터 운명과도 같은 사랑을 예감했다. 그들의 부모들도 하등 반대할 것이 없었다.
결국 무림구공자의 한 사람인 젊은 기재 석장청과 절세가인은 필연적으로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 이후 서로 연정을 나누었던 것이다.
"허허! 시간이 걸리는 일도 아니니 그 아이를 한 번 만나보게. 그렇지 않아도 자네가 발을 한동안 끊은 바람에 그 아이가 수척해졌네."
손녀를 생각하는 이원릉의 얼굴에는 측은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잠시만 만나고 가지요. 그럼......."
석장청은 할 수 없이 대답했다. 그는 절을 한 뒤 정실을 물러나왔다."
밤은 깊었다. 부중은 고요하기 그지 없었다. 석장청은 한숨을 쉬며 회랑을 돌아 별원쪽으로 걸어갔다.
"하필이면 오늘 낭자를 만나야 하다니......."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청청한 밤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석장청은 월동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들었다. 월동문을 지나자 곧바로 화원이 나타났다.
월견화(月見花)가 피어 있었다.
환한 대낮에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가 부끄러워서였을까? 그것은 밤에만 피는 꽃이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밤에만 피는 꽃은 더더욱 요염스러웠다.
월견화 향기가 화원을 가득 맴돌았다. 하지만 석장청은 꽃향기에 취할 겨를이 없었다. 아니 그의 눈에는 요염한 월견화의 자태도 들어오지 않았다.
석장청은 내처 화원의 소로를 걸어갔다. 한 채의 정자가 소로 끝에 서 있었다.
정자가 바라보이는 곳에서 석장청은 걸음을 멈추었다. 이어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정자를 주시했다.
"......!"
석장청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정자 안에 연홍빛의 궁장을 입은 여인이 서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쩝!"
석장청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정자 앞까지 다가갔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정자로 올랐다.
"......."
여인은 그때까지 등을 돌리고 있었다. 분명히 정자를 오르는 석장청의 발걸음소리를 들었을 법도 하건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낭자."
석장청은 잠시 기다리다 입을 열었다.
"......."
"낭자!"
석장청은 두 번째로 불렀다. 여인을 부르는 그의 음성이 조금 높아졌다.
그때서야 여인이 서서히 돌아섰다. 뒤이어 여인은 석장청을 바라보며 투정어린 음성으로 말했다.
"잊으셨나요? 왜 화영이라 부르지 않죠?"
"아, 그... 그렇지. 미안하게 되었소. 내가 깜빡 잊었소. 화영."
석장청은 그렇게 말했다. 이어 그는 용서를 구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화영은 어둠조차 달아날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의 피부는 너무나 희었다. 아니 희다못해 어둠 속에서도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특히 쌍거풀이 진 왕방울만한 큰 눈은 몹시나 매력적이었다.
"왜... 그토록 소식을 주지 않으셨죠? 혹... 다른 여인이라도 생겼나요?"
화영은 울먹이듯 말했다. 그 순간 석장청은 급히 손사레를 쳤다.
"그... 그럴 리가 있소?"
"그렇다면 왜... 벌써 수개월 동안 가가는 저를 찾지 않으셨어요."
"여... 여기 왔지 않소?"
석장청은 궁지에 몰린 듯이 어색하게 말했다.
"제발... 제발 그러지 말아요. 화영은 외로운 건 질색이에요."
이화영은 그렇게 말하며 석장청의 품에 기대왔다.
"......!"
석장청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화영은 대담했다. 그녀는 즉시 물러나려는 석장청의 목을 끌어 안았다.
"으음... 가가... 당신이 무공연마 때문에 그러는 줄은 알지만... 화영은 혼자 있기가 싫어요. 정말 싫단 말이에요."
"화... 영......."
석장청은 어색하게 그녀를 안았다.
바로 그때였다. 석장청은 한 가닥 기이한 향기가 정자 안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 그는 그것이 화향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으응... 안아줘요, 가가!"
갑자기 이화영의 숨이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뒤이어 그녀는 더워진 뺨을 석장청의 뺨에 비비며 더욱 몸을 밀착시켜 오는 것이었다.
"화영!"
석장청은 당황했다.
그는 급히 이화영을 떼어내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석장청은 숨이 차오르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미... 미약(媚藥)!'
석장청은 내심 경악하여 부르짖었다. 그는 급히 숨을 멈추었다. 하지만 이화영의 육탄공격은 갈수록 도를 더해갔다.
"으응... 가가! 어서 절 안아줘요. 화... 화영은 도저히 참을 수가......."
석장청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화영, 이러면 안... 읍!"
한순간 석장청은 아찔했다.
이화영의 홍작약같은 입술이 그의 입을 덮어버린 것이었다. 그녀의 입술은 불덩어리처럼 뜨거웠다.
이화영은 본래 이원릉으로부터 석장청이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녀는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정자에서 그를 기다린 것이다.
처음에 그녀는 석장청이 그동안 자신을 찾아주지 않은데 대해 따지려고 들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그 정반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아... 가가... 흐응!"
이화영은 본래 몹시 활달하고 정열적인 미녀였다. 부중에서 장중보옥으로 자라나 어려움을 겪지 않은 탓도 있었다.
"흐윽!"
뜨거운 신음소리와 함께 그녀는 거추장스런 궁장을 마구 벗어부쳤다.
옥같이 빛나는 살결이 어둠 속에서 드러났다. 그녀는 단숨에 반라가 되었다. 그리고는 더욱 석장청에게 매달렸다.
"어서... 흐윽!"
이화영은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마침내 섬섬옥수를 뻗어 석장청의 옷섶을 헤쳤다.
"이... 이러면 아니되오!"
석장청은 실색하여 몸을 비틀었다.
찌익!
너무나 세게 몸을 비튼 것이 화근이었다.
석장청의 상의자락은 한순간 길게 찢겨져 나가고 말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분명 사내의 것이어야 할 석장청의 가슴 한부분에 눈부시도록 탱탱한 젖무덤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악! 너... 너는 계집!"
흥분하여 계속 파고 들던 이화영은 뭉클한 석장청의 젖가슴을 만지게 되자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그녀의 뜨거워졌던 몸은 찬물을 끼얹은 듯이 식어 버렸다.
그녀는 황급히 반라가 된 몸을 가리며 날카롭게 소리질렀다.
"도적! 넌 누구냐? 누구길래 그 분 행세를 하는냐?"
매우 앙칼진 음성이었다. 그 음성은 별원의 정적을 온통 뒤흔들었다.
석장청은 비어져 나오는 젖무덤을 한 손으로 가린 채 황망히 말했다.
"낭자... 나는... 사실은......."
"닥쳐라! 여도적! 여봐라! 거기 누구 없느냐?"
"......!"
이화영은 앙칼지게 고함쳤다. 석장청은 절망했다. 그는 즉시 몸을 날리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휙! 휘익!
"섰거라!"
"감히 아가씨를 해치려 하다니!"
분성과 함께 어딘가로부터 십여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그들은 즉시 석장청의 길을 막았다. 그들은 부중에서 키우는 호위무사였다.
호위무사들은 삽시간에 석장청을 포위해 들어왔다. 이화영은 어느새 나신을 추스렸다.
그녀는 앙칼지게 명령했다.
"그 계집은 감히 석공자님으로 변장했다. 필시 흉적일테니 잡아라!"
"옛!"
무사들은 힘차게 대답했다. 그들은 즉시 석장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감히 부중에 침입하다니!"
"겁도 없는 여도적이다! 죽이지 말고 사로잡아라!"
쐐애액!
호위무사들의 무공은 보통의 수준이었다. 그들은 허공을 가르며 석장청을 공격해 들어왔다.
그러나 석장청은 그들을 함부로 해칠 수 없었다. 그들을 다치게 하면 석가장과 석문부중과의 관계가 악화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콰쾅!
석장청은 손바닥을 빙글 돌렸다.
"큭!"
무사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주르르 밀려났다. 석장천의 장력에 밀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휘휘휙!
별원 안으로 수십 명의 인영이 벌떼처럼 날아들었다. 그들은 소란통에 급히 달려온 것이었다.
"무슨 일이냐?"
그 중에서는 석문부사 이원릉의 음성도 들렸다.
"......!"
이원릉의 음성을 듣는 순간 석장청은 완전히 절망했다.
'틀렸다!'
석장청은 한순간에 전신에 힘이 빠졌다.
그 순간 그의 뇌리를 치는 한가지 예감이 있었다. 뒤이어 얼굴을 알 수 없는 한 인영의 모습이 떠올랐다.
석장청은 경악했다. 그는 절규하듯 속으로 토해냈다.
'사풍객! 그 자에게 당했다!'
그 시각.
연기처럼 석문부중의 담을 넘은 인영이 있었다.
그는 석문부중을 빠져나와 석가장을 행해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낮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후후... 머리칼에 가려있던 귓부리에 귀걸이 구멍이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여인임을 알았지... 덕분에 일이 쉬워졌다. 후후.... 아마도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하리라. 그 동안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흣흣... 석가장은 이제 내 손바닥 안에 있다."
스스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영. 그는 땅바닥에 그림자처럼 붙은 채 사라졌다. 정녕 무서운 일이었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