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향기가 집 안 가득하다. 자연의 향수다. 벌떼들도 신이 나서 야단들이다. 까치들도 아카시아 향에 취했는지 제법 경쾌한 노래를 부른다. 언제 들어도 반가운 소리지만 오늘은 더 그렇게 들린다. 하루종일 누군가를 기다릴 것 같다.
까치는 우리나라의 국조(國鳥)다. 1964년에 '나라새'뽑기 공개 응모전에서 압도적인 표를 얻어 나라새가 되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까치들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다. 농촌이 되었건 도시가 되었건 사람들과 가까이 산다. 사람들과 친근한 새 중의 하나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왔을 때 가장 먼저 사귄 이웃도 까치다. 이제는 정이 들어 이 곳을 떠나기 어렵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들의 지저귐을 듣거나 그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그들은 바로 뒷산에 둥지를 틀고 살고 있다. 그 둥지는 내가 이 곳으로 이사올 무렵에 지어졌다. 나는 이삿짐을 나르느라고 정신이 없었고, 까치는 둥지를 트느라 분주했다. 나뭇가지를 열심히 물어다 둥지를 트는 까치는 수컷이었을 것이다 새들의 세상도 집장만은 수컷의 몫이 큰가보다. 사람들과 가까이 살면서 사람들을 닮아 갔는지도 모른다. 마침 겨울이 끝나갈 무렵에 이사를 했기에 까치들이 둥지를 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때 지은 둥지가 아직도 그대로 있다. 수리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십년이 넘은 둥지다. 아마 건축의 베테랑이 설계와 공사를 맡지 않았나 싶다.
나의 이웃에 사는 까치들은 복이 많다. 감나무 골은 아니어도, 주변이 산이라 집 지을 자재도 많고, 풀벌레 소리도 그치질 않으니 먹이도 풍부할 것이 아닌가. 도시에서는 이보다 좋은 환경을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 뿐인가? 아카시아 나무에 둥지를 틀었으니, 해마다 꽃향기 속에서 새 생명도 탄생시킬 것이다, 그러니 이만하면 까치의 보금자리로는 으뜸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렇게에 까치들이 아카시아 나무에 가장 많이 둥지를 트는 모양이다. 까치가 사람들과 가까이 살면서 학습과 모방을 하는 지능이 높은 새라더니 집터를 고르는 풍수지리에도 사람 못지 않은가 보다.
옛부터 까치가 아침에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올 것이라 했다. 나 역시 그것을 믿기에 까치가 울면 괜시리 마음이 설렌다. 어렸을 때는 더 그랬다.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손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손님도 손님이지만 손님이 들고 오는 보따리를 기다렸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손님은 빈손으로 오는 예가 없었으니까. 그때 손님들이 사다 준 과자나 사탕의 맛은 되찾을 수 없는 맛 중의 하나다. 손님이 오면 반찬도 달라지니 어찌 손님을 기다리지 않겠는가. 예전에는 형편이 어려워도 손님이 오면 융숭히 대접을 했다.
친정집에는 삼촌도 없고, 종가도 아니어서 손님이 많이 찾아오지를 않았다. 고모들은 많았어도 출가외인으로 사셨기에 자주 오지를 않았다. 그러므로 손님이 드나드는 집이 부러웠다. 손님이 와서 시끌시끌한 집을 보면 부자처럼 보였다. 손님이 오는 날은 부엌이 바쁘게 돌아갔다.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다 꺼내 손님상 차리기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식구가 다 바빴다. 아궁이에 불을 때 밥을 지으랴, 국도 끊이랴 정신 없었다.
숯불에다는 김과 생선을 구웠다. 집안 가득 구수한 냄새가 하루종일 계속 됐다. 손님이 온 날은 굴뚝의 연기도 끊이질 않았다, 나는 부엌일을 돕기보다는 괜히 방으로 부엌으로 왔다 갔다 했다. 좋아서 그랬을 것이다. 손님이 오는 날은 콩나물 시루 안의 콩나물도 한 몫을 톡톡히 했다. 물만 먹고 자란 콩나물이지만 정성을 먹어서 그런지 맛이 꽤 있었다. 입맛이 다셔진다. 지금 생각하면 별 반찬은 아니지만 그 시절에는 너무너무 맛이좋았다. 그래서 까치가 울기를 그렇게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까치는 마을이 잘 내려다 보이는 곳에 둥지를 틀고 산다. 마을을 지카는 파수병이다. 아니 반가움의 전령사다. 항상 같은 박자로 같은 소리를 내며 노래하지만 듣기 싫지 않다. 적당하게 울어서일 것이다. 여름철의 매미나 쓰르라미처럼 시도 때도 없이 온종일 울어대지 않아서 그런지 귀하게 들린다. 어찌 보면 예의 바르게 보인다. 사시사철 사람들 속에 살아서 일까, 눈치를 아는 것 같기도 하다. 자기 관리를 잘 하는 새로, 자존심이 강한 새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까치는 집을 튼튼히 짓는다. 내 이웃에 있는 까치 둥지도 오래되었지만, 내 고향 마을의 미루나무 위에 지어진 둥지는 더 오래 되었다. 내가 결혼하기 전부터 있었다. 재건축을 했는지는 모르나 똑같은 자리에 그대로 있다. 부실공사를 일삼는 사람들이 반성해 볼 만 하다. 까치에게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 감리 등을 배워야 할라나 보다. 나뭇가지로 지은 집이 시멘트와 철로 지은 집보다 수명이 오래 간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가?
나와 비슷하게 집을 마련한 뒷산의 까치들과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고 아카시아 꽃이 피는 봄이 오면 그들을 보기가 힘들다. 아카시아 꽃이 둥지를 가리고 있어서다. 그들의 모습을 보려면 낙엽이 쌓이는 가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지금쯤은 새 생명이 태어나 잘 자라고 있을 텐데 궁금하기 짝이 없다. 여전히 아비 까치는 집을 지을 때처럼 눈코 뜰새 없을 것이다. 기세 당당한 아내 까치와 귀여운 새끼 까치에게 먹이를 구해 다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뒷산 아카시아 숲에 까치들이 살아 심심하지 않다.
오늘 아침, 까치소리에 은근히 반가운 손님이 오려나 기다렸는데, 하루종일 아무런 소식이 없다. 아쉽다. 아마 오늘의 까치소리는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마음조이며 지켜봐 주시는 부모님께 소식을 전하라는 소리였나보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어릴적 친정 집
울타리에는 큰 쭝가리 나무가 서 잇었는데
그 높은 곳에 까치가 집을 짓고 살았어요
매일 아침 보며 살 수 있었던
부모님과 형제들과의 삶이 그리워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