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대안’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만들려고 활발하게 시도하는 영역 가운데 교육은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걸쳐 캠프나 주말학교 형태로 등장한 대안교육은 90년대 중반 대안학교 설립으로 이어져 간디학교 등이 세워졌다. 그리고 그러한 학교들은 교육인적자원부의 인가를 받아 ‘특성화 중고등학교’라는 범주로 공식화되었다. 그러한 대안교육의 움직임들은 시민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한편으로는 급변하는 사회 환경과, 다른 한편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청소년과 괴리를 빚는 공교육에 대한 대안을 만들려는 시도였다. 거기에서 강조된 가치 지향은 경쟁이 아닌 협동, 자율, 자기주도성, 다양성, 생태주의, 참여, 치유, 비판적 사유, 성찰하는 힘 등이다. 그리고 교육 또는 학습의 방식에서는 다양한 테마별로 기존의 교과목들을 통합 재구성한 내용을 소규모 그룹 활동으로 풀어내는 것이 강조된다. 초창기 대안학교들은 지방 소도시나 산촌에 자리를 잡은 기숙형이다. 거기에는 삭막한 대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내면을 가다듬고, 24시간 공동체 생활을 통해 단순한 지식이 아닌 삶 그 자체를 배운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그러다가 2000년경부터 대도시 안에도 대안학교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는 청소년들이 방황하지 않고 배움을 지속하면서 인생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공간과 시스템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민간 운동의 차원에서 출범한 학교가 있는가 하면 지자체 차원에서 청소년 수련시설을 활용하여 조성하는 학교도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 학교에 20명 안팎의 소규모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도시 안에 있는 다양한 학습 자원(사람, 공간, 정보, 조직 등)을 네트워크하면서 학습을 설계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공교육과는 물론 지방의 대안학교와도 차별화되는 방식으로 배움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런데 도시 안에는 또 다른 흐름의 대안교육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그것은 초등학교 연령대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부모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가는 대안학교들이다. 2000년경부터 경기도 일대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이 움직임들은 지금 서울 안에서도 몇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대안학교들은 공동육아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설립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1990년대 초반 서울의 몇몇 지역에서 출범한 공동 육아 운동은 자녀를 어릴 때부터 다르게 키우고자 하는 부모들이 동네에서 조합을 결성하여 대안적인 양육의 장(場)을 운영해온 지역 운동이다. 그 자녀들이 학교에 입학할 연령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대안적인 초등학교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지금 여러 가지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이 발표에서는 그 가운데 한 사례를 중심으로 이러한 대안교육 운동의 실태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 일대의 지역(이하에서는 ‘성미산마을’이라고 칭하겠다)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동육아 운동이 닻을 올린 동네다. 이 지역에 있는 5개 조합의 조합원들은 핵가족 맞벌이 부부들이 단지 육아의 짐을 조합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육아의 철학과 방식 자체를 함께 고민해왔다. 그러한 공동체의 힘으로 아이들의 성장과 취학에 따른 방과후학교와 마을학교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정식으로 대안학교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2004년 9월 개교를 목표로 12학년제 170여명 규모의 학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도시 안에서 주민들이 온전히 자력으로 추진하는 계획으로서는 매우 방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발표에서는 이러한 구상과 실천이 이뤄지기까지 이 지역의 학부모들이 어떤 방식으로 기반을 만들어왔는지를 ‘교육공동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마을로 확대되어온 교육 공동체
‘성미산마을’은 서울시 마포구 마포구청 뒤에 있는 성미산을 중심으로 성산동, 망원동, 합정동, 연남동, 서교동을 아우르는 지역이다. 1994년 공동 육아 협동조합 제1호인 ‘우리 어린이집’이 문을 연 이래 95년 ‘날으는 어린이집’ 2002년 ‘참나무 어린이집’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어린이집 출신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그 아이들을 위해 1998년 ‘도토리’와 1999년 ‘풀잎새’라는 방과후 교실이 생겨났다. 이렇게 해서 현재까지 5개의 공동육아협동조합이 결성되었고, 그 조합원은 모두 150 가구 정도가 된다.
공동육아는 성미산마을에서 형성되어온 교육 공동체의 모태다. 거기에서 축적한 사회적 관계와 노하우는 지금 대안학교를 만들어가는데 중요한 바탕이 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공동육아 협동조합을 운영해오면서 주민들은 여러 가지 고민에 부딪히게 되었는데, 그것은 크 게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교사와 부모와의 관계다. 공동육아는 부모들이 주체가 되어 설립하고 운영하는 협동조합이다. 이사회의 결성, 출자금 모금과 재정적 기반의 마련, 교사의 채용 및 급료의 지급 등 모든 일에 부모가 중심이 된다. 유기농산물 유통이 주를 이루는 일반적인 생활협동조합과 달리 자녀들의 성장을 함께 도모하는 공동육아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관심과 참여의 밀도가 매우 높다. 그리고 작은 프로그램 하나를 꾸리는데도 그 바탕에 깔리는 철학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들은 그러한 과정 속에서 교육에 대한 성찰과 학습을 할 수 있었고, 다른 부모들과의 토론을 벌이면서 깊은 이웃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동시에 또 다른 부정적인 측면들이 동전의 앞뒤처럼 드러났다. 그것은 교사의 위상에 관한 문제였다. 과연 교사들은 행복했는가? 공동육아 1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던져지는 질문이다. 아이들은 취학 연령이 되면 어린이집을 떠나게 되고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오게 되는데, 이는 곧 조합원 및 이사회의 구성의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 전세금과 운영비를 수익자 부담으로 충당하는 구조 속에서 새로운 조합원의 계속적인 유입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에서 교사들이 일관성 있는 원칙과 비전을 가지고 활동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더구나 열악한 임금과 과중한 업무로 인해 단순한 피고용인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기가 십상이다. 그나마 초창기에는 교사들이 공동의 설립주체로서 부모들과 대등하게 논의하고 내용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새롭게 참여하는 교사들은 외부 단체에서 주관하는 단기 연수 프로그램만 받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오랫동안 지역을 기반으로 교육적인 성장을 해온 부모들과의 일종의 격차가 심각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공동육아의 고립성이었다. 애당초 어린이집을 구성한 조합원들은 성미산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아니었다. 7,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하던 이들이 결혼하여 자녀를 낳게 되면서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에 연남동에 공동육아의 둥지를 틀게 되면서 모두다 한꺼번에 집단 이주해온 것이다. 말하자면 외지인들로 구성된 공동체가 지역 안에 외딴 섬처럼 생겨난 셈이다. 물론 나중에 설립된 조합에는 ‘원주민’들도 참여하게 되기는 했지만, 조합원이 아닌 지역의 주민들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이 끼리끼리 뭉친 폐쇄적인 틀을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자라나 동네를 돌아다니고 학교에 입학해 다른 아이들과 섞이게 되면서 이웃과의 관계를 넓혀가야 하는 과제가 대두되었다.
이러한 두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시도는 1998년 도토리 방과후 교실을 설립하면서 이뤄졌다. 거기에서는 부모와 교사가 대등하게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대한 변화는 아이가 교실을 졸업하게 되어도 출자금을 되돌려 받지 않고 기부하면서 부모는 명예 조합원으로 남기로 했다는 점이다. 명예 조합원은 조합의 중요한 결정에 참여하고 축제 등의 행사에 초대된다. 그러니까 이제 조합의 물적인 기반은 현재 교실에 다니는 자녀들의 부모들이 낸 출자금과 졸업한 아이의 부모들(즉 일반 주민)이 남긴 출자금 (즉 기부금)으로 조성되게 되었다. 이는 현재 부모 중심의 허약한 토대를 극복하고 보다 보편적인 구조를 마련하려는 시도로 평가될 수 있다.
지역 사회로 공동체를 넓히기 위한 시도는 2000년 생활협동조합의 결성으로 더욱 구체화되었다. 유기농산물의 공동 구매를 주요 사업으로 하는 이 조합에는 공동육아조합원 이외의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데, 현재 500가구를 넘어서고 있다. 이 생협은 다른 지역의 생협들과 달리 먹거리 구매만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기농산물로 조리된 음식을 구매할 수 있는 [동네부엌], 자동차 수리를 안전하게 받을 수 있는 [성미차병원], 주민들의 동아리 활동 (산악회, 농사모임, 아토피나 부모 역할 등에 대한 공부 모임, 민요 배우기 모임 등)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교육과 관련하여 획기적인 것은 2001년 [우리마을 꿈터]라는 학습 공간이었다. 이것은 문화센터 개념의 마을학교로서, 방과후 교실로 충족되지 않는 고학년 대상 프로그램이 개설되고 지역의 일반 아이들도 이용할 수 있다. 택견, 요가, 어린이 축구단, 수공예공방, 글쓰기, 영어, 주말 숲속학교, 월례 자전거 행진, 계절별 야영활동, 힙합춤 등이 그 프로그램이다. 이 센터는 조합의 형식을 탈피하여 생협이 부설로 세워 수익자 부담의 시스템으로 운영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교육 공동체의 출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부모들도 배움과 가르침의 주체로서 참여한다는 점이다. 자기가 가진 재능을 살려 매우 낮은 강사료를 받으면서 강좌를 꾸린다. 그리고 ‘동화 읽는 엄마 모임’ ‘만화 보고 토론하는 모임’ 등 어른과 아이가 함께 스스로 배워가는 학습 동아리들이 이 마을학교에서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어 ‘성미리틀스’라는 지역 축구단은 이 마을학교의 동아리활동에서 생겨난 것으로 지역의 청소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데, 지금 마포구청과 동네 조기축구부에서 강사료와 물품 등을 지원해주고 있다.
(마을학교가 출범한 이듬해인 2002년에 이뤄진 또 하나의 중요한 시도는 학교 운영위원회에 주민들이 참여하게 된 것이다. 자녀들이 다니는 중학교의 운영 실태를 상세하게 알고 문제를 파악하여 교장 및 교사들과 함께 풀어가기 위한 기틀을 확보한 것이다.)
성미산교육공동체가 지역사회와 거리를 좁히면서 파고들 수 있는 계기는 성미산 지키기 싸움이었다. 2001년 성미산의 숲을 없애고 배수지를 건설하고 그 이후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려는 서울시의 계획에 주민들이 대거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성미산은 그 일대 주민들의 삶에 대단히 소중한 휴식 공간이자 마음의 풍부한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공동육아 조합원들에게는 아이들에게 매우 친근한 학습과 놀이의 터전이기도 하다. 그러한 공간을 파괴하려는 당국에 대해 주민과 조합원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주민과 조합원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이 마을에서 살아온 노인들은 ‘이주민’들이 조직적이고 헌신적으로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한 조합원들은 동네 노인들이 새벽부터 산에 올라와 벌목꾼들이 올라오는 것을 감시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지역 살림의 파트너로서 상대방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3. 주민 정체성의 형성과 대안적 삶의 구현
성미산마을에서 진행되어온 교육 공동체의 핵심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기존의 통념과 사회의 흐름을 거슬러 만들어가는 문화가 있는가? 공동육아에서 방과후학교와 마을학교를 거쳐 대안학교 설립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지향은 자녀들에게 다른 성장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 환경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고 맹목적인 수험 경쟁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다움을 살리면서 자연스럽게 자라날 수 있는 조건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자녀를 가진 부모로서 그런 ‘상식’과 소박한 기대를 따르기가 쉽지 않다. 다른 집 자녀와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조급한 불안에 시달리며 모두가 자녀를 ‘닦달’하는 풍토에서 그 거대한 게임에 매몰되지 않기란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성미산마을의 부모들은 상대적으로 그러한 현실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편이라고 충분히 평가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1) 공동의 경험을 만들어가는 문화
성미산마을 교육공동체의 주축을 이루는 주민들 가운데는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중반에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을 했거나 그 분위기에서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고 졸업한 이후에는 노동운동에 관여했던 이들이 많다. 결혼하여 자녀를 갖게 되었을 때 그들은 양육이라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어느 조합원의 말은 그 심경을 잘 드러내준다. “가만히 저 자신을 돌아보면 나름대로 꽤 열심히 공부해왔지만, 진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가장 즐거운지를 학교 교육을 통해 알 수는 없었습니다. 자녀들에게 그러한 인생을 살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비판해온 사회에 그대로 편입시키지 않으려 나름대로 ‘해방구’를 만든 것이 공동육아협동조합이었다. 그러나 사회 운동과 그것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노동 운동을 하면서 조합 일을 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저녁 때 공동육아 일 때문에 일찍 퇴근할 때에 동료들로부터 종종 눈치를 받았지요. ‘그래 네 아이 하나 잘 키우려고 그렇게 공을 들이느냐? 보통 유치원에 보내지 않으려고 300만원(출자금)이라는 큰 돈을 선뜻 내놓는구나’ 그런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듯한 분위기에서 우리도 계속 자문하게 되었지요. 과연 우리는 가족의 이익에 연연해하는 소시민인가 하고요. 우리는 그러한 위험을 경계하면서 이 활동의 의미를 계속 생각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길로 매진해온 것은 무슨 당위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냥 다른 부모들과 어울리고 자녀 문제를 놓고 함께 의논하면서 일을 벌여가는 것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지금도 여러 가지 문화 활동이 이 동네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대학 때의 동아리 활동을 직장 생활하면서 잠시 잊고 있었다가 다시 하는 기분입니다.”
이렇듯 성미산마을 주민들은 보통 도시인들에게 없는 삶의 재미를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을’의 경험이다. 가끔 동네에 상을 당한 집이 있어서 조문을 가게 되면 직장 동료들이 신기하게 여기며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해 한다고 한다. 그러한 유대는 문화 활동을 통해서 더욱 견고하게 다져진다. 성미산 지키기 싸움을 벌이면서 [숲속음악회]를 열고 그를 통해 [마포스]라는 밴드가 결성되었는데, 학부모와 교사들로 구성된 그 동아리는 지금도 매주 2번씩 모여서 연습을 한다. 금년 5월에도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렇듯 가정과 직장 이외의 제3의 공간에서 사회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성미산마을 교육공동체 주민들은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서 경험되는 즐거움 때문에 직장에서보다 더 열심히 마을일을 하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에게 마을은 단순히 친교와 여가를 풍부하게 영위하는 무대만이 아니다. 교육에서 숲 생태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도 구체적인 과제를 중심으로 생각을 나누고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는 과정에서 세상과 삶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열린다. 급속한 경제 성장과 사회변화가 가져오는 압박감과 피로감을 여과하면서 ‘행복’한 삶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의미’의 자원을 거기에서 확보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삶과 경험을 공유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주민들은 다른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을 거울삼아 자기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게 된다. 아이의 문제를 성장 환경에 연관시켜 이해하듯이, 부모들의 문제도 삶의 맥락에서 접근하게 된다. 이러한 시야의 확대와 정서적인 유대는 대안교육을 구상하고 실천해가는 문화적 심리적 토대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시도하는 대안교육이 빗나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크게 잘못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해봅니다. 30년 쯤 뒤에 아이들이 묻습니다. 엄마 아빠는 왜 우리를 그렇게 키웠어? 그 때 이렇게 대답하려고 합니다. ‘아빠가 행복해서 그렇게 했어’라구요.”
그 행복감의 핵심은 자아를 떠받치고 감싸주는 친밀한 관심의 그물망이 아닐까 한다. 이 교육공동체에서는 상대방을 “아무개 엄마” “아무개 아빠”라고 부른다. 학벌이나 직업은 중요하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서로의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지낸다. 단순히 어른들끼리의 친분만이 아니라, 어른과 아이 사이에도 가족의 경계를 넘어 허물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이것은 특히 남성에게 각별한 정체성을 갖게 해준다. 동네 아이들이 인사를 해오고, 뭔가를 가르치거나 함께 배우는 사이로 지낸다. 말하자면 지역 안에 자신의 자리가 생긴 것이다. 핵가족으로 원자화된 도시 생활에서 동네의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인정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큰 의미를 갖는 것이다.
(2) 세대를 가로지르는 학습의 원체험
성미산마을의 교육 공동체가 어른들끼리 자족하는 관계에 머무는 것이 아닌 만큼, 그 안에서는 아이들도 어른들과 함께 배움을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로서 분명하게 자리매김된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의 축적은 기존의 교육 방식과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대안적인 교육 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는 소신을 준다.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면서 일부 부모들은 아이들의 공부에 내용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학교 공부를 잘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에게 보충 학습을 시켜준다든지,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도와주는 정도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의 수업 방식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되는 이들이 생겨났다. 한국 교육의 문제로 늘 지적되는바 원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문제 풀이 위주의 속도전에만 치중하는 것에 대해 뚜렷한 비판 의식이 싹트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나름의 교수 학습 방식을 탐구하게 되었다. 과학 기술원에 근무하면서 수학 공부 그룹을 만들어 동네 아이들을 지도하는 S씨는 그 전형적인 예다.
그는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수학적인 사유의 재미를 알게 하는데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공식을 외우게 하는 대신 그 안에 담겨 있는 논리적인 모델을 추출하여 이해시키고, 다양한 현상을 거기에 적용하는 방법으로 수학의 본질을 일깨우는 것이 그의 전략이다. 수학에 흥미를 잃고 ‘왜 공약수를 배워야 하지요?’라고 질문해 오는 아이들을 무시하지 않고 실생활에서 그러한 계산법이 유용한 사례들을 찾아 설명하는 식으로 접근하다 보니 수학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지를 새롭게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이를 통해 얻은 소중한 발견은 아이들의 지적인 잠재력이다.
“아무 생각 없이 공식만 딸딸 외워 점수를 받는 선행학습의 경쟁에서 뒤진다고 해서 조급해 할 이유가 없습니다.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에게 어떤 공식이나 원리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 다음 문제를 스스로 풀도록 유도하면 저절로 흥미가 생기고 그것은 곧 학습의 동기가 됩니다. 그렇게 해서 공부의 재미를 붙인 아이는 몇 개월 안에 다른 아이들의 수준에 도달해 버리더라구요. 하고 싶거나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면 엄청난 지적 에너지가 솟구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갑자기 질문이 많아지고 그 때는 요점만 짚어주면 자기 주도적으로 배워갑니다. 여러 아이들을 통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부모들은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저 역시 제 아이들에게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 동네에서는 부모들이 자기 재능을 가지고 공부방을 만들 때 자기 자녀가 속해 있지 않은 그룹을 맡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런 학습 환경에서 뒤늦게 공부에 불이 붙고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의 사례를 직접 보거나 다른 부모들에게 전해들을 수 있다는 것은 이 교육공동체의 대단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누구든 학습할 수 있는 노하우를 지니고 있다, 그것이 발현되는 속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론이 아닌 실제 사례로 확인하게 되면서 자기 자녀의 성적에 대해 안달하는 조급증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그러한 아이의 변화에 촉매자로 참여하게 되면서 인간의 잠재력에 대해 믿음을 갖게 된다.
환경 운동을 꾸준하게 해온 어느 주부의 경우 마을학교에서 아이들이 손으로 직접 뭔가를 만들고 움직이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열심이다. 그는 컴퓨터 게임에 너무 몰두해 걱정을 하는 부모들과 함께 공방을 만들었다. 게임을 하지 말라고 잔소리 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고 뭔가 다른 활동에 흥미를 갖게 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공방에서 벌이는 프로젝트는 다채롭다. 예를 들어 보드게임 방에 가서 직접 놀이를 해보고 그것을 그대로 만들어 본다든지, 동네에 버려진 개들을 위해 개집을 만들어주기 또는 꼬마 아이들을 위한 인형 만들기 같은 것이다. 그를 통해 자연스럽게 기하학적인 계산법을 원용하고 드릴 사용법을 익히는 등 여러 가지 학습이 이뤄진다.
그 외에도 마을학교에서는 태껸이나 탁구, 축구 등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는 프로그램이나 저마다 ‘끼’를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춘기 청소년들이 정신과 몸의 에너지를 쏟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에 부모들이 능동적으로 함께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동네 주민들이 저마다 지니고 있는 소질과 능력을 지역의 교육 자원으로 변환시켜내는 힘이 성미산마을 교육공동체에 존재한다. 지금 구상하는 것으로 동네에 화교 부부가 운영하는 중국요리점이 있는데, 그 집 아저씨가 중국 요리를 가르치는 수업, 그리고 그 아줌마가 중국어와 중국 문화 및 한국에서의 화교 생활 등을 가르치는 수업이 있다.
그 화교 부부는 성미산의 개발 이후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설 것을 겨냥해 가게를 열었다. 그런 만큼 개발을 반대하는 주민 공동체에 동화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그 집 자녀들이 학교생활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그 고충을 주민들에게 털어놓게 되었다. 이에 동네 아저씨들은 그 부모를 대신하여 아이를 상담해주고 멘토로서 기꺼이 나서주었다. 말하자면 공동의 부모들이 되어준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역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고, 이제 자신들도 다른 아이들의 멘토 역할을 하려고 한다.
4. 대안학교의 성장을 위한 과제
성미산마을의 교육공동체는 지금 대안학교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단계를 맞이하고 있다. 그 학교는 이 지역에 살지 않는 이들에게도 개방되어 있고, 장애아나 빈곤층을 위해서 일정한 입학생을 할당하여 학비 없이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려고 한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 경계를 넘어서 보편적인 공동체를 지향하는 모습은 여러 측면에서 나타난다. 현재 이 학교의 틀과 내용을 만들어가는 주체는 교사회인데, 그 모임 역시 누구에게든 개방되어 있어서 이러한 학교의 비전을 공유하는 이들이 교류하고 논의할 수 있다. 실제로 대안학교에서 상근할 교사들이 그 안에서 나오고, 그 외의 멤버들은 시간 강사나 연구자 또는 네트워커로서 학교의 발전을 돕는다. 다른 지역에서 대안학교를 세우려는 이들도 가입하고 있는 이 교사회는 향후 대안학교들 사이의 폭넓은 교류와 자원 및 정보의 공유를 지향한다. 이 모든 방식이 대안학교의 ‘대안’적인 생성 및 발전 경로의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쌓아온 경험과 성과 그리고 한계를 안고 또 하나의 모델을 창출하려는 이 도전은 얼마만큼 결실을 거둘 것인가?
성미산마을이 앞으로 견실한 배움의 공동체로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 당면하게 될 과제를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다.
(1) 주민들 내부의 소통
지역 내의 주민들 안에 존재하는 이질성은 이것은 도시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공동의 일을 수행할 때 반드시 부딪히는 문제다. 공동육아 조합 안에서만 보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의 편차들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초창기에는 부모들이 설령 일찍 퇴근하더라도 자기 아이를 먼저 집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늦게까지 남아 있게 될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요즘에는 피아노학원에 보내기 위해 또는 아이가 피곤하다거나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이를 데려가는 부모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로 여겨진다.
지역 안에서 활동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이견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성미산에서 열리던 숲속음악회를 금년에는 인근의 난지천 공원에서 개최하여 성산 임대 아파트 주민들을 끌어들이려고 하는데,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냥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잘 지내면 되지 왜 자꾸만 일을 크게 벌이냐는 것이다. 하나의 ‘사회 운동’이라고 생각하면서 지역 전체를 시야에 넣으면서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주민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필요한 것만 챙기며 번거로운 일은 피하는 주민들, 그리고 이 모든 시도들에 냉소적이거나 아예 무관심한 주민들이 당연히 지역 안에 공존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패거리’로 고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선 긋기를 하지 않는다’는 말을 성미산마을 교육공동체 리더들로부터 자주 듣는데, 바로 주민들 사이에 내재하는 이질성의 스펙트럼을 인정하되 성급하게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가거나 포기하지 않는 자세를 견지하려는 다짐이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지역 공동체를 꾸려오면서 얻은 지혜이기도 하다. 생각과 처한 조건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하되 큰 방향에서는 함께 간다는 철학이 거기에 깔려 있다. 공동육아 협동조합에서 생활 협동조합으로 그리고 마을학교와 대안학교로의 진화 과정은 끊임없는 소통의 훈련으로 점철되고 있다.
대안학교라는 막중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그러한 소통은 적절하게 이뤄질 것인가? 이 마을에서 지금까지 벌여온 여느 사업들과 달리 대안학교는 거대한 자금이 들어가고 참가자들의 ‘올인’이 요구되는 만큼 팔짱 끼고 지켜보는 주민들이 너무 많으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 학교의 의미와 맥락을 설득하고 동참을 이끌어내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2) 교사와 부모 사이의 소통
현재 대안학교를 준비하는 중심 그룹인 교사회의 핵심은 모두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앞서 설명한 바 공동육아에서 교사들의 소외와 교육의 비일관성 문제에 대한 반성에 입각하여, 이번 대안학교의 형식과 내용은 교사들에게 맡기고 주민들은 재정이나 건축 등 존립의 기반을 책임지는 쪽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그러나 그러한 완전 위탁이 이뤄지기에는 교사들이 이 지역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 [민들레]라는 대안교육 격월간지에 공모를 통해 모여든 교사들은 오랫동안 대안교육을 꿈꿔온 이들로서, 대체로 자기 나름의 교육에 대한 이상적인 상(像)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성미산학교처럼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학교는 그러한 이념을 확고하게 실현하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동네의 일반 주민은 물론이고 일정한 목표를 공유하는 공동체라 해도 세계관에서 많은 차이를 내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탄핵이나 이라크 파병 등의 이슈에 대해서도 성명서를 내거나 시위 같은 ‘단체 행동’을 하기가 어렵다.
현재 대안학교를 준비하는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주민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자신들은 큰마음을 먹고 학교를 세워 대안교육의 뜻을 펼치려 왔는데, 주민들은 그다지 적극적으론 나서는 듯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속도가 붙지 않는가? 도대체 지향하는 학교의 상(像)이 무엇인가? 그런 불만이 쌓이고 있다. 오랜 동안 차이에 대한 관용을 몸에 익히면서 천천히 자기를 형성해온 주민 공동체와 호흡을 맞추는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역’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매개로 이뤄지는 사회의 생리를 이해하는데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단계에서는 교육의 철학과 방식에 대해 교사와 학부모들 사이에 근본적인 괴리가 드러날 수도 있다. 그 상황에서 예전처럼 부모들이 교사들에게 ‘무서운’ 사람들로 비치지 않고 함께 교육을 만들어가는 동반자로 보조를 함께 할 수 있는가. 앞으로 대안학교를 세우는데 한 가지 중요한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3) 다양한 교육 영역들 사이의 시너지
공교육과 대안교육의 상호 보완을 어떻게 꾀할 것인가. 이것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당위로는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미산마을처럼 지역 안에 대안학교를 세우는 경우 지극히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한다. 공동육아의 단계에서는 어차피 국가의 공식적인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갈등의 소지가 적다. 공동육아의 연장선상에서 방과후 학교와 마을학교가 생겼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학교 교육을 보완하는 수준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의무 교육 단계인 초등학교와 중학교 수준에서 대안학교를 만든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기숙형 대안학교처럼 외딴 곳에 세워지고 그 학교의 이념에 동의하여 입학생들이 모여들어 사실상 그 지역과 아무 관계없이 운영되는 경우와도 판이한 상황이다.
성미산마을의 경우 야심 차게 대안학교를 준비하고 있지만, 그것은 공교육을 부정하면서 이자택일적인 대안을 내세우지 못한다. 그동안 공동육아와 방과후학교와 마을학교에 열심히 참여해온 주민들 가운데 대안학교에 자녀를 보낼 계획이 없는 (또는 부모는 보내고 싶지만 자녀들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대안학교를 세운다고 해서 방과후학교와 마을학교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처럼 기존의 학교에 다니면서 동네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병행하는 계열은 계속 유지되면서, 다른 한편으로 완전히 별도의 배움터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형성되어온 지역 교육 자원의 상당 부분은 대안학교 쪽으로 흡수되거나 공유되어야 할 처지다. 지역 안에 있는 한정된 에너지를 적절하게 안배해가야 하는 것이다.
일반 학교의 운영위원회를 통해 공교육을 바로 잡는 것(학교 안), 학교 교육의 미진한 부분을 주민들의 힘으로 메우는 것 (학교 곁), 그리고 전혀 새로운 기반에서 교육의 틀과 내용을 대안적으로 세우는 것 (학교 밖) 사이의 유기적인 공존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가 앞으로 성미산마을 교육공동체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 될 것이다.
5. 마무리
한국의 교육 제도와 철학은 그동안 여러 차례 변해오면서 그 이론적인 수준에서는 그 나름대로 상당히 개선되었다. 특히 7차 교육과정으로 넘어오면서 거기에 깔려 있는 철학이나 인간상은 대안교육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평가된다. 그런데도 교육의 위기는 점점 심각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교육열의 원천인 부모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의 인생을 긴 안목으로 투시하지 못하고 당장의 편차치에 집착하며 맹목적인 경쟁의 대열에 몰아세우는 태도이다. 다른 하나는 교육 현장의 여건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7차 교육 과정의 열린 학습을 제대로 수행하기에 교사의 역량은 부족하고 학급의 규모가 너무 크다. 그 결과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에게 더 큰 짐이 되고 교육의 취지가 완전히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의 주민들이 공동체가 되어 학습의 대안적인 장을 만든다는 것은 대단히 깊은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한국의 교육은 한편으로 국가가 집체주의로 획일화시키면서 거대한 경쟁을 부추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이 총력을 동원하여 각개 전투를 벌이는 형국이었다. 극도의 타율과 무진장한 맹렬함이 병존하면서 청소년들을 억압해왔고 어른들도 함께 병들었다. 그러한 현실에 대해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비판과 주장에 머물지 않고 그러한 게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배움과 성장의 터전을 만들려는 노력은 미미했다. 그나마 그동안 몇몇 대안학교들이 출현하여 그 가능성과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성미산마을의 교육 공동체가 지난 10년 동안 벌여온 활동과 지금 준비하는 대안학교는 기존의 대안학교들과 달리 지역의 생활 현장을 모태로 하면서 평범한 학부모 곧 주민들이 교육의 공적인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공동육아로 시작된 부모들의 공동체와 참여는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변화를 거듭해왔다. ‘아이를 위해 낯선 곳에 이사를 와서 고생했는데, 멀리 있는 대안학교에 보내려고 또 다시 이사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지금 대안학교를 만들게 된 동기다. 한국사회의 고질병인 학연과 지연은 여기에서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결합된다. 대안학교는 돈과 의지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 자신이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고 그에 걸맞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사교육의 후원자가 아니라 교육의 공공성을 고민하며 참여하는 교육 시민, 스스로 그리고 더불어 배울 줄 아는 학습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미산마을의 교육 공동체는 그러한 힘을 키우며 삶을 가꿔가는 즐거움을 가족과 세대의 경계를 넘어서 나누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김찬호 (서울시대안교육센터)
나는 중고등보다 초등이 더 걱정되는데.... 예전에 TV를 통해 이야긴 들어봤는데 자료는 아직 보지 못했네요. 어깨동무가 성공적으로 새터전을 마련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초등학교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듯이 조합원들의 생각도, 희망도 쑤~욱쑥 자라겠지요.
첫댓글 김가람 아빠가 올립니다. 공동육아만해도 힘든데 웬 대안교육? 당장은 아니지만 미래는 금방 다가옵니다. ^^ 초등은 그냥 학교에 보낸다해도 중고등은 염려되지 않나요?
나는 중고등보다 초등이 더 걱정되는데.... 예전에 TV를 통해 이야긴 들어봤는데 자료는 아직 보지 못했네요. 어깨동무가 성공적으로 새터전을 마련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초등학교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듯이 조합원들의 생각도, 희망도 쑤~욱쑥 자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