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시간을 코앞에 두고 조금은 배가 고플만한 오전 11시, 주석은 잔뜩 부은 얼굴로 나타났다. 바로 전날 있었던 클럽 마스터플랜에서의
마지막 공연과 이어진 DJ Wreckx Party까지 참여하느라 몇 시간 잠도 못 잤다는 그와 담당 기자가 인터뷰 당일에야 스케줄을 알려준
매니저를 함께 원망하는 것으로 그렇게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얼굴이 안 좋아 보여요. 의상도 어제와 그대로인 것 같은데요? (기자도 전날 있었던 클럽 마스터플랜의 마지막
공연을 보러 갔었다)
새벽 5시에 파티가 끝이 났어요. 오늘 인터뷰가 있는 줄 알았더라면 의상이라도 미리 준비해뒀을 텐데… 얼굴이 부어서 만두 같아요.
(웃음)
타이틀 곡 의 의미가 무언가요?
최후까지 생존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뜻이에요. 영화 의 제목에서 모티브를 얻은 거죠. 사실 그 영화를
보진 않았어요. 줄거리는 다 알고 있지만 그다지 보고 싶지는 않더라구요. (웃음) 제목이 인상적이었죠.
그럼 이 노래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뭐죠?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기르자는 거예요. 누나도 기자라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저도 이 쪽에서 최고가 되고… 최후에 웃는
자만이 진정한 승자라는 말도 있잖아요. 어느 분야에서건 끝까지 남아있는 사람만이 승자, 곧 최고가 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주석 씨 노래는 제목이 다 저돌적이에요. 도 그렇고, ,
<배수의 진>, <정상을 향한 독주> 같은 제목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이런 게 느껴지는데요?
제 자신에게,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예요. 전 주로 제 이야기를 가사로 쓰고 있는데, 내 자신과 내가 하고 있는 힙합이란
음악이 가사의 소재죠. 지금은 힙합 매니아들도 많아지고 힙합을 많이 즐기고 있지만 사실 우리 나라 힙합이 발전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이것이 한 순간의 유행으로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한국 힙합씬을 더욱 발전시키려면 제가 힘을 길러야 하니까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이게 제가 가장 절실히 느끼고 있는 법칙이죠. 하고 싶은 음악이 있어도 그만한 힘이 없으면 못하거든요. 우리
나라에서 정통 힙합 음악을 한다고 하면 망할 게 뻔하니까 망하지 않으려면 그만큼 영향력이 커야하죠. 제 음악을 들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제가 하고싶은 음악을 하는 게 쉬워지는 것처럼, 제 힘이 커져야 제 음악이 같이 커지거든요. 결론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는 얘기예요. 경우는 다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모두 해당되는 얘기죠. 저는 우리 나라
힙합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4년 가량 음악을 해온 건데, 전과 비교했을 때 가사를 쓰는 게 달라졌나요?
소재 면에 있어서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건 없는데, 그 땐 좀 쉽게 가사를 썼죠. 유치하더라도 편한 내용으로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많이 무거워졌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바꿔보려고 해요. 듣기에 편하면서도 결코 유치하지 않은,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으면서 모든 의미는 전달되는 그런 가사를 만들고 싶은데, 이게 정말 하기 어려운 거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는 가상의 이야기에 대해
많이 쓸 예정이에요. 사랑 이야기나 사회적인 면 등에 대해 다뤄 볼 생각이구요. 사실 전엔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별 관심도 없으면서 어줍잖게 비판한답시고 사회문제에 대해 들먹이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요. 제가 우리 나라에 살고 있는 이상, 행여 욕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해야할 것 같아요.
곡을 만들면서 작곡과 작사, 어느 부분에 더 신경이 쓰이세요?
어느 한쪽 신경이 덜 쓰이는 부분은 없겠죠. 하지만 곡에 더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아요. 외국 공연을 하다보니까 곡을 만들면서 외국인들
생각까지 하게 되더라구요. 그 사람들에겐 가사보다 곡이 먼저 들릴 것 아니에요.
음악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가요?
우리 나라 힙합 문화가 잘못 정착이 되어있다는 점이에요. 힙합은 몸으로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힙합을 무슨
자랑하려고 듣는 것 같아요. 클럽 문화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보니까 앉아서 음악을 듣고 분석만 하는 거예요. 들으면서 즐기는 게
아니라 곡을 분석하고 그러면서 많이 아는 척 자랑이나 하고, 래퍼들 족보나 따지고 있고… 희귀한 샘플을 써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요.
샘플링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죠.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 단 한 곡도 샘플링을 사용하지 않았어요. 2집에는 샘플링을 써볼 생각인데,
그렇다고 들어서 누구나 알만한 그런 곡은 쓰지 않을 거예요. 어떤 게 진짜 좋은 건지 알지를 못해요. 그러니까 하면서도 답답하죠.
그래도 전에 비하면 힙합 문화가 많이 발전하지 않았나요?
물론 그렇죠. 하지만 발전했다고 말하기도 그런 것이 전에는 힙합에 대해서 완전 미개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일본만 해도
클럽이며 전문 레코드 샵이 엄청나게 발달되었는데, 우리 나라는 욕이 조금만 들어가도 전부 지워지거나 삐 소리로 처리되거나 아님 곡
자체가 잘려서 앨범이 발매되었잖아요. 그래서 수입 앨범으로 사려고 하면 그나마 파는 곳도 거의 없고, 제대로 된 힙합 잡지, 심지어
번역지조차도 없고… 지금은 많이 나아진 상태이지만 그게 과연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국내 힙합 뮤지션들은 일본
뮤지션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많이 발전했는데, 리스너(listener)와 문화 자체는 일본을 따라 잡으려면 한참 멀었어요. 우리
나라 힙합 매니아 층은 너무 얇고 대중들은 힙합에 관한, 랩에 관한 개념조차 서있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이자 어려운 점이죠.
방송 활동하는 건 어때요?
별로 재미없어요. 우선 여건이 너무 안 좋아요. 라이브를 할 수 있는 변변한 무대가 없죠. 음향 시스템도 너무 안 좋고… 하지만 인지도를
높이고 이름을 알리는데는 방송 만한 게 또 없으니까, 당분간 열심히 할 계획이에요. 그래서 어느 정도 제 이름이 많이 알려졌을 때는
공연 위주의 활동으로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우선은 힘(!)을 길러야 하니까요. (웃음)
힙합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저는 어릴 때 원래 음악을 안 들었어요. 친구들이랑 놀고 운동하는 것 밖에 몰랐죠. 가요나 연예인 이런 데는 관심도 없었고, 음악이
아예 관심 밖이었어요. 그런데 고1 때 Blackstreet을 들으면서 R&B를 듣기 시작했는데, 2학년이 되어서 우리 반에 외국에서 한 친구가
전학을 왔어요. 그 친구가 들어보라며 준 테이프가 있는데, 그 당시 미국에서 한참 유행이던 Naughty by Nature, 2Pac, Warren G 등이
녹음되어 있었던 거예요. 그걸 듣자마자 한 마디로 뻑(!) 가서, 당장 그 친구 집에 가서 다 빌려왔어요. 그 때부터 힙합 앨범을 사려고
엄청나게 돌아다녔죠. 앨범 구하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그런 식으로 계속 앨범을 사 모으면서 듣게 되었죠.
그럼 랩을 직접 하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요?
고3 말쯤에 통신에서 우연히 돌아다니다가 흑인음악 동호회, 그 당시에는 소모임이었죠. 그 모임을 발견했는데, 그곳 사람들이
번개송이란 걸 만들더라구요. 그냥 맘 맞는 사람들끼리 장난으로, 재미로 랩을 만드는 거였는데, 저도 하고 싶어서 꼈어요. 그 때부터
곡을 만든 건데, 그게 첫 창작, 창작이라고 하긴 민망하지만, 하기 시작했죠. 그런 식으로 계속 하다가 97년 말에 클럽 마스터플랜, 그
당시에는 다른 이름이었는데, 그 곳에 가서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면서 제 생각이 바뀌었어요. 재미로, 그저 좋아서 시작했던 것을 제
미래를 걸고 하기로 한 거죠.
첫 무대였던 마스터플랜이 어제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는데 서운하겠어요?
물론 서운하긴 하지만 잘 된 거라고 생각해요. 영영 닫는 것도 아니고 더 발전된 모습으로 새롭게 오픈을 한다고 하니까요. 아직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는 더 좋은 시스템과 더 좋은 무대로 더 좋은 뮤지션들이 설 수 있겠죠.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생각해주시면 돼요.
후속곡이 나와 있다고 들었어요.
네. 12월 8일 MBC <음악캠프>를 첫 무대로 후속곡 <4 Life>를 선보일 예정이에요. 이 곡은 요즘 R&B 뮤지션으로 많이 알려진
유리 씨가 피쳐링하고 있어요. 노래 내용은 더 지극히 제 자신의 이야기예요. 우리 나라 힙합에 대한, 그리고 그 힙합을 하고 있는 나에
대한… 뮤직비디오도 새롭게 촬영할 거예요.
아시아 투어 중이라고 들었는데 자세히 알려주시겠어요?
지난 11월부터 우리 나라를 시작으로 대만과 일본, 동경, 나고야, 오사카를 다녀왔어요. 그리고 내년에 다시 홍콩과 대만을 돌아 3월 2일,
마지막으로 다시 서울에서 아시아 투어의 마지막이자 1집 활동을 정리하는 공연을 가질 계획이에요.
마지막으로 래퍼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자신이 왜 음악을 하는지 분명한 이유를 가지세요. 그저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단발적으로 하는 건 곤란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하다보면 결국 자신이 잘못 망가질 수 있어요. 그리고 랩을 하기 전에 음악을 많이 알아야 해요. 많이 듣고 느껴보고, 그리고 힙합을
이해해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힙합을 즐기세요.